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없어진 은행 및 예금취급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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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은 지로코드순. 전신 법인: 법인은 현존하나 계열이 변경된 경우. 우체국예금은 농협금융에 흡수된 후 재설립되었음. | |||
대한민국의 은행 | 대한민국의 비은행예금취급기관 | 각 기관의 코드 보기 |
<colcolor=#fff> 서울은행 Seoul Bank | |
<colbgcolor=#4aba58> 법인명 | 주식회사 서울은행 |
Seoul Bank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1959년 12월 1일([age(1959-12-01)]주년) |
상호 변경일 | 1976년 8월 5일(서울신탁은행) 1995년 6월 1일(서울은행) 2002년 12월 1일(하나은행)[1] |
후신 | 하나은행 |
상장 여부 | 상장회사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1962년 7월 13일 ~ 2005년 12월 12일) |
종목 코드 | 002860 |
본점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2가 10-1[2] |
은행 코드 | 025 |
SWIFT 코드 | BSEOKRSE |
노조 | 한국노총 금융노조 |
PC 통신 | go sbnet |
웹 사이트 | (웹 아카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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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9년부터 2002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시중은행. 과거 조상제한서로 불리던 5대 시중은행 중의 하나이자 마지막으로 설립된 시중은행이다. 노조는 한국노총 금융노조 소속이었다.2. 역사
창립 초기~1976년 로고.
1976~1987년 로고.
1987~1995년 로고.
1959년 12월에 이정림[3]이 지방은행으로 창립했으며, 창립 당시 영업구역은 서울특별시 및 경기도 일원이었다. 1962년 4월 부산지점을 신설하면서 전국은행으로 인가받아 시중은행으로 전환했다. 1976년 8월에는 1968년 설립된 한국신탁은행과 대등합병하여 서울신탁은행[4]으로 행명을 변경하였다. 1982년 정부 소유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되었고 1982년 은행신용카드연합회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1984년 대한증권과 미주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고 1989년 서은리스, 1990년 서은시스템을 각각 설립 후 1993년 대한투자자문을 인수했다. 1994년 대한증권을 교보생명에 재매각한 후 1995년 6월 서울은행으로 행명이 환원되었다.
1995~2001년 로고.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부실화되었고 서울은행의 해외 매각을 대한민국 정부가 IMF에 약속했다. 자회사 서울리스 및 서은투자자문을 매물로 내놓았고 1998년 연수원을 신용금고연합회에 매각했으며 서은상호신용금고까지 매각했다. 해외 매각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99년 HSBC에 매각이 추진되다 HSBC와 대한민국 정부가 의견 차이를 보여 매각이 무산되었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서울은행에 추가로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경영을 우선 정상화시킨 후 해외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으며 2000년 도이체방크에 경영을 위탁하고 강정원 도이치방크 서울지점 한국 대표를 은행장으로 선임하는 등 경영 개혁을 단행한다.
2001년 서울은행은 CI[5]를 대대적으로 바꾸고 "푸른은행 서울은행"이란 캐치프레이즈[6]로 영업하였으나 2002 월드컵이 끝난 직후 하나은행에 인수합병되면서 창립 43년만인 2002년 12월 간판을 내리게 된다. 구 서울은행 본점은 하나은행 명동영업부로 개편되었고 비씨카드 회원사 자격도 하나은행이 갖고 갔으며 2015년에는 존속법인을 한국외환은행으로 이전하였다.
3. 기업 정신
3.1. 1995년 이전
- 행훈: 인화, 성실, 창의
- 행가: 작사는 신현익, 작곡은 김동진이 담당했다.
(1절)우리는 자랑스런 경제의 일꾼 / 번영과 부강 위해 정성 다하려 오늘도 의욕에 찬 결의도 굳게 / 산업의 동맥 구실 보람에 찼다 (2절)우리는 부지런한 금융의 일꾼 / 겨레의 복지 위한 사명 다하여 풍요한 뒷받침에 희망이 넘쳐 / 높은 뜻 큰 이상의 포부도 크다 (후렴)나라 발전에 앞장을 서자 서울신탁은행 / 온 세계에 빛나리라 우리 서울신탁은행 |
3.2. 1995년 이후
- 경영이념
고객만족 경영, 내실있는 경영, 고객이 만족하는 은행, 강하고 깨끗한 은행, 꿈과 보람을 심어주는 은행
- 행훈
창의와 패기로 고객과 더불어 미래를 창조한다.
- 고객을 위한 우리의 다짐
저희 임직원 일동은 고객 한 분 한 분을 저희 은행의 주인으로 모시고 더욱 큰 기쁨과 만족을 드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1. 모든 일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겠습니다.
2. 고객을 더욱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3. 모든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겠습니다.
4. 은행의 제도를 고객 위주로 고치겠습니다.
5. 고객의 만족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겠습니다.
1. 모든 일을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겠습니다.
2. 고객을 더욱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3. 모든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겠습니다.
4. 은행의 제도를 고객 위주로 고치겠습니다.
5. 고객의 만족을 가장 큰 기쁨으로 삼겠습니다.
4. 역대 은행장
4.1. 통합 전
- 구 서울은행
- 한국신탁은행
- 전신용 (1968~1970)
- 김진흥 (1970~1975)
- 심원택 (1975~1976)
4.2. 통합 후
- 윤승두 (1976)
- 홍윤섭 (1976~1979)
- 남상진 (1979~1980)
- 김용운 (1980~1985)
- 구기환 (1985~1987)
- 이광수 (1987~1991)
- 김준협 (1991~1993)
- 김영석 (1993~1994)
- 손홍균 (1994~1996)
- 장만화 (1996~1997)
- 표순기 직무 대행 (1997)
- 신복영 (1997~1999)
- 신억현 직무 대행 (1999~2000)
- 김현기 직무 대행 (2000)
- 강정원 (2000~2002)
- 이인수 직무 대행 (2002)
5. 역대 슬로건
- 새로운 은행, 새로운 경영 (1959)
- 여러분의 서울은행 (1961~1965)
- 새로운 은행 새로운 경영 새로운 서비스 (1962)
- 친절하게 봉사하는 서울은행 (1965~1967)
- 친절의 전당 (1967)
- 번영하는 고객속에 발전하는 서울은행 (1968~1970)
- 비약을 다짐하며 맞이하는 10주년 (1969)
- 손님에게 기쁨을 (1975~1976)
- 고객의 웃음속에 발전하는 서울신탁은행 (1976~1982)
- 믿고 찾아 보람있는 서울신탁은행 (1982~1988)
- 88 서울장애자올림픽 후원은행 (1988)
- 2002 월드컵축구대회 유치후원은행 (1995)
- 빠른은행, 서울은행 (1995)
-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은행 (1997~1999)
-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공식후원은행 (1998~2000)
- 푸른은행, 서울은행 (2001~2002)
6. 스포츠단
- 1969년~1994년, 2000년 2차례 실업 축구단도 운영했으며 축구단도 신탁은행과 서울은행이 따로 있다가 1976년 합병하면서 축구단도 통합되었다. 팀을 거쳤던 대표적인 선수로는 박병주(전 안양 LG 치타스 감독), 변호영, 허윤정, 차범근 등이 있다.
- 1994년에는 2002 월드컵 유치은행으로 지정되어 유치/조직위원회에 기금 56억원을 출연했고, 축구사랑 캠페인과 월드컵 소식지 발간, 티켓 발매 전산시스템 구축 등으로 한일월드컵 스폰서를 따낼 채비를 했지만 후원금을 적게 낸 탓에 2000년 공식 후원은행 선정 과정에서 주택은행에게 밀려 탈락했다.
- 서울은행 여자 농구단도 운영한 적이 있는데 한국신탁은행 시절이던 1972년에 창단되어 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진 후 1998년 2월 해체했다. 이전에는 외환은행이 여자 농구단을 해체했고 2012년 신세계 쿨캣 농구단을 인수해 부천 하나외환 여자 농구단을 창단하면서 부천 KEB하나은행으로 계승했다가 2020년 2월 행명이 하나은행으로 회귀함에 따라 부천 하나은행으로 함께 개칭했고 현재의 부천 하나원큐로 이어가고 있다.
7. 자회사
- 서은상호신용금고: 1998년 프라임산업에 매각되어 프라임저축은행이 되었다가 2012년 BNK저축은행으로 자산이 매각됨.
- 서울리스: 1998년 신규법인 '한국리스여신'에 P&A로 매각된 후 2001년 법인 소멸.
- 서은투자자문: 1998년 폐업.
- 서은시스템: 현 하나금융티아이.
8. 관련 문헌
9. 매체에서
*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하나은행이 인수하기 직전 시기의 서울은행이 잠깐 등장한다. 해당 지점은 학동사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하나은행 인수 이후에도 하나은행 학동지점으로 영업을 계속하다 2020년경에 길 건너로 지점이 이전했다. 해당 건물은 현재 철거됐다.
[1] 구 하나은행에 인수된 이후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존속법인으로 역합병해 다시 하나은행으로 개칭하면서 등기상으로만 서울은행의 법인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해당 법인도 하나은행이 2015년 KEB외환은행과 다시 역합병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2] 현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78 (명동1가 59-5) 타임워크명동빌딩[3] 대한민국의 1세대 재벌로 대한유화를 설립하였고 전경련의 회장을 지냈다.[4] 서울신탁은행 시절에는 행화로 '튤립'을 내세웠다.[5] 이 녹색 CI는 상당한 레어템이다. 대한민국 최단명 은행 CI로 기록에 남을 만하다.[6] 이때 서울은행 CF의 광고 음악은 동요 '파란 마음 하얀 마음'이었다.[7] 1960년까지는 재무부장관도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