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환제의 후궁으로, 생년은 미상이며 이름은 성(聖)이다. 사적은 후한서 황후기에만 보인다.
후궁에 들어가 처음에는 채녀(采女)가 되었다. 환제는 궁인이 수천 명에 달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희 8(165)년에 환제의 두 번째 황후였던 효환황후 등씨가 폐위된 뒤에, 전성을 새로운 황후로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태위였던 진번(陳蕃)이 그녀의 출신이 비천하기 때문에 황후로 세우기에 부적합하다고 간언하였고, 결국 대장군 두무의 딸인 환사황후 두씨가 책봉되었다.
하지만 환제는 두황후를 총애하지 않았고, 전성을 위시하여 다른 비빈들을 총애하였다. 두황후는 이를 몹시 비통해하며 원한을 품었다.
영강 원년 겨울, 병이 심해진 환제가 죽기 전에 전성 등 9명의 후궁을 귀인으로 진봉하였다. 이 해 겨울에 환제가 사망하자 황태후가 된 두황후는 환제의 재궁(梓宮 = 관) 앞에서 전성을 죽이고, 다른 귀인들도 모두 죽이고자 하였으나 중상시였던 관패(管霸)와 소강(蘇康)에 의해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