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訥儒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7세기에 활동한 신라의 관료이자 서예가. 관직은 대사(大舍: 신라 17관등 중 12등). 문무왕릉비에 글을 쓴 인물로, 신라시대 기록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한씨(韓氏)이기도 하다. 문무왕릉비는 구양순체(歐陽詢體) 해서(楷書)로 쓰였는데, 당시 신라에서 구양순체가 쓰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문을 지은 인물은 신라 급찬(級飡) 국학소경(國學少卿)인 김□□인데, 인명이 마멸된 탓에 전해지지 않는다.
2. 기록
내가 처음 《삼국사기》를 볼 때는 오히려 김부식(金富軾)이 이전 시대의 사람이므로 간혹 의심스러운 것을 전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여겼고, 지난번 계림에 있을 때에는 문무왕릉을 찾아갔지만 증명할 만한 빗돌 한 조각도 없었다. 36년이 지난 뒤 그곳 사람이 밭을 갈다가 홀연히 들판 한가운데에서 오래된 비석을 얻으니 이것이 바로 문무왕비(文武王碑)로 대사(大舍) 신(臣) 한눌유(韓訥儒)가 쓴 것이다. 글자들이 긁히고 깎여나가 두서가 없었으나 “적오(赤烏)가 재앙을 알리고 황웅(皇熊)이 기이함을 드러낸다. 잠깐 사이에 촛불을 따라가니 도(道)가 귀하고 몸은 천한 것이지. 쌓은 섶으로 장례를 치르고 험한 바다에 뼈를 부수노라” 등의 구절이 있었다. 이는 명백하게 화장(火葬)을 하고 수장(水葬)을 하는 말이니 《삼국사기》의 내용이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아, 괴이하도다. 애오라지 비석의 문장을 기록해두고 박식한 군자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홍양호, 이계집(耳溪集) 제16권
홍양호, 이계집(耳溪集) 제1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