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0-22 21:41:49

한스 리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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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Richter.
1843~1916.
헝가리계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최초의 근대적 전문 지휘자 중 한명이다. 동시기에 활동한 선배격 인물인 한스 폰 뷜로와 함께, 이 부문의 대표적인 선구자. 초창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지내며 양 악단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휘 말고도 성악, 호른, 트럼펫, 비올라에 능한 다재다능한 음악인이었다.

2. 생애

리히터는 작곡가의 아들로 태어나 빈 콘서바토리에서 공부했다. 헝가리 이름은 야노스 리히터(János Richter). 어린 시절 빈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했다. 젊은 시절에는 빈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호른 주자로 일하다가 음악 스승이었던 Franz Lachner의 추천로 젊은 나이에 리하르트 바그너의 문하로 들어갔다.

바그너의 제자로서 초창기에는 선배이자 바그너의 첫번째 제자인 한스 폰 뷜로의 조수 역할을 했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초연 때 지휘를 맡은 한스 폰 뷜로의 조수로 일하면서 공연 준비를 도왔다. 곧이어 한스 폰 뷜로가 코지마 사건 등으로 바그너파에서 이탈하자 한스 리히터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바그너가 아내 코지마를 위해 작곡한 지크프리트 목가의 초연 때는 비올라를 연주하면서 악단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트럼펫 패시지[2]를 연주하기도 했다.

리히터는 187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의 역사적인 초연을 이끌었다.

이후 리히터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약 20년간 빈 필의 상임지휘자를 맡으며 당시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던 빈 필하모닉을 안정화시키고 기반을 닦는데 크게 기여했다. 빈 필하모닉에 재임하던 기간동안 여러 유명한 작품을 초연했는데, 브람스 교향곡 2번, 3번, 브루크너 교향곡 4번, 8번, 테데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그너의 수제자로 바그너파의 핵심인물이었지만 브람스파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브람스 본인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그의 교향곡 2번, 3번을 초연하기도 했다. 바그너파의 후고 볼프가 브람스의 교향곡 3번을 깎아내렸지만 리히터가 극찬한 탓에 더는 이곡을 깎아내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 뿐만아니라 가능성 있는 젊은 음악가들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젊은 작곡가 한스 로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교향곡 1번을 초연하려고 했지만, 브람스의 제지로 그만둔 일화가 있다.

빈 필하모닉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런던으로 건너가 창단된지 얼마 안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면서 창단 직후 불안정한 상태였던 악단을 정상궤도에 올려 놓는데 크게 기여했다.

3. 기타

악기에는 호른 이외에도 비올라 연주에도 능했다. 당연히 바이올린도 연주할 수 있었을 것이고, 트럼펫도 연주 가능했다. 바그너의 지크프리트의 목가를 초연할 때는 본인이 지휘 겸 비올라 연주를 맡았고, 중간 부분에서는 트럼펫도 불었다고 한다.

빈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호른 주자였던 만큼 호른 연주에 능숙했는데, 호른과 관련된 일화들도 있다.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았던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 자신의 모든 작품을 바이에른 왕립가극장 오케스트라를 통해 초연했다. 그런데 이 오케스트라의 호른 수석주자가 걸핏하면 트러블을 일으켰다. 그는 바로 당대 최고의 호른연주자로 명성을 날렸던 프란츠 슈트라우스[3]였다.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를 비롯한 고전주의 음악을 이상으로 여기고 바그너의 신음악에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그너는 프란츠 슈트라우스의 연주에 감탄하여 그를 염두에 두고 지크프리트 롱콜과 같이 엄청나게 어려운 패시지들을 작곡하곤 했다. 그러자 프란츠 슈트라우스는 걸핏하면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지휘자인 뷜로나 리히터에게 항의하곤 했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초연 때도 슈트라우스가 도저히 연주 불가능하다며 리허설 도중에 집에 가버리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지휘자 한스 폰 뷜로가 집으로 쫓아가는 등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한스 리히터가 슈트라우스 앞에서 그의 악기를 빼앗아 연주 불가능하다는 패시지를 실수없이 연주했다는 일화가 있다.

런던 심포니에서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런던 심포니 호른 연주자들이 연주불가능하다고 불평하는 패시지를 한스 리히터가 직접 실수없이 연주해 보인 것.

이름이 똑같은 독일인 화가 한스 리히터(1888~1976)가 있다.


[1] 같은 시기에 한스 폰 뷜로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맡았고, 이들 두 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세계 관현악단의 양대 산맥으로서 명성을 자랑한다.[2] 지크프리트 목가에서 트럼펫 패시지는 중간 부분에만 나온다.[3]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