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8 19:35:22

김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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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심판을 보는 모습. 2014년 주심을 볼 때 메이저리그 포수들이 많이 쓰는 마스크 결합 헬멧을 착용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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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마스크 결합 헬멧을 착용한 모습. 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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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시즌 후 양복을 차려입고 인터뷰를 하는 모습.
KBO 심판 No.38
김풍기 (金豊氣 / Pong-ki Kim)
생년월일 1966년 10월 19일
본관 강릉 김씨[2]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휘문중- 서울고-연세대 [3]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9년 신고선수 연습생 입단(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1989~1991)
쌍방울 레이더스(1992)
현직 KBO 심판위원장(2016.12.9~)
친척 사촌동생 김경기, 숙부 김진영, 매제 염경엽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8번
임신근(1988) 김풍기(1989~1991) 오상욱(1992)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4번
김성곤(1991) 김풍기(1992) 유현승(1994~1998)

1. 개요2. 경력3. 특징4. 기타 이모저모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를 통해 유명해진(?) KBO 리그심판이다. 별명은 깐풍기.

한국프로야구 심판의 미덕인 퇴근본능, 지 맘대로 스트라이크 존 등을 잘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KBO 최악의 심판이라는 소문이 데이터로도 입증되었다. 2017년 한 기사에 따르면, 비디오판정(합의판정)이 도입된 이후 가장 높은 번복률을 기록한 심판이 김풍기다. 판정 번복률이 무려 50%에 이른다. 김풍기 심판은 총 42건의 비디오판독 대상이 되는 판정을 내렸고 그 중 21건이 번복되었다는 것(...)

2016년 12월 21일 9대 KBO 심판위원장이 되었다.
아무리 시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2. 경력

인천 지역의 프랜차이즈 중의 프랜차이즈인 김경기 SK 2군 감독의 사촌형. 김경기의 아버지인 2대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이자 인천야구의 대부인 김진영의 조카. [4] 그리고 여동생이 염경엽 SK 감독의 부인으로, 즉 염경엽이 매제다.

서울에서 중학교는 휘문중, 고등학교는 서울고를 나왔다. 서울고 3학년 시절인 1984년에는 당시 1학년 김동수와 더불어 서울고의 중심타선을 형성하며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포지션은 1루수. 고교 졸업 후 1985년 연세대에 진학했으나 고교 때만큼의 활약은 보이지 못하고 졸업할 때 프로의 지명도 받지 못한 채[5] 1989년에 졸업하였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게 된다. 등번호는 38번. 1년 뒤에 태평양에 입단한 사촌동생 김경기가 입단 초기 등번호 37번을 단 것도 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태평양에서도 2년간 통산 16게임에 5타수 무안타의 안습한 성적을 거두면서 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 되고 그 해를 마지막으로 프로선수 생활을 접었다. 고교시절의 맹활약을 기억하는 올드팬들로부터는 그 후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있다.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나지 않고 심판으로 진로를 바꾸어 1994년 3월, KBO 심판으로 채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ㅠㅠ 현재는 선수 경력이나 고교시절의 활약보다는 심판으로서 더 지명도가 높았다. 인천 팬들 중에서도 이 사람이 과거 태평양의 유니폼을 입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올드팬들 뿐일 듯.

3. 특징

특히 유명한 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아래의 그림과 같으며 깐풍기존 혹은 오망성존, 육망성존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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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대로라면 가로로는 홈플레이트 너비를, 세로로는 가슴, 무릎 사이 부분을 기준으로 한 사각형 공간이 스트라이크 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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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위의 영상의 심판은 김풍기 심판이 아닌 강광회 심판의 판정이다. 해당 영상은 2008년 6월 10일 목동에서 있었던 우리 히어로즈 vs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로 이 판정 직후 당시 우리 히어로즈의 감독이었던 이광환 감독이 즉시 항의를 하였고, 설전이 이어지다가 강광회 심판이 퇴장을 명하자 이광환 감독은 모자를 집어던지며 강력히 항의하였다. 02:32:05부터 볼 수 있다.[6]

그러나 김풍기 심판에게는 모양 안이 스트라이크 존이다. 거기다가 회전까지 한다! 참고로 2014 프로야구 리포트에 따르면 심판별 스트라이크/볼 비율에서, 가장 스트라이크를 적게 주는 심판 1위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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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기 심판의 명언으로는 "이 한가운데로 꽂혀도 이 담기지 않으면 스트라이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제멋대로 변하는 스트라이크 존을 까기 위한 관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 짤은 KBS 프로그램 VJ특공대의 장면에서 자막을 합성한 짤이며, 원본 출처는 불분명한 상태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현재 KBO 심판위원으로 있는 배병두 심판으로. 2007년부터 KBO 심판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분은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오차없이 칼같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유명해진 바 있다.

놀랍게도 실제로 이런 사례가 존재하는데 일본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투수이자 명구회의 일원인 故 미나가와 무츠오(皆川 睦雄) 선수[8]의 일화다. 신인 시절 점수차가 벌어진 경기의 하위타순 상대로 대충 스트라익존에 꽂아 넣은 공을 볼판정을 받자 항의했는데, 당시 구심인 니데가와 노부아키(二出川延明)가 "気持ちが入っていないからボールだ(감정이 담겨있지 않아 볼이다)!"라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고 대투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어이상실한 사례이긴 하다.[9][10][11]

물론 이 짤은 합성[12]이긴 하지만, 이런 합성이 나돈다는 것만으로도 야구 팬들이 그의 판정에 얼마나 불만이 큰 지 알 수 있었다. 물론 만든 사람도 엉뚱한 사람을 피해자를 만들었으니 좀 한심하기도 하다. [13]

사실 박근영 심판처럼 이상한 세이프 판정을 해대는 경우 야구 모르는 사람도 까게 되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의 경우 교묘히 악의적으로 판정한다면 선수들이나 예민한 팬들 말고는 눈치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의 판정은 팀을 가리지 않고 이상하다.

다만 이후에는 전통의 맞수(?) 박근영, 임채섭, 강광회의 분전과 신예 전일수, 최수원, 나광남, 그리고 토토와 뇌물수수를 일삼던 최규순 등 막장 심판들이 속출하면서 그 위세가 많이 약해졌고 결국은 오히려 공정한(?!) 축에 끼게 되었다. 공정하게 병맛인 심판으로(...) 물론, 최규순 처럼 토토를 하지는 않았으니, 덜 문제랄까.

인터넷 상에서의 비난 일색인 구심으로써의 평이지만, 연차에 비해 상당히 일관적인 심판이다. 높은 공을 잘 잡아주는 편이나 좌우폭이 상당히 좁은 심판이며 이 때문에 비난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높은 쪽 스트라이크 존을 약간 내린 편.

김풍기 주심의 재평가엔 메이저리그의 보급이 영향을 끼쳤는데, 김풍기 주심의 존이 별모양이다 어쩐다 이야기가 나온 것은 근본적으로 비교적 좌우가 좁고, 상하가 높은 스트라이크존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한국프로야구의 평균적으로 좌우로 넓고 낮은 존과는 모양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알다시피 좌우가 좁고 상하가 높은 것은 메이저리그 스타일 존이라, 옛날 야구팬들은 메이저리그를 잘 보지 않아서 존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국내에도 메이저리그가 중계되며 별 모양이다 어쩐다 말이 나오는 김풍기 주심의 존은 메이저리그 스타일이었음을 팬들도 알고 오해(?)가 풀리게 된 것.

4. 기타 이모저모

2009년 10월 20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12년 6월 5일 목동에서 열린 LG 트윈스넥센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타자, 포수, 주자, 투수, 유격수, 2루심, 해설, 캐스터 전원이 볼이라고 판단한 공을 혼자 주심으로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그 덕에 볼넷으로 전원이 착각하여 강정호는 주자 이천웅을 태그하지 않았고 이천웅조차 '에잉, 볼넷이네' 하는 태도로 터덜터덜 걸어서 2루 베이스에 발을 찍었다. 야구 역사상 가장 여유로운 도루 강정호가 태그를 하지 않고 이천웅이 걸어들어가는 상황에서 이효봉 해설위원도 명백한 볼을 보고 '지금 이 상황은 볼넷입니다' 라며 어리둥절해하는 시청자를 위해 친절하게 멘트를 날렸으나[14]…. 백문이 불여일견.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 2대2 동점상황에서 오심으로 또다시 까였다. 그 오심만 아니였어도 그 게임의 승패의 향방은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총합 스코어에도 영향을 주었기에 까였다.

2015년 들어 수염을 기르고 나온다.

2015년 5월 2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삼성 라이온즈의 경기에서 2,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16년 8월 9일 KIA두산의 경기에서 주심으로 출장했지만 4회초 시작 전 폭염으로 인해 어지럼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해 교체되었고, 이로 인해 경기는 7분 가량 지연되었다.

2017년 6월 11일 두산과 롯데의 경기에서 나경민의 쓰리피트 아웃 논란이 있었는데, 이후 쓰리피트 아웃의 기준은 수비수라는 발언[15]을 하였다. 이전 버전에서는 이를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라 비난하였으나, 사실 원래 쓰리피트 라인의 기준은 수비수가 맞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병살타 장타율
1989 태평양 7 1 0.000 0 0 0 0 0 0 0 0 0 0 0.000
1990 9 4 0.000 0 0 0 0 0 0 0 0 2 0 0.000
KBO 통산
(2시즌)
16 5 0.000 0 0 0 0 0 0 0 0 2 0 0.000


[1] 국내에서는 은퇴 전까지 박경완, 차일목, 최경철이 사용하는 헬멧이다.[2] 38세손 'O起' 항렬이나 '氣'한자를 쓴다.[3] 연세대학교 1985학번[4] 김경기의 이종사촌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게시물이 맞다면, 김진영은 김풍기의 이모부가 된다.[5] 원래 지명권을 따지면 MBCOB에 지명권이 있었다.[6] 참고로 해당 움짤의 투수는 송신영이며, 타자는 김원섭이다.[7] 물론 이것만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스트라이크존이 양 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고, 스트라이크 존이 룰에서 정의하는 스트라이크 존을 약간 벗어난 정도의 직사각형이면 스트라이크가 적든 많든 상관이 없다. 문제는 누가 봐도 스트라이크인 걸 볼을 주거나 팀이나 선수나 감독에 따라 다르게 주는 것.[8] 난카이 호크스에서 활약한 투수로 일본프로야구의 마지막 시즌 30승 투수(1968년) 란 흠좀무하고 전설적인 기록을 가진 인물이다. 2005년 사망.[9] 일본 위키백과에선 대놓고 월권행위 라고 깔 정도다.[10] 참고로 니데가와는 이것 말고도 판정 항의에 대한 어이없는 언행으로 꽤 비난 받은 바 있다. 단일리그 시절 나고야 구장에서 열린 경기 때 세이프 판정과 관련해 아웃 선언을 했다가 다음 날 경기 사진에 분명히 세이프인 장면이 찍혀서 리그 회장에게 불려가 항의를 받자 "사진이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한 어처구니없는 일화도 있고, 미하라 오사무니시테츠 감독 시절 세이프 판정에 항의하면서 심판실을 찾아 니데가와에게 항의했는데 안 받아들여지자 "룰 북을 보여달라" 고 하니 "내가 말하는 거니까 틀림없다! 빨랑 나가!"라고 화낸 일화가 있다.[11]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 시절(1936~1963) 최고의 심판으로 평가 받으면서 1970년 야구전당에 입성했다(...) 이딴 바보심판을 왜 입성시킨겨[12] 위 사진의 주인공은 강광회가 아니라 배병두이다. 웃긴 것은 배병두 심판은 정확한 스트라이크 존 덕분에 유명하다.[13] 배병두 심판이 임용된 것이 2007년이니, 여러 정황상 저 VJ 특공대 원본은 갓 임용된 심판과 관련된 주제를 두고서 나온 화면을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14] 사실 누가 봐도 볼이었으나 결국 판정은 심판의 몫이기에 해설자들도 본인들이 볼넷이라고 생각했으나, 심판 판정을 보지 않고 자기들 임의대로 볼이라고 판단한 이천웅과 강정호가 잘못이라 지적했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그렇지만 '하늘로 집어던져도 심판이 스트라이크 주면 스트라이크냐?' 라고 생각해본다면 두 선수를 진지하게 무리해서 비판하기는 힘들 것이다[15] 당시 3루심은 원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