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da9c5> K.u.K Kriegsschule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 Kaiserlich und Königliche Kriegsschule | |
<colcolor=#191919> 위치 | |
소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빈 (Lehargasse 4 im 6. Wiener Gemeindebezirk, Austria) |
분류 | 전쟁대학 |
설립 | 1852년 2월 14일([age(1852-02-14)]주년) |
해산 | 1918년 11월 11일([age(1918-11-11)]주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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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은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일반참모 장교의 훈련 및 추가 교육을 위한 최고의 군사 교육 기관이었다.2. 역사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하인리히 헤르만 요제프 프라이헤르 폰 헤스 원수로부터 철저하게 훈련된 일반참모와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는데, 그것은 당시 군사 기술 분야의 대규모 격변과 1848년 혁명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1848년부터 빈과 베로나에 임시 군사 학교를 운영하다가 3년이 지난 1852년 2월 14일, 마침내 완전히 새로운 기반으로 일반참모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황립 및 왕립 전쟁대학을 설립하였다.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를 비롯해서 제국의 모든 군사 훈련 기관들중에서 최고 등급 기관이였으며, 전쟁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하려면 테레지아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전 심사와 최종 시험을 통과하는 게 기본 조건이었고, 거기에 군대에서 2년간의 복무를 마친 26살 이상의 장교라는 조건을 갖추어야 했다. 그렇게 추려진 응시자들은 높은 수준의 정확성과 객관성이 특징인 까다로운 입학시험에 도전해야 했다. 황립 및 왕립 전쟁은 설립 당시에는 2년제였으나,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시절에는 3년제였다. 평가는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매우 광범위한 커리큘럼은 언어 및 군사 과학뿐만 아니라 신체 훈련에도 중점을 두었다.
졸업자는 중위로 진급하여 2~3년의 수습 기간을 거쳐 참모부에 배치되었고, 실력을 입증한 이들은 최종적으로 참모부의 정규 장교로서 대위로 임명되었다. 그래서 평시에는 전쟁대학 졸업생만이 일반참모로 배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매년 약 30명의 장교만이 일반참모에 편입되었다는 것이었다. 임용을 기다리지 못한 졸업생들은 본인 소속 연대로 돌아가야 했고, 연대를 떠나지 않았던 장교들보다 진급이 늦어야했다.
전쟁대학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해산과 함께 폐교되어 학교 건물은 빈 대학교의 공과부서가 인수하여 지금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