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19 17:28:45

파일:220px-John_IV_Laskaris_miniature[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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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

이름 요안니스 4세
왕조 라스카리스 왕조
생몰년도 1250년~1305년
재위기간 1258~1261년


1. 기본 정보


요안니스 4세 라스카리스(John iv Laskaris, Ἰωάννης Δ΄ Δούκας Λάσκαρις)
1250.12.25~1305, 재위: 1258.08.18~1261.12.25

그는 니케아 제국()의 황제이다. 의 적손이자 세오도로스 2세의 외아들이다. 1250년 12월 25일에 태어났다. 하지만 1258년 8월 18일 세오도로스 2세가 간질로 인하여 요절을 하게 되자. 겨우 8세 나이에 즉위를 한다. 모후 불가리아의 이레네는 어린황제의 섭정을 위해서 게오르기오스 무잘론을 비롯한 무잘론 가문의 인사(게오르기오스의 형제)를 섭정에 임명한다.

하지만 세오도로스 2세가 붕어하고 요안니스 4세가 즉위한지 겨우 9일만에 게오르기오스 무잘론과 형제들은 의문사를 당하고 만다. 이는 배후에 미카일 팔라이올로고스(Michael viii Palaiolgos, Μιχαήλ Η' Παλαιολόγος, 1224~1282)가 관여하였다. 당시 미카일은 세오도로스 2세 치세 때 황제의 미움을 받아 견제를 받고있었다. 미카일은 요안니스 4세의 섭정단을 물리치고 정권을 장악하고 만다. 그래서 요안니스 4세는 얼마 못 가서 같은 해 12월에 미카일을 공동황제로 임명을 하게된다. 미카일은 미카일 8세로 즉위를 하여 1259년 주변 국가들인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미카일 2세와 시칠리아 왕국 그리고 아케아-아시나 공국, 테살리아, 세르비아 왕국의 연합군대를 펠라고니아 전투에서 니케아의 공동황제인 미카일 8세가 대승을 거두고 만다. 그 뒤 1261년 8월 15일에 미카일 8세는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탈환하고 라틴제국을 멸망시켰다. 이에 미카일 8세는 선임황제의 지위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니케아에 있는 요안니스 4세를 찬탈을 하려고 했다.

정통황제인 요안니스 4세는 결국 1261년 12월 25일에 미카일 8세에 의해서 실명의 형벌을 받고 폐위를 당하여 금각만 일대에 있는 요새에 유폐되었다. 그러나 비록 죽음은 면하였지만 요안니스 4세는 안드로니코스 2세의 치세가 한창인 1305년에 사망을 하고 만다. 이는 미카일 8세에 반발한 기존의 니케아 지역의 민심 이탈과 라스카리스 왕조의 지지자들에게도 반감을 사게 되어 미카일 8세의 치세에 외부적인 혼란 뿐만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는 역사적 사건이 된다.


-참고파일-

이탈리아 모데나 에스턴스 장서고(위키피디아 영문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