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청화 스님(淸華, 1923년 2월 6일 ~ 2003년 11월 12일)은 40여 년간 하루 한 끼 ‘일종식’과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이어온 수행자이자, 불교계에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지식’으로 추앙받는 고승이다. 상좌들과 마지막 순간에도 겸허한 법어를 남기고 사망하였다.[1][2]2. 생애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광주사범학교와 일본 메이지대 유학을 거친 후, 1947년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3] 이후 대흥사,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성륜사 등에서 장좌불와와 일종식을 실천하며 구도자의 삶을 걸었다.[4][5]3. 수행 및 가르침
평생 40여 년 동안 방에 눕지 않고 하루 한 끼만 공양하는 수행으로 일관하였으며, 고요한 장좌정진 속에서 원효의 화쟁사상과 회통불법을 강조하였다.[6][7]4. 일화
- 2003년 11월 12일 곡성 성륜사 조선당에서 상좌가 “큰스님, 가시렵니까?” 묻자 스님은 “나, 갈라네”라고 하셨고, 마지막 법어로 “승가란 화합이네”를 남긴 뒤 열반에 드셨다.[8]
- 상좌들과 법담을 나누던 도중에도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는 일화는 스님의 평정심과 온화한 성품을 잘 보여준다.[9]
5. 업적
* 장좌불와·일종식 수행 실천을 통한 구도자의 삶 전형 제시* 미국 캘리포니아에 삼보사·금강선원 설립, 해외포교 기틀 마련
* 정통선 기반의 염불선 통합·원통불교 사상 확산
6. 법맥
| 세대 | 이름 |
| 1세 | 경허 스님 (鏡虛, 1849~1912) |
| 2세 | 만공 스님 (滿空, 1871~1946) 금타 스님 (碧山金陀, 1898~1948) |
| 3세 | 청화 스님 (淸華, 1923~2003) |
7. 평가
“생과 사는 둘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한 수행자로, 열반의 순간까지도 화합과 평온을 강조한 스승이었다. 40년간 지켜온 원칙적 수행과 자비 중심 법풍은 한국 현대 선불교의 귀감으로 자리잡았다.[10][11]8. 참고 자료
* 법보신문 - 수행자 사표 청화 스님 삶과 사상* 불교닷컴 - 20명 제자가 본 청화 스님
* 한국경제 - 50년 장좌불와 청화 스님 이야기
* 현대불교 - 청화 대종사 전기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