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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漢韓大字典민중서림에서 발행하는 한한사전이다. 민중서림이 민중서관이라는 상호를 사용할 때부터 발행되었던 사전으로, 1966년에 초판을 내고 그 후로 두 번 개정하여 지금까지 간행한다.
2. 초판
한한대자전의 초판은 초기형, 중기형, 후기형으로 나눌 수 있다. 수록 표제자 수는 1만 2천 자라고 한다.2.1. 초판 초기형
특별한 그림이 없는 회색 케이스에 가로로 '한한대자전 문학박사 이상은 감수 민중서관'이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한한대자전'의 글꼴이 한한대자전 특유의 서체가 아니다. 본체는 사륙판의 판형에 갑골문이 그려진 재킷이 있고 푸른색 하드커버를 사용했다. 재킷과 커버에 '이상은 감수 한한대자전'이 세로로, 특히 커버에는 금자(金字)로 쓰였다. '한한대자전' 특유의 글꼴은 이때부터 사용되었다. 인쇄는 세로쓰기에 4단으로 되어 있어서 일본이나 대만의 사전을 연상하게 한다. 서문에도 중국의 사원(辭源)과 일본의 한화사전을 참고했다고 하였다.특이한 점으로는 田부에 鴫라는 글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鴫는 일본에서 주로 사용되는 글자인데 한한대자전에서는 따로 글자에 대한 풀이는 없고 鳥부를 보라고만 하였다. 일본국자(日本國字)를 우리나라 사전에서 흔히 수록하므로 이상하지야 않지만, 한한대자전에서는 鴫 자만 유일하게 실었는데 풀이가 없으므로 편집상 실수였던 모양이다. 鴫자는 초판 후기형까지 계속 실렸다.
2.2. 초판 중기형
그림이 들어간 연두색 내지 노란색 케이스를 사용했는데 이때부터 케이스에도 '한한대자전' 특유의 글꼴을 채택했다. 나머지는 초기형과 동일하나 붉은색 하드커버를 썼다. 중기형이 나오는 동안 상호가 민중서관에서 민중서림으로 바뀌었다.2.3. 초판 후기형
중기형과 같은 디자인의 케이스가 사용되었는데 하늘색인 점이 다르다. 또 사륙판이었던 판형이 국판으로 커졌으며 커버가 더 두꺼워졌다. 인명 한자를 보충한 보유(補遺)편이 추가되었다.3. 제2판
전면 개정 증보판. 초판과 여러 부분에서 달라졌다. 기본형인 국판 외에 크라운판이 같이 발행되었다. 케이스에 가로로, 책 본체에 세로로 쓰여 있던 '한한대자전'이 케이스에 세로로, 본체에 가로로 박았다. '이상은 감수'가 사라지고 대신 '민중서림 편집국 편'이 쓰였다. 재킷이 사라지고 검은색 가죽 커버만 사용했는데, 이후에 나온 3판의 커버보다 빳빳하다. 표제자는 1만 2천 자에서 1만 6천 자로 늘어났다. 4단 세로쓰기에서 2단 가로쓰기로 바뀌었다. 초판에 없던 반절(反切), 중국어 음(한어병음), 자원(字源)이 추가되었다. 한자 중 획수가 가장 많다는 '수다스러울 절(龍을 네 번 쓴 글자)'이 수록되었다.현재 절판되었지만 인터넷이나 오프라인에는 아직 재고가 남은 듯하다.
4. 제3판
현재 발행되는 판으로 기본은 2판과 동일하나 역시 몇몇 부분이 바뀌었다.초판부터 2판까지 표제자를 나타내는 괄호의 모양이 '〔〕' 형태였으나 '[ ]' 형태로 바뀌었다. 단색 인쇄에서 2색 인쇄로 바뀌었다. 표제자는 21,000자로 증가되었다. 새로운 인명 한자를 반영하면서 인명 한자에 있는 일본 국자들도 함께 수록하였다. 초판의 鴫는 실수였던 것 같지만 이번 일본 국자는 제대로 수록한 것이다.
초서체가 추가되었다.
5. 여담
- 한한대자전은 민중서림에서 나온 것이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같은 제목을 사용하는 사전은 민중서림 외에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왔었다. 대표적인 것이 명문당과 동화사. 특히 명문당에서 나온 것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글자를 실었는데 민중서림에서 나온 것과 함께 문자코드연구센터에서 음훈 정보 제공용으로 사용되었다.
- 2판부터 나온 크라운판은 국판과 내용은 동일하다. 가죽이 아닌 하드커버가 사용되고 반달 색인(thumb index)이 있는 점이 다르다.
- 편지(便紙)라는 한자어는 흔히 사용되지만 한한사전 중에서는 표제어로 수록한 것이 드물다. 한한대자전에서는 초판부터 지금까지 표제어로 수록하고 있다.
- 특이하게도 한한대자전이지만 엣센스 한자사전보다 수록된 한자 수가 더 적다. 엣센스 한자사전은 31,000자의 한자가 수록되어 있다.
- 비슷한 사전으로 교학 대한한사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