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3:41:22

청양몽염

1. 개요2. 생애

1. 개요

靑陽夢炎, 생몰년 미상
남송 시기의 관원이다. 자는 재원(梓卿)으로, 사천성 성도 출신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회동, 호북 지역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지리주를 지냈을 때는 가재로 20경의 밭을 사서 세입의 절반으로 양식을 팔아 빈민들에게 혜택을 주어 '의제장'이라고 불렸다. 창덕부로 옮겼을 때는 빈민들이 질과 쌀을 공급하고 이자를 받지 않도록 하였다. 송 도종 함순 연간에는 가사도에게 거역하고 벼슬을 하지 않았다.

2. 생애

이단이 포위되자 송 이종이 익도의 관청에 은 5만 냥을 하사하고 그 돈으로 병사들을 먹이게 하였으며, 그로 하여금 이단을 지원하게 하였다. 그러나 청양몽염은 산동에 이르렀을 때 토벌군의 기세가 강한 것을 보고 남쪽으로 철수한다.

이후 1275년 3월 호북제치부사 고달, 경호사천무마사 주사손과 함께 강릉을 지키고 있다가 아릭카야의 군대가 고세걸이 이끄는 군대를 동정호에서 대파하고 그를 항복시키고, 사시진을 대도살한다.[1] 고달과 함께 이를 지켜보았고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그 뒤 아릭카야가 항복을 권유하자 그 해 4월 고달, 주사손과 함께 원나라에 투항하고 만다. 그 이후 도읍으로 불려가 저택을 하사받는다. 벼슬은 한림학사에 이르렀다.


[1] 여기서 사시진을 지키던 사마몽구는 자결하고, 도통 정문량은 원에 투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