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2-12 20:05:52

테렌티 슈티코프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소련의 정치가, 군인, 외교관.

주북한 초대 소련 대사로 북한의 건설과 6.25 전쟁의 기획에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로 한국사와 큰 인연이 있다.

2. 생애

1907년 벨라루스에서 농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1920년, 레닌그라드로 이주했고 노동자가 되었다. 이후 볼셰비키 당에 입당, 콤소몰 간부가 되었으며 레닌그라드 제1서기인 안드레이 즈다노프의 후원으로 빠르게 승진, 1938년에 레닌그라드 제2서기까지 승진했다. 1939년, 겨울전쟁이 발발하자 7군 정치위원으로 참전하여 상장까지 진급했다. 독소전쟁 발발 이후 핀란드 전선에서 복무하다가 1945년 4월, 아시아로 재배치되었다.

1946년 3월, 미소 공동위원회 소련측 대표가 되었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북한을 민주기지로 확고히 다지기 위해 우익들로 구성된 반탁세력에 대한 매우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였고 토지개혁 실시, 산업 국유화, 인민회의 구성, 조선인민군 창설 등 북한 체제의 설립과 강화에 중요한 조치를 취했다. 1947년 5월, 2차 미소 공위가 재개되자 미국과 협상에 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북한 건국으로 방향을 선회해서 헌법 작성 및 남북로당 합당 등에 참여했다. 1948년 9월 9일, 북한이 건국되자 초대 주북 소련 대사로 부임하였다. 이후 6.25 전쟁의 기획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고 1950년에 6.25 전쟁을 일으키기에 이르렀으나 미군의 신속한 참전으로 북한이 박살나고 압록강까지 밀리자 사업상 과오에 책임을 지고 북한 대사에서 경질당했다.

한동안 야인에 가까운 신분으로 지내다가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노브고로드 제1서기에 임명하면서 재기, 이후 프리모리예 1서기로 이동했다가 1956년, 20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고 상장 계급도 돌려받았다. 1959년, 주 헝가리 소련 대사, 1961년 러시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 내각회의 국가검열위원장, 1963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러시아사회주의공화국연방 조직위원회 및 러시아사회주의공화국연방 내각회의 당국가검열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4년 10월, 레닌그라드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숨졌다.

3. 여담

그의 북한 근무 시절 일기는 한국 연구자 전현수 교수가 발굴하여 번역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슈티코프 일지의 후반부를 슈티코프 집안 친구가 빌려가서는, 전현수 교수의 접촉에도 끝내 나타나지 않고 잠수를 타는 바람에 제일 중요한 6.25 전쟁 단락이 담긴 일지 후반부는 현재까지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4. 참고문헌

  • 기광서 (2006). 슈티코프, 해방 후 북소관계의 실력자. 내일을 여는 역사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