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Queen Isabella Causeway Collapse2001년 9월 15일 미국 텍사스주의 퀸 이사벨라 대교가 선박과의 충돌로 무너진 사고.
2. 퀸 이사벨라 대교
퀸 이사벨라 대교는 1974년에 개통된 다리로, 이사벨 항구와 파드레 섬을 연결해 준다. 파드레 섬은 라구나 마드리와 멕시코만 사이에 끼인 작은 섬으로, 1970년대 초중반까지도 인구가 300명 정도밖에 안 됐던 작은 섬이었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섬과 육지를 연결해줄 다리가 필요했고 1954년 섬과 근처의 이사벨 항구를 연결해주는 나무 다리가 개통됐다. 이후 약 800m 위에 허리케인을 버틸 수 있는 다리가 개통되어 인근 100번 고속도로와 직통으로 연결됐다. 나무 다리는 이 다리가 지어진 뒤 철거됐다.그렇게 지어진 4차선의 퀸 이사벨라 대교는 당시만 해도 텍사스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너비는 약 20m, 다리의 제일 높은 구간은 23m였는데 밑을 지나는 배가 쉽게 지날 수 있게 하기 위해 높게 지었다.
그동안 배가 지나면서 다리를 들이받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고 또 한 번은 약에 취한 비행기 조종사가 세스나 경비행기를 몰고 가면서 다리 밑을 통과하려다가 다리와 충돌해 파일럿과 승객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지만 다리 자체가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다. 하지만 2001년 9월 14일 사건이 터졌다.
3. 사고의 전개
2001년 9월 14일 이른 새벽 선박 MV 브라운 워터 5가 브라운스빌(Brownsville)항구에서 출발했다. 당시 선장을 포함 선원 5명이 탑승했고 배는 강철을 실은 바지선 4대를 끌고 출발했다. 선장은 록키 리 윌슨(Rocky Lee Wilson)이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고 선장은 같이 동승했던 선장 데이비드 B 파울러(David D Fowler)와 교대 후 잠을 청하러 갔다. 그렇게 데이비드 선장이 바지선을 끌고 가는데 해류 때문에 갑자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 배가 기울자 선장은 배를 멈춰 보려고 했으나 결국 계속 기울던 배는 퀸 이사벨라 대교와 충돌했다. 충돌 당시 속도는 약 시속 32km였다.충돌의 충격으로 약 24.4m 구간의 다리가 무너졌다. 무너지면서 다리의 전선이 끊겨 가로등이 전부 꺼졌고 배에선 조명을 비추며 차량에 경고하려고 했으나 경고를 보지 못한 차량 5대가 다리 밑으로 추락했다. 하필 사고 지점이 경사가 높은 구간인 데다 가로등마저 꺼져 운전자가 사고를 알아채기 힘들었다. 사고를 목격한 인근 어선이 구조하러 갔으나 결국 이 사고로 8명이 사망했다. 하필이면 무너진 구간이 높은 구간이었고 다리를 지나던 차량들이 그 구간을 볼수가 없어서 피해가 컸다. 생존자는 Brigette Goza와 Rene Mata, 그리고 Gustavo Morales 3명이었는데 차량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뒤 지나가던 어선이 구조해 살아남았다.
사고 초기에는 언론은 물론이고 떨어진 차량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갑자기 다리가 무너진 게 테러 때문인가 하는 의혹이 있었는데 사고 며칠 전에 9.11 테러가 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조사 결과 배가 다리가 충돌해 그런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9.11 테러가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말도 안될 정도로 큰 충격을 가져다 주어서 그 사고에 신경쓰기 바빴던 해외에선 사실상 묻혔고 미국에서도 그리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당시 기사도 사건 규모에 비해 많이 나오지 않았다.
4. 사고 이후
파드레 섬은 육지와 연결되던 유일한 다리가 끊기면서 사람의 이동은 물론이고 식수와 전력 전달마저 막혀 섬 주민들은 2달간 페리선을 타고 육지로 이동해야 했다.무너진 기둥 외에 충격을 받은 기둥도 약해졌단 결과가 나와 다리를 다시 짓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다시 지으면서 다리의 상태를 알리는 경고등이 같이 설치됐다.
다리는 2001년 11월 21일에 재개통됐다. 사고로부터 2년 후에는 퀸 이사벨라 추모 대교(Queen Isabella Memorial Bridge)로 이름이 바뀌어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