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22:14:36

화성(천관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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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우탐화
화성
花城
파일:img_hua_cheng.png
[스포일러]
삼랑 ▼
파일:00802LFRgy1g96xiik6bbj30u01hc4qp.jpg
<colbgcolor=#a10606><colcolor=#FFFFFF> 이름 화성(花城)
호칭 혈우탐화(血雨探花)[1]
홍의귀왕(红衣鬼王)
절경귀왕(绝境鬼王)
화성주(花城主)[2]
[스포일러]
삼랑(三郎)
홍홍아(红红儿)
소년병사(少年兵士)
무명(无名)
190cm[3]
생일 양력 6월 10일[4]
소속 귀계
성우 파일:중국 국기.svg 마정양[애니메이션]
파일:중국 국기.svg 진장태강[오디오드라마]
파일:일본 국기.svg 후쿠야마 쥰[애니메이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정주원[애니메이션]
파일:미국 국기.svg 제임스 칙[애니메이션]
배우 파일:중국 국기.svg 장릉혁[길성고조]

1. 개요2. 작중 행적
2.1. 드라마 길성고조
3. 여담


파일:hc_anime.gif
[스포일러]
파일:sl_anime.gif
애니메이션

[clearfix]

1. 개요

묵향동후의 소설 천관사복의 주인공(攻).

사대해(四大害) 중 하나인 '혈우탐화(血雨探花)'라는 호를 가진 귀왕. 동로산이라는 곳에서 다른 요괴들을 모두 죽이고 나오는 시련을 극복한 '절경귀왕(绝境鬼王)'에 해당하는 자 중 하나.[11]

삼랑의 모습은 소년으로 둔갑한 상태로, 본모습(본존)은 검은 생머리를 길게 풀어 내리고 옆머리에 붉은 산호주[12]를 달아 장식했으며 오른쪽 눈을 안대로 가린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이다. 붉은 옷을 입는 것은 동일하나 옷 디자인이 삼랑일 때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비가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련에게는 다정하고 친절하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이고 사련 한정으로 무조건적으로 헌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러 분야에 대해 박학다식하며 요리나 청소 같은 집안일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아 조각[13]이나 그림도 잘 그린다. 세간에서는 이미 잊혀진 선락태자를 알고 있어서 보제관에 신상이 없는 것을 지적하고는 직접 선락태자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14]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상천정의 신관 서른다섯 명[15]에게 대결을 신청해서 자신이 지면 자신의 유골을 넘기고[16][17] 신관들이 지면 천계에서 나가 평범한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일종의 캐삭빵을 걸어서 승부에 응하지 않은 을 뺀 서른세 명 모두에게 이겼다. 거기다 신관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패배한 신관들의 사당을 싸그리 태워버리기까지 한 일로 악명을 떨쳐서 상천정 신관들이 아주 꺼리는 상대이다.

2. 작중 행적


여군산 사건 때 신부 가마에 홀로 남겨진 사련을 인도했고, 도중에 선희의 결계를 깨부수고 피비를 우산으로 막아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사련이 명광전에 도착한 뒤 그를 붙잡으려 하자 홀연히 사라진다.

여군산 사건 이후 사련이 고물을 주우러 다니던 길에 얻어 탄 소달구지에서 소년 모습으로 나타나 가출한 몸이라고 둘러대고[18] 자신을 삼랑(三郞)[19]이라 불러달라고 소개한 후 사련을 형이라고 부르게 된다. 갈 곳이 없다는 빌미로 사련을 따라가서 보제관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반월국 사건 때 사련이 그의 정체를 맞추자 긍정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 사련에게 예쁜 반지[20]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가, 사청현과 함께 귀시장에 수색을 나간 사련과 마주쳐 도움을 준다. 귀시장의 주인인 성주이기도 해서 귀시장에서 사련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로도 사련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헌신하면서 조금씩 연심흑심을 드러내다가[21] 결국 사련도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연인 사이가 된다.[22]

군오에 의해 다른 신관들과 자신의 신전에 감금당한 사련을 구출하고 동로산에서 사련과 함께 군오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사련에게 내내 법력을 빌려준 데다, 주가를 풀기 위해 더 많은 법력을 줬기에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고, “돌아올게요. 전하, 절 믿으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수천 마리의 은나비로 부서져 사라진다. 이후 1년 뒤, 화성은 사련과 재회하며 본편은 끝이 난다.

사련 시점의 과거편에서도 종종 나오는데,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면 가장 먼저 정월 제천유 행사 가운데 성루에서 추락해 사련이 받아내 살려준 꼬마 홍홍아(红红儿)→3년 후 선락태자의 사당에서 삶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사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를 위해 살아가렴."이라는 답을 들은 소년→사련이 이끄는 군대에 투신한 소년 병사(少年兵士)→선락국이 망한 후 사련이 어느 불한당에서 구해준 혼령 도깨비불 중 "전하를 위해 전사한 것은 제 지고무상한 영광입니다."라고 하며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 소년병 혼백→사련이 숲에서 인면역을 두려워한 백성들의 칼에 몇 번이고 찔릴 때[23] 절규하며 악귀가 된 도깨비불[24]→영안국에 인면역에 퍼져 사련이 괴로워할 위기에서 스스로의 영혼을 희생해 인면역을 막은[25] 망혼이자 사련의 마지막 신도 무명(无名).

일련의 내용은 대부분 사련 시점이라 화성의 속내는 직접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화성이 언제부터, 어째서 사련을 추종하고 연모하게 되었는지나 얼마나 열렬히, 오랫동안 그를 생각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묘사된다.

원작에서는 과거편 회상이 시작된 뒤에야 알 수 있으나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1화 후반부에서 성루에서 떨어진 꼬마=어느 소년 병사=화성임을 대놓고 암시하는 연출을 넣었다.

사련은 자신의 마지막 신도가 인면역을 막은 후 영혼째 부스러져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국사가 하는 어느 악귀 이야기[26]에 따르면 어느 젊은 귀신이 혼백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에서 의식도 반쯤 몽롱한 채로 계속 '떠나지 않을 겁니다, 떠나지 않을 겁니다' 중얼거리며 떠돌았다고 한다. [27] 그러다 동로산이 열려 악귀와 인간들이 요괴들에게 먹힐 위기에 빠지자, 갑자기 미쳐 날뛰더니 스스로 제 오른눈을 파내서 무기(곡도 액명)를 제련하여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한다.[28] 이후 동로산에서 끝까지 살아 남아 빠져나온 후 절경귀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련은 작품 중반까지도 과거에 화성과 만난 일이 있는 줄 몰랐다가 그가 성루에서 떨어진 꼬마였던 것은 동로산에 화성이 그려둔 벽화를 보고 알게 되었고, 인면역을 막고 부스러진 영혼[29]이었다는 것은 그보다 더 지난 후 화성과 대화하다가 알게 되었다.

2.1. 드라마 길성고조

천관사복의 드라마판인 길성고조에서는 장릉혁이 화성 역을 맡았다.

3. 여담

  • 화성이 사련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귀시장 귀신들은 '성주는 저희 아버지 같은 존재'→'그럼 성주의 형은 큰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쳐서 사련을 큰아버지라고 부르려고 했다. 사련이 할 말을 잃은 것을 본 화성이 닥치라고 하자 이후부터는 "큰아버……대인!"[30]이런 식으로 부르게 되었다.
  • 어렸을 적 오른눈이 붉어 사람들이 무서워했고, 얻어 맞느라 상처가 많아 붕대를 감고 있었다. 자살을 결심하고 제천유 의식을 망치기로 한 그는 뛰어내리기 위해 성루에 올랐는데 첫눈에 사련을 발견해 멍때리다가 자살하는 것을 잊었고, 사련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다가가다가 실수로 떨어졌다고 한다.
  • 사련과 처음 재회했을 때 화성은 사련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사련을 깊이 은애하고 존경했기에 혹여나 닿았다가 실수를 범할까 봐서다. 이후로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이 들면 스스로 자신의 신을 건드리지 않는 징벌을 내렸다고 한다.
  • 자신의 외모를 못생겼다고 여긴다. 작중 초반 사련에게 만약 자신의 원래 모습이 못생겼다면 어떡할 것이냐고 묻는데, 작가에 따르면 어렸을 적부터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 그 관념이 내면화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자신이 괜찮게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만, 어쨌거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열등감이 있다고 한다.
  • 작품 내내 사련을 호위하면서 혹여나 사련이 다치면 그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 보이는데, 이는 사련의 시선으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자신의 어려진 모습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과거 사련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나약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일을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인 것[31]으로 보인다.
    특히 사련이 칼에 찔리는 것을 몹시 경계하는데, 사련이 '그 많은 무기에 일일이 찔리면 다진 고기가 되어버린다'며 농담을 할 때도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하나도 재미없다고 한다. 백무상과의 전투에서는 사련 대신 칼에 찔리기도 한다.[32] 이 또한 과거 사련이 인면역을 두려워한 백성들의 수많은 칼에 찔렸던 일로 인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
  • 화성과 사련이 처음 만난 날[33]과 화성이 은나비가 되어 사라졌다 재회한 날이 정월 대보름[34]으로 같다.

[1] 혈우탐화는 '피의 비 아래에서 꽃을 찾다' 라는 뜻을 가졌는데, 화성이 한 귀신의 소굴을 소탕하고 돌아가는 길에 피를 맞고 있는 흰 꽃을 발견하고는 피비를 우산으로 막아주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2] 귀시장의 귀신들에게는 이 호칭 또는 성주라고 불린다.[3] 첫 등장 때 위장한 소년(삼랑)은 185cm이다.[4] 음력 5월 6일[애니메이션] [오디오드라마]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길성고조] [11] 다른 하나는 흑수침주.[12] 선락국 시절 어린 꼬마였던 화성이 태자 사련에게서 훔친 것.[13] 조각 실력은 훗날 만신굴에서 드러난다.[14] 다만 손재주가 좋은 것 치고는, 어마어마한 악필이다. 사련도 화성의 글씨를 거의 해독하지 못할 정도.[15] 화성이 이 서른다섯 명의 신관들에게 대결을 신청한 이유는 과거 사련이 첫 번째 폄적 이후 힘들어 하던 시기에, 수련을 위해 영기 가득한 산을 찾았을 때 사련을 마주치고 모욕을 준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영산을 차지하겠다고 먼저 온 사련을 쫓아낸 신관들이기 때문이었다. 풍신과 모정의 경우 사련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에 떠났기 때문이라고 추정.[16] 귀신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이며, 자신의 유골를 가진 이에게 복종해야 하고 유골이 파괴되면 소멸된다.[17] 그 귀중한 유골을 사련에게 목걸이로 만들어 넘긴다. 여담으로 동로산 에피소드 때 사련이 화성에게 유골은 안전한 곳에 숨겼냐고 물었는데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야." "유골이 숨긴 그 곳이 사라진다면 나도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어." 라고 답하기도 했다.[18] 거짓말은 아니다. 죽기 전 인간 시절에 집을 뛰쳐나온 이래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19] 셋째 총각이라는 뜻으로 사람 이름은 아닌 느낌인지라 다른 이들도 삼랑이라는 호칭을 듣고 본명이 뭐냐고 묻기도 한다.[20] 이 반지의 정체는 화성의 유골이다.[21] 중간에 태아령을 제압하기 위해서라지만 사련에게 진하게 키스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남색(男色)은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사련이 잠시 고장 나는 해프닝도 있었고, 법력을 빌려준다는 빌미로 입을 맞추어서 이후로도 그 방법으로만 법력을 빌려주곤 했다. 덧붙여 법력 빌려주는 방법은 그 외에도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목격한 다른 신관들은 기겁한다.[22] 내내 썸만 타다가 177장 만신굴의 만신, 얼굴을 드러내다 三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다.[23] 백무상에 의해 살인을 하면 인면역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진 상황이었다. 사련은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수백 번을 심장에 칼이 꽂히는 고통을 겪었다.[24] 작중에서 사련이 우스갯소리로 그 많은 무기에 일일이 찔렸다간~ 운운했을 때 화성이 전혀 재미없다고 정색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사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화성에게는 평범한 혼령에서 악귀가 되어버릴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던 것.[25] 이로 인한 죄책감으로 사련은 군오에게 벌로 주가를 내려달라 청한다.[26] 이름은 안 나왔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대놓고 화성이다.[27] 염원을 이루지 못해 미련이 남은 것이다.[28] 이때 사실 등선을 하였으나 본인이 거부하고 뛰어내렸다. 자신의 유일한 신인 사련을 두 번이나 폄적시킨 상천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29] 당시 백무상이 사련의 마지막 신도가 영혼마저 부서져 완전히 사라졌다고 알려주며 조롱했기 때문에 그 영혼이 남아서 절경귀왕이 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30] 큰아버…… 사도장님![31] "은애하는 사람이 짓밟히고 능욕당하는 모습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그게 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32] "또 내 앞에서 저 검에 찔리는 꼴을 어떻게 봐?"[33] 제천유 행사에서 사련이 성루에서 떨어지던 꼬마 화성을 받아낸 날[34] 음력 1월 15일로, 중국에서는 원소절(元宵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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