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01:30

이영재(1968)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개명 전 이름이 이영재였던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이우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0>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KBO 심판위원
2025 시즌 심판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군
2 전일수 · 3 최수원 · 6 권영철 · 9 이기중 · 10 나광남 · 11 박종철
12 이영재 · 14 차정구 · 15 함지웅 · 17 오훈규 · 21 이계성 · 22 박근영
24 이호성 · 25 박기택 · 27 장준영 · 28 장호석 · 30 이용혁 · 33 김태완
35 윤태수 · 36 김익수 · 37 김병주 · 39 구명환 · 41 배병두 · 42 이민호
43 김성철 · 44 유덕형 · 45 김선수 · 47 최영주 · 50 김정국 · 51 문동균
52 송수근 · 54 김준희 · 57 정은재 · 59 정종수
2군
7 문승훈 · 8 추평호 · 13 허정수 · 16 김정 · 18 윤상원 · 19 황인권
20 강광회 · 23 김갑수 · 26 원현식 · 34 우효동 · 38 김풍기 · 46 송원호
55 황인태 · 58 방건우 · 61 전준영 · 67 박지민 · ## 최현종 · ## 하승범
## 최종현
* 취소선: 직무 배제자 }}}}}}}}}
이영재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역대 1차 지명 선수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folding (9명) {{{#!folding (19명) {{{#!folding (11명) {{{#!folding (10명)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장태수
류중일
강기웅
홍성연
정윤수
류명선
하용석
강영수
최해명
이태일
최현준
이영재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김태한 양준혁 감병훈 안윤호 전병호
{{{#!folding (고졸)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황성관
{{{#!folding (고졸)
강동우
{{{#!folding (고졸)
정성열
{{{#!folding (고졸)
배영수 이정호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권혁 김형근 박석민 백준영 김효남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김동명
김상걸
우동균 김상수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정현(2) 이수민 김영한 최충연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장지훈 최채흥 원태인 황동재 이승현
2022년
이재현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

이영재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오명록
(1989~1990)
이영재
(1991~1994)
최한림
(1995.5.10.~1997)
}}} ||
}}} ||
파일:이영재 심판위원_12.pn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KBO 리그 심판위원 No.12
이영재
李咏宰 | Lee Youngjae
출생 1968년 9월 2일 ([age(1968-09-02)]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북고 - 동국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1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1~1994)
경력 KBO 심판위원 (1996~)

1. 개요2. 선수 경력
2.1. 연도별 성적
3. 심판 경력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포수, 현 KBO 심판위원.

2. 선수 경력

경북고등학교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 이만수를 이을 삼성의 차세대 포수 재목으로 평가받으며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러나 1차 지명자임에도 이미 이만수[1]박정환 등 실력있는 선배 포수들이 즐비한 탓에 통산 1군 출장이 32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선수 시절 경력은 시망(…). 1992년 3월 17일 시범경기 OB전에서 루킹 삼진 처리됐어야 할 카운트에서 박찬황 주심의 오심으로 스트라이크 투가 되고 안타를 쳐낸다(...). 1993년 4월 17일에는 통산 2번째 끝내기 패스트볼을 범해 KBO 리그 기록사에 이름을 남겼다.

또, 현역 시절 도루 저지없이 10도루 허용을 기록하며 통산 도루 저지율이 0이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1 삼성 1 1 .000 0 0 0 0 1 0 0 0 .000 .000
1992 3 3 .000 0 0 0 0 0 0 0 0 .000 .000
1993 28 13 .154 2 0 0 0 0 0 0 0 .154 .154
1994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3시즌)
32 17 .118 2 0 0 0 1 0 0 0 .118 .118

3. 심판 경력

결국 4년의 짧은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1994년 은퇴를 선언한 뒤 1996년부터 KBO 심판을 지원해 합격하여 현재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소속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2017년 최고 심판상을 받았으며 2013년 1,5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

포수 출신으로 스트라이크-볼 판정에선 상당히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예전의 평가인지 나중에는 빅게임마다 태평양존, 일관성 부족한 스트/볼 판정 때문에 논란이 많이 되었다. 타자와 포수 사이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타자 바깥쪽이 상대적으로 후한 편.

1999년 5월 21일 한화와 삼성의 대전 경기에서 구대성의 퇴장 이후 한화 이희수 감독으로부터 뺨을 맞은 바 있다.[2] 이때 이빨이 나가고 턱뼈도 금가는 중상을 입었다. 아이러니하게 한화는 이 사건을 계기로 뭉쳐 그해 우승을 거둔다.

2005년 4월 22일 9회초 김재호의 타석에서 2스트라이크 3볼 카운트에서 볼이 들어왔지만 볼로 인정은 했는데 2-4 카운트에서 볼넷으로 출루시키질 않았다. 거기다 김재호는 그 카운트를 깔고 우전 안타를 쳐내게 된다.[3] 이로 인해 20만원의 벌금과 엄중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2007년 안경현, 봉중근 벤치클리어링 때 당시 주심이었다.

2023년 4월 7일 사직 kt wiz vs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주자 1,3루 상황, 내야에서 심판에 맞은 타구에 대한 오심을 저질렀다. 원래는 내야수 앞에서 심판이 타구에 맞았을 경우 야구규칙 5.06(c) 6항[4]에 따라 타자는 내야안타로 출루하고, 타자의 진루로 진루 의무가 생기는 1루 주자의 2루 진루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3루까지 진루했던 1루주자만 2루로 귀루시키고, 홈인한 3루주자의 득점을 인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 도중 KBO는 오심을 인정했고, 경기 직후에도 본인이 오심임을 인정했지만 롯데 벤치에서 항의가 없었기 때문에 득점을 인정했다는 인터뷰로 공분을 샀고, 결국 다음날 벌금 100만원과 무기한 2군 강등 징계를 받았다.[5]

5월 2일, 3주만에 징계를 마치고 1군에 복귀하였다.

4. 관련 문서


[1] 이영재가 입단한 1991년 0.317의 타율로 리그 5위를 차지한 것부터 시작해서 1994년까지 꾸준히 1군 경기에 출장하여 녹슬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 시기부터 수비력 하락이 시작되던 때라 삼성은 포수를 닥치고 모으려고 했으나, 죄다 실패하고 FA로 영입한 김동수마저 폭망하며 진갑용 전까지 삼성은 포수난에 시달렸다.[2] 이희수 감독이 야구공을 손에 쥔 상태로 후려쳤다.[3] 재미있는 점은 볼카운트를 착각한 오심이 모두 이영재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타자로 한 번은 주심으로.[4] 내야수(투수 포함)에게 닿지 않은 페어 볼이 페어지역에서 주자 또는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또는 내야수(투수 제외)를 통과하지 않은 페어 볼이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타자가 주자가 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줘야 하는 각 주자는 진루한다.[5] 같은 경기 주심 장준영, 1루심 김익수, 3루심 김정국, 대기심 윤상원 심판은 강등되지 않고 경고와 벌금 100만원 징계를 받았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9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