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08 19:33:54

2차 장교의 난

2차 장교의 난
二次莊蹻之亂
Second Rebellion of ZhuangQiao
시기 기원전 282년
장소 초나라령 강동일대
원인 초나라의 지속적인 강동지역 공출[1]로 인한
인민들의 불만 폭발
교전세력 봉기군초楚
지휘관 봉기군 수장 장교초 토벌군 사령관 소어
초 원릉군수 굴위
초 연릉군수†
병력 봉기군 본대 7천
강북봉기군 2천6백

총합 9천6백
초 토벌군 1만5천
초 원릉주둔군 2천8백
초 연릉주둔군 1천5백

총합 약 1만9천3백
피해[2] 봉기군 약 2천7백초군 약 4천2백
결과 토벌군 반란 진압 실패
영향 초조정과 장교와 협상하여 장교를 강동후로 봉작하고
구 월나라 일대[3]를 봉지로 줌 강동후령 형성

1. 개요2. 배경3. 전투의 전개4. 결과
4.1. 장교 강동을 떠나나...
5. 영향

1. 개요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에 나오는 가공의 반란.

2. 배경

3. 전투의 전개

4. 결과

4.1. 장교 강동을 떠나나...

5. 영향


[1] 지속적인 반란지역인 강동에 대한 견제도 포함되어 있었다.[2] 도주, 와해된 병력등은 제외한 순수 전투손실만 계산.[3] 물길과 가까운 지역과 강북은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