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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프뢰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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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
2.1. 교육사상의 기초2.2. 유아교육
3. 주요저서

1. 개요

프리드리히 프뢰벨(Friedrich Fröbel, 1782년 4월 21일 ~ 1852년 6월 21일)은 독일의 교육학자이자 교사이다. 어린이 이해와 유아교육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유치원 및 유아교육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유아교육 역사 중 대표적 이름으로 그의 이름이 제시되고 있으며,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의 사상을 계승하여 포괄적이고 독창적인 교육철학과 유아교육 이론을 발전시켰다.[1]

대한민국의 교육업체중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교육출판사가 존재한다. 1977년 창립된 프뢰벨이라는 출판사로, 한동안 한국프뢰벨, 도서출판 프뢰벨이라는 상호를 써왔으나 지금은 그냥 프뢰벨로 최종 상호를 변경했다. 1977년 일본 프뢰벨관과 저작권 제휴를 해서 과학도서들을 내놓으며 출범했다고 한다.

2. 일생

1782년 4월 21일 신성 로마 제국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오늘날의 튀링겐)에 있는 오버바이스바흐라는 마을에서 여섯째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인 요한 야코프 프뢰벨이었고 어머니는 야코비네 엘레오노레 프리데리카 호프만이었다. 본명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우구스트 프뢰벨(Friedrich Wilhelm August Fröbel)이다.

생후 9개월 무렵, 어머니 야코비네가 죽고 홀아버지와 손윗형제들의 보살핌 속에 자란 그는 처음에는 계모 밑에서 자랐지만 처음에 잘 대해주던 계모마저 4살 무렵, 이복형제들의 탄생으로 그에게 냉담해져 다시 혼자가 되었고, 10살 무렵 외숙부 호프만이 양자로 입양하게 되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자연과 함께 자라 자연의 이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인류와 자연이 긴밀하게 함께 얽혀 있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프뢰벨의 사색적인 성향은 자신만의 세계에만 심취한 듯이 보이게 하여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초등학교를 그만둔 그는 1797년부터 1799년까지 측량사이며 임무관이었던 벗쓰의 조교가 되었다. 이때부터 프뢰벨은 모든 사물 가운데 숨겨져 잇는 보편적인 법칙 및 통일성을 찾는 것을 사색의 중심과제로 삼아 듀링겐의 숲속에서 깊은 통찰을 얻었다. 17세 때 숲속을 떠나기 전까지의 시간은 인간 및 사상가로서의 프뢰벨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자연연구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1799년 프뢰벨은 예나(Jean) 대학에 진학하여 자연과학공학을 연구했지만 학비 미납으로 1801년에 자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년 뒤인 1802년, 아버지인 요한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프뢰벨의 입학 당시 예나에서는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의 수제자이며 낭만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이 활약하였다. 프뢰벨은 셸링과 프리드리히 슐레겔 등 낭만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1809년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와 만나면서 교육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프뢰벨은 교육과 철학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여 연구한 철학적 원리를 토대로 그의 교육 사상적 기초를 세웠다. 페스탈로치와의 만남을 통해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프뢰벨은 교육자로 살기로 결심하였다.

프뢰벨은 인간과 자연이 본래 일원적이기에 자연의 본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간 본성을 알고자하였다. 그는 페스탈로치도 자연의 연구에 대해서는 불충분하다고 느껴 대학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1811년 29세에 그는 게팅겐 대학에서 화학, 물리학, 광물학, 자연철학 등을 배웠다. 이러한 학문 연구를 통해서 프뢰벨은 교육의 근본적인 통일 원리를 탐구하려고 하였다.

프뢰벨은 1814년 5월 파리강화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약 1년 동안의 군대생활을 하였는데 이 시기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였다. 이 시기를 통해서 그는 정신과 육체의 상호관련성을 배우고 국민교육사상의 배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종전과 함께 그는 다시금 베를린으로 돌아와 봐이스 교수 아래서 광물박물관의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고아가 된 생질과 또한 다른 형으로부터 온 두 조카를 교육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이웃으로부터 몇몇 어린이를 모아서 학교를 개설하기로 하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프뢰벨은 그가 지니고 있던 신교육의 이론을 실천해 보고자 했으며, 일반독일 교육원이 그 장이 되었다.

프뢰벨은 1816년부터 하고 있던 일반독일 교육원 활동을 1817년, 카일하우로 옮겼으며 학원의 형태를 갖추고 생도수도 늘렸다. 카일하우 학원은 점점 발전하여 1820년에는 12명, 1821년에는 20명, 1825년에는 56명에 달하였다. 1826년 간행된 《인간의 교육》은 카일하우에서의 10년간의 경험이 뒷받침된 것이다. 프뢰벨은 카일하우 학원을 운영하면서 그의 교육적 이상을 피력하고 보다 많은 동조자를 얻기 위하여 1820년부터 1824년까지 일곱 개의 카일하우에서의 소논문을 발표하였다.

1836년(54세) 프뢰벨은 브르크돌프를 떠나 베를린으로 간다. 유아교육에 착수한 프뢰벨은 어린이의 합자연적인 발달은 놀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따라서 창조적인 놀이를 키우고 그것을 위한 올바른 도구가 올바른 방식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1839년에는 장난감 중심의 유아교육에 대해 강연회를 열어 프뢰벨의 명성이 높아졌다. 같은 해에 어린이 작업소를 만들고 이것을 유치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전 시민의 관심과 고관부인들의 관심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851년 8월 프로이센 정부는 아이들을 무신론과 사회주의에 인도한다는 이유로 유치원의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프뢰벨은 금지령의 철회를 탄원하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1852년 6월 21일 프뢰벨은 작센마이닝겐 공국 슈바이나(Schweina)에서 70세의 생애를 마쳤다.[2]

2.1. 교육사상의 기초

프뢰벨은 만물에 영원한 법칙이 길들어 있으며, 이 법칙이 만물이 움직이고 작용하고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그에게 신은 만물의 창조자이자, 활동하는 생명체이고 유기적 통일체며 인격체이다. 자연계 역시 커다란 유기체로, 신을 지칭하는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 인간 또한 신의 본성대로 창조된 피조물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자신의 본성을 나타내고 발달시키게 된다. 자연현상과 인간현상은 동일한 법칙에서 기인하며 중심 개념은 ‘통일’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자기의 생활 속에서 나타내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완전함의 성질을 완성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며 신적 통일의 법칙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교육이란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본성을 외부로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사명을 이룩하려고 애쓰고 그것을 목표로 나타내는 것을 뜻한다. 프뢰벨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내면을 밖으로 표현하려는 힘을 가지고 있기에 자연스러운 환경을 제공하여 자연스러운 자기 활동적 인간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인간의 교육은 반드시 그 발달에 입각하고 각각의 시기를 정신과 신체의 요구에 따라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프뢰벨이 고안한 교육활동은 어린이의 본성이 자유롭게 자연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많은 경험을 제공하도록 하였다. 이때 어린이의 발달은 외부 자극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본성에 따른 것이므로, 교육 활동 역시 어린이의 준비가 되었을 때만 이루어진다. 또한 인간의 발달단계를 영아기·유아기·소년기·성인기 4단계로 구분하였고, 각 단계에서 모두 성취해야 할 목표를 성취한 후에야 다음 단계의 발달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교육자는 수동적인 태도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린이에 주의와 보호를 하면서 필요한 때는 곧바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한 프뢰벨은 노동을 통한 학습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현재의 학교교육에서 작업을 경시함으로써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 상실되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프뢰벨은 유아의 생명활동 모두를 노작으로 보아서 생산을 통해 창조자인 신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2.2. 유아교육

프뢰벨은 어린 시절의 학습이 앞으로의 진보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여 영아기와 유아기를 중시하였다. 유아기는 주위 사람들,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을 시작하는 단계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악하기 위한 최초의 출발점이 된다. 자연의 질서를 앞으로의 삶에서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려면 유아기부터 법칙과 질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유아교육은 부모가정, 가족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며, 인간의 힘과 소질을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모든 기관에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영아기 때는 청각, 시각 등 감각능력과 신체와 사지의 활동능력이 발달한다. 유아단계에 이르러서 말을 구사하기 시작하며, 인간 내적인 것의 표현이 시작되게 된다. 또한 외적인 것을 수용하여 양자의 합일을 지향하게 된다. 따라서 유아기 때부터 정신의 보육이 중요하게 된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내적과 외적의 합일을 통해서 유아들은 조화를 느끼고 자아의식을 키워내게 된다. 프뢰벨의 교육활동에는 자기표현 활동이 중시되는데, 표현활동에는 언어·노래·동작·구성적 활동이 포함된다. 프뢰벨이 제시한 유아교육의 주요 방법은 ‘놀이’이다. 프뢰벨은 놀이의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은물(가베)’이라는 이상적 놀이감을 구현하기도 하였다. 은물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로 제시되었으며 수와 형태를 인식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프뢰벨은 집단 활동으로서 play-way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어린이들 사회화시키고 신체적·운동적 기술을 발달시키려고 하였다.[4]

3. 주요저서

《인간의 교육(Die Menschenerziehung; 1826)》
《어머니의 노래와 애무의 노래(Mutter- und Koselieder; 1844)》
《유치원의 교육학(Die Pädagogik des Kindergartens; 1874)》
《유희의 이론(Theorie des Spiels Ⅰ·Ⅱ· Ⅲ 2. Auflage; 1947)》 등[5]

[1] 출처 지식을 만드는 지식 단체 저자(2009), 고전해설2, 지식을 만드는 지식, pp.35-40.[2] 출처 이경민(2010), 프뢰벨의 인간교육에 대한 연구, 한신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pp.5-8.[3] 출처 최향미(1995), 프뢰벨 유아교육방법의 의의에 관한 연구, 인문과학연구, Vol.3, No.1, pp.240-247.[4] 출처 최향미(1995), 프뢰벨 유아교육방법의 의의에 관한 연구, 인문과학연구, Vol.3, No.1, pp.246-258.[5]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프뢰벨, 2015.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