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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3년 J리그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J리그에서 활동한 한국인 선수들을 기록해 놓은 문서.1993년 K리그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노정윤이 산프레체 히로시마에 입단하면서 한국인 1호 J리거가 되었다. 이후 김도훈, 하석주, 최성용, 유상철, 홍명보, 황선홍, 최용수 등 90년대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J리그로 줄줄이 진출하면서 J리그에 한국인 선수 열풍이 불었고, 1999 시즌에는 황선홍이 리그 득점왕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 시기만 해도 K리그에서 최고 연봉이라고 해봐야 간신히 2억원을 넘는 정도였는데[1] J리그에서는 한국 대표급 선수에게 8~12억원 정도를 제시했다.
이후 2002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에 오르면서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유럽의 관심을 받게 되고, 더이상 J리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는 국가대표급 한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어려워지면서 J리그 구단들은 한국인 유망주로 눈길을 돌린다.[2] 2009년에는 AFC에서 공식적으로 아시아 쿼터제를 인정하고 도입하면서 아시아 쿼터제로 주어진 +1의 외국인 선수 슬롯을 J리그의 거의 모든 구단이 대한민국 선수로 채우는 현상이 나타난다. 더이상 K리그 프로 구단에 비싼 이적료를 지불하지 않고 대학, 혹은 고등학교 선수 중 레이더에 들어온 선수들을 뽑아가는 현상에 대한축구협회에서는 K리그 선수수급에 비상을 느껴 2012년 하반기 프로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해외 프로리그에 프로계약을 하고 입단하는 선수에 대해 계약 후 5년 동안 국내 복귀를 불허하는 이른바 5년룰을 만들어 선수유출을 막으려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김보경, 백성동, 박주호, 김진현, 한국영, 장현수, 조영철, 김진수 등 현재 국가대표의 주축이거나 혹은 과거 청소년대표의 에이스 소리를 들었던 선수들 다수가 J리그를 누볐다.
2015년부터 K리그에 드래프트가 사라지고, 2부리그인 K리그 2가 자리잡히면서 J리그로의 무분별한 진출은 많이 없어진다. 거기에 위 선수들 처럼 성공한 선수들보다 실패하고 축구 인생을 접은 선수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컸고, J리그보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 나가 유소년팀부터 밟아가는 선수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J리그에서 한국선수들은 과거보다 많이 보긴 힘들어졌다. 거기에 201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대한 일본 정부의 허술한 대처로 인한 일본 생활의 불안정성 등 과거처럼 J리그가 매력적인 무대가 더 이상 아니게 되어 J리그에 있던 한국 선수들이 국내로 대거 돌아오는 현상이 근래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골키퍼에 대한 수요는 그 어느때보다 높아 정성룡, 김승규, 권순태, 김진현 등 국가대표급 골키퍼들이 J리그에서 뛰고 있다.[3]
대한민국과 일본 간 역사적 배경 때문에 재일교포 선수들도 J리그에서 많이 뛰고 있다. 조총련계의 재일교포들은 북한 국적을 택하거나 조선적을 유지하지만 민단계 재일교포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지니고 있다. J리그에서도 민단계 재일교포 선수들이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선수는 박강조가 있다. J리그 통산 200경기 이상 뛰며 롱런한 미드필더였고 2000부터 2002년에는 K리그 성남 일화에서 활약하며 재일교포 첫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가 되었으니 꽤나 성공한 축구선수였다. 한편 조총련계 재일교포면서 대한민국 국적을 지니고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멤버로 월드컵까지 나간 정대세도 J리그에서 오랜기간 활약한 공격수다. K리그 수원 삼성 이적 때 사상 초유의 대한민국-북한 이중국적을 FIFA로부터 인정받았기도 했고 현재도 국적은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중이다. 이충성 같은 케이스도 드물지만 있는데 2006년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청소년 국가대표에도 뽑히던 공격수였으나 한국 내에서의 차별에 환멸을 느끼고 2007년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서브 공격수로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J리그에선 FC 도쿄와 가시와 레이솔, 우라와 레즈 등에서 뛰었다.
문서가 너무 길어진 관계로 각 디비전별로 하위 문서로 분류해 정리한다.
2. 목록
2.1. J1리그
자세한 내용은 J리그/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J1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2.2. J2리그
자세한 내용은 J리그/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J2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2.3. J3리그
자세한 내용은 J리그/역대 한국인 선수 목록/J3리그 문서 참고하십시오.[1] 심지어 김병지, 최용수, 김도훈 등을 두고 구단들이 공개적으로 최고 연봉 경쟁을 벌였는데도 그렇다.[2] 여기에는 대학 중퇴 선수가 잭팟이 터진 박지성의 사례가 한몫하며, 2003년 이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정치 안정과 경기 호황으로 주머니가 얇아진 J리그에서 남미 선수들 영입에 부담이 커진 것도 작용하였다. 요컨대 긁어 보는 것.[3] 골키퍼는 포지션 특성상 유럽 진출이 쉽지 않아 위 문단의 상황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 조현우마저도 월드컵 이후 국제적인 관심을 한몸에 받았음에도 유럽 진출이 번번이 좌절될 정도. 이렇게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 선수가 J리그 골키퍼를 독식하자 일본내 축구계도 자국인 골키퍼 가뭄에 대해 경보를 보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