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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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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 현재 참가하고 있는 구단 보기
삼청태현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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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Hyundai Unicorns
창단 1982년 2월 5일[1]
법인 설립 1987년 10월 14일[2]
인수 1995년 9월 21일
팀명 변경 1996년 3월 11일[3][4]
첫 경기 1996년 4월 13일 VS LG 트윈스 (인천)
마지막 경기 2007년 10월 5일 VS 한화 이글스 (수원)
해체 2008년 1월 7일
법인 해산 2008년 6월 4일
구단 법인명 ㈜현대유니콘스
업종명 스포츠 클럽 운영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연고지 (서류상) 서울특별시[5] | (사실상) 경기도 수원시
구단 연고지 변천 인천광역시 & 경기도 & 강원도 (1996~1999)
서울특별시[6] | 무연고[7] (2000~2007)
구단명 변천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 (1985~1987)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현대 유니콘스 (1996~2007)
홈구장 숭의야구장 (1982~1999 / 12,000명)
사실상 수원 야구장 (1996~2007[8] / 14,000명)
2군 구장 원당야구장[9]
마스코트 파일:KqDN4KP.png
유니, 코니
워드마크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wordmark.png
해체 당시의 구단프런트 (2007년)
구단주 공석[10][11]
사장 김용휘
단장 정재호
감독 김시진
최종 우승 ★★★★ (4회)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98.png 파일:Unicorns_2000_V2.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03.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2004_KShyundai.png
1998년[12] 2000년 2003년 2004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3회)
단일리그1998년, 2003년, 2004년
양대리그 2000년 드림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695
2000년 133경기 91승 40패 2무
최저 승률 .188
1982년 80경기 15승 65패
최다 승 91승
2000년 133경기 91승 40패 2무
최다 패 82패
1993년 126경기 34승 82패 10무
최다 관중 476,277명
1994년[13][14]
최소 관중 118,582명
2002년[15][16]

1. 개요2. 연표
2.1. 현대 유니콘스2.2. 전신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2.3. 1996년 이전: 현대그룹의 야구단 창단 시도2.4. 숭의야구장 시절
2.4.1. 1996년: 창단 첫해부터 준우승2.4.2. 1997년: 2년차 징크스?2.4.3. 1998년: 인천야구, 첫 우승!2.4.4. 1999년: 타선이 붕괴..그래도 5할플러스
2.5. 수원 야구장 시대
2.5.1. 2000년: KBO 역대 깡패최강팀에 꼽히는 영광의 91승과 승률 0.695, 그러나, 연고지 이전 2.5.2. 2001년: 빈약해진 선수층에도 4강진출 성공.2.5.3. 2002년: 또 4강만 가면 광탈2.5.4. 2003년: 정민태의 마지막 투혼, 그리고 우승.2.5.5. 2004년: 왕조의 마지막 우승. 디펜딩 챔피언2.5.6. 2005년: 진만이도 없고, 정수도 없고... 2.5.7. 2006년: 유니콘스 마지막 가을야구2.5.8. 2007년: 왕조의 멸망
3. 유니폼4. 역대 등번호5. 해체 당시 선수단6. 역대 선수
6.1. 투수6.2. 포수6.3. 내야수6.4. 외야수6.5. 역대 외국인 선수
7. 역대 성적(삼미, 청보, 태평양 시절 포함)
7.1. 역대 개인 성적
7.1.1. 통산 성적7.1.2. 단일 시즌
7.2.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8. 응원가9. 역대 캐치프레이즈10. 사건사고11. 여담12. 관련 문서

1. 개요

KBO 리그에 있었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 경기도 & 강원도 - (사실상)경기도 수원시.

창단연도는 1982년(삼미-청보-태평양 순으로 인수), 해체는 2008년이다. 연고지는 인천, 경기, 강원권역이었으나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선언하면서 임시 홈 구장으로는 수원 야구장을 썼다.

2. 연표

2.1. 현대 유니콘스

현대그룹은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창단하여 프로팀에 뛰어들려고 했으나, 그것이 여의치 않자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재창단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고 이렇게 현대 유니콘스가 탄생했다.
1996년 취임해 팀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한 김용휘 단장(2004년부터 사장으로 승진) 이하 구단 프런트가 개념이 넘친 현장 지원으로 명성을 떨쳤고, 역대 감독은 김재박-김시진이었다. 팀의 상징동물은 유니콘, 상징색은 녹색, 별명은 투수왕국. 태평양 돌핀스 후기시절부터 좋은 투수진을 여럿 배출하던 이 팀의 팀컬러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장원삼 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며 무려 4명의 투수신인왕을 배출했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17][18]

역대 우승은 1998년(인천연고팀의 첫 우승), 2000년, 2003년, 2004년(수원 임시연고)으로 총 4회이며, 해태 타이거즈에 이어 두번째로 2년 연속우승에 성공했다.[19] 태평양 돌핀스에서 팀명이 변경되고 해체되기까지인 12년간 4회 우승,1회준우승, 4강 3회 등의 성적을 거두며 짧고 굵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잘 보여줬다.[20] 하지만 관중 동원은 인천을 떠난 2000년 이후로는 기존의 팬들이 많이 떠나면서 경기당 평균 2,000명[21]이 채 안되는 등 최하 수준이었다.

2.2. 전신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이 팀들은 현대 유니콘스의 전신이다. 현대 유니콘스는 공식적으로 이 팀들의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이어가는 팀이며 이 팀들과 동일한 한팀이다. 이 팀들의 역사는 공식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에 포함되며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현대 유니콘스의 역사는 82년부터 작성하여야 할것이다. 그러나 전신들까지 모두 다루기에는 가독성의 문제도 있고 여백이 부족하여 이 문서는 주로 현대 유니콘스 시절에 한정하여 작성된 부분이 많다. 현대 유니콘스 팀명 변경 전 역사에 대해서는 해당문서들을 참조 바람.

2.3. 1996년 이전: 현대그룹의 야구단 창단 시도

현대는 프로야구 참여시에 현대 피닉스로 대표되는 아마추어-프로 간 대립을 이끌며 '제2리그' 창단을 공언하다가, 결국 태평양 돌핀스를 430억에 인수하여 프로야구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삼성과 더불어 '한국프로야구를 돈지랄판으로 만든 원흉'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인천 지역 야구팬들은 이제야 가난한 팀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열광했고, 덕분에 아모레퍼시픽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야구로 돈을 번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원래 프로야구 출범 추진 과정에서 출범 추진 인사들이 강원도가 고향인 정주영 회장[22]에게 인천/경기/강원을 연고로 현대그룹 야구단의 창단을 제안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대한체육회장이었고 88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한 직후였기 때문에 올림픽에 전념하겠다고 하면서 거절했다.[23] 더구나 당시 현대그룹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양궁과 수영 2개 종목을 맡고 있었다.[24] 하지만 올림픽 이후부터 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하면서 한 때 울산을 연고로 신생구단을 창단하고 야구장까지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무산되었다.[25] 결국 실업팀 현대 피닉스로 온갖 평지풍파를 일으키다가 태평양 돌핀스 인수로 프로야구에 진출한 것이다.

태평양 입장에선 1987년에 50억에 청보에게서 구단을 사서 근 10년만에 9배의 값으로 팔았으니, 구단 운영비를 빼고 나서도 엄청난 대박이였다 할 수 있겠다. 당시 현대그룹의 돈빨을 증명하는 일화로, 고려대 진학을 원했던 박진만이 자신에게 귀찮게 달라붙는 현대 구단 직원들을 떼어버리기 위해 계약금 4억원이라는 (당시로는) 터무니없는 큰 돈을 요구했더니(당시 최고 계약금은 위재영의 2억) 현대 직원이 알았다면서 자동차 트렁크에서 4억원을 꺼내오더라 하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26]

그러나 이때 시작부터 현대그룹은 판단착오를 하는데 대주주를 현대자동차나 현대백화점이나 현대건설 혹은 현대중공업을 최대주주로 선정했어야 하나 적자 투성이인 현대전자를 대주주로 선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현재의 SK 하이닉스를 참고해보면 알겠지만 현대전자 시절 누적 적자가 상당한 부실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이 LG 반도체를 인수하니까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특히 지금도 생존한 현대백화점이나 현대중공업 등이 대주주가 됐다면 현재까지 현대 유니콘스라는 이름은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2.4. 숭의야구장 시절

2.4.1. 1996년: 창단 첫해부터 준우승

1996년 첫해 타선에선 최초 30-30을 기록한 괴물신인 박재홍[27]과 '미스터 인천' 김경기의 활약, 마운드에선 정민태, 위재영, 정명원의 활약 등에 힘입어 전반기1위, 최종 4위를 기록, 2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재진입했다.[28]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2전 전승으로 물리치고[29]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전주 1, 2차전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에 아쉽게 패하며 밀리는 듯했으나 인천 3차전부터 최창호의 호투로 극적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켜 3연승을 내리 거둬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창단 첫 해에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것은 1990년 LG 트윈스에 이어 현대가 두 번째. 그러나 상대는 막강 해태 타이거즈. 이강철조계현, 이대진 등이 버틴 해태에게 2승 4패로 분패하고 준우승을 기록한다. 그나마 눈여겨볼 것이 있다면 4차전 정명원KBO 사상 유일한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30]

1996년의 현대는 기존의 김경기 박재홍을 중심으로 윤덕규, 이숭용, 박진만이 쏠쏠한 활약을 하였으나 박재홍-박진만 두 신인을 제외하면 선수보강이 딱히 이뤄지지 않아 태평양 시절과 별 다름없는 물타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타격은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31] 반면 투수진은 현대 창단과 더불어 에이스로 거듭난 15승의 정민태와 세이브 1위 [32] 정명원, 12승 위재영, 8승 최창호, 중간계투라는 새로운 장을 연 조웅천, 가내영, 전준호 등 우수한 선수들이 많았다. 즉 타선의 힘보다는 투수진에 힘입어 겨우 4위를 하게 된 것. 특히 당시 프로 3년차였던 이숭용과 말년에 접어든 윤덕규를 빼고는 특출난 좌타자가 없었던 탓에 우완 잠수함 투수 상대로 고전하는 일이 많았다.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플레이오프 1, 2차전을 내준 것도 잠수함 원투펀치였던 성영재김기덕에게 당한 것이 컸고, 한국시리즈에서도 해태 이강철에게 2승 1세이브를 헌납하면서 무너진 게 패인.

2.4.2. 1997년: 2년차 징크스?

이듬해 1997년에는 시즌전에 아마추어팀 현대 피닉스의 문동환을 롯데로 풀어주면서 위약금을 전액 탕감하는 대신 전준호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확실한 1번타자를 영입해 전력강화를 꾀했으나[33] 그 해 타선이 지독하게 부진했다. 타선에서는 입단 첫해인 전준호가 트레이드 충격을 털어내지 못하고 0.247라는 프로데뷔 이래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팀내 핵심선수인 박재홍은 30홈런, 20도루를 기록 20-20을 달성하는 등 그래도 괜찮은 활약을 보였으나, 시즌 중후반에 부상으로 전력이탈했고,[34] 4번타자 김경기는 프로데뷔 이래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역시 타선의 주축 역할을 해오던 윤덕규도 부진을 겪었고, 결국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중간에 교타자인 김광림을 현금트레이드를 통해 쌍방울에서 영입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35] 유일하게 시즌 끝까지 꾸준하게 활약했던 선수는 데뷔 첫 3할을 친 이숭용 정도였다.

이상하게 이 해에는 상위 팀 삼성 라이온즈와 최하위 팀으로 전락한 롯데 자이언츠 상대로 강했다. 삼성은 엉뚱하게 이게 발목이 잡혔는지 정규리그 4위를 하고 준PO에서 3위 쌍방울에게 2승 1패로 PO에 진출했지만, PO에서 2위 LG한테 2승 3패로 광탈을 한다. LG는 현대의 12년 역사 중 가장 강력했다. 그나마 LG가 열세였던건 현대가 압도적인 리그를 씹어먹던 2000년 단 한번 뿐

투수면에서는 에이스 정민태가 건재했지만, 2선발 위재영은 시즌 도중 부상으로 드러눕고, 나머지 투수들도 전년도처럼 뭐 하나씩 부족한 성적이였다. 그러기에 마무리 정명원은 선발를 뚫리자 선발과 계투를 오가면서 너무 지친 갑자기 구위가 떨어지면서 난조를 자주 보였다. 1997년 시즌에는 내내 하위권을 달리다가 롯데, 한화를 겨우 제끼고 6위 기록.

2.4.3. 1998년: 인천야구, 첫 우승!

이듬해 1998년 시즌에는 현대그룹의 과감한 지원이 이어간다. 시즌 전에는 당시 IMF의 직격탄을 맞아 어려움을 겪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핵심선수였던 박경완을 현금트레이드로 영입하고, OB 베어스의 베테랑 2루수였던 이명수를 영입하는등 타선을 크게 보완했다. 거기에 이명수의 뒤를 이을 주전 2루수로 육성하기위해 박종호까지 영입했다. 이러한 구단의 과감한 지원 속에 1998년에는 투-타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보였다.[36] 타선에서는 박재홍-쿨바-김경기로 이어지는 클린업 타선은 실로 위력적이었고, 97년 트레이드 충격으로 입단 첫해 부진했던 전준호는 트레이드 충격을 딛고 1998년 시즌에 확실한 1번타자로 활약한다. 투수면에서는 마무리에서 선발로 전환한 정명원의 화려한 부활등 힘입어 정민태-정명원-위재영-김수경-최원호 1~5선발 전원 10승 이상[37]이후 을 기록하는 등 1998년 정규시즌은 엄청났던 해였다. 무엇보다 만개한 박경완 최고의 리드를 보였고 홈런도 19개나 쳐냈다. 1988,1991 해태나 1992 빙그레[38] 1994 LG 수준으로 투타가 완벽한 시즌이었다.

그리고 이 때도 어김없이 현질을 했는데, 시즌중 6억원에 쌍방울에서 조규제 투수를 영입했다는 것이다[39].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4승 2패를 거두며 창단 첫 우승[40]을 거두어 인천연고팀 역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등 최고의 해를 보냈다.

2.4.4. 1999년: 타선이 붕괴..그래도 5할플러스

이듬해 1999년은 유례없는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5선발 중 세 명이 이전같은 성적을 못 내었으나 압도적인 활약을 하였던 정민태와 2선발 및 추격조로 알바까지 뛴 2년차 신예 김수경 덕에 팀 실점은 롯데에 이어 2위를 기록한다. 그러나 문제는 타선이었다. wOBA가 4할 이상인 선수가 15명이나 있었던 시즌이었으나 현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wOBA 순위를 상위 25위로 범위를 넓혀야 박재홍(19위)와 박종호(24위)만 이름을 보였다. 피어슨이 쿨바 수준의 활약은 하지 못했고 전준호, 김경기, 이명수가 동시에 성적이 하락하였다. 결국 팀 득점은 쌍방울 다음으로 낮은 7위에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정규시즌 5위(당시 양대리그 체제였으니 4팀 가운데 3위) 기록했다.[41]

시즌 끝나고 그 시즌 부진했던 LG의 투타겸업 선수인 심재학을 영입했으며, 허용투수 최원호가 LG로 이적했다. 또한 지명권 트레이드로 2차 1픽으로 지명된 마일영 투수를 쌍방울에서 5억에 사왔다[42] 참고로 마일영을 끝으로 지명권 트레이드는 금지되었다.

이해 유일한 수확은 신인 박장희 단, 한 명이였고 김수경은 탈삼진 1위 정민태는 다승왕(20승)과 방어율 2위를 차지한다.[43]
타자들은 그나마 박종호가 2루와 3루를 종횡무진 하였고 지난 2년간 타격에 죽을쑤던 박진만이 다시 포텐이 터질 기미를 보였다.

2.5. 수원 야구장 시대

2.5.1. 2000년: KBO 역대 깡패최강팀에 꼽히는 영광의 91승과 승률 0.695, 그러나, 연고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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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현대는 최고의 한해를 보낸 동시에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내게 되었다. 시즌 직전, 모기업 현대그룹이 아무 상의도 없이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결정하였고, 연고지 이전 결정이 있자마자 모기업에 큰 위기가 찾아와 결국 서울 이전에 실패했기 때문. 졸지에 연고지가 없어진 현대는, 자신의 과거 광역연고지였던 수원에서 홈경기를 치뤄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연고지 이전에 대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연고이전 문서 참조.

시즌 전에 전문가들로부터 '중위권팀'으로 예상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렸다. 그 해 투-타 밸런스가 98년때보다 훨신 워낙 완벽한데다[44] 선수단 구성도 매우 우수한 선수들이 많아 그해 당시 시즌최다승이었던 91승[45]정규시즌 승률 0.695 이라는 압도적인 기록[46]을 낸다. 그리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4승3패로 우승.[47][48][49]

2.5.2. 2001년: 빈약해진 선수층에도 4강진출 성공.

2001년 시즌 전부터 투수진에서 이탈이 발생했다.
정명원이 은퇴했으며, 철벽계투 조웅천+조규제[50]는 신생팀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15억원에 SK로 트레이드되어야했다. 또한 에이스 정민태가 해외 진출을 결심하면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임대되었다.

야수진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팀의 주포인 외야수 심재학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상대는 외야수 심정수인데, 심정수심재학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며 활약하게 된다. 그 외에도 백업 포수인 장광호를 5천만원에 SK에서 트레이드해왔고, 백업 내야수인 염경엽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개막전에는 정명원염경엽[51]의 은퇴식이 수원 야구장에서 열렸다.

또한 시즌 초반에는 계투진에 자리가 없던 최영필+김홍집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선발감으로 쓰기 위해 좌완 이상열을 한화에서 영입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구단이 돈이 없었던지라, 정민태의 임대료+조웅천, 조규제의 트레이드 머니를 털어서 구단을 운영했다.

이 시즌은 임선동이 선발진에서 분전했지만, 4점대 방어율을 찍어서 에이스라 보기엔 모자랐다. 특히 정민태의 공백이 너무나 컸고, 김수경은 부진했다.[52] 그 외에도 마무리 위재영의 부상과 박종호의 타율이 2할 4푼으로 1할씩이나 추락하는 등의 악재가 있었다. 시즌은 정규리그 2위로 마감했지만, 그 해 두산에게 밀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2군의 무명 투수 송신영이 발굴된 것과 셋업과 마무리를 오가던 신철인의 활약이 큰 소득이었다.[53]

시즌 끝나고 김인호이명수가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백업포수인 이재주KIA 타이거즈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외인 선수로는 톰 퀸란J.R 필립스[54] 케니 테일러가 있었지만 모두 평균 성적을 거뒀지만 전원 모두 제계약 포기를 했다.

2.5.3. 2002년: 또 4강만 가면 광탈

지난해에 비해 그나마 전력누수가 적은 시즌이었다. 여전히 몇몇 선수가 부상을 앓았지만 2001년 광대뼈 골절상을 당한 심정수가 부상을 떨쳐내고 팀 중심타선을 맡았다. 이밖에도 야수진에는 4박(박경완, 박종호, 박재홍, 박진만)과 이숭용, 전준호 역시 건재했으며 포수와 3루, 외야 한자리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강병식, 채종국 그리고 신인 포수 강귀태 등 한창의 선수들이 1군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투수진도 전준호가 이탈했지만 임선동, 마일영, 송신영, 신철인 등이 건재했으며 데뷔이후 처음으로 죽을 쑨 김수경이 무사? 복귀하면서 희망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방어율이 거의 5점대 까지 오르긴 했는데 당시에 현대는 에이스를 멜퀴 토레스가 오히려 더 안정감이 있었지만 워낙 등판하는 날 우천취소가 많아 승수쌓기에는 불운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대학최대어 중 한 명인 조용준의 가세가 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만 부상 중인 마무리 위재영의 복귀가 늦어지면서 시즌 시작은 용병+조용준의 더블스토퍼 체제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후에 위재영은 선발로 복귀했다.5승 10패 망했어요

외국인선수의 경우 삼진왕이지만 일발장타와 수비로 자기 몫을 하던 퀸란이 지난해에 비해 2/3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쫓겨났다. 투수인 테일러와 엔리케스[55] 역시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방출됐다. 이를 대신해 일본야구 2군을 폭격중인 폴과 영건 토레스 그리고 강속구 투수 베라스를 영입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팀 전체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팀 중심 타선과 하위타선의 괴리가 너무나도 심했다는 점이다. 이승엽의 새로운 라이벌로 급부상한 46홈런의 심정수와 3할을 친 전준호 등 1~6번 타선까지는 다른 팀과 비교해도 밀리지않을 정도의 구색은 갖췄다. 문제는 7 8 9 멘도사라인인데 당시 박진만(0.219),박경완(0.203), 채종국(0.228)의 타격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특히 지난해 3할 22홈런으로 타격 커리어 하이를 찍은 박진만과 최초의 포수 20-20을 기록한 박경완의 부진은 크게 느껴졌다.

외국인선수인 폴과 토레스는 각각 초반과 후반에 고전했지만 시즌을 끝까지 이끌어나갔다. 그러나 강속구 마무리로 주목받던 베라스는 여름부터 난타당하다 결국 대체선수인 프랭클린으로 교체됐다.[56]

2002년은 정규리그 3위로 마감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에게 밀려 또 일찌감치 4강권에서 탈락했다.

한편 시즌 끝나고 주전포수인 박경완이 FA를 선언하면서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또한 중심타자인 박재홍이 기아 타이거즈정성훈[57]+10억에 트레이드 되면서 팀 전력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수공백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입단하는 이택근과 SK에서 방출되어 무적선수였던 김동수를 영입해 해결땜빵할 예정이었고, 중견수, 중심타자 자리는 이숭용이 맡게될 예정이었다.[58]

그리고 불행중 다행인 것은 이 해부터는 부상으로 추락한 위재영을 대신해 대졸신인 조용준이 마무리 투수로 뛰게된다는 것이었다. 조용준은 이 해부터 신인상을 받으면서 주전 마무리[59] 자리를 굳혔다.

2.5.4. 2003년: 정민태의 마지막 투혼, 그리고 우승.

2003년에는 에이스 정민태와 4번타자 심정수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리그 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올라온 SK 와이번스와 상대를 하게 된다. 7차전까지 가는[60]끝에 에이스 정민태의 활약[61]에 힘입어 3번째 우승을 하였다.

시즌 시작전에 박경완, 박재홍이라는 팀 핵심 선수가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김동수가 프로 입문 최초로 0.319의 타율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팀을 이끌었고 포수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했다. 또한 현금(10억원)[62]과 함께 온 정성훈도 비록 규정타석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나 타율 .343에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시즌 3분의 2까지 타선 공백을 막아줬다. 게다가 00현대의 압도적인 타선에 가려서 그렇지 03현대도 어디 하나 피할수 없는 공포의 타선을 구축했다. 막판까지 이승엽과 홈런 경쟁을 펼쳤던 심정수는 물론, 김동수와 이숭용이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박종호가 살아났으며 전준호,박진만도 여전히 건재했다. 오히려 전력누수가 심했던 것은 마운드였는데 임선동, 마일영, 위재영 등 로테이션을 지켜던 선발들이 몽땅 나가떨어지면서 선발전체에 구멍이 난 상태였다. 다행히 돌아온 정민태가 어김없이 타고투저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1선발을 지켰고, 외국인 투수 바워스가 후반기에 잠시 이탈했지만 24경기에서 13승 평균자책점 3.01[63]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올리며 팀을 구했다. 구원쪽은 선수에 변동사항은 없었지만 첫해에 힘을 다뺀 조용준이 시즌 내내 박살나면서 고전했으나 권준헌이 커리어 하이를 찍고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을 받쳤다. 이밖에 신철인 이상열 등 7~8회에 나와줄 수 있는 계투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그리고 입단 후 졸곧 주전에 있던 막내 김수경이 이 때 부터 조용히 묻어져 나갔다(...)

한편 시즌 후 오프시즌에 주전 2루수인 박종호가 FA를 통해서 삼성으로 이적함에 따라, 김일경이나 서한규, 채종국같이 박종호에 비해서 뭔가 모자란 선수들이 센터라인을 지키게 되었다. 투수 권준헌한화 이글스로 가고, 외야수 송지만이 현대 유니콘스로 오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물론 현대가 압승을 거둔 트레이드였지만, 트레이드 초기에는 차라리 내야수를 받아왔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64]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송지만이 잘해주다보니 그런 의견들은 쑥 들어갔다.

2.5.5. 2004년: 왕조의 마지막 우승. 디펜딩 챔피언

2004년에 두산,삼성과 같이 치열한 선두권경쟁을 하던 끝에 정규시즌 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맞아 역사상 유례없는 명승부를 보였다. 최종 전적 4승 3무[65] 2패.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11월 1일 열린 9차전에서 극적으로 우승함으로써 4번째 우승을 하게 된다. 3번의 무승부 가운데 4차전에서 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노런이 나오기도 했다. 자세히 적자면 8회 2사까지 퍼펙트였다. 하지만 2사 후에 박진만에서 풀 카운트 승부끝에 볼넷을 주면서 퍼펙트는 무산되었고, 무승부가 되면서 노히트 노런도 공식 인정받지 못하고 말았다.
해태 이후 첫번째 2연패. 디펜딩 챔피언. 현대 이후 2연패에 성공한 팀은 삼성, SK, 두산 등이 있지만 해태 이후 첫번째 디펜딩 챔피언에 오른 현대가 해태 이후 처음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게 된다.

하지만, 2004년 우승이 현대의 마지막 우승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시즌이 끝난 뒤 주축선수 박진만과 심정수가 FA를 선언, 삼성으로 이적하게 되는데 특히 박진만의 삼성 이적은 구단은 물론 팬들에게 있어서도 굉장히 치명타였다. 그 후유증은 히어로즈로 바뀌고서도 강정호가 등장하기 전까지도 계속되었으니 상당히 치명적인셈. 이 무렵 박진만이 현대공홈에 가서 글을 썼는데, 팬들의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박진만이 영원히 현대맨으로 남아주길 바랬던 마음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 시기에 위재영이 구단과의 불화를 통해 방출되었고, SK에 입단하여 현대팬들과 아예 등져버린 사건이 생겼다. 대충 쉽게 생각하면 이범호가 FA로 기아 이적했을때 한화 팬들이 뭘 느꼈나를 생각하면 된다. 위재영은 SK에서 부활에 성공해 FA 계약까지 이끌어냈지만 이후 다시 추락해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위재영 문서를 보면 된다.[66]

그리고 2004년 이후로 매년 억대연봉을 수령하던 정민태가 1승도 못거두고 사라진걸 생각하면 악재가 한꺼번에 덮쳤다고 봐도 무방했다. 거기에 조용준도 2005년 어깨부상이후로 폭망했으니.... 망했어요

2.5.6. 2005년: 진만이도 없고, 정수도 없고...

2년에 걸쳐 빠져나간 박종호, 박진만 키스톤 콤비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시작한 2005년 시즌은 내야진의 실책 연발[67]과 체력저하 등을 이유로 큰 부진에 빠졌다. 5월까지만 해도 4~5위를 하면서 나름대로 분전했으나, 후반으로 가면서 막장화, 특히 방출의 기로에서 후반기에 폭발한 리오스에게 제대로 박살[68]나며 7위를 기록했다. 이는 97년 이후 최하위 성적이다.

타선은 그야말로 공갈 아니면 힘이었다. 우선 홈런과 타점 장타율 1위를 차지한 래리 서튼이 있었다. 서튼은 시즌 35개의 홈런과 102타점을 올렸고 타율도 0.292로 괜찮은 편이었다. 무엇보다 병살타가 단 3개 밖에 안되고 볼넷 삼진비도 크지않은 효자용병이었다. 다른 타자들도 파워면에서는 괜찮은 성적을 올렸다. 송지만은 홈런 4위를 기록했고 정성훈도 수비에서는 엉망이었지만 타격면에서는 팀을 이끄는데 도움이 됐다. 채종국, 김동수도 시즌 절반 정도를 소화했음에도 9~10홈런을 기록했으며 이숭용은 전반기에 홈런왕 페이스로 승승장구하다가 허벅지 부상으로 무너졌다.[69] 그러나 단 한 명의 3할타자도 없이 시즌을 마감해야했다.

투수진에서는 서튼과 함께 입단한 미키 캘러웨이가 주목받을만했다. 평균자책점은 3.97로 다소 떨어졌지만 시즌 다승 2위에 해당하는 16승을 올렸고 이닝도 3위와 크게 차이나는 197이닝으로 2위[70]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또 포수에서 투수로 전환한 황두성[71]이 기어코 터지면서 평균자책점 2위와 탈삼진 2위(공동 1위이므로 사실상 3위)를 차지했다. 마무리 조용준도 지난해만큼은 아니지만 27세이브를 기록하며 시즌 2위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물론 아에 엉망이 된 부분도 있었다. 홀드왕 이상열과 신철인, 마일영 등 쓸만한 중간계투가 전부 사라지면서 홀드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중간계투가 두고두고 고생을 했으나 이 시절 5~8위팀은 모두 엘롯기였으니[72] 큰 굴욕이었다. 그나마 LG와는 1리차로 순위가 갈렸다.

2.5.7. 2006년: 유니콘스 마지막 가을야구

그 다음해인 2006년, 현대는 전문가들 사이에 가장 유력한 꼴찌후보로 거론되었다. 시즌 개막전 이래 4연패하는 등 매우 부진했지만 5월달에 갑자기 치고올라와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와 삼성, 한화와 더불어 선두를 다퉜다. 결국에는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 상대로 1승 3패로 패하고 3위로 마감하게 된다.

이 시기의 소득은 신인선수들 이었는데, 하위픽으로 점찍어 놓았던 투수 장원삼이 대학에서 에이스가 되어서 억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으며, 이종범 이후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인 강정호가 이 시기에 입단했다. 또한, 황재균, 이현승이라는 준수한 선수들과 합법유망주 김영민[73] 입단한 것도 이 시기의 일. 그러나 이 시즌을 앞두고 전준호의 후계자로 생각했던 외야수가 상무에서 전역하자마자 방출당했는데[74] 당시만 해도 이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2.5.8. 2007년: 왕조의 멸망

그나마 지원을 해 주던 현대가의 지원이 2006년부터 끊겼다. 이는 현대가의 몇 안 되는 야빠로서 끊임없이 지원을 해 주던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대북송금 특검 사건으로 조사를 받다가 자살(2003년 8월)한 것과 유니콘스의 당시 최대주주인 현대전자가 채권단 소유의 기업인 하이닉스가 되었고 채권단에서 "너네 돈도 없는데 야구단 운영을 왜 함?" 이라며 태클 걸기 시작한 것이 복합된 결과였다. 정몽헌에 이어 현대그룹을 책임지게 된 현정은은 2005년을 마지막으로 매년 주던 40억의 지원을 끊었고, 이전까지 80억을 지원하던 현대자동차그룹과 40억을 지원하던 현대해상측에서도 현대그룹이 손을 턴 이상 그전부터 이런 지원에 항의하던 주주들을 납득시킬 명분이 없어서 지원을 중단하자 유니콘스에게 보내던 모든 지원금이 끊어졌다. 그나마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 덕에 현대해상 브랜드의 헬멧광고를 통해 15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당시 박용오 KBO 총재[75]가 2005년 5월 경 현정은 회장을 찾아가 상황 타개를 시도했으나, 돌아온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며 더 이상의 구단 지원은 어려우니 매각을 추진해 달라는 말 뿐. 또한 채권단이 장악한 하이닉스는 이제나 저제나 매각은 누구에게든지 하겠으나 지원은 한푼도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되자 이전까지 현대그룹의 사세가 기우는 것과 함께 삐걱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유지는 되던 현대 유니콘스 구단의 운영은 2006년부터 급격히 어려워졌다. KBO는 리그 전체의 규모 축소를 막기 위해 상황유지를 택했고, 매각이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모아온 야구발전기금을 담보하여 주거래 은행인 농협에서 받은 대출로 사실상 유니콘스를 위탁운영하면서 인수기업을 찾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2007년 시즌이 끝날때까지 매각은 성사되지 않았고, 이때까지 KBO가 26년간 모아온 140억의 야구기금은 유니콘스 운영비에 전부 소진되어버렸다.
사족이지만 이 일로 인해 이 시점 이후로 KBO의 독자적인 발언권은 현저히 약화되고 프로야구는 회원사들이 의사결정을 사실상 주도하게 된다.

첫번째 매각 시도는 농협중앙회와 있었다. 2007년 1월 16일, 언론은 "하이닉스의 경영 부진에 의해 농협중앙회에 야구단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고 일제히 보도하였다. 실제 하이닉스와 농협중앙회측은 유니콘스 주식과 부채를 134억원에 인수하는것에 동의하였고, 보도자료로 '농촌사랑야구단(가칭)' 을 이야기하고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기 위한 개보수 비용까지 산출하는 단계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니콘스 프런트의 퇴직금 부담 문제 및 농협중앙회 노동조합과 농민들의 반발, 무엇보다 주관부처인 농림부가 이 과정에서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모든 임원진의 업무정지 가능성까지 제기하자 1월 19일, 농협중앙회는 농민 등 여론의 반발을 이유로 인수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사실 이 인수에 대해, 비리로 인해 궁지에 몰려있던 농협중앙회 수뇌부가 정권의 비호를 받기 위해 무리하게 시도했다는 설이 돌았다. KBO는 6월까지도 계속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흘렸지만, 협상을 주도한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이 7월에 구속됨으로서 판은 완전히 뒤엎어졌다. 이후 신경 분리로 농협중앙회에서 NH농협은행이 분리되면서 농협이 프로야구판에 뛰어들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76]
여담으로, 예전에 마구마구 초기 시절에 유저들의 스크린샷 게시판에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들과 농협의 로고를 섞인 유니폼을 합성시켜 만든 사진이 있었는데 다들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농협이 현대 유니콘스와 너무 잘어울린다는 말이 나왔다. 안그래도 현대와 농협 두 기업 모두 색깔이 초록/노랑으로 일치하였기에 이런 드립이 나온지도 모른다.

농협 인수가 물 건너간 후, 미국의 한인 부동산회사인 프로스테이트 홀딩스가 KBO에 유니콘스의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쌍방울 레이더스의 연고지였던 전주 연고를 거론하면서 현대 팬들의 화를 돋군데다가 실체가 불분명한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일자 KBO 측에서는 실무진이 오면 이야기는 해보겠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야구계 전반적으로도 반응이 좋지 않자 이 기업은 알아서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게다가 프로스테이트가 전립선이라는 뜻이 있는지라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결국 유니콘스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2007년 시즌을 치러나가게 되었다. 2007년 시즌 개막 3연전부터 3연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4월에는 매우 심각한 부진에 빠지게 된다. 4월 말까지만 해도 7연패를 겪는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연패를 끊은 이후부터 5월6월에 치고 올라가 한때 4위권 내에 들어가기도 하였으나, 시즌 중에 용병투수 미키 캘러웨이가 부상으로 이탈함으로써 선발 투수진에서 김수경, 황두성, 조용훈, 송신영이 주축이 되나 틈만 나면 타자쪽이 말썽을 부리고 모처럼 타자들이 터지면 이번에는 투수들이 붕괴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즌 내내 투-타 불균형 엇박자가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수단들은 포기하지 않고, 프런트의 지원과 열정속에 구단 특유의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끝까지 분전했다.당시의 분위기. 이숭용과 김수경의 인터뷰

하지만, 야구계 전체가 몇십년간 모아온 돈으로 연명하는 주제에 바득바득 우겨서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떠나고[77], 인건비 절감 노력은 사실상 하나도 하지 않으며 성적에만 몰두하여 당시 야구계에서 큰 비난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2007년 10월 5일 한화 이글스와의 고별경기를 2:0 으로 승리함으로써 유종의 미를 거두며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시점에서, 팀 내외적으로 '현대' 라는 이름을 더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정규시즌 6위였지만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거둔 기적에 가까운 성적이었다.마지막 경기 영상

하지만, 야구기금은 이제 완전히 소진되었고, 이에 따라 유니콘스의 운명은 그야말로 초읽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매각이 되거나, 7개구단으로 축소되거나 길은 단지 두개뿐이었다.

두 번째 매각 시도는 조선/해운업 한창 대호황으로 활발하게 성장하던 STX였다. KBO 측에서 대놓고 기업명을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신상우 당시 KBO 총재가 9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뻗어나가는 중견기업이 현대를 인수할 것' 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스포츠 언론들은 이 중견기업이 STX를 지칭한다는 것을 KBO의 내부 소식통을 통해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10월 초면 인수가 끝날거라는 총재의 말과는 다르게 협상은 진전이 없었고, STX의 산업스파이 적발 등의 기업 내부 문제로 인해 두달여를 지지부진하게 끌다가 결국 11월말에야 공식적으로 무산되었다. 당시 STX에는 메인스폰서였던 경남FC의 인수 제안[78], V-리그 타이틀 스폰서 제안도 들어가있던 상황이었지만, 스포츠 마케팅 확대를 하지 않기로 함으로서 이뤄진 것은 없다[79]. 하지만 설령 STX가 인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 기업의 이후 상황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매각 사태가 몇년 뒤에 일어났을 것이다.[80]

세 번째 매각 시도는 KT였다. STX의 인수는 공식적으로 KBO가 협상결렬을 선언해서 좌절된 것이기에 또 다른 기업이 있는게 아니냐는 예측이 있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당시 KT 대표이사였던 이석채 회장의 스포츠를 통한 기업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이 시도는, 걸림돌이 되는 하이닉스와의 협상을 우회하기 위해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는 것이 아닌,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 해체 후 SK 와이번스로 재창단을 했던 방식을 취하기로 결정되었다. 임시 구단 사무실이 꾸려지고, 엠블렘이나 유니폼 시안이 나오고 프런트 구조나 FA영입 명단이나 코칭스탭 명단까지 떠돌기 시작할 정도로 KT의 야구단 참가는 기존 농협, STX 때와는 달리 꽤나 심도있게 진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KT가 요구한 연12차례 잠실구장 사용 문제와 그것에 동의한 KBO의 합의안 문제, 이에 대해 서울 연고권에 대한 보상으로 입성금을 내라는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구단의 공동성명 등이 불거지면서 일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모 스포츠언론의 기자[81]가 KT가 실무차원에서 고려하고 있던, 가입비로 야구기금 부채분과 서울입성금을 합쳐 185억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함으로서 60억만 내면 된다는 경영진측의 설명에도 탐탁치 않아하던 사외이사와 노조, 그리고 주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기존 7개 구단들이 요청한, 현대 유니콘스의 운영비로 써버린 야구기금을 KT 측이 부담하기로 한 부분을 KBO 이사회가 통과시키자 KT 측은 불만을 품고 공식적으로 인수를 포기한다.[82][83] 그러나 이는 명목상이며, 실제로는 KT가 야구단 창단을 매개로 정치권과의 교감을 시도했으나 그것이 잘 안되자 야구단 창단을 포기했다는 이상일 당시 KBO 사무차장의 추측도 있다. 이전 KIA의 해태 구단 인수나 SK의 야구단 창단 과정에서 당시 정계 유력인사들의 영향이 있었다는건 널리 퍼져있는 풍문 및 사실이기도 하고.

이 외에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와의 접촉설[84]도 있었고, 훗날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는 네오플의 인수 타진도 있었으나, KBO 수뇌부의 IT업계에 대한 생소함[85], 그리고 무엇보다 인수 의사를 타진할 당시에는 KT와의 협상이 한참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KT가 발을 뺀 후에는 모 언론사에 방송중계권을 포함하여 매각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하나 모두 좌절되었다.

새 시즌은 점점 다가오는데 모든 것이 좌절되고 물 건너가며 결국 7개구단으로의 축소가 점쳐지던 중,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투자회사에서 인수 의사를 밝힌다. 과거 재미교포 부동산회사인 프로스테이트 홀딩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네이밍 마케팅을 들고 온 수상쩍은 회사를 예전같았으면 당연히 거부했겠지만, 그때와는 달리 이제 KBO나 유니콘스의 상황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절박한 상황이었다.[86] 결국 2008년 1월 30일,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측에서 가입금 120억원을 납부함과 동시에 KBO가 현대 유니콘스를 대체할 새로운 8구단 창단 대상자로 승인하여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과 프런트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로 승계되었지만 현대 유니콘스 구단을 해체한 후 '히어로즈' 란 구단명으로 재창단함에 따라 사실상 인수임에도 불구, 공식적으로는 해체였기에 삼미-청보-태평양-현대로 이어지는 계보와 우승기록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대 유니콘스란 이름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족적은 절대 작지 않았다. 현대라는 이름으로 1996년 창단 ~ 2007년 팀 해체 12시즌 동안 4회 우승 / 8회 가을야구를 하였으며, KBO 프로야구 최초로 한시즌 팀 최다승인 91승을 만들었다. 현대가 돈대라고 비아낭을 듣긴해도 2000년까지는 현질로 2번 우승한 팀, 2001년 이후로는 돈이 없는데도 우승을 2번이나 한 신기한 팀이라고 불리운다.

3. 유니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역대 등번호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등번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해체 당시 선수단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선수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역대 선수

기준을 기반한 것으로 은퇴 및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별도로 표기한다.

6.1. 투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47 가내영 투수 1990(태평양) 1990~1998 2003(KIA) 광주동성고등학교 코치
제물포고등학교 감독
67 김민범 1992(태평양) 1992~2007 2007(현대) 넥센 히어로즈 원정기록원
45 김성태 2000(현대) 2000~2007 2014(넥센) 휘문고등학교 투수코치
30 김수경 1998(현대) 1998~2007 2014(고양) NC 다이노스 1군 불펜코치
11 김홍집 1993(태평양) 1993~2001 2003(한화) 부평구 리틀야구단 지도자
50 노환수 2003(현대) 2003~2007 2013(넥센)
29 마일영 2000(현대) 2000~2007 2015(한화) 한화 이글스 2군 불펜코치
93 박민주 2007(현대) 2007 2018 (NC)
60 박장희 1999(현대) 1999~2007 2008(우리) 두산 베어스 운영1팀 과장
21 박정현 1988(태평양) 1988~1998 2000(SK) 토론토 사회인 야구리그 (MPBL) 감독 겸 선수
49-27 박준수 2000(현대) 2000~2007 2012(KIA) kt wiz 1군 투수코치
21 배힘찬 2002(현대) 2002~2007 2017(KIA)
23 신철인 2000(현대) 2000~2007 2010(넥센) 신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14-19 송신영 1999(현대) 1999-2007 2017(한화) 넥센 히어로즈 잔류군 투수•재활코치
29 안병원 1992(태평양) 1992~1998 2003(LG) 원주고등학교 감독
33-59-55 이대환 2002(현대) 2002~2007 2015(NC) 창원 다이노스 투수코치
65 이동학 2000(현대) 2000~2007 2014(LG) 상인천중학교 야구부 코치
11 이상열 1996(한화) 2001~2007 2015(SK)
18 위재영 1995(태평양) 1995~2004 2007(SK)
윤성귀 2002(현대) 2002~2006 2006(현대)
54 임선동 1997(LG) 1999~2007 2007(현대) 연세대학교 투수코치
61 전준호 1994(태평양) 1994~2007 2011(SK) 부천고등학교 코치
28 정명원 1989(태평양) 1989~2000 2000(현대) kt wiz 잔류군 투수코치
20 정민태 1992(태평양) 1992~2007 2008(KIA) 한화 이글스 2군 투수코치
21-27 조규제 1991(쌍방울) 1998~2000
2003
2005(KIA) 삼성 라이온즈 2군 투수코치
51 조용준 2002(현대) 2002~2007 2010(넥센) 덕수고등학교 코치
57 조용훈 2006(현대) 2006~2007 2013(넥센)
41 조웅천 1990(태평양) 1989~2000 2009(SK)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
최동진 1999(현대) 1999~2002 2002(현대)
18 최영필 1997(현대) 1997~2001.6 2017(KIA) kt wiz 2군 투수코치
45 최원호 1996(현대) 1996~1999 2010(LG) SBS Sports 해설위원
파주 챌린저스 투수코치
31 최창호 1987(청보) 1987~1998 2002(LG) SK 와이번스 루키 책임 및 투수코치
40 최환인 2002(현대) 2002~2004 2006(롯데) 동산고등학교 코치
45 황두성 1997(삼성) 2001~2007 2011(넥센) 삼성 라이온즈 2군 트레이닝 코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50 김영민 투수 2006(현대) 2006~2007 KIA 타이거즈
21 손승락 2005(현대) 2005~2007 롯데 자이언츠
59 오재영 2004(현대) 2004-2007 키움 히어로즈
42 이보근 2005(현대) 2005-2007 키움 히어로즈
29-48 이현승 2006(현대) 2006~2007 두산 베어스
55 장원삼 2006(현대) 2006~2007 LG 트윈스
18 장효훈 2007(현대) 2007 롯데 자이언츠
40 전승윤 2005(현대) 2005-2007 kt 위즈

6.2. 포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12 강귀태 포수 2002(현대) 2002~2007 2013(KIA) 동산고등학교 타격코치
35 김동기 1986(청보) 1986~1996 1996(현대)
2 김상국 1986(빙그레) 1996~1997 1997(현대)
2 김동수 1990(LG) 2003~2007 2009(히어로즈) LG 트윈스 어시스턴트 코치
2-56 김필중 1998(현대) 1998~2004 2004(현대) SK 와이번스 2군 배터리코치
15 도명진 1995(태평양) 1996 1996(현대) 인천동막초등학교 감독
장안고등학교 코치
26 박경완 1991(쌍방울) 1998~2002 2013(SK)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2 유선정 2005(현대) 2006~2007 2016(넥센)
25 장광호 1992(태평양) 1992~1999,2001 2001(현대)
44 허준 2005(현대) 2005~2007 2014(NC) 백송고등학교 코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26 임태준 포수 2007(현대) 2007 질롱 코리아

6.3. 내야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34 강기웅[87] 2루수 1989(삼성) 1996 1996(현대) 삼성 라이온즈 3군/BB Ark 타격코치
36 공의식 내야수 1993(태평양) 1993, 1996~1997 시즌 중 1997(쌍방울)
52 권도영 내야수 2003(현대) 2003~2007 2011(넥센) 넥센 히어로즈 스카우터
55 권준헌 3루수, 투수[88] 1990(태평양) 1990~2003 2008(한화)
00 김경기 1루수, 3루수 1990(태평양) 1990~2000 시즌 중 2001(SK) 스포티비 해설가
14 김남형 내야수, 우익수 2007(현대) 2007 2014(넥센) 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14 김승권 내야수 1995(한화) 2005~2006 2006(현대) 외산중학교 감독
0-5 김일경 내야수(2루) 1997(현대) 1997~2007 2013(LG) SK 와이번스 2군 수비코치
3 김민우 내야수, 좌익수 2002(현대) 2002~2004 2016(KIA)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17 톰 퀸란 3루수 1987(토론토) 2000~2001 2002(LG)
31 박종호 2루수 1992(LG) 1998~2003 2010(LG)
7 박진만 유격수 1996(현대) 1996~2004 2015(SK)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작전코치
12 스캇 쿨바[89] 3루수 1989(텍사스) 1998 1999(투손) 볼티모어 오리올스 타격코치
3 신현철 유격수, 2루수, 3루수 2006(현대) 2006~2007 2017(kt)
9 손차훈 1993(태평양) 1993~1999 2001(SK) SK 와이번스 단장
7 서한규 내야수 1998(롯데) 2002~2007 2007(현대) SK 와이번스 루키군 야수코치
12-5 염경엽[90] 유격수 1991(태평양) 1991~2000 2000(현대) 前 넥센 히어로즈 감독
SK 와이번스 단장
SK 와이번스 감독
9 이근엽 1991(태평양) 1991~1997 1999(쌍방울) 前 부천북초등학교 코치
넥센 히어로즈 재활코치
10 이숭용[91] 1루수, 외야수 1994(태평양) 1994~2007 2011(넥센) kt wiz 단장
37 이재주 내야수 1992(태평양) 1992~2001 2009(KIA)
4 이명수 1루수, 2루수 1989(OB) 1998~2001 2001(현대) 휘문고등학교 감독
17 조중근 1루수, 좌익수 2001(SK) 2007 시즌 중 ~ 종료 2015(kt) kt wiz 2군 타격코치
58 조평호 내야수 2006(현대) 2006~2007 2018(NC)
16 정성훈 1루수 1999(해태) 2003~2007 2018(KIA) KIA 타이거즈 2군 코치
7 차화준 내야수 2005(현대) 2005~2007 2017(삼성)
15-9 채종국 유격수, 2루수 1998(현대) 1998~2007 시즌 중 2008(LG) 북일고등학교 코치
넥센 히어로즈 코치
한화 이글스 1군 수비코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25-17 강정호 유격수 2006(현대) 2006~2007 피츠버그 파이리츠
94 정훈 2루수 2006(현대) 2006~2007 롯데 자이언츠
34 오재일 내야수 2005(현대) 2005~2007 두산 베어스
68 유재신 내야수 2006(현대) 2006~2007 KIA 타이거즈
6 지석훈 2루수, 3루수, 유격수 2003(현대) 2003~2007 NC 다이노스
13 황재균 3루수, 유격수 2006(현대) 2006~2007 kt wiz

6.4. 외야수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은퇴년도 비고
25-36 강병식 1루수, 우익수 2002(현대) 2002~2007 2012(넥센) 넥센 히어로즈 1군 타격코치
44 강영수 외야수 1989(삼성) 1995~1997 1998(쌍방울)
강필선 외야수 1999(현대) 1999~2001 2003(롯데)
4 김갑중 외야수 1989(태평양) 1989~1998 1999(쌍방울) 송원대학교 감독
화순고등학교 감독
16-33 김광림 외야수 1984(OB) 1997~1998 1998(쌍방울)
8 김인호 내야수, 외야수 1989(롯데) 1990~2001 2001(현대)
33 래리 서튼 외야수 1992(캔자스) 2005 2007(KIA) 피츠버그 마이너 타격 코디네이터
62 박재홍 중견수, 우익수 1996(현대) 1996~2002 2012(SK) MBC SPORTS+ 해설위원
14 심재학 우익수 1995(LG) 2000 2008(KIA)
44-32 심정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 1994(OB) 2001~2004 2008(삼성)
17-25 송지만 외야수 1996(한화) 2004~2007 2014(넥센)
3 윤덕규 외야수 1985(MBC) 1992~1997 1997(현대)
32 오윤 외야수 2000(현대) 2000~2007 2015(한화) 화성 히어로즈 주루코치
46 이승주 외야수 2004(현대) 2004~2007 2013(고양)
39 이종욱 유격수 2003(현대) 2003~2005 2018(NC) NC 다이노스 D팀 작전·주루코치
51 이희성 외야수 1989(태평양) 1989~1996 1997(삼성)
47 장기영 유격수 2001(현대) 2001~2007 2018(한화)
46 장정석 외야수 1996(현대) 1996~2002 2004(KIA) 넥센 히어로즈 감독
64 전근표 외야수 2000(현대) 2000~2007 2010(한화) 세종대학교 감독
1 전준호 좌익수, 중견수 1991(롯데) 1997~2007 2009(히어로즈) NC 다이노스1군 주루코치
8 정수성 우익수 1997(현대) 1997~2007 2013(넥센) SK 와이번스 1군 주루코치
13 조재호 외야수 1998(현대) 1998~2005 2012(SK) 상무 피닉스 야구단 타격코치
24 최만호 외야수 1997(현대) 1997~2000 2009(롯데)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코치
46-33 최익성 외야수 1994(삼성) 2002~2003 2005(SK) 저니맨스포츠그룹 대표
저니맨 외인구단 구단주
24 클리프 브룸바 3루수, 외야수 2001(텍사스) 2003~2004, 2007 2009(히어로즈)
배번 이름 포지션 데뷔년도 삼청태현 소속기간 현재 소속팀
39 유한준 유격수 2004(현대) 2004~2007 kt wiz
42-31 이택근 포수, 1루수, 외야수 2003(현대) 2003~2007 키움 히어로즈

6.5. 역대 외국인 선수

  • USA: 미국
  • DOM: 도미니카 공화국
  • VEN: 베네수엘라
년도 이름 국적 포지션
1998 조 스트롱(Joe Strong) USA 투수
스캇 쿨바(Scott Coolbaugh) USA 내야수
1999 에디 피어슨(Eddie Pearson) USA 내야수
조지 카날리(George Canale)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브렌트 바워스(Brent Bowers)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2000 톰 퀸란(Tom Quinlan) USA 내야수
에디 윌리엄스(Eddie Williams)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대릴 브링클리(Darryl Brinkley)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시즌중 방출
찰스 카펜터(Charles Carpenter)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2001 케리 테일러(Kerry Tayler) USA 투수
톰 퀸란(Tom Quinlan) USA 내야수
J. R. 필립스(J. R. Philips)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오스카 엔리케스(Oscar Henriquez) VEN 투수 ↖ 대체 영입
2002 멜키 토레스(Melqui Torres) DOM 투수
코리 폴(Corey Paul) USA 내야수
다리오 베라스(Dario Veras) DOM 투수 시즌중 방출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USA 내야수 ↖ 대체 영입
2003 셰인 바워스(Shane Bowers) USA 투수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USA 내야수 시즌중 방출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USA 외야수 ↖ 대체 영입
2004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USA 외야수
마이클 피어리(Mike Fyhrie) USA 투수
2005 래리 서튼(Larry Sutton) USA 외야수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USA 투수
2006 래리 서튼(Larry Sutton) USA 외야수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USA 투수
2007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USA 외야수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USA 투수 시즌중 방출

7. 역대 성적(삼미, 청보, 태평양 시절 포함)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826위/6팀[92] 6위 삼미 슈퍼스타즈 80156500.188
1983 3위/6팀[93] 3위 100524710.525
1984 6위/6팀[94] 6위 100385930.392
1985[95] 6위/6팀[96] 6위 삼미 / 청보 110397010.358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866위/7팀[97]6위 청보 핀토스 108327420.302
19877위/7팀[98]7위108416520.389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887위/7팀[99]7위 태평양 돌핀스 108347310.319
19893위/7팀 3위 120625440.533
19905위/7팀 5위 120585930.496
19915위/8팀 5위 126556920.444
19926위/8팀 6위 126566730.456
19938위/8팀 8위 1263482100.310
19942위/8팀 준우승 126685530.552
19957위/8팀 7위 126487350.401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 이름 경기수 승률
1996 4위/8팀 준우승 현대 유니콘스 126675450.552
19976위/8팀 6위 126517140.421
19981위/8팀 우승 126814500.643
1999드림 3위/4팀 3위[100] 132685950.535
2000드림 1위/4팀 우승 13391[101]4020.695[102]
20012위/8팀 3위[103]133725740.558
20023위/8팀 4위[104]133705850.547
20031위/8팀 우승 133805120.611
20041위/8팀 우승 133755350.586
20057위/8팀 7위 126537030.431
2006 2위/8팀 3위[105]126705510.560
20076위/8팀 6위 126566910.448
KBO 통산 26 시즌 V4 3137 1466 1594 77 0.479

7.1. 역대 개인 성적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청태현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이므로 1982년부터 2007년까지의 기록만 서술한다.

7.1.1. 통산 성적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삼청태현 소속
등판경기 정명원 395경기 1989~2000
선발등판 정민태 269경기 1992~2000, 2003~2007
완투 장명부 61완투 1983~1985
완봉 양상문 9완봉 1987~1993
ERA 정명원 2.56 1989~2000
승리 정민태 124승 1992~2000, 2003~2007
패전 정민태 95패 1992~2000, 2003~2007
세이브 정명원 142세이브 1989~2000
홀드 이상열 50홀드 2001~2007
이닝 정민태 1827.1이닝 1992~2000, 2003~2007
탈삼진 정민태 1275개 1992~2000, 2003~2007
피안타 정민태 1774개 1992~2000, 2003~2007
피홈런 정민태 157개 1992~2000, 2003~2007
볼넷 김수경 644개 1998~2007
사구 김신부 61개 1986~1989

*타자
부분 이름 기록 삼청태현 소속
출장경기 이숭용 1566경기 1994~2007
타율 박재홍 0.292 1996~2002
출루율 박재홍 0.383 1996~2002
장타율 박재홍 0.526 1996~2002
타석 이숭용 5803타석 1994~2007
타수 이숭용 4970타수 1994~2007
안타 이숭용 1403안타 1994~2007
2루타 이숭용 278개 1994~2007
3루타 전준호 49개 1997~2007
홈런 박재홍 176홈런 1996~2002
타점 이숭용 736타점 1994~2007
득점 전준호 717득점 1997~2007
도루 전준호 289도루 1997~2007
볼넷 이숭용 626개 1994~2007
사구 이숭용 105개 1994~2007
삼진 이숭용 728개 1994~2007

7.1.2. 단일 시즌

굵은 글씨는 역대 최고 기록.

*투수
부분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이상열 81경기 2004
선발등판 장명부 44선발 1983
완투 장명부 36완투 1983
완봉 장명부 5완봉 1983
ERA 정명원 1.86 1998
승리 장명부 30승 1983
패전 장명부 25패 1985
세이브 정명원 40세이브 1994
홀드 이상열 21홀드 2004
이닝 장명부 427.1이닝 1983
탈삼진 장명부 220개 1983
작성 중

7.2.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삼성 라이온즈 89준PO : 2승 1패
00PO : 4승
04KS : 4승 3무 2패
준PO 1승, PO 1승,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10승 3무 3패
KIA 타이거즈 89PO : 3패
96KS : 2승 4패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2승 7패
한화 이글스 94PO : 3승
96준PO : 2승
06PO : 1승 3패
준PO 1승,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6승 3패
LG 트윈스 94KS : 4패
98KS : 4승 2패
02준PO : 2패
준PO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쌍방울 레이더스 96PO : 3승 2패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두산 베어스 00KS : 4승 3패
01PO : 1승 3패
PO 1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6패
SK 와이번스 03KS : 4승 3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3패

8. 응원가

1996년 창단 때부터 마지막 시즌인 2007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홍서범조갑경 부부가 불렀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내용은 2000년대 중반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응원가 관련 게시물의 댓글에 누군가가 '홍서범-조갑경이 부른 것 같다'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적은 것이 갤러리 내에서 와전된 후 꽤 널리 퍼져 2018년 현재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106] 응원가를 부른 가수에 대한 정보가 확인되면 추가 바람.

들어보기
이 함성 모아서 너희에게 주리라 이루자 신화창조를
우리의 희망을 모두 다 모아서 힘차게 달려 보아라
최강의 유니콘스[107] 꿈의 구단 유니콘스
지칠줄 모르는 너희의 용기
최강의 유니콘스 꿈의 구단 유니콘스
패기와 정열의 너희의 이름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이상이다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친구다
현대 유니콘스 너희를 사랑하리라
우리의 현대 유니콘스

9. 역대 캐치프레이즈

  • 1996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108]
  • 1997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1998년: 도전! '98!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1999년: 도전! 2연패!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0년: 정상 새천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1년: 정상 2001!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2년: 도전 2002!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3년: 새로운 도전! 승리의 이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4년: 불패신화! 끝없는 도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5년: 멋진 승리, 끝없는 도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6년: 도전! 열정! 투혼!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7년: 새로운 각오! 새로운 신화!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10. 사건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현대 유니콘스/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 여담

  • 야구계에서 2007년은 그야말로 눈물의 한 해라고 할 만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라는 한국 야구의 양대 비극이 모두 2007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바로 다음해인 2008년, 한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라는 희대의 빅이벤트[109] 속에 엄청난 팬덤 증가와 중흥을 맞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니콘스 매각을 진행했다면 프로야구단 인수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여론의 추이는 2007년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을테고,[110] 동대문야구장의 대체구장으로 계획된 고척 스카이돔[111]으로 인해 이런저런 고통을 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구)유니콘스-(현)히어로즈 팬들로서는 '1년만 더 버텼더라면...' 하는 소리가 나오는 천추의 한이 될만한 일. 뭐 결국, 다 때려치우고 목동 야구장에 갔다.
  • 하지만 이미 이 시기에는 KBO가 오랫동안 모아왔던 야구기금을 유니콘스를 대신 운영하는데 다 털어먹었기에 여력이 소진된 상황이었고[112], 여기에 발전기금으로 끌어다 쓰던 유니콘스 구단측은 끝끝내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가는등 말년의 쌍방울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처럼 뼈를 깎는 인건비 절감 노력을 하긴 커녕 기존에 쓰던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도 아예 하지도 않고, 야구계 전체의 돈을 탕진해서 자기들 성적을 내려 한다는 인식이 박힌 다른 구단들로부터 시선이 싸늘해진 상황이었다. 2007년 시즌 말의 상황은 그야말로 급박했으며, 더이상 시간을 끄는건 그냥 불가능했다. 게다가 결국 유니콘스가 해체되어 7개구단 체제가 되면 추가로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구단이 있다는 루머는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그렇다면 리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 상황이었다. KBO가 센테니얼의 창단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수 있다.
  • 사실, 2008년의 프로야구 인기의 부활[113]에는 오랫동안 야구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유니콘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영향이 있었고, 만약은 모르는 것이지만 이 문제가 계속 되었다면 2008년 이후의 인기부활이 가능했을지는 불명확하다.[114]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한 동안 메인스폰서를 구하는데 애를 먹은 것에서 볼 수있듯, 리그의 인기증가를 통한 경제적 효과가 기업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이며, 기업이 이를 체감하고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 KBO는 지나치게 일찍 협상사실을 공개하거나 기존 구단과의 물밑협상을 거치지 않는 등 매각 협상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미 야구계의 여력은 소진된 상태에서 언제 또 다시 온풍이 불지 알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들마저 듣도보도 못한 센테니얼에게 유니콘스를 넘기는 선택에 동의할 정도였던걸 생각한다면, KBO의 선택을 그저 매도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 최훈GM(웹툰)에서 수원 램스의 기본 컨셉을 이 팀에서 가져왔고, 램스라는 이름은 세인트루이스 램스에서 따왔다. 다만 후속작인 클로저 이상용에서는 넥센 히어로즈 쪽을 참고한 듯.
  • 2019년 현재, 삼청태현의 구단역사에서 현대 유니콘스 시절만 따로 계산하면 KBO 리그에 존재했던 모든 구단 가운데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에게 역대 상대 전적에서 앞서고 있는 유일한 구단이 된다[115][116] 특히 조용준미키 캘러웨이는 해체된 지 1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에도 삼성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삼성 상대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자랑했다.2004년 어린이날에 삼성에 9회까지 8-4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연장까지 끌고가서 14-10으로 가져간 경기는 삼성에게 '창단 후 10연패'라는 기록하게 한 시발점으로 삼성팬들에게 회자되고 있고, 같은해 한국시리즈 배영수가 10이닝을 노히트 노런으로 끌고 갔어도 결국 경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도 있는데다, 역시나 배영수의 글러브 패대기 장면을 만들었던 당시 무명선수급 인지도였던 백업 전근표의 한 방까지... 그러다보니 현대가 삼성을 상대로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던 시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팬들의 각인으로는 항상 안풀리거나 발목을 잡는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를 꼽아서 회자하곤 한다. 삼성팬 중에서는 이러한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현대 선수단은 유명선수 무명선수 신인 베테랑 할 것 없이 전부 삼나쌩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팬도 있었을 정도다. 정규 시즌 이외에도 2000년 플레이오프 현대 4전 전승, 2004년 한국시리즈 현대 4승 2패 등 삼성은 현대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는 당시 유니콘스의 프론트가 동종업계 라이벌이었던 삼성과의 승부결과에 굉장히 민감했고, 이에 따른 추가적인 인센티브까지 부여해서 따로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17]
  • 왕조를 구축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인기 구단이었다. 사실 현대도 1995년 말 태평양을 인수해서 인천에 터를 잡고 있던 1999년까지는 인천에서 인기가 꽤 높았던 팀이었다. 인천에 계속 살았다면 달랐겠지만 2000년 1월 명목상의 연고지 서울을 가기 위해서 인천 연고권을 신생 창단팀인 SK 와이번스에 넘겼고 경기도 수원시를 임시 연고지로 ~불법으로 들어가 삼고 경기를 했다. 그러니 수원 주민들은 현대 유니콘스를 그저 우리 동네에 잠깐 있다가 서울로 갈 팀으로 생각 할 수 밖에 없었기에 당시 수원야구장은 늘 비어 있었다.[118]
  • SK가 2012년에 이 구단의 모기업이자 대주주인 하이닉스를 인수했는데, 만약 이 구단이 그때까지 해체되고 않고 유지되었다면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를 망설였거나 과거 프로농구때처럼 두 개의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게 되는 난처한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참고.

12. 관련 문서

  • 삼청태현
  • 키움 히어로즈 - 현대의 해체 이후 선수단과 코치들을 기반으로 재창단된 인적 계승팀이다.
  • SK 와이번스 - 현대의 연고이전 이후 인천의 새 주인이 되었다.
  • kt wiz - 현대가 임시로 사용하던 홈구장. 수원구장의 새 주인이 되었다. KT가 한때 현대 인수(정확히는 해체 후 재창단) 직전까지 갔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취소가 되었었다.


[1] 전신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일이다. 공식적으로 현대 유니콘스는 삼청태의 역사를 고스란히 계승하였으며 삼청태와 동일한 팀이므로 1982년부터 시작된 원년 팀으로 분류할 수 있다.[2] 전신팀 태평양 돌핀스의 법인 설립일로 추정된다. 당시 태평양화학은 1987년 10월 6일 풍한방직 측과 청보 핀토스 구단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3] 삼청태현으로 일컬어지는 네 팀 중 유일하게 서울에서 창단식을 치렀다. 정확한 창단식 장소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여담으로 삼미 슈퍼스타즈는 신포동 인천상공회의소 건물에서 창단식을 했고 시즌 도중에 창단된 청보 핀토스숭의야구장에서 후기리그 개막경기 직전에 창단식을 치렀으며 태평양 돌핀스는 주안 옛 시민회관에서 창단식을 진행했다.[4] 훗날 인천의 새 주인이 된 SK 와이번스SK그룹 소유 호텔인 서울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창단식을 치렀다.[5] 미국의 베이스볼 레퍼런스에도 연고지가 Seoul로 되어있긴 하다.[6] LG두산에 권리금을 내지 않아서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7] 경기도 수원은 당시 SK의 광역연고지역이었고, 현대는 SK에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했다. 관련 기사[8] 1999년까지는 제2 홈구장.[9] 흔히 '원당 야구장'이라 불리긴 했는데, 정확히는 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에 있었던 야구장이었고 이름과 달리 소재지는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다. 유니콘스 해체 이후에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히어로즈 야구단강진으로 2군을 보내기 전까지 잠시 이 곳을 빌렸고,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10]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공석. 구단주 대행은 강명구[11] 본래는 현대 유니콘스의 사장이 강명구였고, 단장이 김용휘였다. 그러나, 2003년 정몽헌 회장이 세상을 뜨고서 강명구 사장이 구단주대행을 맡고, 김용휘 단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12] 인천연고팀 역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13]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4] 경기 당 평균 7,560명[15]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6] 경기 당 평균 1,797명[17] 이동학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은 두각을 나타낸 신인 자체가 보이지 않은 신인 흉년의 해였다. 또 다른 신인왕 후보라 해봐야 이택근이 있었는데 이택근도 신인왕을 받을 성적은 전혀 아니었다.[18] 조용준이 한국시리즈 MVP를 받기도 했었고, 오재영싸융짱문오에 포함될 정도가 되긴했어도, 잘 활약해주고있다. 반면에 이동학은 2009년 방출되어, 한화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거기서도 방출되어서, LG에 입단, 결국 2014 시즌중 방출됐다.[19] 현대의 2연패 직후 삼성 라이온즈가 2005~2006년에 2연패를 달성했으며, 그 뒤를 이어 SK 와이번스도 2007~2008년 2연패를 달성했다.[20] 물론 공식적으로는 현대가 삼청태의 역사를 계승했기 때문에 원년팀으로 분류되어 82년부터 2007년까지 26년간 4회우승이 된다. 96년 준우승, 98우승 00우승 01 3위 02 4위 03/04 우승, 06 2위[21] 사실 인천에서도 1996년을 제외하면 평관 4~5천명 정도로 관중 동원면에서 리그 중하위권 수준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22] 정확히는 휴전선 이북의 강원도 통천군 출신. 인천과도 인연이 있던 것이 젊은 시절 인천항에서 부둣가 하역 노동자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의 일대기 중 빈대와 연관된 스토리가 있는데 인천항 하역 노동자 시절의 이야기다.[23] 하지만 1984년 울산 현대 축구단을 창단하면서 프로축구에는 참여했다.[24] 1970년대부터 재벌들에게 스포츠 종목을 강제로 할당해서 협회 회장을 맡게했다. 이후 재벌들이 회삿돈으로 스포츠단체를 운영하면서 국제대회 성적을 책임지게 된다. 국가 예산으로 해야 할 스포츠 진흥을 재벌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 때 현대건설 이명박 사장 - 대한수영연맹 회장, 정몽구 - 대한양궁협회 회장이었다. 양궁협회 회장은 현재 정몽구 회장의 아들 정의선 씨가 하고 있다. 삼성 - 레슬링, 두산 - 유도, 한화 - 복싱 등 지금도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이 이런 식이다.[25] 이 와중에 울산 지역의 유일한 고교야구 팀으로 창단했던 현대공업고등학교 야구부가 지역 야구의 취약한 기반을 이겨내지 못하고 해체되었다.[26] 다만 박진만은 공식적으로는 체육특기자 수능 점수 상한선인 40점을 넘지 못해 진학이 좌절된 것으로 발표되었다.[27] 해태에서 지명했으나 해태 안가겠다고 우기면서 한국 프로야구 룰을 무시. 실업구단인 현대 피닉스에 입단했다가 결국 현대와 해태가 트레이드를 하는 형식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다.[28] 박재홍의 타격시비 등에 휘말려 후반기에 4위로 가라앉았다[29] 태평양 돌핀스 시절인 1994년 플레이오프에서도 내리 3연승으로 한화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전례가 있다.[30] KBO 공식기록으로는 노히트 노런이 13회 집계되었으나 이는 정규시즌 기록들만 집계된 것이다. 정규시즌 기록과 포스트시즌 기록은 별개로 취급. 단적인 예로 한 경기 4홈런 기록. 정규시즌 기록은 박경완, 박병호, 최정, 윌린 로사리오, 한동민까지 5명이 달성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오재일이 한 경기 4홈런을 달성한 유일한 타자로 기록되어 있다.[31] 1번타자 김인호의 투혼이 빛났으나 타율은 2할대 초반이었으며 고질적인 2루수, 3루수 공백이 컸다. 포수도 주전 김동기의 노쇠화로 장광호가 주전이었으나 타율이 너무 낮았다. 다만 박재홍과 김경기가 50개를 합작한 홈런 부문에서는 1위를 기록했던 터라 예전마냥 우습게 볼만한 타격도 아니었다.[32] 당시는 세이브포인트제 - 구원 - 으로 구원1위는 구대성[33] 전준호 영입 이전만 해도 현대에서 1번타자는 김인호였다. 김인호는 근성하나는 강한 선수였지만(단적인 예로 1996년 포스트시즌 1차전 때 정민철의 볼에 일부러 맞다시피하며 출루하려 했다), 타율이나 장타면에서는 너무 떨어졌기 때문에 1번 타자로 활약하기에는 부족했다. 전준호 트레이드에 대해서 지금은 '프로야구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 1순위'로 꼽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롯데측 입장에서는 '전준호는 나이도 있고 기복이 심한 선수'라는 인식 때문에 계륵같은 존재로 여겼고, 거기다 연봉협상에서 고작 몇백만원 더주기 싫은 것도 있었다(…). 당시 롯데는 전준호 대체로 젊은 유망주였던 김대익을 크게 기대했으나 주루가 시망.... 김주찬이 올 때까지 거의 5년 동안 제대로 된 리드오프가 존재하지 않았다.[34] 126경기 체제 96경기 출장 이상하게 출루/장타율이 높았던게 시즌이 끝나고 예상치 못한 골든글러브를 받으면서 현대는 그나마 위안을 풀었다고...[35] 근데 웃긴 건 마구마구에서 쌍방울 소속 카드이다. 운영자에게 건의를 했지만 돌아오는건 메크로 현대 역시 최창호를 LG로 보냈는데 현대 카드로 남아있다. 그와중에 뜬금없는 서한규 카드가 떡하니 있다... 서한규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 소속...[36] 하지만, 유일한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마무리투수 용병 조 스트롱. 6승 5패 27세이브로 스탯상으로만 보면 괜찮은 성적으로 보이지만 겨우겨우 세이브를 따는 모습을 보였으며 Whip(이닝당 출루허용))이 1.60이나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올 때마다 맨날 불만 질렀다(…). 결국 한국시리즈에는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중에 메이저리그도 잠깐 밟기도 했다.[37] 다만 이 때 최원호의 10승은 구원승 1승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1선발부터 5선발까지 전원 선발 10승은 2015년 삼성 라이온즈(윤성환-알프레도 피가로-차우찬-타일러 클로이드-장원삼)과 2018년 두산 베어스(조쉬 린드블럼-세스 후랭코프-이용찬-이영하-유희관)이 달성하게 된다.[38]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패했다[39] 이적 후에는 99년까지 선발로 뛰었다[40] 당시 LG는 태평양-현대전에 특히 강했고, 현대 입장에서는 LG하고 상대하는걸 극히 꺼렸다. 플레이오프 LG-삼성전에서 현대팬들은 삼성이 이기길 내심 바랐다. 그러나 LG가 승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 한국시리즈 시작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LG가 이길 거라고 예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민태, 박재홍의 맹활약에 힘입어 4승 2패로 우승.[41] 사실 현대는 이해에도 가을야구에 나갈수 있었긴 했다. 10경기 남긴 상태까지 매직리그 2위인 한화 이글스에게 2.5경기차를 앞서서 와일드 카드로 준플레이오프에 나갈수 있었지만 하필 마지막 3연전에 한화를 만나 3연전을 스윕을 당해서...역으로 한화에게 2.5경기차로 진출권을 내줬다. 이해에도 만약 진출에 성공했더라면 현대는 7년 연속 포스트 시즌(98~04시즌)에 진출 성공 했을지도... 근데. 와일드 카드 제도는 지들이 도입하자고 해놓고 못갔다... 허나, 현대 선수단을 인수한 키움 히어로즈가 이 후 2015년. 2018년에 와일드카드 전 승리를 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그리고 2018년에 한화를 만나서 복수를 했다 카더라[42] 조규제, 김홍집 외에는 이렇다할 좌완 선발이 없어서 마일영을 데려왔다[43] 90년대 최후의 20승 투수[44] 포수 박경완, 1루수 이숭용, 2루수 박종호, 유격수 박진만, 3루수 퀸란, 좌익수 전준호(정작 전준호는 시즌 전 김경기와 선수협 문제로 다투어서 부상으로 얼마 뛰질 못했다), 중견수 박재홍, 우익수 심재학, 지명타자 에디 윌리엄스(윌리엄스도 장타도 있고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잔병치레가 많아서 시즌 중 퇴출된다. 사실 이 선수는 MLB에서 뛰던 준주전 야수로 파워면에서는 꿇리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내야 수비진이 ㄷㄷㄷ[45] 시즌 최다승 기록은 2016년 10월 4일, 두산 베어스가 홈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하여 92승을 달성하며 깨진다. 최종 기록은 93승이었지만, 최고승률을 기록하지는 못 했다.[46] 0.695의 승률을 2015년 프로야구 경기수인 144경기에 대입해 보면 무려 100승 44패라는 성적이 나온다.[47] 1차전~3차전까지 일방적으로 이겼으나, 4차전부터 6차전까지 두산의 극적인 추격으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사상 초유의 리버스 스윕이 나오는가 했으나, 7차전은 수원야구장을 가득 메운 두산 팬들의 기세에도 불구하고 3루수 톰 퀸란의 활약에 힘입어 우승.[48] 지금 시각으로 보면 '그때는 어느 누가 현대 감독으로 앉혀놔도 우승은 기본!' 이렇게 인지하는데, 당시 2000년 시즌 시작 전에만 해도 현대가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성적을 낼 것이라 기대했던 이는 보기 드물었다.[49] 2018년 종료 기준 리그에서 공격지표 wRC+ 와 투구 지표 ERA+ 가 둘다 9위인데 역대팀 중 이 2개가 모두 10위 안에 든 팀은 2000년 현대가 유일하다. 또 수비무관투구 지표 FIP+는 역대 2위로서 그야말로 공수에서 모두 KBO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낸것이다.[50] 98년 이적 후 2년 동안 선발로 뛰었지만 2000년에는 목 부상 탓인지 9경기(중간계투 위주)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마일영이 그 해 조규제의 공백을 메꿔줬다[51] 이후 매니저 등을 거치면서 2012년 가을, 후신격 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감독을 2016년 시즌까지 했다.[52] 이상하게 전성기와 쇠퇴를 만든게 김시진[53] 신철인은 당시 투수 고과 부분 팀내 연봉 협상 1위 대상이였다.[54] 빅리그에서 백업으로 좀 뛰던 선수였다.[55] 2001년과 2002년은 2015년 현재와 같은 3명 보유 2명 출전이 가능했다.[56]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57] 당시 정성훈은 기아의 주전 3루수였는데, 1999년에 1차지명으로 데려온 선수였다. 2002년에 대학리그 최고의 내야수인 이현곤이 입단하자 이현곤의 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정성훈을 내보냈는데, 결국 정성훈을 버린 것이 잘못된 것임은 나중에 보여진다.[58] 이숭용은 1루수 이미지가 강한 편이지만, 김경기나 쿨바, 이명수가 있을 때는 외야로도 나갔다.[59] 말이 마무리지 사실상 7회와 8회에 등판해 끝까지 던지는 투수인 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체구 때문에 고교 졸업 당시 박한 평가를 받았던 조용준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부상의 덫에 걸렸고 불성실한 재활까지 겹치면서 커리어를 일찍 마감하고 말았다.[60] 특히 2, 3차전을 잡아낸 SK가 선 2승 그것도 2연승을 한 팀이 우승했다는 과거 기록을 감안했을 때 우승에 가깝지않냐는 말도 많았다.[61] 1,4,7차전에 선발로 나와 승리를 얻어냈고, 특히 7차전에서는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테이핑까지 감아가며 완봉승을 하였다. 정민태가 이렇게 활약하지 않았다면 현대의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62] 기아라서 가능했지 해태였다면.... 개드립 나왔을 듯 하다.[63] 2003년 평균자책점 1위 기록이다.[64] 참고로 이 시기의 한화 센터라인 내야수는 전설의 임과장님부터 시작해서 원바운드 송구의 백재호, 3푼이 한상훈유격수 꽃범호 등으로 구성된 최악의 내야진이었다.[65] 일정 시간 이후에는 새로운 이닝에 돌입할 수 없는 규칙으로 인해 무승부가 많이 나왔다.[66] 이범호의 투수판 이라고 보면 된다.[67] 특히 정성훈은 3루수임에도 18개 채종국은 2루수, 그것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절반이나 덜뛰었음에도 13개의 실책을 기록했다.[68] 이 고통은 2007년에도 계속된다.[69] 그 이후로 이숭용은 두자릿수 홈런을 못치게 된다.[70] 1위는 205이닝의 리오스[71] 1997년 삼성입단, 1999년 임창용 트레이드때 양준혁과 묶여서 해태로 갔으나, 2000년에 방출되고서 2001년 현대로 와서 2군에서만 던지고 있었다.[72] 5위 롯데, 6위 LG, 7위 현대, 8위 기아[73] 김세현(야구선수) 개명 전 이름.[74] 그나마 다행인건지 당해년도 바로 고교 동창 손시헌의 도움으로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다.[75] 1937~2009.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정몽헌과 비슷하게 집안 권력 싸움에 밀리고, 실의에 빠져 자살해버린다. KBO 총재로서 선수협 창설에 결사반대하고 특히나 공중파 TV에 튀어나와서는 자꾸 이러면 프로야구를 아예 없애버린다고 하여 야구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은 바 있다.[76] 현행 법령상 금융권은 본업과 무관한 계열사를 둘 수 없기 때문에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에 손을 댈 수 없다. 이들 리그는 참가 구단들에게 법인화=단독 계열사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프로농구나 프로배구는 법인화를 요구하지 않는 일종의 편법을 써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야구와 축구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77] 이런 궁지에 몰렸던 말년의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는 국내로 전지훈련을 떠났다[78] 이에 대해 모 유명 해설가 출신 축구인은 세계로 뻗어나가려면 야구따위가 아닌 축구팀을 응당 인수해야 맞다고 훈수두기를 시도해서 인터넷에선 야구 vs 축구 키배가 불붙기도 했다[79] V리그 타이틀 스폰서 제안에는 동의했지만 개막 열흘전 갑작스럽게 철회. 이후 NH농협은행이 10년 동안 V-리그의 스폰서를 맡게 된다.[80] 그래도 STX가 위기에 빠진 2012년은 프로야구 인기가 정점에 다다른 상태라 제2의 유니콘스 사태까지는 가지 않고 쉽게 인수처를 찾았을 가능성도 크다.[81] 익히 알려진것과 달리 박동희의 (협상 공개 이전에 나왔던) '오늘의 단어' 드립은 KT의 인수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후로도 유니폼 디자인 시안 결정 등 인수작업이 계속 추진된게 그 증거. 말 그대로 오비이락이 된 상황.[82] 이후 185억 투자 기사를 썼던 스포츠조선의 신모 기자는 KT의 인수 포기 이후 야구팬들의 비난을 받게 되자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착잡하다'를 '찹찹하다'로 잘못 쓴데다가('찹찹하다'는 표준어이기는 하지만 '착잡하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단어이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비난을 자초하게 된다.이로 인해 이 기자는 야구계 뉴스에선 사실상 퇴출되고 만다.[83] 결국 KT는 2014년 현대가 연고지로 삼던 수원에서 10번째 구단 kt wiz를 창단하여 2015년 정식으로 1군 무대에 데뷔했으며, 수원에서도 7년 6개월만에 프로야구가 다시 열리게 되었다.[84] KBO에서는 공식적으로 부인.[85] 이런 인식은 NC가 9구단 창단에 뛰어든 후에도 계속 있었고 실제 1군에 진입하고 나서야 조금 걷힌다.[86] 이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한 곳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접촉 중이 기업이 3개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는 보안 상 일부러 그렇다고 언론플레이를 했을 뿐 실제로는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하나 뿐이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87] 본인이 영원한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기에 현대로 오자마자 은퇴를 선언해버렸다.[88] 2000년 투수 전업[89] 등록명은 스코트 쿨바였다. 다들 성만 등록명으로 쓰는걸 생각하면 특이 케이스.[90] 2007년 당시 75번을 달고 수비코치를 맡았으며 후신격 팀인 넥센 히어로즈의 제 3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다시 올려놨다. 2016년 자진사퇴 후 2017년 SK 와이번스 단장으로 취임되었고, 2019년 부터 sk의 감독직을 맡는다.[91] 히어로즈에서 은퇴. 정민태와 함께 팀의 프랜차이저 스타였던 인물이다.[92] 전기 6위, 후기 6위[93] 전기 2위, 후기 2위[94] 전기 6위, 후기 6위[95] 전기리그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로 활동.[96] 전기 6위, 후기 6위[97] 전기 6위, 후기 7위[98] 전기 7위, 후기 6위[99] 전기 6위, 후기 7위[100] 전체 5위[101] 2016년 두산 베어스가 93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KBO 리그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102] KBO 리그 단일시즌 승률 3위. 1위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70.6%, 2위는 1982년 OB 베어스의 70.0%. 다만 1985년과 1982년은 전후기리그로 시즌을 나눠 치르던 체제였기 때문에 1989년부터 제정된 단일시즌 체제로 한정하면 이 기록이 최고 승률 기록이다.[103] 페넌트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두산의 우승으로 최종 3위.[104] 페넌트레이스 3위였지만, 4위 팀 LG의 한국 시리즈 진출로 최종 4위.[105] 페넌트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한화의 한국시리즈 진출로 최종 3위.[106] 게다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홍서범LG 트윈스가 지면 다음날 집안 분위기가 개판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LG 트윈스의 광팬이다. 때문에 1996년 창단 당시 현대 구단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응원가 녹음 제안을 했다고 하더라도 LG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한 홍서범이 수긍을 했겠느냐는 의견이 있다.[107] 몬더그린 현상으로 인해 이 대목이 '최강희 눈이 커'(...)라고 들리기도 했다. 불암콩콩코믹스에도 이 몬더그린을 사용했다.[108] 창단 첫 해부터 해체될 때까지 이 캐치프레이즈는 변하지 않았다. 일종의 구단 기본 슬로건이 된 셈. 기본형 문구 앞에 뭔가의 낱말이 붙는 형태로 캐치프레이즈가 정해졌다.[109] 허구연은 한 때 해설을 맡을 때 현대와 히어로즈를 그리 좋은 해설을 하지 않았다.[110] 다만 많은 유니콘스 팬들이 바라는 구단 역사의 공식적 승계는 해당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 인수했다 해도 어려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7년간 구단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한 명목상의 모기업 하이닉스가 뜬금없이 나타나 인수대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 그렇게 되면 역사 승계를 할 수 있으니깐.[111] 고척 스카이돔이 동대문야구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건 원래 고척동에 지으려던 간이야구장 이야기다. 이 야구장이 2만석 규모의 정규야구장으로 확대된 것은 명백히 동대문의 반대급부였고 이것이 다시 확대되어 돔구장이 되었으니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지 않았다면 고척돔은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112] 야구계 인사 일부는 기존 구단들에게서 운영비를 추렴해서 현대가 1년만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KT의 인수시도가 사외이사들과 주주들에 의해서 엎어졌듯이 이미 적자투성이인 프로야구판에서 자신의 기업도 아닌 남의 회사인 현정은[120]의 '그룹'을 홍보하는데 당연히, 그 어느 기업도 자기 회사의 돈을 선뜻 내놓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113]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2008시즌 초부터 이미 프로야구의 인기는 관중수에서 입증되듯이 부활하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런 추세에서 부스터 역할을 했지 유일한 촉매 역할을 한게 아니다.[114] 당장 이웃종목K리그만 봐도 2002년 FIFA 월드컵으로 조성된 리그 붐을 받아먹을 준비[121]가 되어있지 않았고, 기회가 왔을때 허무하게 날려먹어서 여전히 흥행에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국제대회의 호성적은 리그 붐에 기여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리그의 앞날을 하루 아침에 밝게 비춰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115] 121승 94패 6무[116] 물론 삼청태현은 공식적으로 동일한 한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전적은 현대시절에 국한한 결과이며 당연히 통상적이며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삼청태현의 통합 전적은 삼성한테 일방적으로 그냥(..) 뒤진다.[117] 투수조 조장인 정명원이나 정민태 같은 선수들[118] 또한 수원시민들은 1996 시즌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이 많은 스타를 보유하며 우승도 많이 하고 축구계에서 힘을 썼기에 뜨내기에 불과했던 현대에 마음을 줄 수 없었다. 다만 2015년 부터 kt 위즈가 수원을 확실한 연고지로 삼고 리그에 참가하면서 성적이 나빠도 사랑을 해줬다. 특히, 이 팀의 응원단장인 김주일씨는 KT 응원단장에 오기 전 KIA 타이거즈 응원단장 시절 때 부터 팬을 위한 이벤트를 엄청 준비 했었다.[119] 그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