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08:08:37

쿠로에 야스히코



1. 개요2. 전쟁 당시
2.1. 중국 전선2.2. 태평양 전선2.3. P-51C 파일럿
3. 전후4. 기타

1. 개요

쿠로에 야스히코(黑江保彦) 소좌. 일본군 최종 계급은 소좌이며 항공자위대에서는 공장보(공군 준장/소장에 상당)로 6항공단 사령관까지 역임했다. 공인 격추수는 일본 육군항공대 1위인 51기. 일본군 전체로 확대해본다면 해군 출신인 이와모토 테츠조(80~87기 격추), 후쿠모토 시게이(71기 격추), 그리고 스기타 쇼이치(70기 격추)에 이은 4위에 랭크된다. 참고로 5위는 사카이 사부로(28기 격추).[1]

그는 에이스 파일럿으로도 유명하고 실제로도 공중전 실력이 뛰어났으나, 일반적으로는 에이스로서의 행적보다는 노획한 P-51 머스탱과의 인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 전쟁 당시

2.1. 중국 전선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한커우의 비행장에서 각종 훈련을 받다가 노몬한 사건이 일어나자, 쿠로에의 부대는 8월 29일에 만주국과 몽고의 국경 경계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그곳에서 쿠로에는 소련군 항공기를 상대로 처음으로 실전을 경험한 후 노몬한 사건이 정전되었을 9월 15일 오전에도 소련 영내의 탐스크를 폭격하는데 참가해 I-15 전투기 2대를 격추시켰다. 정전 이후에는 다시 한커우로 돌아간뒤 광둥, 하이난다오 근해, 난링 등을 전전했다.

2.2. 태평양 전선

2.3. P-51C 파일럿

파일:P-51 Evalina in Japan 2.jpg
노획한 머스탱과 야스히코 소좌

1945년 1월 미국 육군 항공대의 올리버 E. 스트로브릿지(Oliver E. Strawbridge)[2]의 P-51C '에발리나(EVALINA)'는 대공포에 피격당해 불시착하여 일본 측에서 노획, 수리해서 일본 본토의 항공대 기지를 순회하면서 모의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때 조종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머스탱의 압도적인 비행성능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모의전을 했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모의전을 하던 상대들[3]은 쩔쩔맸는데, 쿠로에 본인이 에이스 파일럿인 점, 모의전을 치른 파일럿들이 대부분 신참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머스탱의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100%도 아니고 80% 정도의 성능만 냈음에도 신병들은 처참하게 졌다. 그런 모습을 보고 쿠로에는 "난 아직 이 비행기의 전력을 내지도 않았다"라면서 그들의 투쟁심을 유발시키려 하였다.

그런가하면 노획한 머스탱을 타고 B-29 편대의 무전방수구역으로 들어가 그들과 같이 편대비행[4]을 할정도로 강심장이였다.

3. 전후

구 일본 육군 해체 이후 귀향하여 몇년간 농업, 행상, 설비업 등 다양한 직종을 전전했으나 벌이는 신통치 않았고 오히려 빚만 잔뜩 지게 됐다. 결국 본업인 조종사로 돌아가 민간항공사인 후지항공에서 잠시 일한 후 1952년 항공자위대에 입대했다. 역시 조종사가 천직이었는지 제트 전투기를 몰게 된 이후로는 젊은 시절의 활기를 되찾았다고 한다.

영국 유학, 전투기 비행대 지휘관을 거쳐 제6항공단의 사령관으로 재직중이던 쿠로에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65년 12월 5일에 악천후 속에 후쿠이현의 에치젠 해안에서 갯바위 낚시를 나갔다가 높은 파도에 휘말려 익사하고 말았다. 12월 7일에 제 6 항공단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선 비행 제64 전대의 노래(가토 하야부사 전투대가)가 연주되었다.

4. 기타

<엔젤 윙스:버마 밴시>에서 노획한 머스탱을 타고 나온다.

워 썬더에서 그가 노획하여 탑승한 P-51C 머스탱이 일본트리의 프리미엄 장비로 등장한다.
[1] 재밌는 점은 격추수 종합 4위인데 3위나 5위랑 격추수 차이가 꽤 난다는 것이다.[2] 격추 당시에는 원래 주인인 스트로브릿지 중위가 아닌 샘 맥밀란 소위가 조종하고 있었다.[3] 이때 쿠로에를 상대한 기체는 Ki-61 히엔이였다.[4] 일정각도에서 무전기가 교란되었기에 쿠로에는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