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0 17:44:48

김상수(타자)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74CA1> 파일:SL_emblem.png 삼성 라이온즈
2019 시즌 내야수
}}} ||
{{{#!wiki style="color:#074CA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000000"
3 양우현 · 4 김성훈 · 6 손주인 · 7 김상수 · 8 김호재 · 13 이성규 · 14 박계범
· 16 이원석 · 23 김재현 · 32 최영진 · 41 백승민 · 50 러프 · 53 이학주
· 62 공민규 · 105 곽경문 · 112 최종현 · 115 김선우 · 116 이해승 · 117 김성표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
김상수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1]
2011 2012 2014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14 KBO 리그 도루왕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74ca1> 파일:SL_emblem.png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 ||
{{{#!wiki style="color:#074ca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1px; color:#20272C"
1982년 ~ 현재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2020~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박해민
}}}}}}}}} ||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손주인(2008) 김상수(2009~2010) 김동명(2011~20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
박진만(2005~2010) 김상수(2011~) 현역
}}} ||
파일:external/pds.joins.com/201405101920773991_536dfd8870d3c.jpg
삼성 라이온즈 No.7
김상수(金相竪 / Sang-su Kim)
생년월일 1990년 3월 23일([age(1990-03-23)]세)
신체조건 175cm, 68kg
출신지 서울특별시[2][3]
학력 대구옥산초[4]-경복중[5]-경북고
포지션 유격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9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9~)
응원가 노라조 - 슈퍼맨 [6](2009~2017)
BOYS AND MEN 연구생-ドドンコ Don't worry[7] (2018~)
가족 관계 동생 우디
종교 천주교(세례명: 요셉)
군복무 병역특례
연봉 2억 5000만원 (FA, 2019년)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프로 시절
3. 플레이 스타일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5. 연도별 주요 성적6. 기타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 그리고 팬들에게 애증 그 자체인 선수이다.[8] 경북고 시절에는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며 안치홍, 이학주, 허경민과 함께 고교 4대 유격수 라인[9]을 형성하였고,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2008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의 우승을 합작하였다.[10][11] 공수주에서의 뛰어난 활약에 힘입어 언론들은 '제 2의 이종범'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파일:/image/073/2012/02/15/2012021501000639200023881_0_20120215154806.jpg
도산 초등학교 재학 시절

신인 시절 달았던 등번호 2번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데릭 지터의 등번호를 따온 것. 그런데 2010시즌 후 박진만이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다음에 SK 와이번스로 가는 바람에 등번호 7번을 이어받았다.

막 데뷔했을 시절엔 타상수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동명의 투수와 구분을 위해 붙은 것이다. 투상수가 넥센으로 이적한 후로는 별다른 별명이 없다가, 류중일 감독의 무한신뢰를 받는다는 까닭으로 류상수라는 별명으로 많이 불렸다.[12] 또 2013 시즌 중 홈런 개수가 김태균보다 더 많았고 이승엽보다 페이스가 더 좋아서 "김거포"라는 별명도 새로 생겼다. 2011년 이대호가 3홈런을 몰아쳤으나 3:3 무승부로 끝난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는 선수생활 평생 동안 칠 홈런 개수를 하루 만에 몰아친다"며 감탄했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괄목상대 수준. 그러나 15년부터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2016년에는 조동찬, 배영섭과 함께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8년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하면서 '거격수'를 줄인 거유(!)라는 별명을 획득한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시절

파일:dX8W5kP.jpg
입단식에서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과

2009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했다. 김상수는 입단이 확정되자마자 삼성 라이온즈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언플을 받았는데, 특히 선수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로 유명했던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부터 (고교 시절의) 이종범보다 낫다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여담으로, 김상수가 경북고등학교 2학년이던 2007년, 엠엘비파크의 한 유저가 박진만 이후의 삼성의 차기 주전 유격수가 김상수가 될 것이라는 예측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허황된 소리라고 일축했었으나[13] 결국 사실이 됐다.

2.1.1. 2009 시즌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김상수를 1번 타자에 주전 2루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고, 실제로 시범경기서 타율 0.348(2위), 안타 16개(공동 1위), 도루 8개(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본 시즌에서는 4월 초반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빠른 발과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며 2루타 머신, 제 2의 이종범 등의 수식어를 들으며 맹활약하였다. 아마 김상수 커리어상 월간 기록이 가장 좋을 때였다고 봐도 될 정도로 미친 듯이 활약했다.

하지만 5월 들어서 몸쪽 변화구의 약점이 드러나고 또한 체력 문제까지 겹치는 등 신인의 한계가 드러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김상수 입단 전 원래의 2루수 주전으로, 성적이 영 시원치 않아서 영원한 1할 타자라는 비아냥을 듣던 신명철은 포텐셜이 폭발하며 3할대 타율을 찍기 시작, 시즌 시작 전 김상수의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던 주전 2루수와 1번 타자 자리를 모두를 꿰차게 된다.

그리고 6월 중순,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김상수가 1군 엔트리에서 빠지자, 신명철도 다시 1할을 찍기 시작. 다행히 7월 김상수가 복귀하자 신명철의 타율은 3할으로 복귀하였다.

8월 30일 SK 와이번스와의 홈 경기에서 2대0으로 뒤진 7회말 1사 1, 3루 찬스에서 1루주자였던 박석민을 대신해 대주자로 투입되었으나, 선발 투수였던 게리 글로버의 집중 견제를 받다가, 결국 추격에 찬 물을 끼얹는 견제사를 당하였다.느그상수의 서막 그 후 안타가 나오면서 이 견제사는 너무 뼈아팠다.견제사 아니었으면 한 점 차에 1사 1, 2루

최종 성적은 타율 0.244 OPS 0.631 59안타 17타점 18도루.

시즌 초반에는 맹활약으로 신인왕이 무난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A형 간염에 걸린 후 경기감이 떨어지며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9 시즌 신인왕은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했던 두산 베어스이용찬이 가져갔다.

일각에선 김상수의 1군 엔트리 등재 여부에 따라 신명철의 활약도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김상수의 팀내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명철의 부스터 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일명 상수로이드.

또한, 시즌 시작 전 선동열 감독의 인터뷰로 김상수의 주전 등극이 예상되자,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측에서는 만년 쩌리 백업 선수 강봉규의 응원가를 용도 변경하여 김상수의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강봉규도 신명철이랑 함께 포텐이 터졌다!

2.1.2. 2010 시즌

시즌 극초반 대주자로 나와 도루를 하다 손가락 부상을 당해 실질적인 1군 합류는 5월 초반부터였다. 하지만 합류하자마자 박진만의 급격한 노쇠와 부상으로 공백이 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수비에 있어서는 민첩함과 센스를 갖춘데다가 어린 선수답지 않은 노련한 플레이를 보여주어 삼빠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타격은 기대치에 비해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 타격 센스는 나쁘지 않으나, 작은 체구의 문제로 장타력이 떨어져 안타가 될 타구도 땅볼이 되는게 문제. 하지만 2009 시즌에 비해 출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여전히 기복이 심해서 못할 때는 정말 바닥까지 칠정도로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잘할 때는 루키시즌에 겪었던 몸쪽 변화구 약점같은 것도 전혀 문제가 안될정도로 잘하는 모습을 보이며 뭇 삼성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있다. 양준혁이 은퇴를 선언하고 나서 몇몇 타자들에게 특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그 일주일간의 김상수의 성적은 끝내기 안타를 포함하여 참 아름다웠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45 OPS 0.634 69안타 22타점 30도루.

2010 포스트 시즌 들어서 미친 듯한 활약을 펴기 시작했는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본인의 첫 포스트시즌 임에도, 안정적인 수비[14]는 물론이고 공격에서도 포텐이 터진듯한 완벽한 모습을 보여 팀의 시리즈 3승 2패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MVP는 1, 4차전에서 결승타를 쳐 MVP를 차지한 박한이에게 돌아갔으나, 많은 야구 관계자들 및 팬들이 김상수를 숨은 MVP로 꼽았다.

김상수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9안타 2볼넷 2사구(死球) 1도루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474, 출루율 .565를 기록했다. 특히 2010년 10월 13일에 있었던 마지막 5차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이 날 타율이 무려 8할 실화냐 이라는 큰 활약을 보이며 11회 연장접전끝에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포스트시즌에 보여준 대활약으로 벌써부터 삼빠들은 류중일-박진만을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급 삼성 유격수 라인으로 김상수를 올리는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삼레발을 떨었고, 관계자들도 꽤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 들어서자, SK 와이번스는 플레이오프에서 타선의 중심이었던, 김상수와 박한이를 봉쇄하는데 주력하였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선 타율 0.077로 완전히 봉쇄당하며 부진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시리즈 전적 4패로 일방적인 패배를 당하고 난 뒤, 준우승 트로피 시상을 해야하는데, 갑작스럽게 트로피를 김상수 혼자 나와서 받자 팬들은, 고참들이 지들이 쪽팔리니까 팀 막내한테 모든 걸 다 떠맡긴다면서 분노하기도 하였다.

종합하면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3타수 1안타 1볼넷 1사구(死球) 타율&장타율 .077, 출루율 .200을 기록했고,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2타수 10안타 3볼넷 3사구(死球) 5타점 5득점, 타율&장타율 .313, 출루율 .421를 기록했다.

시즌 후 박진만이 팀을 떠나자, 등번호 7번을 차지했다.

2.1.3. 2011 시즌

개막 이후로 주전 유격수로 활약중이다. 수비 능력은 흠잡을 때 없이 완벽하지만, 타력이 낮아 걱정하는 팬이 많다. 5월 3일 기준으로 .224 .277 .290의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으며 홈런은 0개, 도루는 1개다. 조동찬이 극심한 부진을 겪다가 부상으로 2군에 갔기 때문에 한동안 유격수 자리를 빼앗길 이유는 전혀 없지만, 타격이 적어도 2010 시즌 수준으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타자로서의 기대는 포기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아직 경기를 많이 치룬 상황이 아니고 그나마 타율이 1할대에서 오르고 있는 중이니 성급한 판단은 금물.

5월 8일 대구 對LG전에서 선발 박현준를 상대로 2회말에 데뷔 홈런을 터뜨렸다. 가운데로 몰린 슬라이더를 때려 펜스를 넘겼는데, 통산 228경기 610타수만의 홈런. 채상병의 투런 홈런 직후에 나온 백투백 홈런이었는데, 정작 던진 투수 박현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이 광경을 본 후 삼갤 반응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 덤으로 KBO 최초 팀 3,500홈런이기도 하다.

6월 14일 對LG전에서 또다시 선발 박현준를 상대로 3회말 원아웃, 스코어 0:0 상황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통산 홈런이 단 2개인데 모두가 박현준를 상대로 쳐낸 것. 그리고 박현준은 다음에도 수비 실책 등으로 연달아 5실점을 내주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 날의 홈런으로 특이한 기록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이 해 박현준에게 홈런을 가장 많이 뽑아낸 선수가 바로 이 김상수라는 것.

시즌 초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5월 말부터 김상수는 타격에 관하여 각성하게 된다. 6월에 들어서는 타격이 일취월장하여 월간 타율이 4할대를 넘어서기에 이르러 7월 1일엔 타율 .288을 기록, 3할을 바라보고 있다. 해설가 허구연에 따르면 조성환의 타격 폼을 따라했으나 올 시즌 포기하였다고 한다. 근데 그러고 나서 타율이 올랐다.

다만 유격수 치고 7월까지의 실책이 20개로 좀 많은 편인데[15], 안타성인 타구를 처리하다가 실패하는 경우에는 에러를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고려하면, 넓은 수비범위를 감안해도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실책 22개로 2011년을 마감, 실책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성근 감독의 칭찬에 무색하게 삼성팬들을 울리는 수비를 보여주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공격 측면에서는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8타수 6안타 1볼넷 2도루, 타율 .333, 장타율 .444, 출루율 .368를 기록하며 전년도 한국시리즈보단 공격력에서 확실히 향상된 모습을 보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2.1.4. 2012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수(타자)/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5. 2013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수(타자)/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6. 2014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수(타자)/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www.xportsnews.com/1411040381279.jpg

53도루로 개인 최초 50도루 돌파와 함께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도루를 기록했고[16] 구단 역사상 최초의 도루왕이 되었으며[17], 유격수로 전 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거기에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출전과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까지 확정.

2.1.7. 2015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수(타자)/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8. 2016 시즌

전지훈련 동안 다소 가벼운 배트를 바꿔 간결한 스윙과 함께 타율을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으나 예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다만 손가락 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계속 주전으로 출장하는 영향도 있고, 같은 팀에 더 심하게 부진한 선수도 있는지라 상대적으로 묻어가는 편.

4월 24일 kt전에서 7회말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이어 이영욱의 안타로 3루까지 내달리며 슬라이딩을 하다가 왼쪽 발목을 접질렀다. 당일날 검진에서는 인대나 뼈에 이상은 없다고 나왔는데, MRI 촬영 결과 인대 손상을 진단받아 4월 25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복귀까지는 3~4주 정도 걸린다고.

그 후 아롬 발디리스와 함께 재활을 거쳐 2군 훈련에 합류했으나 5월 25일 2군 경기 중 다시 통증이 재발, 다시 휴식을 거친 후 1주 후 다시 훈련에 합류했다. 작년부터 이리저리 아프던게 결국 터진 셈. 6월 5일 대퇴사두근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6월 5일 드디어 1군에 출장. 첫타석 부터 1타점 적시타를 쳐내며 삼성 팬들은 드디어 김상수가 돌아왔다며 좋아했지만... 7회 귀신같은 송구실책을 범하면서 팀의 역전패에 일조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신나게 까였다.

그러나, 6월 7일 LG전 1사 만루 역전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쳐내며 그날 하루만큼은 삼팬들의 석고대죄를 받아냈다. 참고로, 이 안타가 6월 삼성의 만루 상황에서의 첫 안타다. 그것도 10번째만에...

6월 25일 kt전에서 9회초 2사에 1점차로 리드하는 수비상황에서 이대형의 타구를 실책을 저질렀다. 이후 이대형이 2루 도루하면서 급격히 심창민은 흔들리고 결국 오정복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4점차 리드가 하루아침에 동점이 되고 말았다. 그 후 10회초에 kt한테 역전을 당해 팀은 13대8로 패를 당해 9위로 추락하게 되었다.이날 김상수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이날 경기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2할 5푼 4리로 떨어졌다.

7월 9일 한화전에서 기어이 5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여 타율이 2할 3푼대로 떨어졌다. 그러나 8월 들어 타격감을 찾았는지 아니면 바빕신의 가호가 내린 것인지 타율을 회복하고 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8일 문학 sk전에서 정말 오랜만에 1번타자로 출장했다. 특히 이 날은 전병두의 은퇴식이 있는 프로통산 마지막 경기인데 이 날 딱 한 타자만 상대하고 마운드를 내려가기 때문에 김상수가 전병두의 프로통산 마지막 상대타자가 되었다. 결과는 유격수 땅볼 아웃. 공이 너무 좋아서 잘 못 쳤다고 인터뷰해서 호감을 얻어냈다. 사실 김상수가 1,2구는 지켜보다가 4구째부터 스윙해서 5구를 쳤는데, 전력질주하지 않고 아웃당했다.

사실 올해 김상수의 부진은 다소 예고된 감이 있다. 다른 야수 포지션에서는 어느 정도 백업 자원을 확보해 놓은 삼성이 유독 유격수 자리에서는 백업을 구하지 못해 김상수가 계속 출장해야 했고, 그로 인해 쌓여온 피로가 이번 시즌에 터져버린 것이다. 왕조 자리를 지키던 시기에는 리빌딩 차원에서 유망주들이 1군에서 경험치를 쌓도록 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던데다, 유격수 출신의 류중일 감독 특유의 유격수 자리는 전문 유격수가 맡아야 한다는 야구지론도 있었기 때문. 류중일 감독의 입장에서는 1군 레귤러라 할 만한 유격수가 김상수밖에 없었고, 김상수는 좋든 싫든 발전하든 말든 받쳐줄 선수가 없으니 계속 경기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왕조 시기의 홈구장이 박진만의 무릎도 갉아먹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었으니...

2.1.9. 2017 시즌

FA계약으로 KIA 타이거즈로 떠난 최형우의 보상 선수로 강한울이 영입되어 과거처럼 쉬지 못하고 매경기 출전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16시즌 두 선수의 기록을 살펴보면 경기수, 타율, 2루타, 도루 갯수가 거의 비슷하거나 같다. 한편 김상수는 전문 유격수로 지난 시즌 105경기를 유격수로만 출전했지만, 강한울의 경우는 2루수와 유격수가 가능한 자원으로 지난 시즌 유격수 97경기, 2루수 21경기에 3루수로도 2경기 출전한 바 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고 밝혔다. 올시즌 연봉은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3억 1천만원이다.

2월 15일 니혼햄 파이터즈와의 연습경기에서 병살을 기록했다.

2월 16일 한신 타이거즈전와의 연습경기에서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하여 2안타를 기록했는데, 그것이 팀 안타의 전부였다.

2월 18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연습경기에서 역시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병살을 기록했다.

2월 25일 한화 이글스와의 연습경기에서 1번타자 유격수로 선발출장해 2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발목 통증 때문에 시범경기 동안은 대타로만 출장했으나, 결국 통증이 지속되면서 개막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4월 26일부터 2군 경기에 나오기 시작했고, 28일 1군에 올라왔다.

5월 17일 문학 SK전에서 승부의 쐐기를 박는 시즌 1호 투런포를 치면서 팀의 첫 위닝시리즈와 연승에 큰 기여를 했다.
4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3 12 3 0 0 0 2 0 0 1 0 0 .250 .250 .250 .500
5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1 74 18 4 0 1 12 5 4 10 2 1 .243 .291 .338 .629
6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11 40 10 2 0 0 1 4 0 10 2 0 .250 .250 .300 .550

6월 15일 왼쪽 허벅지 통증 때문에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5월 중순경에도 같은 부위에 통증이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마찬가지로 허벅지 통증이 있던 이원석은 햄스트링 미세 손상 판정을 받으면서 2군으로 내려갔던 것과 달리 김상수는 몇 경기 쉬기만 했었다. 김상수 대신 이날 선발 투수로 내정된 김대우가 등록됐다.(2군에서 머물렀던 동안 주장은 박해민이 맡았다.)

9월 2일 김한수 감독은 김상수가 시즌내 복귀하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기술 훈련이 부족한 상태라고. 출장 경기 수 부족으로 FA 취득도 1년 밀리게 됐다.
9월 한달간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7 18 7 1 0 2 2 4 1 5 0 0 .389 .421 .778 1.199

9월 14일, 1군에 콜업되었고 대신 정병곤이 1군서 말소되었다.

그리고 올라오자마자 바로 솔로포로 부활을 알렸다. 15일에서도 타격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내년에 올해 못 뛴 경기까지 만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0월 3일, 대구 넥센전 팀 대선배이자 경북고 선배인 이승엽의 은퇴경기에서 경기가 마무리 되고 은퇴식에서 주장으로서 꽃다발을 전달하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1.10. 2018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수(타자)/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11. 2019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상수(타자)/2019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시즌엔 2루수로 전향했다. 수비 부담이 줄어서인지 확실히 타격감이 오른 모습을 보이는 중.

3. 플레이 스타일

왕조 시절에는 타격은 조금 약한 편이었지만, 도루왕을 차지할 정도의 빠른 발과 괜찮은 수비, 전 경기 출장할 정도로 강한 체력, 그리고 어린 나이부터 주전을 차지해서 젊은 나이의 메리트가 있는 등 강정호의 뒤를 잇는 리그 유격수 2인자 이미지가 있었지만 강정호가 미국으로 떠나고 1인자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았으나 타격에서 지지부진한 사이에 오지환, 김재호가 성장하고 제 2의 강정호라 불리는 김하성이 20 - 20에 100타점이라는 괴랄한 스탯을 찍으며 등장한 데다가 본인의 성장마저 더뎌졌다. 그의 입단 3년 차까지의 성적과 입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안타까운 상황.

경북고 출신 프랜차이즈에, 1차 지명이라는 점에서 큰 기대를 받았다. 본격적으로 주전 유격수로 뛰기 시작한 2009년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풀 타임을 뛰면서 데뷔 년도인 2009년의 두배에 가까운 타석에 들어섰음에도 타율은 유지하면서 도루와 출루율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으며, 2011년에는 비율 스탯이 각각 3푼/2푼/5푼이나 증가한데다 도루 개수는 전년과 별 차이없는 29개를 기록, 또다시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으며 2012년에는 초반의 부진 탓에 득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탯이 소폭 하락했지만[18] 2013 시즌에 다시 회복하다 못해 안타 2개차로 3할을 놓치는 좋은 성적을 보여 모든 팬들이 타격포텐이 만개했다고 보았으나, 2014, 2015년 극심한 타고투저에도 불구하고 타율과 대부분의 타격스텟이 하락했다. 공을 골라내기보다 쳐서 나가려는 성향이 강해 출루율이 높지 않고, 이런 스타일은 BABIP빨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 기복이 극심하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19] 그러다보니 차기 테이블세터감을 기대하며 지명한 선수가 주전 테이블세터의 부상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줄곧 하위타선-9번타자에 머물렀다. 도루 역시 2014년 김평호 코치 효과로 본인의 한 시즌 최다 도루를 경신하고 구단 역사 최초의 도루왕[20]을 거머쥔 걸 빼면 커리어내내 20개중반~30개 정도만 기록하며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백업 없는 유격수라는 포지션을 고려하면 도루시도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웠을것을 고려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타격능력은 컨택면에서 2할 중후반대를 기록할수 있는 타자이다. 하지만 볼넷을 고르기 전에 치고 나가려는 스타일 상 출루율이 높지 않고 펀치력도 좋지 않아 많은 홈런을 기대하긴 어려운 선수이다. 높지 않은 출루율과 낮은 장타율은 낮은 OPS로 연결되고 타격 효율을 의심하는 팬들이 늘어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늘 변화를 시도했지만 2013년 뜬금 없이 홈런을 몰아치던 때 말고는 결과물이 좋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어느정도 성장을 지속하는 모습에 기대를 많이 받았고 3할을 언젠가는 치겠다고 생각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2014년 엄청난 타고투저로 접어드는 시기에도 전년도의 성적에 머물며 상대적으로 쳐지는 모습. 이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6년 이후에는 2할 후반대를 쳐줄지도 미지수가 되버렸다. FA를 앞둔 2018시즌에 각성하지 못하면 타격으로는 메리트가 전혀 없는 선수가 되어버릴 듯.

김상수의 주루능력은 팀내에 박해민과 같은 리그를 대표하는 주자라고 하기에는 어려워도 그 다음 수준의 그룹에 들어갈 수준인데, 도루왕을 했던 2014년을 포함하여 늘 80프로 이상의 높은 성공률을 가지고 있어 효율이 높은편이다. 많은 리그의 주자들이 도루갯수는 많아도 성공률 부분에서는 좋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그 부분에서는 확실히 강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야할 듯. 또한 한베이스를 더 가거나 다른 주자를 도와주는 등의 주루플레이에도 능해 팀에 확실히 도움이 되고 있다. 이 능력이 빛을 보게 됬던게 왕조시절 9번타자로 활약했을 때인데, 1번에 배영섭이나 나바로 같은 타격능력이 뛰어난 타자가 들어가자 가짜 1번 타자같은 역할로 비취지게 되면서 떨어졌던 타격능력에도 삼팬들은 김상수의 공격력으로 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몸이 날래고 순발력이 좋아서 수비력은 리그 전체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류중일 감독이 수비만 놓고 보면 강정호보다도 낫다고 평가한 적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김상수의 수비를 자주 칭찬한다.수비코치 9명중 5명이 뽑은 수비로는 최고 유격수 땅볼, 플라이, 다이빙 캐치 모두 상급. 민첩성과 빠른 발[21] 그리고 야구센스에 기반한 수비를 하는데 능하다. 또한 포구 후 송구를 위해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인 트랜스퍼 역시 훌륭하다.[22]

다만 송구는 평범한 편이다. 어깨가 약하지는 않지만 강하다고도 볼 수 없는데, 자신의 어깨를 과신하는 것인지 무리하게 송구하여 도리어 추가 진루를 허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넓은 수비 범위와 유연한 자세 전환으로 부족한 송구를 커버하고 있으나 어이없는 송구 실책이 꽤 자주 보인다. 그 예가 12년 코시 3차전, 희대의 덕아웃 송구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히며 경기를 내줬다. 풋워크도 좋고 어깨도 그리 약한 편도 아닌데 왜 자꾸 바운드 송구로 실책이 생기는지는 의문. 그로 인해 주전을 차지한 이후로 매해 두자릿수의 실책을 기록했다. 그리고 잔부상등으로 15년 이후론 수비 역시도 세부스텟이 많이 하락한 상태이다. 한때 금강불괴 속성도 보유하고 있었다. 체력 소모가 심하다는 유격수임에도 2011~2015년 출장 경기 전체 4위를 기록하였다. 후유증으로 15년부터 잔부상에 시달리더니 16년부터는 부상으로 드러누웠지만...

또한 상술하였듯이 SNS로 인한 거대한 논란을 두 번이나 낳아, 각각의 논란에서 따온 '김짜증'과 '김발렸네'라는 별명까지 생기며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우승프리미엄때문에 성적에 비해 연봉이 계속해서 큰 폭으로 올라가는데 타격 성적은 저조하니 더욱더 욕을 먹고있다. 여기에 지명 당시의 기대치가 합쳐지니 마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선수임에도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보여 비판하는 팬들이 많다. 팬들이나 구단에서나 염려하고 있는 것은 박진만SK 와이번스로 이적한 이후 삼성에 제대로 된 유격수 백업이 없다는 것. 강정호처럼 리그를 씹어먹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닌 이상 백업 겸 주전 경쟁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너무 젊은 나이에 주전을 꿰차서 오히려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류중일 부임 이후 매년 유격수를 지명했으나, 할애한 지명권에 비해 2017년까지의 소득은 미흡한 상황이다. 2015 드래프트에서 삼성이 지명했던 유격수 최정용도 입단 후 유격수로 미흡하다는 평을 받다가 결국 2차 드래프트로 SK에 끌려갔다.

그 외에, 유격수를 열심히 지명했지만 1군에서 통할 자원이 잘 안 나오다 보니, 실질적으로 김상수가 풀 타임을 뛸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성장이 정체된 이유에 내부 요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연속으로 풀타임 출전에 따른 체력 부족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2015년까지 이용한 홈인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은 인조잔디여서 내야수들의 무릎에 악영향을 주었고. 류중일 前 감독도 이를 알기에 야마이코 나바로를 2루가 아닌 유격수로 보내보는 등 김상수의 집중도 완화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유격수는 무조건 유격수가 백업해야 한다는 류중일 전 감독의 지론[23]과 팀내 내야수 부족이 겹쳐 키스톤 백업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 [24] 문제가 생기는 모양이다. 결국 2015시즌부터는 점점 부상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2018년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취득하였다. 만 28세로 시즌 FA대상자 가운데선 최연소다.

4.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 수비 능력 때문에 선발됐다. 강정호와 달리 공격력은 돋보이지 않는다. 시즌 내내 9번에 배치돼 직구를 많이 상대했다.
  • 변화구가 약점. 아직 22살이고 변화구 대처능력이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25][26]
  • 평균 이상의 주자로서 대주자로도 기용될 것이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삼성 라이온즈 97 242 .244 59 19 0 0 17 43 18 23 .322 .308
2010 101 282 .245 69 7 3 0 22 37 30 43 .291 .344
2011 128 406 .278 113 16 4 2 47 53 29 54 .352 .362
2012 129 419 .274 115 18 4
(4위)
2 36 64 25 48 .351 .345
2013 115 372 .298 111 17 3 7 44 57 14 35 .417 .354
2014 128 427 .288 123 20 8
(4위)
5 63 74 53
(1위)
48 .407 .354
2015 132 449 .278 125 30 4 8 63 67 26 49 .416 .345
2016 105 358 .271 97 13 0 3 38 56 6 31 .332 .326
2017 42 144 .264 38 7 0 3 13 17 1 6 .375 .291
2018 122 453 .263 119 13 1 10 50 63 12 35 .362 .314
2019 129 468 .271 127 20 2 5 38 76 21 65 .355 .358
KBO 통산
(11시즌)
1228 4020 .273 1096 180 29 45 431 607 235 437 .365 .341

6. 기타

  • 2세 아래의 동생인 우디(본명: 김상우)는 2011년에 결성해서 2013년에 해체한 미디어라인 엔터테인먼트[27] 소속 보이그룹이었던 엔트레인의 메인보컬로 활동했다. 지금은 인디안 레이블[28]로 옮겨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차트조작 의혹이 2019년 1월에 일고 있어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 거의 풀 타임을 소화하는 붙박이 주전 유격수임에도, 좋은 별명이 딱히 없다. 심지어 2014년에 1군에 처음 등장한 박해민도 스님 내지는 주님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김상수는 흔히 상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별명으로 불리진 않는다. 대신 비하하는 별명은 순식간에 붙는다. 2012년 SNS 사건 때는 답변에서 '짜증'이란 단어를 쓴 것 때문에 한동안 야갤에선 '아 짜증나'가 유행어가 되었고 김상수 본인의 별명은 김짜증이 되어 버렸으며, 2013년 WBC 이후의 SNS 사건에선 발렸네가 그대로 별명이 되었다. 상단에서 설명했듯 13년 홈런 페이스가 좋아 간만에 김거포라는 좋은 별명을 얻긴 했지만 이후 시즌에서 무리하게 장타를 노리다 뜬 공으로 기회를 날리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오히려 욕을 바가지로 먹고 1년도 못가 묻혀버렸다. 그리고 삼갤에서는 X상수, 개상수, 똥상수 등의 별명으로 불리다가 아예 초성체로 변환되어 좄, 갰 등으로 불리고 있다.[29] 16년 이후 그나마 좋은 별명이라면 류중일 감독이 김상수를 평가할 때 자주 붙이던 표현인 '대체불가 선수'에서 유래한 김대불, 대불이 정도. 삼갤에서는 데릭상수라고 불리기도 한다.
  • 2012년 한국시리즈, 2013년 WBC의 대부진과 특히 WBC에서 부적절한 SNS 사용 등으로 인해 신인 정현에 기대를 거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정현은 지명 당시부터 프로에서 유격수로는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그 예상대로 프로 1년차 말부터 3루수로 전환했다. 그나마도 성장세가 더뎌 류중일 감독이 이를 지적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KT 특별지명에 대한 보호 20인에서 제외되면서 정현은 KT로 갔다.
  • 유격수 백업이 부족한 삼성의 특성상 팀 내서 엄청난 수비 이닝을 소화한다. 이 때문에 삼성은 류 감독 부임 이후 줄곧 유격수를 뽑았으나, 김상수의 경쟁 상대는커녕 백업 구실을 해내는 선수도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데려온 정병곤이 2013년 백업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2014년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15년부터 공익으로 복무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의 백업은 또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부실한 백업으로 김상수는 DL을 갔던 시즌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많은 경기와 수비이닝을 소화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유격수이면서도 리그 수비이닝 소화 부문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나마 2017년에는 정병곤이 복귀하고 최형우 보상선수로 강한울을 지명하면서 백업을 갖추었다. 하지만 정병곤은 방출됐고, 강한울은 군 복무에 들어갔다.
  • 애완동물로 말티즈를 키운다고 한다. 이름은 루이. 현재는 삭제됐지만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 2015년 구자욱과 채수빈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구자욱의 최측근이 이를 인정했고 이를 두고 네티즌들이 이 최측근이 누구냐고 설왕설래가 벌어졌다. 문제는 그 후보로 구자욱과 친하게 지내던 김상수가 지목당하면서, 졸지에 최측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나이는 전반적으로 어린 편이지만, 삼성의 팀컬러에 맞게 삼적화된 노안이다. 배영수처럼 이른 나이에 주전을 꿰차 경력이 제법 긴 편이고 유격수 백업이 없어 거의 풀타임을 뛰다보니 피로누적으로 얼굴이 폭삭 늙었다. 1981년생으로 김상수보다 9살 위인 윤성환보다도 나이가 들어 보일 정도.[30] 게다가 수염이 자주 나는 편인지 코밑이 수염자국으로 거뭇하다. 그러나 반대로 머리는 탈모의 징후까지 벌써 보일 정도. 김상수가 박해민, 박찬도, 정인욱과 또래라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경우도 있다.
  • 위의 SNS 사건, 경쟁자가 없으면 실력이 정체되는 점 등으로 멘탈 면에서 많은 지적을 받지만 그와 별개로 인성이 좋다는 증언이 의외로 많이 나오는 선수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팬 서비스가 거지 같은 걸로 유명한 삼성 야수조에서 정말 드물게 팬서비스가 투철한 선수이며 프로 데뷔 후 매년마다 모교에 야구용품과 지원금을 기부하고 있으며 경기가 일찍 끝나거나 쉬는 날에는 부모님의 가게일을 밤 늦게까지 돕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프로 야구선수로서 그의 팬서비스가 가히 흠잡을 데가 없다는 점은 삼팬 대다수가 인정한다. 오죽하면 야구선수로서 단 하나 야구만 잘하면 완벽하다라는 웃픈 농담이 있을 정도고, 삼갤에서도 김상수 인성은 문제삼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오죽하면 포켓몬 트레이너라는 말도 들을 정도... 종이와 펜을 들고 서있으면 !표시와 함께 달려와서 싸인해준다고... 목격담 현재는 더 심해져서 팬들이 싸인당한다고 한다. 싸인을 팬들이 거절[]다른 이유도 아니고 김상수 싸인볼이 너무 많아서. 후문에 따르면 거절당한 김상수가 무척 섭섭해했다고...뿌린대로 거두는법]하는 현상까지 생길 정도. 이 글 하나로 다 요약된다. 이런 이유로 생긴 별명이 연쇄사인마[32] 이 외에도 다른 선수 사인볼을 택배로 받았는데 부탁한적도 없는 김상수 사인볼이 동봉되어 있었다, 김상수가 사인을 해주러 다가왔는데 종이가 없다고 거절하니까 갑자기 휴대전화 뭐 쓰는지 물어보더니 갤노트라고 대답하자 갤 노트의 노트 앱에다 사인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노트 앱을 켜서 노트에다 사인을 해줬다, 사인을 해주러 다가와서 펜도 종이도 없다고 하자 폰을 빌려달라고 한 뒤 같이 사진을 찍어줬다, 길 가다 김상수 같아보이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는데 가던 길 가다 누가 불러서 돌아보니 정말로 김상수가 가던 길 되돌아와서는 "저 아시죠?"라고 하면서 싸인을 해주고 갔다, 식당에서 밥을 먹다 김상수와 눈을 마주쳤는데 다가와서는 사인도 해주고 가족들과 일일히 악수를 해줬다 등등 거의 팬서비스를 강매당하는 수준으로 미담이 많다.
    게다가 수많은 클럽 썰에도 불구하고 사생활 관련 구설수는 한번도 난 적이 없다.
  • 중학생 시절에 6살 원태인한테 홈런치고 좋아하던 김상수의 영상이 원태인 다큐멘터리에 있었는데, 원태인이 삼성에서 첫 선발승을 따내고 얼마 안 가서 KBS Sports에 의해 재발굴당했다.
  • 저평가와 고평가를 모두 당하는 선수 중 하나로 화려한 수비 스타일 탓에 수비실력이 기가막힌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나 실상은 잘 하는 편인 정도다. 또한 타격 면에서는 계속 죽고 만족스럽지 못하니 물방망이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 정도까진 아니다.[33]


[1] 25세 되는 해에 3번째 우승반지(...)를 가졌다. 2013년 한국시리즈도 페넌트레이스 후반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몰리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막는 데 일조하면서 우승 반지를 추가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런데 팀에서는 부상으로 엔트리에 빠진 거라 페넌트레이스 기여도를 감안해 우승반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식엔트리에 포함된건 아니라, 여기선 세개라 표시되는게 맞다.[2] 7살 때 경북 구미로 이사했고,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대구로 이사갔다. 그래서 표준어에 경상도 억양이 살짝 섞인 말투를 갖고 있다. 점마 대구 안데 와 서울말 쓰노?라고 기분 나빠하는 대구 아재들이 있다면 반드시 알아두었으면 한다. 김상수는 원래 서울 출신이다. 비슷한 케이스가 두산 베어스장원준.[3] 사실 전국권 방송 인터뷰에서만 표준어를 사용하고 tbc 경북지역 방송인터뷰나 다큐에선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것으로 보아 방송을 위해 일시적으로 고친 것으로 보는게 더 자연스럽다. 서울출생이나 경북지역에서 훨씬 더 오래 살았고 이야기를 많이 하게되는 학교-일터가 경북지역이다 보니 경상도 사투리를 주로 쓸 수 밖에 없다. 다만 인터뷰때 미세하게 보이는 표준어 억양과 서울 출신이라는 점때문에 표준어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지 분명 언어 베이스는 대구말이다.[4] 야구를 시작한 곳은 구미 도산초등학교이며,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졸업 전 대구 옥산초등학교로 전학갔다.[5] 협성중과 통합하여 현재는 협성경복중. 야구부는 그대로 있다.[6] 상수야~ 안타를 날려주세요~ (누구~ 김상수!) 상수야~ 신나게 달려주세요~ (누구~ 김상수!) 오늘도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날리고 날리고 날리고 날리고 달려라 삼성의 김상수! x2[7] 다다다다 달려간다 김!상!수 으랏차차 날려버려 김!상!수 삼성의 승리위해 안타안타 날려버려x2[8] 경북고 졸업·삼성 1차지명·국가대표 유격수·프랜차이즈·팀 최고의 팬 서비스. 삼성 라이온즈라는 팀에서 수퍼스타가 되기 위한 모든것을 갖춘 선수이지만, 단 한 가지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실제로 2018 시즌 강한울보다 WAR이 낮고, 문규현과 성적이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FA에서 3년 18억을 받았고, 그 금액은 분명한 오버페이이다. 하지만 김상수니까라는 이 한 마디로 팬들에게 적당한 가격으로 평가가 바뀌게 하는, 삼성 팬들에게 애증 그 자체인 선수이다.[9] 여기에 이학주 대신 오지환을 넣는 이도 있다. 다만 오지환은 고등학교 때 투타겸업을 했다.[10] 다만 이학주는 컵스와 계약했기 때문에 청소년 대표 선발에서 빠졌다.[11] 직전 대회인 2006년 대회에 이은 2회 연속 우승이었으며, 현재까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이 거둔 마지막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이다. 근 6년간 우승을 못하고 있다.[12] 젊은 시절 류중일의 사진을 찾아보면 김상수와 꽤 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13] 당시 삼성 라이온즈 내야진에는 장타 포텐이 있었던 만년 기대주 조동찬이 있었다.[14] 덕분에 박진만은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생애 첫 2루수 자리에 서기도 하였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에서 이대수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타격으로 보나 실책수로 보나 강정호김선빈에게 밀렸지만, 우승 팀 프리미엄이...[16] 바로 다음 해 박해민에 의해 이 기록은 깨졌지만...[17] 1996년 김재걸 40도루, 1999년 빌리 홀 47도루가 이전까지 최고기록[18] 득점이 올라간 이유는 중간에 류중일이 김상수를 테이블 세터로 기용했고, 이게 제법 성과가 좋았던 덕분이다.[19] 2013년 .298의 커리어 하이를 찍을 때도 개막전 이후 22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했으며, 타고투저였던 2014년에는 잠시 3할을 뚫었다가 다시 추락하였다.[20] 참고로 김상수는 고교야구 시절에도 도루왕을 받은 적이 있다.[21] 많은 야수들이 좌우로만 움직이는데 반해 사선으로 움직여 발자국 수를 줄인다고 한다.[22] 같은 팀에 있던 나바로나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거포유격수 강정호만큼의 힘있는 플레이를 보여주진 못하나 빠른발과 좋은 어깨를 십분활용하여 깔끔하게 공을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23] 이 지론은 국가대표 단기대회가 아니면 시행되기 어려운 지론이다.포수 다음으로 키우기 어려운 게 유격수니까....[24] 원래 이 역할은 김태완과 조동찬이 맡았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나바로가 있던 시기에 둘 다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나바로와 김상수의 부담이 가중되었다. 정현, 최정용 같은 신인급 내야수들은 보호명단에 들지 못하면서 연이어 타팀으로 이적했고, 정병곤은 토미존 수술을 받고 재활 후 공익으로 병역을 치르면서 3년간 자리를 비웠으며, 백상원은 16시즌 주전 2루수가 되었지만 처참한 운동능력으로 그 전까지 중용되지는 못했고 17시즌부터는 다시 2군으로 밀려났다.[25] 그런데 정작 2010년~2012년에는 직구상대 타율이 2할대 초반이고 슬라이더와 커브 상대 타율이 3할에 육박하거나 넘어섰었다. 즉 사도스키가 잘못 파악한듯하다.[26] 변화구 상대 타율이 높다는 것만으로 변화구가 약점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해 볼 부분이, 변화구에 대한 약점이 도리어 빠른 볼을 상대로 한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스탯상으로 평가했다고 보면 사도스키가 잘못 평가한 것이 맞기는 하다.[27] 김창환이 있는 곳이다.[28] 기획사 메이저9 산하의 레이블이며, 하은도 이 곳에 있다.[29] 삼갤에서의 활약에 따른 변화는 좄 → 갰 → 똤 → 깄 → 킸 → 갔. 순서대로 풀어보면 X상수 → 개상수 → 똥상수 → 김상수 → 킹상수 → 갓상수.[30] 사실 이건 윤성환이 워낙 동안인 것도 있다. 2019년 현재 한국 나이로 무려 39세이다!![] [32] 어감이 이상해서 그렇지 선수에 대한 애정이 듬뿍담은 별명이다. 본인도 이 별명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33] 사실 유격수는 포수 다음으로 수비부담이 높으므로 수비만 잘해도 된다. 그러나 크보는 타고투저 리그로 분류되는 데다가 삼성의 김상수 이전 전직 유격수는 박진만,류중일이라는 공수 다 되는 명유격수들이었다. 거기에다가 김상수 플레이 스타일 역시 류중일 현역 시절과 약간 비슷하다. 빠른 발과 약한 장타력에 나름 안정된 수비력까지. 성에 안 찰 수밖에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