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크 스미트의 역임 직책 | |||||
{{{#!folding ▼ | 네덜란드 축구 국가 대표팀 역대 주장 | ||||
바스 파우어 (1940~1946) | → | 키크 스미트 (1946) | → | 바스 파우어 (1946) |
네덜란드의 축구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키크 스미트 Kick Smit | |
본명 | 요하너스 크리스호스토뮈스 스미트 Johannes Chrishostomus Smit | |
출생 | 1911년 11월 3일 / 네덜란드 블로멘달 | |
사망 | 1974년 7월 1일 (향년 63세) | |
국적 | 네덜란드 | |
신체 | 182cm / 78kg | |
직업 |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HFC 하를럼 (1933~1950) HFC 하를럼 (1955) |
감독 | HFC 하를럼 (1950~1956) AZ '54 (1956~1958) HFC 하를럼 (1965~1966) | |
국가대표 | 29경기 26골 (네덜란드 / 1934~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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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의 전 축구 선수 출신 감독.그의 본명이 요하너스 크리스호스토뮈스 스미트로 좀 길어서 별명인 키크[1](kick)로 더 많이 알려졌다.
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가톨릭 교도였던 스미트는 어린 시절 가톨릭 교도들의 클럽이었던 헤일빗(Geel-wit)에서 뛰었다. 1933년(또는 1934년), 축구 선수로 평생을 보내게 될 HFC 하를럼에 입단한 스미트는 전쟁 시기에는 다른 가톨릭 클럽인 헤임스테더 베르컨로더 콤비나티에(Heemstede Berkenrode Combinatie)를 비롯한 여러 클럽에서 코치로 일하기도 했다.전후에 다시 하를럼에 돌아온 스미트는 1945-46 시즌에 네덜란드 축구 챔피언십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에서는 리뉘스 미헐스가 이끌던 AFC 아약스에 홈에서 0대8로 대패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고, 아버 렌스트라가 이끄는 헤이런베인에 패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머지 경기는 잘 마무리해가며 잘 결국 7승 1무 2패, 승점 15점으로 7승 3패로 승점 14점에 그친 아약스를 제치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것이 하를럼 구단 역사상 유일한 리그 우승 기록이다.
1950년 이후부터는 실질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친정팀 하를럼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1955년에 잠시 선수로 복귀했다.
2.1.2. 국가대표
스미트는 1934년 3월 11일,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A매치에서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 네덜란드는 이 경기에서 벨기에를 9대3으로[3] 대파했는데 스미트는 바크하위스와 더불어 각각 2골씩을 넣었지만 5골을 넣은 펜터에게 활약상면에서 가리는 약간의 불운이 있었다.스미트는 193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아일랜드 자유 주 대표팀을 상대로 2골, 안트베르펜 원정 경기에서 벨기에에 동점골을 넣어 4대2 역전승의 기틀을 마련했다.
산 시로에서 열린 네덜란드의 월드컵 데뷔 경기이자 본선 1라운드의 상대는 스위스. 전반 29분에 스미트가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이것이 네덜란드의 월드컵 첫 득점이 되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스위스에 예상 외의 고전 끝에 2대3으로 패배. 탈락하고 말았다.
스미트는 193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룩셈부르크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4대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스미트가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네덜란드는 벨기에와 1대1로 비기면서 본선 동반 진출에 성공했다.
스미트는 1938년 2월 27일, 벨기에를 상대로 A매치 커리어 중 유일한 1경기 4골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본선 1라운드에서는 전 대회 준우승국 체코슬로바키아와 만났다. 당시 네덜란드보다 한 수 위의 전력을 보인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네덜란드는 잘 버텼지만 결국 연장전에서 3골을 허용하며 0대3으로 무너졌다.
1940년 3월의 벨기에전을 끝으로 스미트는 한동안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다가 1946년에서야 다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의 마지막 A매치는 1946년 11월의 잉글랜드전이었으며 네덜란드는 2대8로 압살당했다. 스미트는 그나마 이 경기에서 후반 42분에 골을 넣었다.
2.2. 이후
선수 생활을 마친 이후 스미트는 감독, 스포츠 트레이너 일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스미트는 오랜 투병 생활끝에 1974년 7월 1일에 사망했는데 이틀 후 네덜란드 대표팀은 브라질을 2대0으로 꺾고 사상 첫 월드컵 결승에 올라갔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패싱, 슈팅, 공수만능에다 시야도 뛰어났고 기술적으로 원숙한 플레이를 펼친 포워드. 왼쪽에서 플레이하는 걸 더 선호했다고 전해진다.요한 크루이프 이전의 네덜란드 최고의 만능 플레이어였으며 그의 친정팀 하를럼에서는 당연히 역대 구단 최고의 레전드로 스미트를 기린다. 하를럼의 홈구장 내 특별 좌석의 이름이 키크 스미트로 헌정되어 있다.
4. 뒷이야기
- 스미트는 후배 공격수들인 파스 빌커스, 아버 렌스트라와 묶여서 키크 빌스트라(Kick Wilstra)로 불리기도 한다. 이 말은 만화가 헹크 스프렝어(Henk Sprenger)가 유행시켰다고 한다.
5. 대회 기록
- HFC 하를럼
- 네덜란드 풋볼 챔피언십: 1945-46
[1] Forvo에 녹음된 네덜란드어권 사용자의 발음과 한글의 네덜란드어 표기법상 ck발음이 없다는 것을 참조하여 영어식 발음인 킥이 아닌 키크로 표기했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11v11 기준. 독일어 위키피디아에는 스코어가 9대2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