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쿨루스 ホムンクルス | |
장르 | 미스터리, SF |
작가 | 야마모토 히데오 |
출판사 | 쇼가쿠칸 대원씨아이 |
연재처 | 빅 코믹 스피리츠 |
레이블 | 빅 코믹스 |
연재 기간 | 2003년 16호 ~ 2011년 12호 |
단행본 권수 | 15권 (2011. 04. 28. 完) 15권 (2011. 08. 15. 完) |
[clearfix]
1. 개요
보인다! 당신이 감추고 있는 진짜 모습이!
일본의 만화. 고로시야 이치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야마모토 히데오의 차기작이다.2. 줄거리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진실, 호문쿨러스 그 정체가 드러난다.
자동차생활을 하고 있는 홈리스 나코시, 홀연히 나타난 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진게 없다. 모든일에 거짓말을 하는 그는 자기자신 조차도 속이며 산다.
어느날 밤, 그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코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유급휴가를 얻은 나코시 스스무는 노숙자들이 모여사는 공원과 화려한 빌딩 사이에서 자아찾기를 하던 중 의학도 이토 마나부의 권유로 트리퍼네이션이라는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을 받아 제6감에 눈을 뜨게 된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내면의 뒤틀림인 '호문쿨루스'를 보는 능력이다. 동시에 이 '호문클루스'는 나코시 자신과의 문제와도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자동차생활을 하고 있는 홈리스 나코시, 홀연히 나타난 그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진게 없다. 모든일에 거짓말을 하는 그는 자기자신 조차도 속이며 산다.
어느날 밤, 그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나코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3. 발매 현황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됐으며 단행본은 빅 코믹스 레이블로 발매되었다. 전 15권 완결.한국어판은 대원씨아이를 통해 정발되어 완결권인 15권까지 모두 발매되었다. 만화 후반부(8~15권)는 오경화가 번역했다. 이용 등급은 초반부인 1~7권은 15세 이용가로 별 문제가 없었으나, 후반부인 8~15권은 19세 딱지를 붙이게 되었다.
4. 등장인물
4.1. 주인공
4.2. 호문쿨루스
4.3. 기타 인물
- 켄 씨
홈리스 공원에 살고 있는 노숙자. 나코시 스스무와는 제법 친하게 지내는 노인으로, 나코시에게는 가끔 충고도 해주고 목욕탕을 한턱 쏘기도 하는 좋은 아저씨다. 다들 어떻게 돈을 버냐는 나코시의 질문에 70만엔에 호적이나 장기를 파는 방법도 있다고 하며 그 돈을 쓸곳이 없어 텐트 밑에 숨기거나 박스 아래에 숨긴다며 자신의 텐트 방향을 보는걸 보아 이 사람도 그렇게 자신을 판 케이스인듯하다. 자신의 차가 견인된 나코시가 그의 돈을 노리고 텐트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 누마 씨
홈리스 공원에 살고 있는 노숙자.
- 켄
나코시의 어렸을 적 친구. 같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다가 나코시가 장난삼아 살짝 켄을 밀었는데, 그 위로 트럭이 지나가 버려서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장애인이 되었다. 위에 있는 켄 씨 랑은 상관없다.
- 카즈오
손가락 담그는 두목의 어렸을 적 친구. 낫으로 풀을 베는 놀이를 하다가 두목에 의해 새끼 손가락이 잘려버렸다.
- 아오노
이토의 대학 선배. 신경정신과를 운영하고 있다. 나코시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환자들을 매직 미러로 보게했지만 아무도 호문쿨루스가 아니었고, 사실 이 의사양반이 개의 호문쿨루스를 하고 있었다(...).
5. 평가
호문쿨루스를 보는 능력뿐 아니라 대상자의 내면의 뒤틀림을 치료해주기 위해 펼쳐지는 대결구도는 이 만화의 백미로 꼽힌다. 인간의 내면심리를 다루는 퀄리티가 워낙 좋아 심리학 계통 교수님들이 수강생들에게 추천도 해주는 모양.극한의 수위를 달렸던 전작 고로시야 이치에 비해 여러모로 독자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서 진입 장벽이 낮아진 편이다. 그래도 그다운 변태적인(?) 상상력은 여전하니 주의. 이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닌 작가의 특성인 듯. 그냥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5.1. 난해한 내용의 이해
초기에는 단순 SF물, 괴상하고 독특한 변태 만화로 판단하기 쉽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깊어져서 어려워진다. 이는 작가의 다른 저작에서도 보이는 인간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고,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관점의 탐구가 함께하기 때문이다.즉, 정신과 특히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본 소양이 어느정도 있다면 작품의 재미는 그야말로 수직상승한다.
이 작품의 주된 테마는 죄책감, 결핍, 자아 찾기(정체성) 인데, 주인공인 나코시는 사람들의 호문쿨루스를 보고 이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췄다. 물론 날때부터 그냥 갖춘 건 아니고, 트랜스퍼내이션 이라 부르는 두개골에 구멍 뚫기 시술을 통해 이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의사들이 진행하는 상담 치료는 환자의 얘기를 듣고, 그의 강박이나 불안의 원인을 찾아 치료를 진행한다. 대개 정신과에서 말하는 치료라는 건 고통의 삭제가 아니라 현실에서 정상적인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득한 아픔의 고통에서 보통사람이 견뎌낼 만한 수준의 고통으로 바꿔주는 정도가 바로 정신과 치료다.
그리고 호문쿨루스에서는 나코시가 이 역할을 대신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 사람의 호문쿨루스가 보이기 때문에, 사람의 불안과 결핍, 욕망이 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기서 독자가 어려움을 느끼는 포인트는 '불안, 결핍, 욕망' 같은 놈들이 단어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형상화돼서 나온다는 것이다. 즉 비유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건 대충 알지만, 정확히 알려면 그 사람의 과거를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호문쿨루스를 본다'는 아이디어부터가 기초적인 생리-신경심리학에서 배우게 되는 뇌의 신체지도 '호문쿨루스'에서부터 출발한 아이디어이다. 사람의 신체감각은 의식이 생기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발달하여 의식화 되지 않는 단계에서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무의식의 많은 영역이 신체감각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자기상self-image'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뿐만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신체상을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내적인 이미지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그것을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호문쿨루스'로 이야기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심리검사에서 투사적 검사의 한 종류인 집-나무-인물화[1] 검사를 보면, 사람 그림 검사를 역동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화에서 나코시가 트리퍼네이션 이후 능력을 가진 후 보게되는 각자의 '호문쿨루스'는 마치 통해 보이는 인물화 검사를 통해 나타나는 자기상을 나타나는 것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한 느낌이다.[2]
나코시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각자의 성장, 발달상, 과거와 얽힌 성격적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나코시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이들의 상처, 트라우마를 해소시키게 되는데, 이것은 일종의 '상담 심리치료'와 같은 것이다. 만화에서는 트라우마의 해소가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시각적으로 이뤄지는 부분이 많고 언어적으로 이뤄지는 부분이 적지만, 이러한 과정은 누가 봐도 '심리치료'이다.
예를 들어, 손가락을 담그는 야쿠자는 로봇과 같은 호문쿨루스를 지녔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이 자신의 어린 시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도망치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되어 만들어 진 껍데기 임이 밝혀진다. 이후 나코시가 그 과거사의 핵심을 건듦으로써 그것이 무너지며 해소가 되는데, 이것은 호문쿨루스가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성격 역동이 어린 시절부터 자아가 이드와 초자아 사이를 조율하며 쌓아올린 '방어기제'로 구성된 것이라는 정신분석적 가정과 대동소이하다.
나코시가 보는 호문쿨루스가 딱 보기엔 이상해보이지만, 보이는 호문쿨루스 자체들도 '나코시' 본인의 호문쿨루스가 가진 왜곡된 눈을 통해 보인다는 것도 만화의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아무리 '상담자'나 '치료자'라고 하더라도 중립적 존재가 아니며 각자의 성격이나 문제, 방어기제를 지닐 수 밖에 없는 개인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완벽한 중립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공감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
나코시가 다른 이들과 접촉하면서 다른 이의 문제와 뒤섞이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게 되는데, 다른 인물들은 나코시가 자신의 문제와 관련된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코시에게 이를 투사하여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정신분석적 상담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전이'[3] 도구가 되어 상담을 하는 이론적 바탕과 일맥상통한다.
더불어 나코시도 자신의 문제 때문에 다른 이의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좌절하며 자신의 문제가 자각되어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것은 내담자에게 치료자에게 갖게되는 전이, 즉 더불어 정신분석적 상담에서 이야기하는 속성인 '역전이'[4]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결말이 매우 슬프면서도 기괴한데, 자신의 눈에 비치는 모든 인간의 군상들이 자신 그 자체가 되어 온 지구가 나코시천국으로 바뀌어버리고 자아에 대한 집착, 그로 인한 자아의 비대, 초과 나르시시즘적인 성향까지 띄게 된다.
나코시는 누군가가 진실된 자신을 들여다 봐 주길 갈망하게 되지만, 허나 나코시가 선택한 자신의 정체성(호문쿨루스)은 성형 전의 못생긴 자신이 아닌 성형 후의 나코시 스스무였기에 진실된 자신을 봐 달라는 욕망은 절대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야쿠자 보스와 대면하기 전 나나세 나나코와의 대화에서 나코시는 "사람에게 거짓말할 필요는 없어. 단지 약간, 그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면 되는거야."라는 말로 설득을 하는데 이때 악마의 모습으로 보인다. 상대의 마음을 보는 능력이란 것도 결국 철저히 자신을 위장하는 기만적인 행위임을 은유하고 있다.
작가는 결국 한 인간의 자아에 대한 탐구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우리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만 (마지막에 나코시가 경찰에 잡히는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자아에 대한 집착, 초과시에는 자만과 광기에 가까워지며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나코시가 카운슬링 해준 다른 등장인물들 대부분은 마음의 짐을 덜고 새로운 길을 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새로운 길이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모른다는 사실 또한 노숙자 아저씨와 나나코를 통해 표현됐다.
상당히 자극적인 묘사를 보여주는 작품이긴 하지만 본연에 깔고 있는 윤리의식은 상당히 가족중심적인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호문쿨루스를 형성하는 기반은 어린시절의 추억, 특히 가족과의 트러블 속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과 친지와의 관계가 무너져 내린 고립된 인간들은 끊임없이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갈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면들을 통해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채워나가려고 하지만 그러한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는다. 나코시 덕분에 아버지와 관계가 호전이 된 이토 마나부의 경우 후반부에 상당히 안정된 분위기를 보여주는데 결국 그러한 공허함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의 호문쿨루스를 만든 부모, 가족과의 관계 회복이라는 실마리를 남긴다.
주인공 나코시 스스무는 직장과 돈,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몰라 시종일관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신의 호문쿨루스를 만들어준 아버지에게 돌아가는 선택지는 끝내 선택하지 않는다. 그는 호문쿨루스를 지닌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형성했던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조언을 하고 그들의 호문쿨루스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정작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은 실천하지 못 한다. 자신의 얼굴에 대한 깊은 컴플렉스는 나나코와의 아이 마저 버리는 선택까지 하게 되는데, 자신의 추한 외모를 지닌 가족을 거부함으로 끝내 진실된 자아를 부정하는 나코시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나코시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자신의 이전 못생긴 얼굴을 가진 아버지가 아닌, 성형한 자신의 호문쿨루스가 가득한 거짓되고 기만적인 세상이었다. 이태리 씨와 나코시가 마지막에 가족에게 돌아가는 선택을 했더라면 조금은 안정적인 느낌의 휴먼 드라마로써 결말이 맺어졌을 것이다.
6. 미디어 믹스
6.1. 영화
자세한 내용은 호문쿨루스(영화) 문서 참고하십시오.[1] House-Tree-Person, 흔히 HTP 검사라고 한다.[2] 흔히 인물화 검사에서 나타나는 상이 호물쿨루스처럼 상징이 노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간혹 개인의 성격을 상징하는 부분이 노골적인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는 있다[3] 전이(transference)라 함은 내담자가 치료자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중요한 타인(대부분은 부모) 표상과 동일시 하면서 그들에 대한 감정을 치료자에게 드러내게 되는 현상을 이야기한다.[4] 치료자 역시 사람이기에 과거사가 있고 각자 중요한 대상 표상을 가지고 있다. 치료자가 내담자를 과거의 타인처럼 느끼고 행동하게 되는 전이, 이것이 역전이(counter-transferenc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