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26 14:39:44

행주치마

파일:external/690fa0e7d7901c946a6471e740a26b53eef1f58dea677881bc7038d9a33dc03c.jpg 파일:external/eduhistory.culturecontent.com/11_4.gif
고양시가 주최한 고양 행주 문화제 모습 잘못된 예. 앞치마와는 다르다.

앞치마와는 다르게 하반신만 덮는 덮치마의 일종으로, 부엌에서 사용한다.

행주치마의 어원에 대해서는 임진왜란행주 대첩 당시 관군들이 적들에게 던질 돌멩이를 아녀자들이 덮치마를 걸치고 거기에 담아 날라줘서 그 치마를 행주치마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낭설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책에도 행주치마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최초의 기록은 1517년 최세진이 쓴 '사성통해'로, 행주 대첩이 있기 76년 전 이야기다.

행주치마의 어원은 'ᄒᆡᆼᄌᆞ쵸마'이다. 쵸마는 당연히 치마를 뜻하고, ᄒᆡᆼᄌᆞ(행자)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 1. 절에서 식사공양 등을 하는 행자승들이 걸치던 덮치마 라는 것이 하나이고,
  • 2. 닦는 헝겊이라는 의미의 '말포抹布'를 의미한다는 것이 또 다른 설.[1]

이렇게 따지어 보아 반대로 행주치마에서 행주산성이 나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도 낭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행주(幸州)라는 지명이 고려 초기부터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실 동래성 전투에서 비슷하게 나온다. 이는 엄연한 정사 내용이다. 정확히는 여인 2명이 기왓장를 던져서 왜군과 싸우는 내용이다. 현재 동래구 복산동에 있는 송공단 의녀비가 바로 두 여인을 기리는 비이다.


[1] 훈몽자회는 이 뜻으로 'ᄒᆡᆼᄌᆞ'를 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