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ge Eliécer Gaitán | ||
출생 | 1903년 1월 23일 콜롬비아 보고타 | |
사망 | 1948년 4월 9일 (향년 45세) 콜롬비아 보고타 | |
국적 | 콜롬비아 | |
직업 |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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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콜롬비아의 정치인. 민중의 카우디요, 자유주의 카우디요라는 별명이 있다.2. 생애
1924년 콜롬비아 국립대학 법학과 졸업 후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28년 귀국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는데 같은 해 말 콜롬비아군에 노동운동가들이 학살된 바나나 학살(Masacre de las bananeras)을 계기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여당인 콜롬비아 자유당에 입당한 뒤 보고타 시장, 교육부 장관, 노동사회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당시 토지개혁과 주택보급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해서 빈민층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자유당 내에서도 비주류에 속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견제를 받았다.결국 1946년 대선에 독자출마했다가 패배하였으나 보수당 정부가 삽질을 벌이면서 그 반작용으로 가이탄의 지지도가 폭발하여 1위 대권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1948년 미주기구 회의기간 중에 암살을 당했고, 이로 인해 민심이 폭발하면서 보고타에서 대규모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3. 사후 여파
이 사건으로 콜롬비아는 자유당 지지자들과 보수당 지지자들간의 내전 상태에 빠졌다. 자세한 내막은 사건 직후 분노한 군중들에게 암살범이 끔살당했기 때문에[1] 알 수는 없다. 콜롬비아 공산당, 소련, 보수당 정부, 자유당 분파, 미국 CIA 등등이 배후로 고려된다.[1] 목격자에 따르면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