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00:29

차우칠라 스쿨버스 납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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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976 Chowchilla kidnap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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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스쿨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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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되었던 운전수 에드 레이와 아이들

1. 개요2. 하교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스쿨버스3. 발견된 텅빈 버스와 사건 해결 4. 사건의 진상5. 범인들6. 사건 이후

1. 개요

197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희대의 스쿨버스 납치사건.

2. 하교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스쿨버스

1976년 7월 15일 오후 4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차우칠라에 있는 데일리랜드 초등학교에서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집까지 태워주는 스쿨버스가 출발했다. 스쿨버스에는 운전사와 아이들을 포함해 31명이 탑승해 출발했다. 스쿨버스는 29년 경력의 운전수 에드워드 레이(Frank Edward "Ed" Ray)라는 사람이 운전했는데, 베테랑 운전수이고 매일 다니는 길이라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맨 처음 에드워드라는 5살 남자아이가 내렸고, 3번째 정류장까지 모두 5명의 아이가 내렸다. 이렇게 버스에는 남자 7명, 여자 19명 해서 총 26명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았고, 부모들은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예정대로 스쿨버스를 출발시켰던 학교는 "아이들이 집에 오지 않았다"는 소식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학교는 오후 6시경,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스쿨버스가 다니던 도로를 샅샅이 뒤졌으나 버스의 흔적을 찾을수 없었고, 먼저 내린 5명의 아이들에게도 버스의 상황등에 대해 물었지만, 먼저 내린 아이들은 "평소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고 진술했다. 운전수 에드의 아내도 "남편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을 나섰다"고 진술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3번째 정류장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정차했지만 4번째 정류장에서부터 스쿨버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즉 3번째와 4번째 정류장 사이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상황이 이리 되자 경찰은 "누군가가 스쿨버스를 세운 뒤에 총으로 운전수를 위협해서 납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이런 관점에서 수사를 진행했다. 또한 실종된 아이들의 집 어느곳에서라도 수상한 전화가 올것을 대비해서 발신지 탐색 준비까지 마쳤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를 데리고 있다거나 몸값을 내놓으라는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스쿨버스가 납치되었다는 소식에 이전까지 어디있는 곳인지도 몰랐던 차우칠라는 전 미국의 이목이 쏠리는 곳이 되었고, 매스컴은 앞다투어 차우칠라에 취재진을 파견해서, 기자들과 방송국 취재진들로 차우칠라는 들썩거렸다.

3. 발견된 텅빈 버스와 사건 해결

버스가 사라진 지 4시간이 지난 오후 8시경, 차우칠라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웬 큰 차량이 버려져 있는 것을 인근을 수색하던 경찰이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단지 아이들의 책가방만이 자리에 놓여져 있었고, 집중적으로 차 안을 살폈지만 총탄의 흔적이라던지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자정을 넘겨 다음날인 7월 16일, 사건이 중대하다고 판단한 FBI가 지원 요청과 협조한 차우칠라 경찰에 요원들을 파견했다. 하지만 FBI 요원들도 그 시간까지 범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실종된 아이들을 조사했지만, 아이들의 가정중 특별히 유복하다거나 부유한 가정은 없었다. 범인은 특정한 한 아이를 노린 게 아니라 스쿨버스에 탄 사람 전체를 노렸다고 판단되었다.

아침 8시가 되었지만 범인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사건 발생 20시간이 지난 그날 정오까지도 아무런 연락이나 움직임도 없는데다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어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은 애만 탈뿐이었다.

그러던 중 7월 18일, 차우칠라에서 160km 떨어진 리버모어란 곳의 채석장에서 에드와 아이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경찰은 즉시 리버모어로 가서 에드와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무사히 차우칠라로 데려올 수 있었다.

4. 사건의 진상

에드와 아이들의 진술을 통해 드러난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스쿨버스가 4번째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하얀 밴이 길에 멈춰있었다. 에드가 상황을 살피려고 잠시 차를 멈춘 순간, 밴에 타고있던 3명의 무장 괴한이 스쿨버스의 앞문을 두들기며 문을 열라고 협박했다. 후진하거나 그대로 밴을 들이받고 갈 수도 있었으나, 괴한들이 총격을 가해 아이들이 다칠까 우려한 에드는 결국 어쩔 수없이 버스의 문을 열어주었다. 괴한들은 운전수 에드를 제압하고 순식간에 버스를 납치했다. 괴한들은 에드와 아이들을 버스 뒷편으로 몰아간 다음, 1명이 버스를 운전해서 차우칠라에서 15 km 떨어진 곳까지 운전해갔다. 그 지점에서 괴한들은 에드와 아이들을 위협하여, 에드를 비롯한 10명 정도를 밴에 태우고 나머지 아이들은 버스에 남겨두었다. 괴한들은 에드와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허튼 짓을 하면 버스에 남은 아이들을 죽이겠다"라고 협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다음 밴을 출발시켰다. 얼마 후 다른 밴 1대가 그곳에 도착해 남은 아이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2대의 밴은 차우칠라에서 무려 160 km나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FBI가 개입할 시점에는 이미 2대의 벤은 차우칠라를 기점으로 한 수사영역을 벗어나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사건 발생 11시간이 지난 새벽 3시에 2대의 밴은 어떤 채석장에 도착했고, 에드와 26명의 아이들을 모두 내리게 했다. 그런 다음 괴한들은 에드와 아이들에게 구멍 안으로 들어가도록 위협했다.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금속제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은 다름아닌 컨테이너 박스가 실린 트레일러였다. 괴한들은 컨테이너 박스 위에 둥근 구멍을 뚫고 사다리를 놓은 다음, 트레일러째로 엄청난 양의 흙을 덮어 묻어버리고 그 구멍만을 남겨두었던 것이었다.

에드와 아이들이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자, 괴한들은 컨테이너 박스 위의 구멍을 막아버리고 흙으로 구멍 위를 메워버렸다. 순식간에 에드와 아이들은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컨테이너 안에는 범인들이 알량하게 남긴 포테이토칩 과자 몇 개와 깨끗하지 않은 물 1동이가 있었는데, 이걸로는 27명이 오래 버티기는 무리였다.

그런데 괴한들에게서 연락이 없었던 건, 이들이 연락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가 없어서였다. 전대미문의 스쿨버스 납치사건에 아이들의 친인척과 지인들은 물론 차우칠라로 몰려든 취재진들도 본사와 연락하느라 차우칠라의 전화선이 포화 상태에 이르른 탓에, 범인들은 차우칠라의 그 어느 곳에도 전화를 할 수가 없었던것. 이들은 전화로 5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할 참이었으나, 전화가 불통인 탓에 이들이 계획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는 자신감으로 태평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사이, 10시간 넘게 갇혀있던 에드와 아이들에게 트레일러를 파묻은 흙무더기 한쪽의 흙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에드는 그곳으로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아이들의 도움으로 그곳에 있던 매트리스 14개를 쌓은 다음 나이많은 아이들 몇 명이 구멍과 철판 사이로 들어가서 흙을 조심스럽게 제거했다. 이어서 에드가 올라가보니 철판은 100파운드 무게의 산업용 배터리 2개로 눌러져 있었는데, 아이들이 막대기로 철판을 받치고 에드가 무거운 배터리를 철판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철판 위에 쌓인 흙을 옆으로 밀어내, 마침내 컨테이너에 갇힌 지 16시간이 지난 오후 7시 30분에 탈출할수 있었다. 에드의 헌신과 아이들의 도움으로 이뤄낸 일이었다. 에드와 26명의 아이들은 채석장의 관리사무소까지 걸어갔고, 이들을 보고 놀란 채석장의 경비원이 경찰에 연락하여 사건 발생 36시간 만인 7월 18일 새벽 4시, 에드와 아이들은 무사히 차우칠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범인들은 "에드와 아이들이 차우칠라로 돌아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야 자신들이 너무 여유를 부렸다는 걸 깨달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이들은 즉시 그곳에서 도망쳤다.

5. 범인들

이렇게 에드와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왔으나, 괴한들의 정체는 도무지 밝혀낼 수 없었다. 단지 괴한들이 복면을 하고 무장한 3명의 남자로 추정될 뿐, 이들을 특정할 만한 어떤 단서도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에드에게 최면수사를 제안했고, 에드는 이를 받아들여 최면이 진행되었다. 에드는 최면 중에 우연히 스치듯 본 자신과 아이들을 태운 밴의 차량번호를 기억해냈다. 경찰이 이 밴을 추적한 결과, 범인의 정체를 밝혀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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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는 범인들. 왼쪽부터 제임스 셴필드(James Schoenfeld), 프레드 우즈(Fredrick Newhall Woods IV.), 리처드 셴필드(Richard Schoenfeld)

괴한들의 정체는 프레드 우즈, 리처드 셴필드, 제임스 셴필드로, 프레데릭은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대부호의 아들이었다. 또한 리처드 셴필드와 제임스 셴필드도 유복한 집안의 자제들로, 이들 셋은 가정형편상 이런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어보였다.

그러나 FBI가 프레데릭 우즈의 집을 수색한 결과, 그의 집에서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를 할 때 읽으려고 쓴 메모가 발견되었다. 또한 에드와 아이들이 갇혀있던 리버모어의 채석장의 소유자는 다름아닌 프레드 우즈의 아버지였다. 이런 멍청한 놈 채석장의 일꾼은 "프레데릭과 리처드, 제임스가 채석장에 와서 흙을 파내는 모습을 목격했지만, 채석장 소유주의 아들인지라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모든 범죄가 들통나자 캐나다로 도피를 시도했으나 FBI에 의해 붙잡혔다. 부유한 이들이 500만 달러를 벌려고 무고한 스쿨버스 운전수와 아이들을 납치한 이유는, 단지 클래식 카를 살 돈이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엄격한 부모가 돈을 주지 않아서 빡친 나머지, 완전범죄를 구상하고 500만 달러를 몸값으로 받아내 그것으로 클래식 카를 사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3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심에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었는데, 검찰은 납치된 아이들 중 3명의 소녀가 코피와 복통 증세를 보이고, 실신한 것을 들어서 셋에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구형하고 그대로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를 신체부상이라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을 선고했던 것. 리처드 셴필드는 무려 20여차례나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가 2008년 가석방이 허가되어 풀려났다. 이들의 사건을 맡았던 검사의 가석방 청원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의 피해자인 성인이 된 당시 아이들과 차우칠라 주민들은 "가석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고 한다.

이후 제임스 셴필드는 2013년 가석방이 거부된 후 3년이 지난 2017년에 가석방 재심사가 예정되어 있으며, 주범인 프레드 우즈는 2012년에 가석방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고 3년 후 2016년에 가석방 재심사가 예정되어 있다.

6. 사건 이후

용기있게 아이들을 보호하고 헌신한 에드 레이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추천으로 캘리포니아 교사협회에서 표창을 받았다. 이후 91세까지 살며 장수하다 2012년 5월 17일 운명했다.

26명의 아이들은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심각한 PTSD 증세를 보였다. 이들을 추적조사한 심리학자에 의하면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어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고 약물을 남용하는 등의 일들이 있었으며, 심지어 1명은 "누군가가 날 조종하려 한다"면서 폭력을 행사했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