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3 21:39:08

키쿠타 사나에

파일:smith315.jpg
이름 키쿠타 사나에
([ruby(菊田, ruby=きくた)] [ruby(早苗, ruby=さなえ)])
출생 1971년 9월 10일 ([age(1971-09-10)]세)
도쿄도 네리마구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종합격투기 전적 44전 31승 9패 3무 1무효
5KO, 16SUB, 10판정
4KO, 2SUB, 3판정
체격 175cm / 81kg
주요 타이틀 2001 ADCC -88kg 금메달
1996 Lumax Cup Tournament of J'96 우승
1997 Lumax Cup Tournament of J'97 우승
Pancrase 2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주요 타이틀 Pancrase 라이트헤비급 타이틀 방어 1회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clearfix]

1. 개요

전 일본의 종합격투기 선수.

2. 전적

3. 커리어

초등학교 6학년때 사야마 사토루가 운영하던 슈퍼 타이거 짐에 입문했으나 헬스장과 다름이 없어 바로 그만뒀다.

학창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했으며 고등학교시절 86kg급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체육대학에 진학해서도 선수로 활약했으나 체육교사를 희망하지 않아 휴학했고 UWF 프로레슬링에 입문했지만 혹독하고 부조리한 합숙생활을[1] 견디지 못하고 2주만에 탈주했다.[2] 그후 대학을 중퇴하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전설적인 킥복서인 스탠 롱기니디스 휘하에서 킥복싱을 시작했다.

그 후 일본에 귀국해 정도회관에 들어가 수련했고 UFC에서 호이스 그레이시의 활약에 정도회관 측에서 정식적으로 격투기에 입문할 것을 권했고 키쿠타는 자신의 영역 밖의 그라운드를 파기시작했고 상당한 재능을 보이며 슛복싱을 시작으로 종합격투기에 입문했다.

그 후 UFC, Pancrase, Pride, DEEP등 여러 단체를 돌아다니며 2014년까지 선수생활했다.

4. 파이팅 스타일

유도베이스의 그래플러로 그라운드를 늦게 파기 시작했지만 상당한 재능을 보이며 2001년 ADCC 88kg급 우승을 차지했다. 상대를 레그트립으로 테이크다운 시킨후 그라운드 상위에서 적극적인 가드패스, 포지션장악능력이 뛰어났으며 하위에서도 버터플라이 가드, 델라히바가드등 다양한 가드포지션에서 스윕을 노린다. 노게이라와의 경기 1라운드 그라운드에서 상당한 접전을 벌였다.

5. 여담

법학자이자 메이지대학 명예 교수인 키쿠타 코이치의 아들이다.

취미는 피아노 연주다.

프로레슬링 관점을 프로레슬링으로 보자는 관점을 갖고 있다. 당시 일본은 프로레슬링을 상당히 진지하게 승부로 바라봤고 UWF를 통해 실전지향레슬링을 지향했으나 키쿠타는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고 프로레슬링은 철저한 엔터테인먼트다라는 관점을 갖고 있다.

2002년 도쿄도 나카노구에서 GRABAKA짐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는 미사키 카즈오, 고노 아키히로, 스도 겐키, 요코타 카즈노리가 있다.

2010년 쯤에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칭 대동류합기도 고수 & 기공도사에 200승 무패의 사나이 야나기 류켄과 스모 대결을 벌여 3초만에 승리를 거둬 류켄에게 생애 2패째를 안겨주었다.[3] 사실 류켄이 무적의 무술인임을 컨셉으로 삼는 종교인이자 예능인이고 1941년 생이라 당시에도 70대였는데 한때 아부다비 컴뱃 레슬링대회도 우승한 유도 베이스이자 현역 격투가 출신인 키쿠타를 이긴다는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사실 말이 좋아 3초지 키쿠타가 살짝 힘주자 마자 류켄이 홀라당 넘어진것. 그래서 일본 대중들이 류켄에게 이젠 200승 2패가 되었다는 농담성 멘트를 날렸다.


[1] 수련생들은 일요일에 외출하지 못하고 맞선임이였던 타무라 키요시가 목욕을 끝나기 전엔 목욕을 할 수 없었다.[2] 후에 프로레슬링 잡지 인터뷰에서 합숙생활에 대한 부조리를 비판했고 프로레슬링 계와 팬사이에 논란이 되었다.[3] 2006년에 류켄 자신이 200승 무패라고 선전하며 이와쿠라 츠요시에게 도전했다 타격을 허용하다가 이미 패한적이 있어 대중들에게 200승 1패의 사나이라고 조롱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