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6 22:34:28

할렘 하인츠 전투



파일:harlembattle.jpg

1. 개요2. 배경3. 양측의 전력
3.1. 영국군3.2. 대륙군
4. 전투 경과5. 결과

1. 개요

미국 독립 전쟁 시기인 1776년 9월 16일 뉴욕 맨헤튼 섬의 할렘 하인츠에서 영국군과 대륙군이 맞붙은 전투. 뉴욕을 잃고 철수하던 조지 워싱턴은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서 영국군의 추격을 뿌리치는 데 성공한다.

2. 배경

1776년 8월 27일 롱아일랜드 전투에서 패한 조지 워싱턴의 대륙군은 맨해튼 섬으로 후퇴했다. 윌리엄 하우 소장이 이끄는 영국군과 헤센군은 그들을 추격해 맨해튼 섬 근방까지 추격했다. 워싱턴은 어떻게든 맨해튼 섬을 사수하려 했지만, 9월 15일 영국군이 섬 서쪽에 위치한 킵스 만에 상륙했을 때 버지니아 민병대는 저항 한 번 못하고 도주했다. 워싱턴은 그들 앞에 서서 적과 맞서 싸우라고 명령했지만, 병사들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계속 도망쳤으며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막으려는 워싱턴에게 총검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하우는 킵스 만에 9천 명의 병력을 추가로 상륙시켰지만, 미군의 퇴로를 즉시 차단하지 않았다. 워싱턴은 적이 꾸물거리는 틈을 타 9월 15일 오후 4시까지 맨해튼 섬 서쪽을 따라 할렘 하인츠로 북상시켰고, 해질 무렵 할렘 하이츠 요새에 도착한 뒤 그곳에 방비를 갖추고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 영국군이 공세를 재개하면서 전투가 임박했다.

3. 양측의 전력

3.1. 영국군

  • 지휘관: 윌리엄 하우 소장
  • 병력: 1,600명 이하

3.2. 대륙군

  • 지휘관: 조지 워싱턴
  • 병력: 약 1,800명

4. 전투 경과

1776년 9월 16일, 워싱턴은 토마스 노울튼 대령 휘하 뉴 잉글랜드 레인저 부대를 파견해 영국군의 움직임을 정찰하게 했다. 노울튼은 북쪽 고원에서 홀로우 웨이로 알려진 낮은 지대로 내려갔고, 또다른 고원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영국군 경보병 척후대를 발견한 그의 부대는 즉각 발포했다. 얼마 후 더 많은 영국군이 몰려오자, 노울튼은 즉시 레인저 부대를 이끌고 후퇴했다. 영국군은 적이 후퇴하자 즉각 그들을 추격했다.

당시 할렘 하이츠 고지에 있던 대륙군 장교들은 아군이 적에게 쫓기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때 그들은 영국군이 여우를 사냥할 때 쓰는 각적(角笛)을 불어대는 걸 듣고 그들이 자신들을 여우로 취급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당시 사기가 극도로 저하된 병사들을 독려할 방안을 모색하던 워싱턴은 분노를 터트리는 장교들을 보고 묘안을 떠올렸다. 그는 영국군을 홀로우 웨이로 끌어내리기 위해 일부 병력을 전진시켜 적을 도발하도록 명령했고, 또다른 분견대에겐 우측면으로 진군했다가 홀로우 웨이로 쳐들어온 영국군의 후미를 차단하는 임무를 맡겼다.

150명의 민병대로 구성된 유인대는 홀로우 웨이로 내려와 영국군을 도발했고, 대륙군을 깔보던 영국군 경보병대는 즉시 고지에서 내려와 그들과 격돌했다. 이에 900명의 추가 민병대가 홀로우 웨이로 달려왔고, 양측은 서로를 향해 총격을 주고받았다. 노울튼 대령 휘하 200명의 레인저 부대는 우측면으로 나아가 숲을 헤쳐 나가며 영국군의 배후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길을 잘못 들어 영국군의 배후가 아닌 측면에 도착했다. 이후 노울튼은 영국군의 측면을 공격하던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지만, 부하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였다. 홀로우 웨이로 내려간 영국군 경보병대는 자신들의 측면이 위험하다는 걸 깨닫고 언덕으로 서둘러 후퇴했다.

영국군이 후퇴하자, 워싱턴은 너대니엘 그린 장군이 이끄는 병력을 파견해 적을 추격하게 했다. 영국 경보병대는 농지를 가로질러 메밀밭으로 퇴각했다. 대륙군은 그런 그들을 계속 추격하였고, 메밀밭에서 거의 1800명의 대륙군이 영국 경보병대의 정면과 측면을 매섭게 공격했다. 1시간 30분 동안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이어지다가 영국군 구원대가 접근하자, 워싱턴은 병사들에게 할렘 하인츠로 철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륙군은 큰 소리로 "huzzah(만세)!"를 외치고는 할렘 하인츠로 철수했다. 이리하여 할렘 하인츠 전투는 대륙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5. 결과

영국군은 할렘 하인츠 전투에서 14명이 전사하고 157명이 부상당했다. 반면 대륙군은 30명이 전사하고 100명이 부상당했으며, 토머스 노울튼 대령이 전사했다. 영국군은 이 전투 이후 추격을 중지했고, 대륙군은 전의를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 이후 워싱턴은 영국군에 대항하기로 결심하고 10월 28일 화이트 플래인스 전투를 감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