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8 23:52:17

르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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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르까프
LEC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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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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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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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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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출시 1986년
대표 정신모
본사 서울특별시 구로구 디지털로34길 27
업종 스포츠 용품, 운동화, 의류
링크 파일:르까프 로고.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광고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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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6년에 출시된 대한민국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

2. 역사

파일:lecaf_logo_history.jpg
역대 로고 변천사

화승(和承)[1]은 1978년부터 나이키와 계약해 나이키 신발을 OEM으로 제작/납품했고 한 때 전세계에 팔리는 나이키 신발의 거의 대부분을 화승을 비롯한 한국 회사들이 만들었다.[2] 그 유명한 에어 조던 1 첫 제품도 화승[3]이 만들었다.# 이 제품은 2020년 소더비 경매에서 56만 달러(약 7억3853만 원)에 팔리기도 했다. 그러다 나중에 화승이 나이키와 결별하면서 나이키 신발을 제조하던 기술 활용과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에 맞춰 1986년에 자체 브랜드인 르까프를 런칭한다.[4]

르까프란 이름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한 말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의 머리글자에 프랑스어 정관사 LE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1980년대에는 프로월드컵이나 국제상사프로스펙스, 코오롱그룹의 액티브, 삼성물산라피도와 같이 제법 인지도를 가진 스포츠 브랜드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국내 스포츠 패션 시장이 커지고 이후 1990년대 초중반 농구 붐을 타고 나이키, 리복, 아디다스, 휠라 등이 국내 시장을 융단폭격하며 라피도나 액티브가 시장에서 철수하는 와중에서도 프로스펙스와 함께 시장에서 나름 유의미한 지분을 갖던 2대 브랜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화승도 IMF 외환위기를 피해가지 못해 1998년에 부도를 맞았고 2005년 화의 채무를 전부 상환했다. 2010년대 초반 아웃도어 붐을 타고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 이후 아웃도어 인기가 꺼지면서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결국 2014년 모회사인 화승그룹은 그룹의 모태였던 화승 지분 50.23%를 물류회사인 경일에게 매각한다. 그러나 화승의 지분을 인수한 경일은 예상보다 인수 시너지를 내는 것이 수월치 않다고 판단, 1년여만에 다시 매각을 결정했고, 결국 2015년 최대주주 경일의 지분 50.23%와 2대 주주인 화승그룹이 보유 한 지분 49.77% 등 화승 주식 전량이 산업은행과 KTB PE에서 설립한 사모투자합작회사(PEF)에 재매각됐다. 다만, 이 재매각 당시에도 인수자인 산업은행-KTB 사모펀드에 화승그룹 계열사들이 1563억원의 자금을 출자하며 주요 LP 지위를 가져갔기 때문에 여전히 화승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사모펀드에 화승이 매각되기 직전에 화승의 알짜 수익원이었던 OEM 사업을 화승그룹의 계열사인 화승인더스트리[5]로 양도했다는 점인데, 이 OEM 사업은 아디다스, 리복 등에 연간 약 6000만 켤레의 운동화를 공급하는 규모로, 아디다스의 운동화 전세계 판매량 중 무려 15%를 차지한다.

결국 안정적인 매출원을 화승인더스트리에 빼앗긴 화승은 2015년 매출이 반토막이 나고 말았는데, 화승의 실적은 지난 2014년 매출 5619억원, 영업이익 155억원이었던 것이, 2015년에는 매출 2362억원, 영업이익 38억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약 3000억원의 매출이 급감한 것에 더해 대규모 마케팅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OEM 사업을 빼앗긴 것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화승인더스트리에 알짜 사업을 빼앗기면서 경영난에 빠지게 된 화승은 2017년 레트로 열풍에 발맞춰 1980년대에 사용하던 르까프 헤리티지 로고로 복귀하고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2019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였다.[6] 이후 2020년 초, 화승은 보유 중이던 아웃도어 브랜드 머렐을 엠케이코리아에 매각한 후, 2월 사명을 디앤액트로 변경하고, 같은 해 4월 회생절차를 졸업했다.

3. 광고

2000년대 초반에는 당대 최고 아이돌 H.O.T.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7] 프로스펙스가 서태지를 모델로 내세워 인기를 모은 만큼 여기도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2010년대 들어선 이서진을 모델로 내세워 예전의 인지도가 젊은 세대에게는 없다는 점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히스토리 마케팅을 했다.

2018년에는 유연석을 모델로 발탁했다.

2020년에는 송가인이장우를 모델로 발탁했다.

2020년 4월 30일 르까프 가인송을 공개했다.

35주년을 맞아 근황올림픽과 함께 김기현을 만났다.

4. 여담

  • 화승에서 유통한 브랜드로는 케이스위스가 있다. 르까프 브랜드로 등산화도 만들어 판매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거의 만들지 않는다. 과거에는 월드컵, 프로월드컵[8], 허쉬퍼피, 머렐 등 다른 서브브랜드들도 제조 및 판매한 적이 있으나 전부 다른 곳으로 매각하였으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머렐 유통도 다른 회사에 넘겼다. 캐주얼 신발도 만들었는데 상표는 뱅가드. [9] 랜드로바와 어느 정도 경쟁하기도 했으나, 화승이 포기하고 월드컵 브랜드로 분사한 엘유티에게 매각했다.
  • 화승그룹 계열사 중에는 화승전자와 화승제지가 있었다. 화승전자는 닉소텔레콤, 화승제지는 고려제지로 각각 회사명을 변경하였고, 현재는 고려제지만 생존 중이다.


[1] 前 동양고무공업주식회사. 부산광역시를 기반으로 하는 향토기업이다.[2] 즉, 프로스펙스나 르까프 같은 한국 기업 제품들을 막연하게 나이키나 아디다스보다 품질이 못할 것이라고 까는 것은 무지한 생각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그렇게 선망하던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의 대부분이 바로 이런 한국 회사들이 제작한 것이었다.[3] 당시 명칭 동양고무산업[4] 이후 화승은 1987년 리복과 합작해 화승리복이라는 회사를 세워 리복의 국내 진출을 도와 1994년까지 동행했다.[5] 화승으로부터 알짜 사업을 챙겨간 화승인더스트리는 화승그룹 일가 3세인 차남 현석호에게 돌아갔다.[6] 기업회생절차는 화승그룹이 아닌 화승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본래는 화승그룹이 직접 화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2015년에 르까프 등을 유통하는 화승의 지분 전량이 산업은행-KTB PEF에 매각될 당시 화승그룹이 PEF에 1563억원을 출자하여 사모펀드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간접투자 방식으로 바꾸는 모양새였다. 이 M&A 직전에 화승그룹은 화승의 알짜 사업을 3세 승계를 위해 화승인더스트리로 빼냈는데, 결국 이로 인해 인해 어려움에 빠진 화승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사모펀드에 출자한 화승그룹 계열사들의 1563억원도 손실을 입게 되었으니, 자업자득인 셈.[7] 참고로 위의 3번째 로고는 본래 H.O.T. 마케팅 전용 로고로 쓰다가 이후 이것을 리뉴얼하여 정식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8] 1999년 제조사 화승상사 인수[9] 현재는 이 브랜드와 월드컵, 기차표의 상표권이 화승 대표이사 출신이 분사한 엘유티로 넘어갔다.[10] MBC GAME HERO위메이드 폭스.[11]두산 베어스.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후원을 맡고있는 휠라 이전에는 르까프와 후원을 맺은 적도 있었다. 1980년대 중반.[12] 화승 오즈로 바뀐 후에는 케이스위스 상표도 병행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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