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30 15:28:28

페루 해협 공방전

페루 해협 공방전
ペルー海峡攻防戦
날짜
2192년 9월 15일 ~ 11월 15일
장소
부에노스 존데령 페루 해협 카르데나스 언덕
교전 당사자 부에노스 존데 대항 대동맹 부에노스 존데
지휘관 알마릭 아스발(AAA)
케네스 길포드
유리 크루건
기이 레이니엘
세사르 라울 콘트레라스†
바하즐 샤스트리
에곤 라우드루프
귄터 노르트
병력 여섯 도시 대동맹군
장병 256,400명
부에노스 존데 군
보병사단 4개, 포병연대 2개
장병 38,400명
피해 규모 전사 84,000명, 부상 129,200명 불명
결과
부에노스 존데 군의 승리
1. 개요2. 주요 인물3. 배경4. 전개
4.1. 대동맹군의 편성4.2. 부에노스 존데의 방어 준비4.3. 카르데나스 언덕 공방전
5.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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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의 에피소드
폴타 니그레 섬멸전 페루 해협 공방전 재스모드 전투

1. 개요

다나카 요시키의 장편소설 <일곱 도시 이야기>의 전투.

2. 주요 인물

  • 여섯 도시 대동맹군
    • 아퀼로니아 시 방위국 차장 겸 장갑야전군 사령관 알마릭 아스발 중장
    • 뉴 카멜롯 시 수륙양용부대 사령관 케네스 길포드 중장
    • 프린스 해럴드 시 정규군 총사령관 대리 유리 크루건 중장
    • 타데메카 시 제2혼성군단 사령관 기이 레이니엘 중장
    • 쿤론 시 기계화 저격부대 사령관 세사르 라울 콘트레라스 중장
    • 산다라 시 군 부사령관 바햐즐 샤스트리 중장

3. 배경

서력 2190년 부에노스 존데 시의 제일시민 에곤 라우드루프는 남극대륙을 정복하고자 했으나 폴타 니그레 섬멸전에서 프린스 해럴드 군의 함정에 빠져 주력이었던 공중장갑사단과 전차부대를 잃어버렸다. 이후 그는 본국으로 돌아간 뒤 반대파를 철저히 숙청하고 1인 철권통치를 시작하였으며 부에노스 존데 시의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이 사실은 그동한 명목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유지하던 일곱 도시 공존의 기반을 위협하는 폭거로, 이에 여섯 도시는 '부에노스 존데 대항 대동맹'을 결성하여 부에노스 존데를 공격하기로 결의하였다.

4. 전개

4.1. 대동맹군의 편성

이리하여 여섯 도시의 군대가 모여 대동맹군이 편성되었다. 각 도시는 군부의 2~3인자를 사령관으로 파견했으며 전체 병력은 256,400명에 달했다. 이 숫자는 부에노스 존데 전군을 합친 것보다 2.5배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원정에는 난관이 많았다. 우선 항공 수송수단도 없이 수로와 육로만으로 보급을 해야 하며, 지휘권이 통일되어 있지 않고, 각 군대의 협력 의사가 부족했고, 지리나 기상 조건에도 무지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사령관의 협력이나 전쟁 수행 의지였다.

여섯 도시 중 명장으로 이름 높은 알마릭 아스발 중장, 케네스 길포드 중장, 유리 크루건 중장의 전쟁 수행 의지는 지각을 뚫고 내핵까지 들어갈 수준이었다. 일단 이 세 사람은 처음으로 만날 때부터 서로를 혐오했으며, 이들은 진작에 이 싸움에서 전력을 소모했다가 나중에 자신의 군대가 이른바 아군들에게 뒤통수를 공격당하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었기 때문에[1]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투에 소극적이었다. 세사르 라울 콘트레라스 중장, 기이 레이니엘 중장, 바하즐 샤스트리 중장도 의지가 그리 높다고 보기 힘들었다.[2]

정치권도 공포에 빠졌다. 이 여섯 도시가 연합하여 부에노스 존데를 멸망시킨다면, 다음에 다섯 도시가 연합해서 한 도시를 멸망시킨다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 전투에 빠지면 부에노스 존데라는 맛있는 과실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시정부는 전선 사령관에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은 안 그래도 전쟁 수행 의지가 높지 않은 사령관들이 전투에 더더욱 소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어찌되었든 일단 결정된 원정을 중지하면 에곤 라우드루프의 위신만 올려주는 꼴이라 각 도시는 원정 계획을 끝까지 밀고나갔다... 라고 하는데 사실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깊은 정치적 술수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우리가 공을 세우면 부에노스 존데에 대한 권리를 더 많이 가져갈 수 있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장군들[3]을 닥달했다. 물론 장군들은 정치가들보다 더 똑똑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나중의 일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전투에 매우 소극적이었고. 아무튼 각 도시의 정부와 정치가들이 장군들에게 전투에 더 소극적으로 대하라고 한 건 사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군대를 보전하여 나중 일을 대비하기 위해 장군들이 스스로 소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애시당초 이 소설에서 그 정도로 괜찮은 안목을 가진 인물들은 세 장군과 부에노스 존데 수비군 지휘관인 귄터 노르트 소장을 제외하면 류 웨이 정도밖에 없다.

부에노스 존데 시가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우선 페루 해협을 거쳐야 한다. 페루 해협은 과거 안데스 산맥이 있었던 곳으로 '대전도' 이후 안데스 산맥과 아마조니아가 침하되면서 대서양태평양이 만나 해협으로 바뀐 것이다. 길이는 85km, 폭은 1.9~8.4km, 총 14개 섬이 있고 모든 섬에 부에노스 존데 군의 포대가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해안에서도 각종 병기가 지키고 있어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견고함을 자랑했다.

그래서 정치권이 수립한 전략은 남북 양쪽에서 페루 해협에 상륙작전을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해상 병력으로 위력정찰을 한 뒤, 대병력이 상륙 가능한 지점들을 공략해 단번에 상륙한 다음 부에노스 존데 군의 육상진지를 공격하면서 해협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고지를 확보하고 장거리포와 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하여 부에노스 존데 군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점거한다. 이 단계부터는 라우드루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반독재 봉기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대동맹군 함대가 해협을 통과하여 시가지에 함포 사격을 가해 독재자 라우드루프를 굴복시킨 뒤 시의 요처를 점거하고 대동맹군의 보호하에 민주적인 신정부를 수립하며, 다른 도시들은 부에노스 존데 시의 이권과 영토를 갈라먹으면 원정은 성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각 군의 사령관들은 큰 피해를 볼 게 뻔한 상륙작전을 서로 미루기에 바빴던 것이다. 결국 누가 상륙할 것인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회의는 막을 내렸다.

4.2. 부에노스 존데의 방어 준비

대동맹군의 공격을 방어할 부에노스 존데의 북부관구 사령관은 귄터 노르트 소장이었다. 그는 원래 중령이었다. 그런데 에곤 라우드루프가 집권한 후, 그의 숙청에 4명의 관할구역 사령관들이 숙청당해서 군 수뇌부가 증발했고, 졸지에 그가 북부관구 사령관이 된 것이다. 라우드루프는 그를 북부관구 사령관에 임명하면서 그를 소장으로 3계급 특진했다. 물론 노르트는 다른 시민들처럼 모든 대화를 도청당하고 있었으나, 공안경찰국원들은 그의 대화를 보고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판단해서 고발하지 않았다.

9월 11일, 부에노스 존데 군의 초계정이 대동맹군의 대규모 수송선단을 발견했다고 연락한 뒤 소식이 끊어졌다. 그 소식을 들은 노르트 소장은 즉시 장갑사륜구동차를 타고 해협과 태평양의 접점으로 갔다. 노르트는 이 자리에서 대동맹군이 바로 상륙하는 게 아닌, 해상 병력으로 위력 정찰을 한 뒤, 상륙하여 고지를 점령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 노르트의 지휘 하에 있는 군대는 보병사단 4개와 포병연대 2개 뿐이었다. 과거 2400기에 달하는 공격 헬리콥터를 가지고 있던 부에노스 존데의 공중장갑사단은 2년 전 폴타 니그레 섬멸전에서 전멸해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병력의 차는 6배, 거기에다 적 지휘관은 북극해 전선폴타 니그레 섬멸전에서 이름을 떨친 명장 AAA와 케네스 길포드, 유리 크루건이었다. 처음부터 전력의 격차는 뚜렷했으나, 노르트 소장은 1대 1이라면 몰라도 1대 3이라면 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노르트는 열심히 지형을 정찰하다가 대군을 전개할 만한 언덕, '카르데나스 언덕'을 발견했다.

4.3. 카르데나스 언덕 공방전

서력 2192년 9월 15일 8시 40분, 대동맹군 함대가 일제히 함포사격을 개시하면서 페루 해협 공방전의 시작을 알렸다. 대동맹군은 해안에 포격을 하는 한편 알루미늄 조각을 채운 로켓탄을 발사해 레이더를 무력화시켰다. 4시간에 걸친 포격이 끝나고 각 도시는 상륙용 단정을 활용해 해안에 상륙하여 카르데나스 언덕 공략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상륙을 개시하고 2시간 뒤, 해협 서쪽 해안의 절벽 위에 설치된 부에노스 존데 군의 기관포가 불을 뿜어 동쪽 해안에 상륙해 언덕을 오르던 타데메카 군을 공격했다. 동시에 언덕 위에서도 포화가 쏟아져 타데메카 군은 다수의 장병과 장갑차를 손실했다. 이를 본 유리 크루건은 타데메카 군을 구하기 위해서 서쪽 해안에 대포를 설치해서 엄호해야 했지만 그러려면 프린스 해럴드 군의 피해가 커질 것이므로 대신 부에노스 존데 군의 사각지대에 아군을 집결시킨 뒤 총격을 가해 타데메카 군을 엄호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결국 대동맹군은 방어군보다 3배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동쪽 해안에서 넘어가지 못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각각 돌아가면서 혼자 싸웠던 것이다. 그래서 대동맹군의 수적 우세는 힘을 잃었고, 노르트 소장은 기계화 포병부대를 좌우로 전개해 대동맹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대동맹군은 상호 협력이 전혀 되지 않아 큰 피해를 보면서 조금도 전진하지 못했다. 쿤론 군은 정면에서 쏟아져나오는 부에노스 존데 군의 포화를 견디다 못해 작전 기동하는 척하고 있던 프린스 해럴드 군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사령관 유리 크루건은 이를 거절했다. 크루건은 1주일간 탄약을 소모하여 시간을 버는 방법으로 전력을 유지했지만 다른 도시는 그만큼 피해를 보았다. 알마릭 아스발 중장이 지휘하는 아퀼로니아 군도 전투를 회피했으나, 전투를 완전히 피할 수 없어 전사자가 5백 명을 돌파했다.

9월 24일, 샤스트리 장군 지휘 하에 산다라 군이 물량공세를 펼쳐 부에노스 존데 군의 방어선 한쪽을 돌파했다. 이들은 계속 진격했으나 아군의 포격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공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노려 노르트 소장은 병력을 나눠 프린스 해럴드 군의 정면에 포격을 가하는 한편 대부분의 병력을 산다라 군의 측면을 우회했다. 유리 크루건은 노르트 소장의 작전을 간파했서 샤스트리 중장에게 무전을 넣으려 했으나 방해전파에 실패하자 더 이상의 노력 없이 방관했다. 전투가 소강상태에 빠지자, 유리 크루건 중장은 불면증 요양이라는 명목으로 탄약을 낭비하지 말고 사령관의 요양을 방해하지 말 것을 명령한 뒤에 텐트에 틀어박혀 드러누웠다.

케네스 길포드 중장 휘하의 뉴 카멜롯 군은 3시간의 총격전 끝에 언던 아래의 한 지구를 확보하고 야전 진지를 급조했다. 그때 고향도시의 수뇌부에서 다소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산 마틴 광장을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애초에 기득권층의 이익을 위해 전선에 나선 걸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길포드 중장은 대화 끝에 무전기의 마이크 코드를 뽑아버렸다.

9월 29일, 레이니엘 중장의 지휘 하에 타데메카 군이 언덕 정상 근처까지 진출했으나 곧 부에노스 존데 군의 십자포화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타데메카 군은 후퇴하고 싶어도 퇴각 루트가 부에노스 존데 군의 유탄포대에 완전히 노출되었기 때문에 후퇴할 수가 없었고, 물러나지 않고 맞서 싸웠다. 결국 타데메카 군은 2,4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냈고 전차 65량과 자주포 40문을 잃었으며 사령관 레이니엘 중장도 전치 3주에 달하는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아퀼로니아 군도 타데메카 군의 패주에 우측면이 열려 2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대동맹군이 시가지에 진입은 커녕 페루 해협 북쪽 해안조차 제압하지 못하자, 여섯 도시의 수뇌부들은 전선 사령관을 질책했다. 하지만 사령관들은 승리는 커녕 아군의 전력을 보존한 채 하루라도 빨리 퇴각하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4]

10월 1일, 대동맹군 함대가 아마존 해상에서 수송선단을 공격한 부에노스 존데 함대를 공격하여 호위함 3척과 미사일 초계정 6척을 격침시켰다. 이 사실에 고무된 대동맹 통합작전위원회는 해상 병력으로 부에노스 존데 시를 공격한다는 작전을 수립했으나, 부에노스 존데의 육상 전력을 무시한 페루 해협 돌파 작전은 10월 22일, 완전히 실패했다. 대동맹군 육상 부대의 협력 없이 페루 해협으로 돌입한 20척의 함정은 양 해안에서 쏟아져나오는 미사일과 고속초계정이 발사한 어뢰, 자기 흡착식 기계 수뢰에 당해 하나하나 침몰했고, 침몰한 아군 함정에 항로를 방해받다가 미사일 공격에 격침당하는 불운까지 겹치며 처참하게 패배했다.

해상 전력으로 해협 돌파가 실패하자, 결국 육상 병력으로 연안을 제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군 수뇌부는 10월이 다 가기 전까지 전면 공세를 재개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군대는 동계전에 대비한 보급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10월 24일, 차가운 비가 내렸다. 이 비를 맞은 장병들의 전의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아퀼로니아 군의 지휘관 AAA는 대동맹군이 패배하는 것은 상관 없지만, AAA가 패했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 철군하자는 소리는 꺼낼 수 없었다. 대신 병기와 탄약은 모두 써버리자고 결심했다.

10월 25일, 대동맹군의 사령관들이 모여 작전을 논의했다. 크루건은 계절의 문제를 들어 이 작전이 성공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누구보다 열심히 싸운 쿤론 군의 콘트레라스 중장이 노성을 질렀다. 그는 겨울이 오기 전에 부에노스 존데를 굴복시킬 수 있다며 여섯 도시가 공통을 목적을 향해 단결, 협력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두 장군은 동의했지만, 나머지 세 명은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10월 26일, 케네스 길포드가 지휘하는 뉴 카멜롯 군은 부에노스 존데 군의 한 부대를 돌출시킨 다음, 바로 반격을 가하여 전선에 구멍을 뚫고 진군했다. 하지만 카르데나스 언덕의 급경사와 약한 지면 때문에 뉴 카멜롯 군의 진군 속도는 1시간에 80m 수준으로 떨어졌고, 곧이어 부에노스 존데 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난전 속에서 귄터 노르트 소장과 케네스 길포드 중장은 서로 마주쳤다. 총을 겨눈 노르트 소장에게 길포드 중장은 조금도 떨지 않고 총구를 바라보았으며, 노르트 소장은 그 강직한 자세가 어디서 나오는 지 궁리하다가 뉴 카멜롯 군의 총격에 매듭을 짓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전투 결과 부에노스 존데 군은 방어에 성공했고, 뉴 카멜롯 군은 후퇴했다.

한편 마찬가지로 공격하고 있던 타데메카 군은 전날 자신들의 포격으로 퇴로에 거대한 수렁이 생겼고, 이들은 힘겹게 퇴각하다가 부에노스 존데 군의 공격에 죽어나갔다. 간신히 퇴각한 타데메카 군은 전쟁에 찬성한 정치가들을 열심히 욕하고 있었다.

그때, 뉴 카멜롯에는 각 도시의 대표단 306명이 성대한 축하연을 벌이고 있었다. 부에노스 존데를 점령한 후 점령지 분할에 대해 여섯 도시가 완전히 합의한 것이다. 정치가들은 몇 배의 병력을 가지고도 부에노스 존데를 굴복시키지 못한 전선의 사령관들과 장병들을 열심히 비난하고 있었다.

한편 전선에서는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본래 보급계획 자체가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나는 걸 상정하고 짜여졌기 때문에 군대에는 방한복조차 지급되지 않았고, 보급물자도 떨어져 병사들은 전선에 죽은 아군, 적군의 휴대 식량을 탈취해 먹고 추위와 피로에 쩔어 지냈다. 거기에다 차가운 비까지 내려서 병사들의 전의는 점점 사그라들었다.

한편 귄터 노르트는 10월 20일, 열세한 전황에서도 대동맹군의 공격을 막은 공적을 인정받아 북부관구 사령관에서 부에노스 존데 전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중장으로 승진하였다. 동시에 부에노스 존데 시민들에게서는 고향도시를 지킨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10월 28일, 세사르 라울 콘트레라스 중장이 이끄는 쿤론 군이 부에노스 존데 군의 방어선을 공격하였다. 쿤론 군은 오랜 격전 끝에 부에노스 존데 군이 총을 쏘지 않고 돌멩이를 던지자 부에노스 존데 군의 탄약이 떨어진 것이라 판단하고 승리를 확신했다. 콘트레라스 중장은 전군에게 공격을 명령하며 스스로도 장갑차를 타고 진두에 섰다. AAA는 이게 함정이라는 걸 파악했으나, 쿤론 군이 함정에 빠져드는 걸 방관했다. 그의 예상대로 쿤론 군은 부에노스 존데 군의 공격을 받아 궤멸당했고, 지휘관 콘트레라스 중장도 전사하였다. 상황을 보고받은 AAA는 아퀼로니아 군에게 패주하는 쿤론 군을 엄호하라 명령하였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이 명령을 후회했는데, 자신의 명령으로 쿤론 군이 더 많이 살아남아 전투가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AAA는 고향도시로 보내는 전황 보고에서 쿤론 군의 추태를 묘사한 뒤 아군은 퇴각 없이 점거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썼다.

한편 쿤론 군의 패주에 손실을 본 부대가 있었다. 바로 유리 크루건이 지휘하는 프린스 해럴드 군으로, 쿤론 군이 패주하자 프린스 해럴드 군도 붕괴 위기에 봉착했지만 후퇴 명령을 내려 수습했다. 사실 그는 쿤론 군에게 사령관의 복수심을 부추겨 그들이 부에노스 존데 군을 공격하는 사이 아군을 무사히 대피시키고, 더 나아가 부에노스 존데 군이 언덕 밑에 병력을 전개하면 언덕 상부를 포격하여 인공 산사태를 만들어 그들을 매몰할 생각이었으나 노르트중장이 공세를 자제하여 실현되지 못했다.

10월 31일, 차가운 비가 내리는 와중에 AAA와 케네스 길포드는 작전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대로 퇴각하면 전쟁에서 노르트를 임명한 것 말고는 한 게 없는 라우드루프 대신 전쟁 영웅 노르트가 떠오를 것, 그 때문에 라우드루프가 지금 자신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고 노르트를 배제할 방법과 그의 군사적 재능 사이에 갈등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파악했다. 그러자 AAA는 그 즉시 적에게 보내는 통신문을 작성하였다.
"부에노스 존데 군 장병의 용전감투는 우리 군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특히 사령관 귄터 노르트 장군의 큰 재능과 그릇에는 외경심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그에게 어울리는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196

11월 15일, 여섯 도시 대동맹군은 결국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부에노스 존데 군의 환호 소리를 들으며 철군했다. 전사자는 84,000명, 부상자는 129,200명. 대참패였다.

5. 전후

부에노스 존데의 독재자 에곤 라우드루프는 대동맹군의 졸전과 노르트 소장의 활약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11월 16일, 그는 호위대 500명을 이끌고 격전지였던 카르데나스 언덕을 방문했다. 노르트는 그 때 언덕 정상부에서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보고 있냐고 물어보는 라우드루프에게 해협 너머에 아내의 무덤이 있다며, 아내가 급성 뇌출혈 발작이 일어나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어떤 정치인의 퍼레이드 때문에 도로가 봉쇄되어 결국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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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경애해야 할 제일시민, 그자가, 그 정치가가 영광의 정점에 선 바로 그 순간 내 손으로 사살해 버리겠다고."
다나카 요시키, <일곱 도시 이야기>, 손진성, 비채(2011), p.199~200

귄터 노르트소음기를 단 권총에곤 라우드루프의 가슴에 들이밀었다. 깜짝 놀란 라우드루프는 간신히 입을 열을 열고 자신이 노르트를 중장에 임명했다고 더듬더듬 말했지만 노르트는 재능에 어울리는 영화를 경험했으니 이젠 인격에 어울리는 처벌을 경험해야 할 때라고 속삭이며 방아쇠를 당겼다. 작은 총성과 함께 에곤 라우드루프는 쓰러졌다. 노르트는 쓰러지는 라우드루프의 몸을 받치면서 적어도 콜네리아가 괴로워했던 것과 같은 시간은 버텨야 한다고 중얼거렸으나 그 말을 무시하듯 라우드루프는 절명했다.

노르트는 호위대원들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지도자를 암살했으니 이제 500명에 달하는 호위대가 쏜 총알에 맞아 죽을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호위대원들은 반역자 귄터 노르트를 사살하기는 커녕, 태도를 바꿔 그를 악랄한 독재자와 십자군을 자처한 침략자들을 물리친 고향도시의 영웅으로 추앙하며 노르트를 도시의 새 지도자로 추대하려 했다.[5] 그동안 라우드루프를 열광적으로 지지해 놓고 이제와서 그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모습에 황당한 노르트는 라우드루프의 외모와 언변에 넘어가 권력을 준 것이 누구냐며 따지더니 나는 그저 아내의 원수를 갚았을 뿐이며 라우드루프의 지지자들도 간접적으로 아내를 죽인 자들이라고 분노를 터트렸다.

어리둥절하던 호위대원들은 자신들은 그저 라우드루프에게 속았다고 변명했다. 그러자 노르트는 라우드루프의 위험을 경고한 자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이제 와서 그의 지지자들이 피해자인 척 하냐고 노성을 터트렸으나 그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위대원들은 노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를 도시의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하려 했다. 그제서야 노르트는 민중들은 그동안 독재자에게 속은 했을 뿐이며, 그들에게 독재자는 그저 가지고 놀다가 지루해지면 갈아치울 수 있는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노르트는 공포에 빠져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는 호위대의 요청을 거부하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총을 겨누고 싸웠던 아퀼로니아 시로 망명했다. 노르트가 사라진 후, 부에노스 존데는 구심점을 잃고 30가지 정파로 분열되어 권력투쟁을 벌이며 혼란에 빠졌다.

한편, 아퀼로니아 군을 이끌고 고향도시로 돌아온 AAA는 이번 전쟁의 패배는 대동맹군의 패배이지, 자신의 패배가 아니라며 패전을 인정하지 않았다. 뭐 전쟁에서 그가 지휘한 아퀼로니아 군은 진지에 틀어박혀서 제대로 된 교전 한 번 안 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6] 그러나 어찌되었건 그의 군 경력에 흠이 생긴 건 사실이었기에, AAA는 "자네는 단지 연합군이 졌을 뿐이고, 자신이 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생각인가?"라고 야유하는 니콜라스 블룸의 말에 논리적인 반박을 하지 못했다.

패전 이후 여섯 도시의 동맹은 깨졌고[7], 각 도시는 다시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을 반복했다.
[1] 만약 부에노스 존데를 함락한다고 해도 어느 한 도시가 특출나게 기여도가 높을 경우 다른 네 도시가 가장 기여도가 높은 도시에게 가장 많은 몫을 나눠주느니 차라리 이를 뭉개기 위해 한편이 되어 그 도시를 뭉개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고, 또한 그 도시가 자신의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 그 도시가 자신의 도시가 아니라면 이들은 기꺼이 다른 네 도시와 함께 그 한 도시를 공격할 게 뻔했다. 괜히 이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게 아닌 것.[2] 이들은 알마스 아스발, 케네스 길포드, 유리 크루건 정도로 서로를 경계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연합군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세 명의 명장들이 작전에 소극적이니 이들도 전투의지가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3] 물론 알마스 아스발, 케네스 길포드, 유리 크루건을 말한다.[4] 당연하지만, 그리고 앞에서도 계속해서 나온 말이지만 여기서 설령 전력을 투입해 부에노스 존데 군을 물리치는 혁혁한 공을 세워 발언권을 얻는다고 한들 다른 도시들이 이를 뭉개버리면 그만이며 이후로도 나머지 다섯 도시에게서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최소한의 피해로 패배하고 돌아가는 것이었다.[5] 노르트가 라우드루프를 죽인 후 버린 권총도 호위대원들이 공손한 동작으로 주워 노르트에게 돌려주었다.[6] 사실 AAA는 물론이고 케네스 길포드, 노르트 & 크루건 콤비도 대충 이런 결과를 예측하고 자기 군대를 최대한 보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비교적 손해가 미미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군략가로서 패배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꽤나 약이 오르긴 했을 듯. 위의 뻔히 이간질하는 듯한 통신을 보낸 이유만 봐도 대체로 짐작이 갈 일이다.[7] 여섯 도시가 동맹해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므로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