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3 15:15:22

홍시욱

<colbgcolor=#000><colcolor=#fff> 홍시욱
洪時旭
출생 1929년 5월 27일
평안북도 신의주시
사망 1950년 9월 14일
옹진군 영흥도
복무 대한민국 해군
최종계급 해군 하사
복무 기간 1948~1950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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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시욱(洪時旭, 1929년 5월 27일 ~ 1950년 9월 14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초기생애 및 해군 입대
홍시욱은 1929년 5월 27일 출생하였다.
1948년 6월 1일 해군 신병 10기로 입대하여 군 경력을 시작하였다.
그는 영흥도 첩보전의 첩보대원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6.25 전쟁 참전
영흥도 첩보전(X-RAY 작전) 및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4일 ~ 15일)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후퇴하였으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이 전세를 뒤집을 기회로 계획되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해군첩보부대는 영흥도를 거점으로 북한군의 해안포대 위치, 병력 배치, 방어 태세 등 핵심 정보를 수집하였다.
이를 통해 인천 해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작전의 성공 가능성을 극대화하였다.

북한군의 기습 및 최후의 결단
인천상륙작전 D-DAY가 임박하자, 영흥도 첩보기지는 철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군 1개 대대가 미군 상륙 소식을 듣고 기습하였으며, 임병래 중위를 비롯한 해군 첩보대원 9명과 해군 의용대원 30여 명이 방어 전투를 전개하였다.
전투 중 적의 포위망이 좁혀지는 위기에 처하자, 임병래 중위와 홍시욱 하사는 적의 공격을 차단하며 대원들의 탈출을 지원하였다.
덕분에 다른 첩보대원들은 십리포 해안에 정박해 있던 보트를 타고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끝내 탈출에 실패하였고,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이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자결하였다.
이들의 희생 덕분에 인천상륙작전은 보안이 유지된 채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
이때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불과 24시간 전이었다.

미국 및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홍시욱 하사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3년 7월 6일 은성훈장(Silver Star), 1954년 1월 4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4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9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은성훈장(Silver Star, 1953년 7월 6일, 미국 정부)
을지무공훈장(1954년 1월 4일, 대한민국 정부)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4년 9월)

4. 참고 자료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