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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식스 왕국 제7, 9대 국왕 첸왈흐 Edward the Elder | |
이름 | 웨식스의 첸왈흐 (Cenwalh of Wessex) |
출생 | 미상 |
사망 | 672년 (향년 불명) |
재위기간 | 642년 ~ 645년 (제7대) 648년[1] ~ 672년 (제9대) |
아버지? | 퀴네길스 |
배우자 | 색스부르흐 |
고대 영어: Cenwalh (첸왈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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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식스 왕국의 제7,9대 국왕이다.2. 상세
한 세대 이후의 베다는 퀴네길스의 아들이라 기록했고 앵글로색슨족 연대기도 이를 인정하는데, 실제로 아들인지는 불명확하다. 무엇보다도 첸왈흐란 이름 자체가 앵글로색슨식이 아닌 브리튼식 이름인데, 웨식스의 시조 체르디치도 그렇고 캐드왈라도 그렇고 유난히 C로 시작하는 초기 웨식스 왕들 중에 그런 왕들이 많다.642년 웨식스의 국왕이 되었다. 그가 아내로서 맞이한 머시아 국왕 펜다의 누이를 버리자 분노한 펜다가 645년 웨식스를 공격해 점령했다. 첸왈흐는 동앵글리아로 망명해야 했고, 648년 펜다가 평화 협정을 인정한 뒤에야 웨식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같은 해 퀴첼름의 아들인 쿠드레드에게 땅을 수여했다.
672년 사망했으며 자식이 없어 새로 맞이한 아내 색스부르흐가 여왕이 되었으나 하위왕(underking)들의 반발로 웨식스는 10여 년간 난리통이 되었으나 이후의 국왕들 첸트위네[2]와 캐드왈라에 의해 웨식스는 다시 안정된다.
3. 후손 논란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는 첸왈흐의 자식이 없다고 주장하고, 베다 또한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현대 학자들은 첸왈흐의 자손이 존재하며 9세기에 무려 머시아에서 왕을 했던 코엔울프와 체올울프 형제[3]가 그의 자손이라고 추측한다.이 두 형제의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조상은 8세기 후반 즈음에 머시아에서 갑툭튀하는 쿠드버트인데, 이 인물이 첸왈흐의 자손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해외에서 만들어진 7왕국 왕 계보도를 보면 이들을 웨식스계로 첸왈흐의 후손이라 표기한다. 이들이 어째서 머시아로 이주하게 되었는지는 불명이나, 퀴첼름, 첸왈흐, 첸트위네 셋이 서로 형제가 아니라는 가설이 맞다면 당대 웨식스 내의 권력투쟁에서 밀려 당시 잉글랜드의 패권을 쥔 머시아로 망명했다고 보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이들을 머시아의 펜다 왕의 후손이라 주장하는데, 현대 학자들은 펜다의 여동생을 통해 머시아 왕가의 피가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