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1 16:50:21

함홍기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함홍기
咸鴻基 | Ham Hong-gi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대갑(大甲) / 은은(殷隱)
본관 강릉 함씨[1]
출생 1895년 3월 25일
강원도 양양도호부 동면 가평리
(現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 가평리 216번지)
사망 1919년 4월 4일[2]
강원도 양양군 양양경찰서
학력 양양사립현산학교 (졸업)
묘소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가평리 선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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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 생애

1895년 3월 25일 강원도 양양도호부 동면 가평리(現 양양군 손양면 가평리 216번지)에서 아버지 함병일(咸炳日, 1870. 2. 13 ~ 1932. 5. 19)과 어머니 강릉 김씨(1865. 12. 22 ~ 1920. 2. 17)[3]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양사립현산학교(現 양양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양양군 손양면 가평리 구장으로 재임하던 중 1919년 4월 4일 양양면 장날을 맞이해 양양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가담했다. 이날 낮부터 일부 지방 유지들이 체포자들의 석방을 교섭하고자 양양경찰서양양군청에 들어갔는데, 들어가기만 하면 족족 감금되어 그들조차도 나올 수가 없었다. 이에 시위군중들이 경찰서와 군청에 몰려들었고, 이중 몇 사람이 사타쿠 경찰서장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때 함홍기 또한 경찰서장실에서 항의하다가 뜻대로 되자 않자, 화로를 들고 경찰서장에게 덤벼들었다. 이때 옆에 있던 사법주임 아키야마와 오오이시가 등이 일본도를 빼어 그의 두 팔을 자르고 배, 허리를 찔렀다. 팔을 잃고 피를 흘리며 넘어졌음에도 계속 굴하지 않고 경찰서장을 꾸짖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순국했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고, 이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동원군파 50세 기(基) 항렬.[2] 음력 3월 4일.[3] 김성경(金聖卿)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