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1 18:10:01

프리미어 리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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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잉글리시 풋볼 리그2. 프리미어 리그의 출범3. 현재의 프리미어 리그4. 역대 참가 클럽5. 역대 스폰서
5.1. 역대 로고 및 패치
6. 역대 폰트7. 역대 공인구

1. 잉글리시 풋볼 리그

해당 내용은 잉글리시 풋볼 리그(EFL)의 역사이며 프리미어 리그로 계승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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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까지 잉글랜드 축구의 최상위 리그는 잉글리시 풋볼 리그풋볼 리그 디비전 1이 담당하고 있었다. 1888년에 창단된 풋볼 리그는 세계 최초의 프로 축구 리그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축구 리그로서, 1991-92 시즌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 내 유일한 프로 축구 리그로 유지되었다. 1892-1893 시즌부터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나뉘어 승강제를 시행하던 초창기 풋볼 리그 시스템은 1920년까지 이어졌으며, 1920-1921 시즌부터는 3부 리그가 생겼다. 그 다음 시즌인 1921-1922 시즌부터는 3부 리그가 북부, 남부 리그로 나눠져 1958년까지 이어졌다. 이후 1958-1959 시즌부터는 북부, 남부로 나눠진 3부 리그가 다시 단일 리그로 돌아오고 4부 리그가 추가되어 확장되었고, 1960년대부터는 유럽 대항전에 참가하기 시작하며 풋볼 리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구가하기 시작했다.[1]

이후 풋볼 리그는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과 전설적인 감독들[2]을 필두로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하기 시작했고, 유럽 대항전에서도 우수한 모습을 보이며 첫 번째 황금기를 맞았다.[3] 잉글랜드 내에서도 풋볼 리그의 위업은 절정에 달하여 다양한 스토리와 문화가 탄생했다. 19세기에 시작되어 오랜 전통을 쌓아온 축구가 명실상부 영국 최고의 스포츠로 발돋움했던 것은 물론, 풋볼 리그 내에서 성장하며 체급을 키워온 각 구단들의 명성과 치열함이 잉글랜드 내 도시 및 지역의 자존심과 연결되어 풋볼 리그는 실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현재까지 이어지는 많은 전통적인 잉글랜드 축구 응원가나 서포터즈 문화들이 이 시기에 많이 생겨났다.[4]

2. 프리미어 리그의 출범


그러나 1980년대 풋볼 리그의 인기가 정점에 달하며 리그와 구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당시 본격적인 TV의 보급이 1960년대부터 이루어지며 1980년대에는 축구가 라디오 중계를 넘어 TV를 통해 전국으로 널리 방송되기 시작했고, 풋볼 리그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TV 중계가 시작된 이후 많은 수요에 의해 풋볼 리그는 점점 엄청난 중계권료를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1986년 630만 파운드에 그쳤던 풋볼 리그 전체 TV 중계권료는, 1988년 영국의 최대 민영방송사 ITV와의 계약으로 1988년에 4,400만 파운드로 급증했다. 막대한 중계권료로 인해 풋볼 리그의 구단들은 수익에 눈을 뜨게 되었고, 점차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상업적인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풋볼 리그는 총 중계권료를 최상위 1부 리그 구단들 뿐 아니라 하부 리그 구단들에게도 나눠주는 분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분 구조는 대다수의 시청 수요를 끌어오는 1부 리그 상위 구단들에게 불합리한 것이었고, 인기 구단들은 점점 불만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훌리건들에 의해 헤이젤 참사가 벌어졌고, 잉글랜드 구단들이 전부 5년 동안 유럽 대항전 출전 금지 징계[5]를 받게 되며 풋볼 리그의 성장세에 급작스럽게 제동이 걸렸다. 이에 리그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 우려되자 기존에 쌓여가던 인기 구단들의 불만은 급속도로 커져갔고, 체제를 혁신하자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88년, 1부 리그 상위 10개 구단이 소위 '슈퍼 리그'를 결성하고 풋볼 리그를 떠나자는 안건을 가지고 회동을 가졌다. 이를 주도한 것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마틴 에드워즈, 토트넘 홋스퍼 FC의 어빙 스콜라, 아스날 FC의 데이비드 딘 등의 인기 구단 회장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회담은 결국 비교적 작은 규모의 구단들이 반대표를 던짐에 따라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새로운 리그가 풋볼 리그를 확실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구단들은 더 많은 수익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1989년 열약한 구장 시설에 의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힐스보로 참사가 터졌기 때문이다. 이후 사건의 원인을 조사한 '테일러 보고서'에 의해 잉글랜드 내 모든 축구 구장들에 안전시설과 안전을 위한 공사가 및 좌석 설치가 요구되었고, 이는 구단들의 재정에 압박을 가했다.[6] 또한 거액의 TV 중계권료를 지불해가며 경기를 중계하던 방송사들도 구조의 개편을 바라고 있었다. 방송사들이 인기 구단들의 경기를 중계하려면 풋볼 리그의 정책에 의해 하부 리그의 경기들에도 중계권료를 지급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90년 10월, 민영 방송사 ITV[7]의 전무이사 그렉 다이크가 잉글랜드 최대 명문 구단들, 소위 빅5로 불리던 리버풀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아스날 FC, 에버튼 FC, 토트넘 홋스퍼 FC의 수장들과 비밀스럽게 회동을 열어 풋볼 리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별도의 리그를 만들고 중계료와 중계권을 독점하자는 청사진을 제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빅5 구단들은 이에 동의했고, 본격적인 혁신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새롭게 만들어지는 리그가 그러한 권한을 FA로 부터 얻어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전의 상위 10개 구단 회동도 새 리그가 풋볼 리그를 확실히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의해 무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아스날의 데이비드 딘이 나서 FA와 새로운 리그 창설을 두고 직점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당시 FA도 잉글랜드 축구의 상업적 부흥을 목표로 두고 있었기에 회담은 물흐르듯이 진행되었다. FA는 기존 풋볼 리그의 분배 방식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잉글랜드의 상위 구단들이 개선된 수익성으로 인해 유럽 전역의 팀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당시 잉글랜드 축구는 대표팀이 1990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에게 패하며 결승을 문턱에 두고 좌절해 이를 갈고 있던 상황이었고, 마침 1990-91 시즌부터 잉글랜드 리그의 유럽 대항전 출전 징계가 해제되자 리그 차원에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위한 본격적인 성장 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FA는 새로운 리그가 1부 리그가 되는 것을 승인했고, 1991년 6월, '축구의 미래를 위한 청사진(Blueprint for the Future of Football)'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프리미어 리그 설립을 공식화 했다.

이후 1991년 7월 17일, 1부 리그 구단들이 모두 모여 당시의 이름인 'FA 프리미어 리그(The FA Premier League)'의 창립 회원 협정을 맺었고, 리그의 기본 원칙을 확립하며 새로운 잉글랜드의 최상위 리그인 현재의 프리미어 리그가 탄생했다. 이 프리미어 리그의 탄생은 잉글랜드의 새 1부 리그가 FA와 기존 풋볼 리그로부터 완전하게 상업적 독립을 이루는 혁신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었고, 프리미어 리그는 자체적으로 방송 및 스폰서십 계약을 협상할 수 있는 온전한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8] 이에 당시 중계권 입찰이 진행되었는데, 실질적으로 빅5와 뒤에서 움직여 리그 창설을 이끌어 낸 ITV는 입찰에서 탈락하고[9], 스카이 스포츠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3억 4천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독점 5년 중계권을 얻었다. BBC는 경기 후 하이라이트 방송인 매치 오브 더 데이 방영권을 따냈다.

3. 현재의 프리미어 리그

1992년에 22개의 1부 리그 클럽들은 풋볼 리그를 완전히 탈퇴했고, 당해 5월 27일, 법인이 설립되어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되었다. 104년 동안 1부 리그를 포함해 운영되던 풋볼 리그가 2부 리그부터 시작되게 되었지만, 전체 대회 형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프리미어 리그와 풋볼 리그 간의 승격과 강등은 이전 1부 리그, 2부 리그 체제와 동일하게 유지되었으며, 강등팀과 승격팀도 각 3팀으로 같았다.

프리미어 리그는 2000년까지 5위였던 UEFA 랭킹을 2001년 프랑스 리그앙과 독일 분데스리가를 제치면서 3위로 끌어올리며 반등에 성공했고, 그 후 2005년 세리에 A를 제치고 리그 랭킹 2위를 차지했으며, 2008년 시즌부터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마저 제치고 유럽 최고의 리그로 우뚝 선다.

하지만 2013년, 라리가에게 다시 UEFA 리그 랭킹 1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2015년부터는 독일 분데스리가에게마저 따라 잡히며, 리그 랭킹 3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2017년 빅6 구도의 형성과 2016-17 시즌 맨유의 UEFA 유로파 리그 우승, 분데스리가 클럽들의 삽질로 따라잡을 기미가 보이더니 결국에는 2017-18 UEFA 챔피언스 리그 진행 중에, 빅6의 좋은 성적과 분데스리가의 삽질로 리그 랭킹 2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2021년에는 8년 동안 최정상 자리를 지키던 라리가를 다시 한 번 끌어내리고 리그 랭킹 1위를 탈환하여 마침내 유럽 리그 최정상 자리에 복귀했다.[10]

뻥글랜드라 불릴 정도로 뻥축구(킥 앤드 러시)만 구사했던 잉글랜드의 특성상 과거에는 뻥축구만 하는 팀들이 꽤 많았다. 최근에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상당히 늘어 상위권 팀들은 대개 뻥축구를 구사하지 않는다. 아스날의 벵거볼을 필두로 무리뉴의 안티 풋볼, 안토니오 콘테의 윙백 활용도를 극대화한 백 3 시스템, 토탈 풋볼과 티키타카 전술을 융합시킨 펩 과르디올라의 맨시티, 강력한 게겐프레싱 전술을 사용하는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 등 수많은 명장들과 전술가들이 모여들고 다양한 팀들이 제각기 공격적이면서 흥미로운 전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2020년대 초 기준으로 '전술의 라리가, 상업성의 EPL'이라는 말은 이미 과거의 옛말이 된 지 오래이다.[11]

빅리그 중에서도 파울콜과 경고 횟수가 가장 적으며 굉장히 공격적이고 과격한 몸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경기 템포도 가장 빠르다고 공인된 리그이다. 이 때문에 웬만한 기술적인 능력으로는 소용없으며 키가 작고 피지컬적으로 약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래서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같은 중견리그에서 건너온 선수들은 물론 다른 빅리그인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서 건너온 선수들도 적응하는데 자주 애를 먹는다. 워낙 템포가 빠르고 과격하다 보니 적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그의 역사가 긴 탓인지 하부 리그로의 강등을 경험하지 않고 1부 리그에만 머무는 클럽은 하나도 없다.[12] 그래도 2부 리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은 클럽들은 8개가 있는데, 현시점에서도 빅클럽들인 뉴캐슬, 리버풀, 맨유, 아스날, 에버튼, 웨스트햄, 첼시, 토트넘(가나다순)이 그들이다. 이들 중 리그 우승 경험이 없는 구단은 웨스트햄뿐이다.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 개근팀은 리버풀, 맨유, 아스날, 에버튼, 첼시, 토트넘의 총 6팀이다.

1부 리그에 있었던 경험이 1시즌이라도 있는 팀은 2021-22 시즌 기준으로 총 65팀이다.[13] 그중엔 참여 한지 너무 오래되어 현재는 해체된 팀도 존재한다.

그리고 위건 애슬레틱 FC, AFC 본머스, 레딩 FC, 스윈던 타운 FC, 반즐리 FC, 헐 시티 AFC는 프리미어 리그 출범 전에는 1부리그 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팀들이고, 루턴 타운 FC는 2009-10 시즌에 내셔널리그까지 강등되었다 올라온 팀으로서 논리그 경험이 있는 팀 최초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4. 역대 참가 클럽

  • 현재 참가하고 있는 클럽은 볼드체로 표시.
<rowcolor=#fff> 참가 클럽 참가 시즌 참가 연도 승격 강등 우승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33 1992/93~ X X 13회(1993, 1994, 1996, 1997, 1999, 2000, 2001, 2003, 2007, 2008, 2009, 2011, 2013)
리버풀 FC 33 1992/93~ X X 1회(2020)
아스날 FC 33 1992/93~ X X 3회(1998, 2002, 2004)
에버튼 FC 33 1992/93~ X X
첼시 FC 33 1992/93~ X X 5회(2005, 2006, 2010, 2015, 2017)
토트넘 홋스퍼 FC 33 1992/93~ X X
아스톤 빌라 FC 30 1992/93~2015/16, 2019/20~ 1회(2019) 1회(2016)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30 1993/94~2008/09, 2010/11~2015/16, 2017/18~ 3회(1993, 2010, 2017) 2회(2009, 2016)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9 1993/94~2002/03, 2005/06~2010/11, 2012/13~ 3회(1993, 2005, 2012) 2회(2003, 2011)
맨체스터 시티 FC 28 1992/93~1995/96, 2000/01, 2002/03~ 2회(2000, 2002) 2회(1996, 2001) 8회(2012, 2014, 2018, 2019, 2021, 2022, 2023, 2024)
사우스햄튼 FC 25 1992/93~2004/05, 2012/13~2022/23, 2024/25~ 2회(2012, 2024) 2회(2005, 2023)
블랙번 로버스 FC 18 1992/93~1998/99, 2001/02~2011/12 2회(1992, 2001) 2회(1999, 2012) 1회(1995)
레스터 시티 FC 18 1994/95, 1996/97~2001/02, 2003/04, 2014/15~2022/23, 2024/25~ 5회(1994, 1996, 2003, 2014, 2024) 4회(1995, 2002, 2004, 2023) 1회(2016)
풀럼 FC 18 2001/02~2013/14, 2018/19, 2020/21, 2022/23~ 4회(2001, 2018, 2020, 2022) 3회(2014, 2019, 2021)
크리스탈 팰리스 FC 16 1992/93, 1994/95, 1997/98, 2004/05, 2013/14~ 4회(1994, 1997, 2004, 2013) 4회(1993, 1995, 1998, 2005)
선덜랜드 AFC 16 1996/97, 1999/2000~2002/03, 2005/06, 2007/08~2016/17 4회(1996, 1999, 2005, 2007) 4회(1997, 2003, 2006, 2017)
미들즈브러 FC 15 1992/93, 1995/96~1996/97, 1998/99~2008/09, 2016/17 4회(1992, 1995, 1998, 2016) 4회(1993, 1997, 2009, 2017)
리즈 유나이티드 FC 15 1992/93~2003/04, 2020/21~2022/23 1회(2020) 2회(2004, 2023)
볼튼 원더러스 FC 13 1995/96, 1997/98, 2001/02~2011/12 3회(1995, 1997, 2001) 3회(1996, 1998, 2012)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3 2002/03, 2004/05~2005/06, 2008/09, 2010/11~2017/18, 2020/21 5회(2002, 2004, 2008, 2010, 2020) 5회(2003, 2006, 2009, 2018, 2021)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11 2003/04, 2009/10~2011/12, 2018/19~ 3회(2003, 2009, 2018) 2회(2004, 2012)
노리치 시티 FC 10 1992/93~1994/95, 2004/05, 2011/12~2013/14, 2015/16, 2019/20, 2021/22 5회(2004, 2011, 2015, 2019, 2021) 6회(1995, 2005, 2014, 2016, 2020, 2022)
스토크 시티 FC 10 2008/09~2017/18 1회(2008) 1회(2018)
코번트리 시티 FC 9 1992/93~2000/01 X 1회(2001)
번리 FC 9 2009/10, 2014/15, 2016/17~2021/22, 2023/24 4회(2009, 2014, 2016, 2023) 4회(2010, 2015, 2022, 2024)
셰필드 웬즈데이 FC 8 1992/93~1999/2000 X 1회(2000)
윔블던 FC 8 1992/93~1999/2000 X 1회(2000)
찰턴 애슬레틱 FC 8 1998/99, 2000/01~2006/07 2회(1998, 2000) 2회(1999, 2007)
왓포드 FC 8 1999/2000, 2006/07, 2015/16~2019/20, 2021/22 4회(1999, 2006, 2015, 2021) 4회(2000, 2007, 2020, 2022)
위건 애슬레틱 FC 8 2005/06~2012/13 1회(2005) 1회(2013)
노팅엄 포레스트 8 1992/93, 1994/95~1996/97, 1998/99, 2022/23~ 3회(1994, 1998, 2022) 3회(1993, 1997, 1999)
AFC 본머스 8 2015/16~2019/20, 2022/23~ 2회(2015, 2022) 1회(2020)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8 2017/18~ 1회(2017) X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7 1992/93~1995/96, 2011/12~2012/13, 2014/15 2회(2011, 2014) 3회(1996, 2013, 2015)
더비 카운티 FC 7 1996/97~2001/02, 2007/08 2회(1996, 2007) 2회(2002, 2008)
버밍엄 시티 FC 7 2002/03~2005/06, 2007/08, 2009/10~2010/11 3회(2002, 2007, 2009) 3회(2006, 2008, 2011)
포츠머스 FC 7 2003/04~2009/10 1회(2003) 1회(2010)
스완지 시티 AFC 7 2011/12~2017/18 1회(2011) 1회(2018)
입스위치 타운 FC 6 1992/93~1994/95, 2000/01~2001/02, 2024/25~ 3회(1992, 2000, 2024) 2회(1995, 2002)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6 1992/93~1993/94, 2006/07, 2019/20~2020/21, 2023/24 3회(2006, 2019, 2023) 4회(1994, 2007, 2021, 2024)
헐 시티 AFC 5 2008/09~2009/10, 2013/14~2014/15, 2016/17 3회(2008, 2013, 2016) 3회(2010, 2015, 2017)
브렌트포드 FC 4 2021/22~ 1회(2021) X
레딩 FC 3 2006/07~2007/08, 2012/13 2회(2006, 2012) 2회(2008, 2013)
올덤 애슬레틱 AFC 2 1992/93~1993/94 X 1회(1994)
브래드포드 시티 AFC 2 1999/2000~2000/01 1회(1999) 1회(2001)
카디프 시티 FC 2 2013/14, 2018/19 2회(2013, 2018) 2회(2014, 2019)
허더즈필드 타운 AFC 2 2017/18~2018/19 1회(2017) 1회(2019)
스윈던 타운 FC 1 1993/94 1회(1993) 1회(1994)
반즐리 FC 1 1997/98 1회(1997) 1회(1998)
블랙풀 FC 1 2010/11 1회(2010) 1회(2011)
루턴 타운 FC 1 2023/24 1회(2023) 1회(2024)

5. 역대 스폰서

파일:칼링 브루어리 로고 (1990년대 - 2011).svg 파일:바클리 카드 로고.svg 파일:바클리스 로고.svg
<rowcolor=#fff> 칼링 브루어리
(1993/94 - 2000/01)
바클리카드
(2001/02 - 2003/04)
바클리스
(2004/05 - 2015/2016)

5.1. 역대 로고 및 패치

<rowcolor=#fff> 기간 명칭로고 패치
1992~2007년The FA Premier League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92-07).svg[14] 파일:프리미어 리그 패치 (92-03).svg
2007년~2016년 Premier League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 (07-16).svg 파일:프리미어 리그 패치 (07-16).svg[15]
2016년~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svg 파일:프리미어 리그 심볼.svg

6. 역대 폰트

파일:external/jerseysemarang.com/font-epl-1996-2007.jpg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사용한 프리미어 리그 공용 폰트.

파일:external/dothethao.net.vn/Premier-League-Font-2015-2016.jpg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사용한 공용 폰트.

파일:2017 Premier League New Font.jpg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사용한 공용 폰트.

파일:PLfont.jpg
2023년부터 사용되는 공용 폰트

7. 역대 공인구

프리미어 리그 역대 공인구
스폰서 파일:나이키 로고.svg파일:나이키 로고 화이트.svg
(2000~2025)
형태 사용 연도 명칭 우승팀
파일:2000-02_Nike_Geo_Merlin.png 2000-01 Nike Geo Merlin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2001-02 파일:아스날 FC 로고.svg
파일:2002-04_Nike_Geo_Merlin_Vapor.png 2002-03 Nike Geo Merlin Vapor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2003-04 파일:아스날 FC 로고.svg
파일:2004-05_Nike_Total_90_Aerow.png 2004-05 Nike Total 90 Aerow I 파일:첼시 FC 로고.svg
파일:2005-06_Nike_Total_90_Aerow.png 2005-06
파일:2006-07_Nike_Total_90_Aerow_ll.png 2006-07 Nike Total 90 Aerow II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파일:2007-08_Nike_Total_90_Aerow_ll.png 2007-08
파일:2008-09_Nike_Total_90_Omni.png 2008-09 Nike Total 90 Omni
파일:2009-10_Nike_Total_90_Ascente.png 2009-10 Nike Total 90 Ascente 파일:첼시 FC 로고.svg
파일:2010-11_Nike_Total_90_Tracer.png 2010-11 Nike Total 90 Tracer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파일:2011-12_Nike_Seitiro.png 2011-12 Nike Seitiro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파일:2012-13_Nike_Maxim.png 2012-13 Nike Maxim 파일: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로고.svg
파일:2013-14_Nike_Incyte.png 2013-14 Nike Incyte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파일:2014-15_Nike_Ordem_2.png 2014-15 Nike Ordem 2 파일:첼시 FC 로고.svg
파일:2015-16_Nike_Ordem_3.png 2015-16 Nike Ordem 3 파일:레스터 시티 FC 로고.svg
파일:2016-17_Nike_Ordem_4.png 2016-17 Nike Ordem 4 파일:첼시 FC 로고.svg
파일:2017-18_Nike_Ordem_5.png 2017-18 Nike Ordem 5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파일:2018-19_Nike_Merlin.png 2018-19 Nike Merlin
파일:2019-20_Nike_Merlin_2019.png 파일:2019-20_Nike_Merlin_2020.png 2019-20 파일:리버풀 FC 라이버 버드 로고(레드).svg
파일:2020-21_Nike_Flight.png 파일:2020-21_Nike_Flight_2021.png 2020-21 Nike Flight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파일:2021-22_Nike_Flight_2021.png 파일:2021-22_Nike_Flight_2022.png 2021-22
파일:2022-23_Nike_Flight_2022.png 파일:2022-23_Nike_Flight_2023.png 2022-23
파일:2023-24_Nike_Flight_2023.png 파일:2023-24_Nike_Flight_2024.png 2023-24
파일:2024-25_Nike_Flight_2024.png 파일:2024-25_Nike_Flight_2025.png 2024-25 -


[1] 원래는 축구 종주국의 자존심이 강하여 자국 내 리그와 FA컵이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유러피언컵 등의 유럽 대항전에 초창기부터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시작으로 유럽 대항전에 관심을 가지는 구단들이 많아졌고, 1970년대부터는 많은 팀들이 활발하게 유럽 대항전에 참가했다.[2] 맷 버스비, 빌 샹클리, 돈 레비, 밥 페이즐리, 브라이언 클러프, 토니 바튼, 조 페이건 등의 역대급 명감독들이 활약한 시기였다. 이 이후로 잉글랜드 출신 명장들의 명맥이 끊겼다.[3] 유러피언컵에서 1975년 리즈 유나이티드 FC가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1977년과 1978년에 리버풀 FC이 2연패를 이룩했고, 이후 1979년과 1980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 FC가 연이어 2연패를 차지했다. 이후 리버풀이 다시 1981년에 우승, 1982년에는 아스톤 빌라 FC가 우승, 1984년에는 리버풀이 또 다시 우승을 차지한 뒤 1985년 준우승까지 만들었다. 1975년부터 1895년까지 10년 동안 잉글랜드 팀은 결승전에만 9회, 우승만 7회를 차지하는 위력을 보였다.[4] 대중교통의 발달로 인해 원정 응원이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 당시 구장들도 많이 커져서 단체 응원 문화가 급속도로 팽창했다. 이에 좋지 못한 쪽으로 훌리건 문화도 발달했던 것이다.[5] 사건의 당사자인 리버풀 FC는 6년 징계를 받았다.[6] 당시까지는 스탠딩으로 축구를 관람하는 구장들이 매우 많았으나, 힐스보로 참사 이후로 단계를 거쳐 모든 입석이 폐지되고 축구 경기장의 전 좌석화와 수용 인원 관리 및 안전 시설 설치가 이루어졌다.[7] 현재의 런던 위켄드 TV(LWT)[8] 프리미어 리그의 출범을 새로운 이름으로 리그를 리브랜딩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질적으로는 완벽하게 상업적으로 독립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핵심이었다.[9] 물론 빅5는 ITV를 지지했지만, 나머지 구단들이 스카이 스포츠를 밀어주면서 선정투표에서 6:14로 대패했다.[10] 특히 21-22시즌을 앞둔 여름시장에서는 수 많은 선수들이 EPL 이적을 희망했으며 라파엘 바란, 제이든 산초, 로멜루 루카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황희찬, 토미야스 타케히로 등 다른 리그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EPL로 유입되었다.[11] 당장 22/23 기준 빅6 팀의 감독들 특징만 봐도 맨유의 텐하흐는 네덜란드의 토탈풋볼, 맨시티의 펩은 스페인의 티키타카, 리버풀의 클롭은 독일의 게겐프레싱, 토트넘의 콘테는 이탈리아의 백 3 시스템, 아스날의 아르테타는 벵거볼와 펩 전술이 융합된 전술, 첼시의 투헬은 실리주의에 전술을 유동성을 각각 기반으로 한다. 이중 투헬, 콘테, 펩, 클롭은 현 최고의 명장이자 현대 축구의 중심의 있는 감독들로 꼽히고 텐하흐와 아르테타 역시 떠오르는 감독들이다.[12] 이와 달리 프리메라 리가에서는 FC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CF, 아틀레틱 빌바오가 강등 없이 최상위 리그에서만 뛰었으며, 세리에 A에서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가 강등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13] 프리미어 리그 출범 후만 따지면 51팀.[14] PL이 한국에 알려진 시기라서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15] 2013-14시즌부터 색상만 약간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