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05:01:47

196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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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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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1차: 6월 23일
결선: 6월 30일
투표율 1차: 80.01%▼ 0.88%p
결선: 77.82%▼ 1.91%p
선거 결과
파일:196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결과.svg
1. 개요2. 배경3. 투표4. 선거 결과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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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8년에 실시된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2. 배경

1968년 들어 샤를 드골 정권에 대한 반감이 프랑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68운동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샤를 드골 정권은 위기에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샤를 드골은 68운동에 맞서 의회 해산권을 발동했고, 6월 23일과 6월 30일로 총선이 예정되었다.

3. 투표

1968년 프랑스 국민의회 선거
연합 정당 성향 득표수 (1차) 득표율 (1차) 득표수 (결선) 득표율 (결선) 의석수
우파연합 공화국민주연합 우파 9,667,532 43.65% 6,762,170 46.39% 293석
독립공화당 61석
기타 우파 917,758 4.14% 496,463 3.41% 9석
합계 10,585,290 47.79% 7,258,633 49.80% 363석
좌파연합 프랑스 공산당 좌파 4,434,832 20.02% 2,935,775 20.14% 34석
민주사회좌파연합 3,660,250 16.53% 3,097,338 21.25% 57석
통합사회당 1,037,063 4.68% 144,361 0.99% 0석
합계 9,132,145 41.23% 6,177,474 42.38% 91석
진보와 현대민주 중도우파 2,289,849 10.34% 1,141,305 7.83% 33석
기술과 민주주의 77,360 0.35% - - 0석
개혁운동당 - 33,835 0.15% - - 0석
ARPL - 28,736 0.13% - - 0석

4. 선거 결과

68운동의 격화 및 반 드골 정서의 확산으로 좌파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우파 및 중도파의 결집으로 선거 결과는 우파의 압승으로 끝났고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하여 샤를 드골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샤를 드골은 이미 리더십에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고 샤를 드골 정권에 대한 반발이 완전히 무마된 것은 아니었다. 결국 1년 뒤, 샤를 드골은 자신의 신임을 결부시킨 지방행정과 상원 개편에 대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지만, 53%에 가까운 반대표로 인해 개헌안은 부결되었고, 샤를 드골은 국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4월 28일에 사임하게 된다.

좌파의 참패를 '좌파의 분열' 때문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지만, 68년 총선 당시 프랑스 좌파의 분열은 사회당(민주사회좌파연합)과 프랑스 공산당의 양당 구도 정도로 좌파 정치세력 내에서 이정도의 분열은 별달리 특이한 일이 아니고, 당장 드골계 우파가 예상외의 부진으로 (중도파와의 연합으로 결선투표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 67년 총선에서도 이 구도 자체는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선거에서 좌파연합 대 우파연합의 합계 득표율를 보더라도 1, 2차 투표 모두 우파연합의 합계 득표율이 명확히 높고, 이전 선거(67년 국민의회 선거)에 비해서도 우파연합의 득표수가 명확히 높아졌다는 점에서 좌파 진영의 분열이 선거 패배에 끼친 영향은 제한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원인은 ①68운동(시위)가 격화되어 단순히 드골 정권 뿐 아니라 프랑스 정부의 국가 장악력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자 그것은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여긴 중도파 및 일부 중도좌파 지지자들까지 68운동의 반대항인 드골 지지로 결집하였다는 것, 그리고 ②운동의 주류인 비 조직적, 무당파적 운동가들은 자신들을 대변할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특히 운동가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던 학생들의 경우 상당수는 아예 투표권도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이였기에 이들의 세력이 곧 선거에 대한 영향력으로 전환될 수 없었던 점에 비중을 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1968년 프랑스 총선에서 좌파가 패배한 충격을 철학적으로 보다 심층있게 분석한 책으로는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의 공저인 <안티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천 개의 고원> 연작이 있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