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호앙캄 주방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베트남 인민군 군인이었던 호앙캄(Hoàng Cầm)이 만든 야전 주방을 뜻한다. 야전에서 조리를 할 때 발생하는 연기가 적군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하는 독특한 방식의 아궁이와 굴뚝을 만들어서 베트남 인민군의 전력을 상승시켰다. 호앙캄 주방의 베트남어 명칭은 'Bếp Hoàng Cầm'이며, 영어 명칭은 'Hoang Cam Kitchen'이다.2. 상세
베트남과 프랑스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1954년)을 치르던 때, 베트남 인민군은 야전에서 조리를 하기 위해 불을 지폈는데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라 프랑스군에게 위치가 발각되는 경우가 많았고 항공기 폭격을 당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의 피해가 많이 발생했다. 베트남 인민군은 프랑스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서, 비교적 연기가 잘 탐지되지 않는 밤에 간단히 조리를 하거나[1], 공습 범위 밖의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까지 걸어가 조리된 식량을 보급 받아와야만 했다.1951~1952년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베트남 인민군 야전병원 부대에서 조리와 간호 업무를 하고 있던 호앙캄(Hoàng Cầm)은 전시에도 야전에서 안전하게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2] 호앙캄은 어릴 적 쥐구멍에 불을 지폈지만 연기가 많이 나지 않았었던 경험을 착안하여, 땅을 파서 만들 수 있는 아궁이와 굴뚝을 고안하였고 여러 실험을 거쳐 연기가 하늘로 피어오르지 않는 야전 주방 시스템을 발명하였다.
- 호앙캄 주방을 만드는 방법과 원리
2) 계단 모양의 조리대를 만들고 냄비 크기에 맞춰 흙에 구멍을 뚫어 아궁이를 만든다.
3) 아궁이 내부에서 발생하는 연기가 배출될 수 있도록 비스듬한 경사[3]를 가진 통로를 아궁이 앞 쪽으로 뚫어준다.
4) 경사진 통로 끝에 연기가 대류할 수 있는 텅 빈 공간을 땅을 파내어 만들어 준다.
5) 이 공간에서 연기가 지면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대류 공간에서부터 약 3미터 길이의 고랑을 파준다.
6) 지면에 파여진 고랑(홈) 위에 나뭇가지와 싱싱한 식물의 잎을 덮어 주고, 촉촉한 흙을 사이사이 헐겁게 메워 준다.[4]
7) 아궁이에서 조리할 때 발생하는 연기는 ‘경사진 통로→대류 공간→지면 고랑’을 따라 이동하며 이 일련의 통로는 굴뚝 역할을 한다.
8) 연기는 고랑 위에 덮여진 잎과 흙 사이를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물기에 용해가 되는데, 빠져나온 연기는 무거워져 지면에 붙어서 흩날리다가 넓게 퍼지면서 사라지게 된다.
호앙캄 주방은 발명 이후 1952년부터 베트남 인민군에게 널리 보급되었고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디엔비엔푸 전투가 발생한 전장에서도 사용되어 프랑스군의 폭격 없이 낮에도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다. 베트남 인민군에게 따뜻한 밥과 국을 제공할 수 있었기에 전시중인 병력의 건강을 챙길 수 있었고, 사기도 높일 수 있었다고 한다.[5] 병력의 건강과 사기는 곧 전투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였기에, 호앙캄 주방은 베트남 인민군 내에서 큰 찬사를 받으며 유용하게 쓰였다. 호앙캄 주방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도 베트남 인민군에서 널리 쓰인 야전 주방이었으며, 21세기에 들어서도 베트남 인민군이 훈련받는 과정 중 하나가 될 만큼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호앙캄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에 호찌민 주석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고, 시계를 선물 받았다. 호앙캄은 1959년에 소위로 진급하였으며, 1996년 사후에는 대위로 추서되었다.
3. 관련 사진
- 호앙캄 주방을 발명한 호앙캄(Hoàng Cầm) 생전 사진
- 호앙캄 주방의 구조
- 호앙캄 주방의 원리
- 호앙캄 주방을 만들고 있는 베트남 인민군의 모습
- 호앙캄 주방에서 조리하고 있는 베트남 인민군의 모습
- 호앙캄 주방에서 나오는 연기를 확인하는 베트남 인민군의 모습
[1] 불빛은 새어나가지 않도록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으나, 연기는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2] 호앙캄은 군대 입대 이전 요리사로 일을 했었다.[3] 30도 각도가 가장 좋다고 한다.[4] 잎과 흙에 물기가 있어야 하는데, 만약 물기가 없으면 물을 뿌려준다.[5] 호앙캄 주방의 발명 이전에는 밤에만 조리를 할 수 있었기에 제 때 식사를 하기 힘들었으며, 식사를 하더라도 차가운 주먹밥과 찬물을 주로 먹었다고 전해진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낮에 조리를 하다가 프랑스군 정찰기가 다가오자 급하게 불을 끄게 되었고 설익은 쌀을 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