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3 22:27:15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파일: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jpg[1]
이름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
(영어: Constantine Palaiologos, 그리스어: Κωνσταντῖνος Παλαιολόγος)
출생 1261년
사망 1306년 5월 5일
직위 포르피로게니투스
반란 대상 안드로니코스 2세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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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의 반란자. 부친 미하일 8세의 총애를 받는 황자였지만, 형 안드로니코스 2세 즉위 후 반역 혐의를 뒤집어쓰고 수도원에 유폐되었다.

2. 생애

미하일 8세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의 세번째 아들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수복된 직후 태어났기에, 진정한 포르피로게니투스라고 일컬어졌다. 자라나면서 총명한 면모를 보였기에, 미하일 8세는 그에게 데스포티스보다 더한 대우를 해줬다고 한다. 1280년 마케도니아에서 세르비아군과 맞섰고, 소아시아에서 투르크군과 교전하여 미안데르 강 계곡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스타디오스 수도원을 재건했다.

1282년 12월 11일, 형 안드로니코스 2세가 즉위했다. 그는 동생 콘스탄티노스의 명망이 매우 높은 것에 위협을 느꼈다. 1293년 님파이온에서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고변이 들어오자, 그는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동생을 곧장 수도원으로 보내버렸다. 역사가 그레고라스는 안드로니코스가 1299년 테살로니키로 가서 스테판 우로시 2세 밀루틴과 자기 딸을 결혼시키는 문제를 논의했을 때, 테오도라가 콘스탄티노스의 석방을 주선하려 하였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안드로니코스는 끝내 어머니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 그는 아타나시오스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내다 1306년 5월 5일 사망했다.

그는 프로토베스티아리오스(Protobestiarios) 직책을 역임하던 요안니스 콤니노스 두카스 앙겔로스 라울의 딸인 이리니 라울라이나와 결혼하여 요안니스 팔레올로고스를 낳았다. 요안니스는 마케도니아의 데스포티스를 맡다가 1326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세르비아 왕국스테판 우로시 3세 데찬스키와 연합했다.그러다가 안드로니코스 2세로부터 카이사르 칭호를 수여할 테니 귀국하라는 요청을 받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동하던 중 돌연사했다.


[1] 왼쪽 인물은 테오도라 팔레올로기나, 중간이 콘스탄티노스 팔레올로고스이며, 오른쪽 인물은 미하일 8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