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04 23:29:08

하이델베르크 28개조 논제

마르틴 루터에 의해 1518년에 쓰여졌다.
이후 40개조까지 추가 되어 '하이델베르크 논제'는 총 40개로 구성되어 있으나, 앞의 28개조는 신학적 논제이며 추가시킨 나머지는 철학적 논제이다.

이 28개조 논제는 독일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주교 슈타우피츠 (Johann von Staupitz)의 루터에 대한 처분 (1517년 95개조 논제 문제로 인한 파면 여부) 결정 필요성에 의해서 요구되었다. 슈타우피츠는 그에게 죄를 묻기보다는 루터와 매우 가까운 사이로서 '죄, 자유의지, 은총'에 대한 의견을 설명하기를 부탁하였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28개조가 작성된다.

28개조는 크게 4가지로 나뉘어진다. 신학적 논제 28개조 구분
  • 1. 하나님의 율법은 삶의 가장 건전한 지침이긴 하지만 인간을 의의 길 로 나가게 할 수 없으며 도리어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
  • 2. 하물며 자연적인 교훈의 도움을 받아 흔히 “반복되는” 인간의 행위들은 더욱 더 그렇게 할 수 없다.
  • 3. 인간의 행위들은 언제나 매력있고 선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죽을죄들”인 것으로 보인다.
  • 4. 하나님의 행위들은 언제나 매력 없고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참으로 불멸의 공적들이다.
  • 5. 인간의 행위들(선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들을 말한다)은 그것들이 범죄(Crimes)라는 의미에서 죽을죄인 것은 아니다.
  • 6. 하나님의 행위들(인간을 통해 행해지는 행위들을 말한다)은, 그것들 이 죄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공로들은 아니다.
  • 7. 만약 의인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경외 속에서 그들의 행위들을 죽을죄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행위들은 죽을죄가 될 것이다.
  • 8. 인간의 행위들이 두려움 없이 전적으로 악한 확신 가운데서 행해진 다면 그 행위들은 한층 더 죽을죄가 된다.
  • 9. 흔히 말하듯이 그리스도 없는 행위들은 죽은 것이기는 하지만 죽을죄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포기하는 위험한 일인 것으로 보인다.
  • 10. 실제로 어떤 행위가 죽은 것이기는 하지만 해롭고 죽을죄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 11. 모든 행위에 있어서 정죄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이 없다면 교만을 피할 수 없거나 참 소망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 12. 인간들이 죄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렵게 여길 때 죄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
  • 13. 타락 이후 “자유의지[1]”는 단지 내용 없는 빈말에 지나지 않으며, 자유 의지의 능력범위 안에 있는 것을 행하고 있는 한 그것은 죽을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 14. 타락 이후 “자유 의지”는 선에 대해서는 단지 실현할 수 없는 능력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지만, 악에 대해서는 실현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 15. 또한 자유 의지는 무죄 상태에서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머 물러 있을 수 없었다. 무죄 상태에서조차도 자유 의지는 선을 향해 어떤 진보를 할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의 실현할 수 없는 가능성이었다.
  • 16. 자기의 자유의지로 최선을 다함으로써 의에 도달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에 죄를 더함으로써 이중으로 범죄하게 된다.
  • 17.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망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겸비케 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자 하는 열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 18.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준비되기 위해서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철저하게 절망해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 19.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 만드신 것들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 바라보는 사람(롬 1:2)이은 신학자로 불릴 자격이 없다.
  • 20. 그러나 고난과 십자가를 바라봄으로써 하나님의 보이는 것, 하나님 의 ‘등’(출 33:23)을 인식하는 사람은 도리어 신학자로 불릴 자격이 있다.
  • 21. ‘영광의 신학자 는 악을 선이라 부르고 선을 악이라 부른다. ‘십자가의 신학자 는 사실 그대로 말한다.
  • 22. 행위들로부터 인식되는 대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그러한 지혜는 사람을 극히 교만하게 하고 눈멀게 하며 완악하게 한다.
  • 23. 또한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모든 것을 죽이고 욕하고 죄되게 하고 심판하며 정죄한다.
  •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지혜는 악하지 않으며 또한 율법은 회피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신학이 없이는 사람은 가장 선한 것들을 가장 나쁜 방식으로 오용하게 된다.
  • 25. '많이 행하는’ 사람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행위’가 없더라도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사람이 의로운 것이다.
  • 26.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적은 결코 없다. 은혜는 “이것을 믿으라'"고 하나 모든 것은 즉시 이루어져 있다.
  • 27. 그리스도의 행위는 능동적인 행위라 부르고, 우리의 행위는 그 능동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진〔수동적인〕행위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수동적인 행위는 능동적인 행위 덕분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된다.
  • 28.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발견하는 것 이 아니라 도리어 〔사랑할〕 대상을 창조하신다. 인간의 사랑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을 발견하며 시작된다.

[1] 이하 루터가 설명한 기독교인의 자유의지는 1525년에 저술한 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에서 구체화 된다. 단편적인 소개는 나무위키 예정설, 이신칭의, 항목과 자유의지 항목 중 신학/기독교 목차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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