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ruby(深川通り魔殺人事件, ruby=ふかがわとおりまさつじんじけん)]체포 직후의 가와마타 군지(가운데)
1981년 6월 17일 도쿄도 고토구 모리시타2초메 일대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사건.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 이전까지 일본 사회를 가장 큰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묻지마 살인 사건임과 동시에 일본어 속어인 전파계의 어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명의 후카가와(深川)는 고토구 서쪽 동네들을 일컫는 말이다.
2. 사건의 전개
1981년 6월 17일 오전 11시 35분경 범인 가와마타 군지(川俣軍司, 범행 당시 29세 무직)가 길을 가던 도중 마주친 27세 여성과 그녀의 두 아이를 회칼로 찔러 죽이고[1] 현장에서 9m를 이동해 마주친 33세 여성을 찔러 살해했다. 이후 지나가던 71세와 39세 여성에게도 칼을 휘둘러 각각 중상을 입혔다.6명을 연쇄로 찌른 후 가와마타는 칼이 휜 것을 발견하고 더 이상 찌르기는 힘들다고 판단해 근처의 32세 주부 1명을 왼팔로 끌어안고 오른손의 흉기로 위협하면서 가까운 중식요리점에 뛰어들어 식당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협박하여 쫒아낸 뒤 인질극을 일으켰다. 다행스럽게도 인질로 잡힌 여성은 경찰과 대치하던 가와마타가 방심한 틈을 타 18시 50분경 탈출했고 가와마타는 팬티 차림이라는 추한 몰골로 경찰에 붙잡혔다.
3. 범인의 신상과 전과기록
범인 가와마타는 이바라키현 가지마군(鹿島郡) 출신이며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초밥집에 취직했지만 언행이 불량하여 밥 먹듯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야쿠자를 동경하여 직접 야쿠자를 찾아가 문신을 하기도 했다. 트럭운전사를 하기도 했으나 해당 직장에서도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고 필로폰 상습 복용자이기도 했다. 이 사건도 환각과 환청을 경험한 상태에서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와마타는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어떤 전파가 감지되어서 일을 저질렀다"는 말을 남겼다.전과기록도 화려하여 1971년 7월에는 공갈사건, 1972년 3월에는 아다치구에서 폭행상해사건, 동년 9월에는 도미사카(富坂)에서 폭행사건을 일으키는 등 주폭 행위로 감옥살이를 한 바 있다.
범행 이후 사형이 구형되었으나 정신이상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1982년 12월 23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4. 기타
가해자의 가족들은 사건 이후 아예 성을 바꿨다고 한다. 일본은 범죄자의 가족에 대한 암묵적인 연좌제가 심각해서 사회적으로 굉장한 괴롭힘을 받기 때문에 평범하게 살기 어렵다고 한다.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동아일보에서도 '횡설수설'이란 코너에서 이 사건을 짤막하게 언급한 바 있다.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더욱 강했던 시기인 만큼 사가와 잇세이 식인 사건과 함께 '일본인의 잔인성'을 증명한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