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한봉삼(韓鳳三) |
생몰 | 1908년 10월 2일 ~ 1933년 8월 6일 |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가곡동 |
사망지 | 경상남도 밀양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봉삼은 1908년 10월 2일 경상남도 밀양군 밀양읍 가곡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7년 밀양공립학교에 입학했지만 3학년 때인 1919년 3월 14일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했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1928년 7월 경성공립제잃고등보통학교 3학년까지 재학했지만 역시 퇴학당했고, 1929년 4월 강산사립관서중학교 4학년에 입학했지만 1930년 3월 퇴학했다. 이후 그해 7월에 밀양청년동맹에 가입한 그는 밀양합동노동조합(密陽合同勞動組合)에도 가입해 간부로 활약하면서 밀양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하였다.한봉삼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의 격차가 날로 심각해지고 강자의 압박으로 약자가 곤경에 빠진다고 보고 사회주의 운동에 전력했다. 1931년 8월 중에는 밀양합동노동조합 간부인 정선호(鄭善浩)·박경수(朴庚守)·김희순(金熙淳)·김용학(金用學)·박재석(朴在奭) 등과 함께 지도위원회(指導委員會)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동년 11월에 발각되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때 그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31년 12월 박성수·김희순·김용학·박재학 등과 다시 회합을 갖고 밀양합동노동조합 간부인 윤치환(尹致環)과 동일한 목적으로 지도위원회를 재조직해 활동하였다. 이 일로 1932년 또다시 체포된 그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1931년의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징역 10개월이 가중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러던 중 질병으로 집행정지되어 자택에서 요양하다 1933년 8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한봉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경남 밀양초등학교는 2019년 2월 15일 한봉삼에게 명예졸업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