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0:19:25

타예 타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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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예 타이우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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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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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 2008-09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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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2008 · 2010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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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Taiwo_Marseille_1.jpg
<colbgcolor=#0e6cc0> 살론 팔로일리야트 No. -
타예 타이우
Taye Taiwo
<colcolor=#000000> 본명 타예 이스마일라 타이우
Taye Ismaila Taïwo
출생 1985년 4월 16일 ([age(1985-04-16)]세)
나이지리아 라고스
국적
[[나이지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82cm, 87kg
포지션 레프트백, 센터백, 윙어
유소년 클럽 가브로스 (2003~2004)
로비 스타즈 (2004)
소속 클럽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5~2011)
AC 밀란 (2011~2013)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 / 임대)
FC 디나모 키이우 (2012~2013 / 임대)
부르사스포르 (2013~2015)
HJK 헬싱키 (2015~2016)
FC 로잔 스포르 (2017)
AFC 에스킬스투나 (2017)
로바니에멘 팔로세우라 (2018~2019)
독사 카토코피아스 (2020)
팜 비치 사커스 (2020~2021)
ACD 산 안젤로 1907 (2021~2022)
살론 팔로일리야트 (2022~)
국가대표 54경기 8골 (나이지리아 / 2004~2012)
종교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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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이지리아의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2.1. 경력 초기

타이우는 자국의 수도 라고스에서 태어났으며, 2부리그 팀인 가브로스 인터네셔널과 1부리그의 로비 스타즈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2.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5년 1월, 20살의 그는 20만 유로에 3년 계약을 맺고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의 레전드 풀백이었던 비셴테 리사라수필립 트루시에 감독과 선수 기용법에 관한 마찰이 생기면서 반년만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돌아갔고, 그 공백을 매우기 위해 영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월 12일, RC 랑스전을 앞두고 콜업됐던 타이우는 선발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61분을 소화한 뒤 교체됐다. 경기는 2:1 마르세유의 승리로 끝났다. 랑스와의 데뷔전을 마친 후 지역 언론 Foot Marseille는 그의 활약에 대해 미숙한 부분이 많았지만 종종 번뜩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의 나이와 신체조건 등을 생각했을때 앞으로 발전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 후 타이우는 2004-05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리그 3경기를 더 출전하면서 총 4경기로 데뷔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5-06 시즌을 앞두고 그는 오프시즌에 치러진 FIFA U-20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많은 주목을 받게 된다. PSV 에인트호벤은 당시 왼쪽 풀백으로 활약하던 이영표와 스왑딜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마르세유의 회장 파페 디우프[1]는 단칼에 거절했다. 다가오는 시즌에는 그를 즉시 전력감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음해 1월에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으로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를 제외하고는 시즌 초부터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네이션스컵을 마치고 팀에 복귀한 뒤에는 쿠프 드 프랑스 결승 진출을 견인했으나, 파리 생제르망에게 아쉽게 패하며 우승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2006-07 시즌에는 개막 이전부터 유수의 클럽팀들의 관심을 받았으나, 타이우는 잔류를 천명했다. 그리고 당해 시즌에도 리그 전 경기에 나서며 붙박이 주전으로 뛰었고, 다시 한번 팀과 함께 쿠프 드 프랑스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소쇼에게 승부차기에서 패하며 또 다시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참고로 그는 첫번째 키커로 나서 깔끔하게 성공시켰으나, 뒤의 동료들이 실축을 하고 말았으니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다음 시즌에도 발렌시아와 이적설이 났으나, 성사되지는 않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이듬해 4월에 소속팀과 2011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이후 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첫 리게 앙 베스트팀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2008-09 시즌이 개막하고, 스타드 렌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마르세유 소속으로 100경기를 달성했으며, 팀의 3번째 골을 득점했다. 결과는 4:4 무승부. 브장송 RC와의 쿠프 드 프랑스 1차전에서는 처음으로 클럽의 주장으로 출장했고,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부차기로 이끈 뒤 5:4로 승리하여 다음 라운드 진출을 견인했다. 그러나 매 경기 완벽할 수는 없었던지라 22라운드 소쇼 몽벨리아르전에서는 거하게 삽질을 하며 0:1 패배의 주범이 되었고, 경기 후 에릭 게레츠 감독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심기일전한 타이우는 리그 5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견인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완벽하게 만회했다. 이후 팀과 함께 리그 우승에 도전했고 4월 한달간은 1위 자리를 지켰으나, 36라운드 리옹과의 홈경기에서 1:3으로 패한 것이 치명타가 되어 승점 3점 차이로 보르도에게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선수 본인은 2시즌 연속 리게앙 베스트 11에 선정되면서 여전히 리그 탑급 레프트백으로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9-10 시즌에는 디디에 데샹이 부임한 뒤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켰고, 마침내 데뷔 5년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다. 또한 쿠프 드 라 리그 결승에서 보르도를 꺾으며 더블을 달성한 것은 덤. 다음 시즌에도 주전 레프트백으로 뛰며 2년 연속 쿠프 드 라 리그 우승을 기여했고, 3번째로 리게앙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시즌 내내 선수 본인은 잔류를 원했고, 팀도 재계약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시즌이 끝난 뒤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6년만에 마르세유를 떠나게 됐다.

2.3. AC 밀란

2011년 5월 9일, 자유계약으로 필립 멕세와 함께 AC밀란에 입단한다. 허술한 밀란의 좌측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시즌을 앞두고 발목 부상으로 1달간 결장하면서 데뷔전을 잠시 미뤄야만 했고, 9월 24일 체세나와의 리그 홈경기를 통해 팬들에게 첫 선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밀란에서는 리게앙을 평정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무색무취한 선수로 전락하며 주전 경쟁에서 완벽히 밀려났다. 본인의 장기인 공격력은 수비가 견고한 세리에 A 무대에서는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았고, 원래 단점으로 지목된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최악의 모습을 보이며 알레그리 눈밖에 난 것이다. 결국 시즌 전반기동안 고작 8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고, 12월에는 선수 본인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처우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감독과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2.3.1.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임대)

AC 밀란에서 적응에 실패한 타이우는 2011-12 시즌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팀인 QPR로 임대를 떠나게 된다. 350만 유로의 완전 영입조항이 있으며, 등번호 34번을 부여받았다.

임대 기간동안 주전으로 뛰며 밀란에 있었을 때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잔류를 기여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고 완전 영입이 유력했으나, 결국 QPR 측에서 영입을 포기하면서 밀란으로 돌아가게 됐다.

2.3.2. FC 디나모 키이우 (임대)

밀란으로 복귀했지만, 알레그리가 지휘봉을 잡은 이상 그의 입지는 여전히 시궁창임이 분명했다. 결국 7월 31일 디나모 키이우로 한 시즌 임대되었으며, 이번에도 완전 이적이 포함된 임대계약이다.

3일만에 크립바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른 타이우는 팀의 클린시트 승리에 기여하며 준수한 활약을 선보였다. 초반에는 빠르게 팀에 녹아들며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10월 20일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전에서 상대 선수와의 언쟁으로 인해 3경기 출장 정지를 받으면서 잠시 경기를 나서지 못했다. 다음 해 3월부터 시작된 후반기부터는 로테이션 멤버로 입지가 살짝 좁아졌지만, 주전급으로 활약하며 31경기를 출전했다. 시즌 종료 후 키이우가 영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타이우는 밀란으로 복귀했다.

2.4. 부르사스포르

2013년 7월 5일, 타이우는 밀란과 결별한 뒤 터키의 부르사스포르에 입단했다. 프리미어리그 승격팀 카디프 시티와도 이적 링크가 있었지만, 그는 쉬페르리그에 입성하는 것을 택했다.

8월 1일 FK 보이보디나와의 UEFA 유로파 리그 3차예선 1차전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이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경기는 2:2 무승부. 그러나 팀은 2차전에서 0:3으로 패하며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주전으로 빠르게 1군에 자리를 잡았으며, 비록 리그 막바지에는 로테이션으로 예전만큼 많은 경기를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종종 결정적인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승점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2013-14 시즌은 총 37경기 3골로 마무리를 지었다.

다음 시즌에는 새로 부임한 셰놀 귀네슈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며 1년 내내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2015년 2월에는 클럽의 동의없이 무단으로 휴가를 냈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결국 4월 27일, 그는 부르사스포르와 계약을 종료하기로 상호 합의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청대 시절때부터 각광받았던 대형 유망주였으며, 2005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로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다. 비록 팀은 결승에서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에게 무릎을 꿇고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타이우는 대회기간 출중한 활약을 선보이며 최우수 선수 3위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성인 대표팀에는 2004년 11월 17일 남아공과의 경기를 통해 데뷔했으며, 마르세유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빠르게 대표팀 주전 레프트백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3차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하였고, 2006년 대회에서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절륜한 기량으로 대표팀이 3위의 성적을 거두는데 큰 기여했다.

남아공에서 열리는 2010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면서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 나설 기회를 얻었고, 6월 12일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 선발로 출전하면서 월드컵 무대에 데뷔했다. 후반 29분에 부상으로 중도에 교체되었으며, 빠르게 회복 후 그리스와의 2차전을 통해 필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의 최종전을 앞두고 다시 부상을 당하면서 경기를 나설 수 없었고, 결국 팀은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경기에서 2:2로 비기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으며, 타이우 본인도 벤치에서 조별리그 탈락의 광경을 씁쓸히 지켜봐야했다.

2012년부터는 본인의 폼 저하와 스티븐 케시 감독의 구상에 배제되면서 대표팀에서는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1] 2020년 3월 31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합병증으로 68세의 나이에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