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키리시마 사토시 [ruby(桐, ruby=きり)][ruby(島, ruby=しま)] [ruby(聡, ruby=さとし)]| Satoshi Kirishima | |
출생 | 1954년 1월 9일 |
일본 히로시마현 | |
사망 | 2024년 1월 29일 (향년 70세) |
일본 가나가와현 카마쿠라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0cm |
학력 | 히로시마현립키타오노미치 고등학교 (졸업) 메이지가쿠인대학 (법학부 / 중퇴) |
직업 | 회사원[1] |
소속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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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극좌 테러리스트.
2. 생애
메이지가쿠인 대학에 진학한 그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가입하여 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폭탄 테러와 한국산업경제연구소 폭파 사건에 가담하여 지명수배되었지만 체포된 동료들과 달리 도피에 성공하였다. 경시청은 그를 세 차례나 흉악 지명수배자로 지정되었으나 체포에 실패했다.[2]3. 사망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활동 당시인 1975년부터 2024년에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수배된 상태였는데 말기 위암으로 가나가와현의 병원에 입원 중 사망하였다. 49년간 가명을 사용하면서 자신을 숨기며 살았으나 "마지막은 자신의 이름으로 죽고 싶다"는 이유에서 사망하기 3일 전 신분을 밝혔다. #1 #2 조사 과정에서 진술에 따르면 범행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경시청은 그가 범행 당시 공개되지 않은 정보나 개인 신상 등의 정보를 해당 남성이 잘 알고 있는 점을 들어 그가 키리시마 사토시가 맞다고 봤는데 DNA 감식 결과 키리시마 본인이 맞다고 결론내렸고 시신은 경찰서에서 가마쿠라의 화장장으로 옮겨졌으며 인수자가 없으면 무연고 시신으로 매장될 예정이다.
[1] 도피 생활 중 오카야마현 출신의 '우치다 히로시(内田 洋)'라는 가명으로 토목 회사(공무점)에서 근무했는데 이 기간 동안 친구도 만들고 근처 바에 단골손님으로 지내며 사진까지 남긴 것을 보면 일상생활을 잘 영위한 듯하다.[2] 그가 막내뻘이었기 때문에 체포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실제로 폭발물 관리법 위반으로 수배되었다. 참고로 같이 도피한 막내인 우가진 히사이치(宇賀神 寿一)는 1982년 도쿄에서 신문 판매원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21년을 선고받았다.
4. 여담
- 그가 일으킨 한국산업경제연구소 폭파사건은 새벽 1시 경 발생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 우치다 히로시로 도피 생활을 하던 중의 별명은 웃치(うっちー), 우양(うやん)이었다고 한다.
- 록 계통의 노래를 아주 좋아했다.
- 그의 사망이 알려지면서 지명수배 명단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갔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의 신고로 야쿠자 간부이자 살인미수 혐의로 3년째 수배 중이던 김 시게유키(金 成行)가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