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20:50:01

박찬도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삼성 라이온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군
'''70 박진만 [[틀:삼성 라이온즈 감독|
]] · 73 정대현 · 75 손주인 · 77 배영섭
· 84 강영식 · 85 이진영 · 90 박찬도 · 97 강명구
· 98 채상병 · # 이종욱'''
2군
71 조동찬 · 74 박한이 · 79 정민태 · 87 박희수
· 92 정병곤 · # 이흥련 · # 최일언
[[틀: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
(3군) 육성군 / 재활군
82 김정혁 · 88 정현욱 · 91 다바타
컨디셔닝 파트
00 정연창 · 72 나이토 · 81 권오경 · 83 윤석훈
· 86 한흥일 · 93 윤성철 · 95 박승주 · 96 허준환
· 08 김용해 · 09 염상철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1군 엔트리등록 선수육성선수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박찬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16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격왕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9번
결번 <colbgcolor=#c0c0c0><colcolor=#074ca1> 박찬도
(2012)
백종헌
(2014~201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9번
정형식
(2009~2012)
박찬도
(2013~2015)
구준범
(2016~2017)
구준범
(2016~2017)
박찬도
(2018)
최선호
(2019~202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강한울
(2017~2018)
박찬도
(2019~2020)
김성표
(2021~202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0번
권오원
(2012~2022)
박찬도
(2023~)
현역
}}} ||
파일:24 박찬도.png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90
박찬도
朴燦都 | Park Chan-Do
출생 1989년 2월 22일 ([age(1989-02-22)]세)
경기도 안양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비산초(안양리틀) - 평촌중 - 안산공고 - 중앙대
신체 185cm, 75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2012년 신고선수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12~2020)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외야·주루코치 (2023)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외야코치 (2024~)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21~2022)
병역 경찰 야구단
(2015년 12월 24일 ~ 2017년 9월 23일)
응원가 입대 전: 이문세 - 파랑새[1]
제대 후: 구단 자작곡[2]
파일:삼성 라이온즈 심볼(흰색).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삼성 라이온즈
2.1.1. 2012 시즌2.1.2. 2013 시즌2.1.3. 2014 시즌2.1.4. 2015 시즌2.1.5. 군복무
2.1.5.1. 2016년2.1.5.2. 2017년
2.1.6. 2018 시즌2.1.7. 2019 시즌2.1.8. 2020 시즌
3. 은퇴 이후4. 지도자 경력
4.1. 2024 시즌
5. 플레이 스타일6. 연도별 주요 성적7. 여담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 외야수. 現 1군 주루 · 외야코치.

2. 선수 경력

2.1. 삼성 라이온즈

2.1.1. 2012 시즌

신고선수로 입단했음에도 시범경기 때 삼성 신인 중 유일하게 출장했다. 비록 경기 후반 대수비와 대타로 출장했지만 눈도장을 찍었다. 정규 시즌 때는 골절상으로 많은 경기에 못 나오면서, 2군에서 39경기 103타수 26안타 타율 0.252 8타점 18득점 13도루의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그래도 재능을 인정받아 8월에 김영훈, 박해민, 성의준 등과 같이 정식 선수가 되었다. 내야수인 김영훈과 성의준만 시즌 말미에 1군에 잠깐이나마 올라왔고 박찬도와 박해민은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시즌 후 다시 신고선수로 전환된 김영훈, 박해민과 달리 박찬도는 여전히 정식 선수로 남았다.

2.1.2. 2013 시즌

시즌 전부터 외야수로 전향한 김경모와 2군 1번타자를 두고 경쟁했으나, 김경모는 수비 불안에 타격마저 부진하면서 결국 박찬도가 1번 타자 자리를 차지했다. 도중 한 달 가량을 결장했음에도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하는 등, 테이블세터로서 역할을 잘 하면서 6월 18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1군으로 올라오기 전까지 2군 기록은 25경기 101타수 29안타 타율 0.287 10타점 25득점 10도루. 하지만 1군에서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6월 21일자로 다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군으로 내려간지 이틀만인 6월 22일, 경찰 야구단과 경기 중 첫 타석에서 팔에 공을 맞고 교체되면서 결국 수술을 받았다. 약 3개월 동안 재활을 하고 9월 13일 고양 원더스와의 교류경기에서 복귀했다. 9월 17일, 전날 손목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김헌곤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되었다. 같은 날 이정식을 대신해 대타로 출장해 1군에 데뷔했다. 9월 27일 배영섭이 복귀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2.1.3. 2014 시즌

전지훈련 도중 부상을 당한 강명구 대신 대주자 역할을 맡게 되어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4월 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9회초 이승엽과 교체되어 대주자로 출장했는데, 상대 투수의 폭투로 3루까지 달릴 수 있었는데도 2루와 3루 중간에서 미끄러지면서 하마터면 횡사할 뻔했다. 이어 2사 1,3루 상황에서는 더블 스틸 작전이 걸렸음에도 우물쭈물거리면서 홈으로 바로 내달리지 않아 결국 아웃되었다. 모처럼 류중일 감독이 격앙된 표정을 지었을 정도. 1점차로 앞서고 있었고 경기도 이겼기에 망정이지, 동점이나 1점차로 지는 상황이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뻔했다.

4월 12일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박해민이상훈이 1군에 올라오면서, 그 반대급부로 우동균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2군도 1군 못지 않게 타고투저가 심한데, 그럼에도 예년보다 타격이 부진하면서 하위 타순으로 출장하거나 백업으로 출장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1군에서 정형식에 이어 이영욱마저 공수 양면에서 삽질하면서 8월 16일 1군에 올라와 대주자와 대수비로 경기 후반에 출장 중이다.

9월 10일 마산 NC전 9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손정욱을 상대로 프로 데뷔 첫 안타 및 결승타를 역전 2타점 적시타로 때려내면서 그동안 뇌주루 등으로 팬들에게 보인 영 좋지 않은 모습에 대해 속죄하는 활약을 보여 주며 까방권을 획득했지만 출루하자마자 견제사당하면서 까방권을 즉시 사용했다. 어쨌든 팀은 임창용이 공 8개로 세이브를 획득해 역전승의 피날레를 장식한 덕에 박찬도의 견제사는 묻혔다.

2.1.4. 2015 시즌

연습경기 때 류중일 감독이 기량이 가장 발전한 선수로 꼽았고, 시범경기 동안에는 박해민, 구자욱과 경쟁했으나 결국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대주자나 대수비로 출장하면서 이따금 타석에 들어설 때도 있었지만 시범경기 때만큼의 타격을 보여주지는 못하면서 1할대의 타율을 기록했고, 결국 6월 8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6월 18일 박석민이 허벅지 통증으로 2군으로 내려가면서 대신 1군에 올라왔다.

701 대첩에서 8회에 좋은 주루플레이로 한 점을 만들면서 역전승에 기여했다.
7월 22일 경기에서는 3루타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9월 22일 사실상의 결정전이라고 불린 NC와의 맞대결에서 선발 7번타자로 출장 초구 체인지업을 노려 안타를 기록했고 이어 이지영의 안타에 이은 김상수의 스퀴즈 때 홈으로 들어오며 귀중한 득점을 거뒀다.

9월 23일 kt전에서는 5타수 4안타 1타점의 좋은 활약을 해 류중일 감독의 칭찬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주로 게임 끝날 무렵 최형우가 안타 치고 나가면 대주자로 들어간다. 근데 그 시즌 유독 빅이닝이 많이 나와서 타순이 꽤 많이 들었고, 최형우는 알다시피 4번타자이다. 그래서 삼성의 4번타자는 박찬도 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2.1.5. 군복무

2.1.5.1. 2016년
홍정우와 함께 경찰 야구단에 최종 합격하면서 2016, 2017년은 경찰청에서 병역을 해결하게 되었다. 원래는 백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주전 자리를 꿰찼다. 볼삼비는 그저 그랬지만, 매월 월간 타율이 3할 5푼대 이상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시즌 후반부 들어서는 김헌곤과 퓨처스 수위타자에 경쟁했다. 그러나 8월 8월 LG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타석에서 발등에 공을 맞는 바람에 그대로 시즌 아웃됐다. 시즌 최종 성적은 81경기 258타수 97안타 3홈런 55타점 69득점 15도루 타율 0.376. 그래도 김헌곤에 이어 퓨처스 전체 타율 2위를 했으며 이는 북부리그 타율 1위이다.
2.1.5.2. 2017년
2017년을 앞두고 장타력을 증가시키겠다며 스타일을 바꿨다. 홈런 9개로 프로 입단 후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기는 했는데, 막상 장타력을 평가하는 지표는 순장타율(IsoP)은 전년도 대비 증가하지 않았고 타율 감소와 삼진 증가 등 부작용만 보였다. 결국 시즌 후반 들어서는 다시 전년도의 폼으로 돌아왔다고. 시즌 성적은 89경기 90안타 9홈런 45타점 69득점 10도루 타율.286.

2.1.6. 2018 시즌

오키나와 연습경기와 시범경기 때는 출장하지 못했지만, 정규시즌 개막 후 4월 3일 장필준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

4월 13일 한화전에 선발출장했다. 2회 감각적인 번트로 내야안타를 만들어냈으며 4회에는 외야 깊숙한 타구를 워닝 트랙까지 쫓아가 잡아내는 근성을 보여줬다. 14일, 15일에도 선발출장하여 각각 1안타씩을 때려냈으나,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

5월 구자욱이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렸다. 좀처럼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한 가운데 그나마 있었던 기회를 4타석 연속 삼진으로 허무하게 날리면서 5월 29일 1군에서 제외됐다.

6월 19일 백승민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 백업으로 4경기 나오고 7월 2일 1군에서 제외됐다.

8월 11일 백상원, 최지광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

2.1.7. 2019 시즌

18 시즌 후 배영섭 방출을 포함한 선수단 정리에 이어 1군 개막 로스터에 외야 백업으로 합류했다.

3월 27일 롯데전에선 8회 말 볼넷으로 출루한 구자욱의 대주자로 출전해 김헌곤의 그랜드 슬램으로 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고, 그 8회에 타순이 한 바퀴를 돌아 시즌 첫 안타까지 쳐냈다.그리고 다음 날 선발로 내정된 최채흥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3월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 1 1 0 0 0 1 0 0 0 0 0 1.000 1.000 1.000 2.000

4월 14일 독감 증세가 있는 김헌곤 대신 1군에 등록됐다. 4월 25일 다린 러프, 저스틴 헤일리와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4월 기록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볼넷 삼진 병살타 도루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6 3 0 0 0 0 2 0 1 1 0 0 .000 .250 .000 .250

5월 14일 최채흥과 함께 1군에 등록됐다. 5월 25일 김민수가 등록되면서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6월 29일 무릎 통증이 있는 이승현 대신 1군에 등록됐다.

7월 12일부터 2게임 연속 내야안타로만 멀티히트를 쳤다. 14일에도 내야안타로 안타 1개.

1군에 복귀한 이후에는 이전과 달리 잘 치고있다.

8월 29일 이학주가 복귀하면서 대신 1군에서 제외됐다.

2.1.8. 2020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찬도/2020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초반 박해민이 부진하는 동안 깜짝 활약으로 팬들의 이목을 제대로 사로잡았으나, 결국 부진하면서 선수 생활 마지막 해가 되었다.

3. 은퇴 이후

개인 훈련을 소화하던 중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원 제의를 받아들여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4. 지도자 경력

2023 시즌부터 퓨처스 외야 · 주루코치를 맡게 된다. 기사

4.1. 2024 시즌

2024 시즌부터 1군 주루 · 외야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주루코치로써의 평가는 최악. 너무 적극적인 주루를 시도하는데, 이로 인하여 주루사가 상당히 많다. 삼성 특유의 낙하산 인사라는 반응이 대부분. 올해 끝나고 당장 해임해야 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다.

2024년 7월 20일 롯데전에서는 누가 봐도 홈으로 들어가야 하는 타구를 김현준에게 멈추라고 지시하며[3] 코치로써 답이 없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 와중에 점수차가 많이 나는데 홈에 들어간 김현준을 보고 홈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전준호 해설위원의 발언도 압권.[4][5]

7월 23일 한화전에서는 오히려 너무 소극적 주루를 시켜 들어올 수 있는 상황에서 점수가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종합적으로 삼성 역대 주루코치들 중 가장 평가가 안 좋으며, 홍준학 시대의 적폐 코치로 정현욱, 강봉규 등과 함께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그나마 나은 이병규, 정민태를 2군으로 내린 이종열 단장의 처참한 안목을 많은 팬덤이 비판하고 있다. 어느 정도냐면 삼성 주자들이 박찬도의 지시를 듣지 않을 정도.

8월 20일 두산전에서도 8회에 2루에 있던 발이 느린 디아즈를 무리하게 돌리다가 홈에서 아웃을 만드는 참사를 벌였다. 팀이 3점차 리드 중이어서 망정이지 접전이었으면 엄청난 찬물일 뻔 했다. 이로 인해 시즌이 끝나고 무조건 해임해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

9월 19일 KT전에서 5회초에 김현준류지혁의 출루 이후에 이병헌 안타로 1사 만루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류지혁과 김현준에게 제대로 된 주루 플레이를 지시하지 못하며 어이없는 본헤드 플레이가 나오도록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1사 1,2루에서 이병헌의 안타에 잘 하면 김현준이 홈 승부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팔을 돌리다가 갑자기 행동을 멈추더니 앞 주자를 안 보고 뛰어온 류지혁과 김현준이 3루에서 겹쳐버린 상황을 만들어 버리며 류지혁이 아웃당하고 뒤에 이재현이 삼진 아웃당해서 무득으로 끝났다. 접전 상황에서 달아날 수 있는 기회에서 나온 실수라서 팬들의 여론이 매우매우 나빠지게 만들었다. 물론 류지혁이 그 상황에서 판단을 잘못하고 생각 없이 주루 플레이를 한 것도 있지만 박찬도 코치가 그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과 지시를 하지 못하고 득점 기회를 날려버렸으며 이후 이어진 5회말에서 투수진이 5실점을 하며 분위기를 상대에게 완전히 내 주고 말았다.

그러나 10월 16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디아즈의 짧은 안타에 이성규를 홈까지 돌리는 승부수를 두며 홍창기의 송구실책까지 겹쳐 추가득점에 성공했다. 정규 시즌 내내 평가가 안좋았지만 포스트 시즌에 처음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이종욱 코치가 영입됨에 따라 2군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5. 플레이 스타일

강한울 외야수 버전쯤 된다.[6] 공을 맞추는 재능이 있고 몸 키우기 전엔 발이 빨랐다. 나름대로 손목 힘도 있는 편이며 두 번의 어깨 수술의 여파로 정확도가 좀 불안정할 뿐 어깨도 강한 편이다. 이렇게만 보면 왜 미지명되었나 싶은 툴가이지만, 현실은 툴을 스킬로 발전시키지 못한 선수. 당장 본인보다 툴이 부족해서 우선순위가 낮았던 박해민이 본인의 주력을 잘 활용하여 1군에 안착할 때 더 툴이 좋았음에도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저 툴 중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기 때문이다. 1군에서 중용된 15년에 19번의 도루 시도 중 6번을 실패하며 68%의 도루성공률을 기록하며 1군 대주자로 쓰기엔 미흡한 모습을 보인 게 그 예.

19시즌 앞두고 유행따라 벌크업을 했다. 코어팬들은 갖다 맞추는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벌크업이냐고 의아해했는데 아니나다를까 타석에선 땅볼이나 까는데, 몸 커져서 외야수비할 때 발만 느려졌다.

20시즌엔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며 좌익-중견수에서 활약하고 있다. 출루와 중요한 순간에서의 집중력이 몰라보게 향상된 모습. 2~3년 연속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시즌초반 2군으로 내려간 박해민 이상의 역할을 하면서 5-6월 상승세의 주역이 되고 있었으나 페이스가 계속 떨어지며 원상태로 복귀하였다... 그래도 박찬도가 주전이었을때 삼성이 4위까지 찍었기 때문에 아직 박찬도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 그러나 나이가 일찍이 30대를 넘긴데다 박찬도보다 어린 다른 외야 자원도 많아져서 방출 여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놓였다. 지금 까지의 성적만 놓고보면 방출감이지만 삼성이 5-6월 한참 잘 나갈때 주전 중견수 2번타자가 박찬도였다. 그 때는 박해민이 누구죠?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해주고 항상 성실히 야구를 한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올 시즌 방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으나 2018년 배영섭의 사례도 있기 때문에 생존한다고 장담할 순 없다.

2020년 10월 31일부로 결국 웨이버 공시되었다. 20시즌에 삼성 주전급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하는 와중에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는 의견과 후반에 갈수록 떨어진 성적에 한달 반짝 플루크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2018년 배영섭이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방출감의 성적은 아니었는데 방출된 것을 보면 둘 다 나이 때문에 방출된 안타까운 케이스다. 박찬도 대신 최근 1군에서 실적이 아예 없던 최선호를 방출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3 삼성 3 1 .000 0 0 0 0 1 1 0 1 .000 .500
2014 28 8 .500 4 0 0 0 3 8 6 0 .500 .500
2015 116 89 .213 19 2 1 0 9 32 13 12 .258 .307
2016 군복무(경찰 야구단)
2017
2018 53 73 .233 17 4 1 0 5 13 3 8 .315 .309
2019 30 32 .281 9 1 0 0 2 10 0 2 .313 .324
2020 51 96 .219 21 5 0 1 8 20 5 16 .302 .325
KBO 통산
(5시즌)
283 299 .234 70 12 2 1 28 84 27 39 .298 .321

7. 여담

  • 공교롭게도 입단 동기이기도 한 박해민과 비교된 적이 많았다. 똑같은 우투좌타 외야수에 발이 빠르다는 점이 동일한데, 2013년까지만 하더라도 박찬도 쪽의 평가가 좋았으나 2014년 이후로는 완전히 박해민의 우세로 기울었다. 위에서도 언급됐듯이 박찬도가 자신이 갖고 있는 툴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게 그 원인이다. 박찬도는 빠른 89고, 박해민은 빠른 90으로 실제로는 박찬도 쪽이 1살 더 많지만 박찬도가 유급을 했기 때문에 입단 시기가 같아 서로 말 놓고 친구처럼 지낸다. 힘든 시기를 같이 겪어서 더욱더 친해졌을 수도 있다.[7] 2020시즌 초반에 박해민의 부진으로 다시 박찬도의 우세로 기우나 싶었지만 결국 다시 복귀한 박해민의 각성으로 기울지 못했다. 결국 박찬도는 방출되었고 전력분석원으로 일하다가 퓨처스 코치로 자리를 옮긴 방면에 박해민은 2014시즌부터 2021년까지 삼성의 주전 중견수로 잡게 되었고 2021 시즌 후 4년 60억이라는 거액을 LG와 계약해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된다.
  • 강아지를 두 마리 키운다고 한다.
  • 박헌도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다.
  • 현역 시절 구자욱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에서 가장 잘생긴 선수 중 하나로 반드시 꼽혔다.
    파일:/image/111/2011/05/10/130496365252_1.jpg
    지금도 리그에서 가장 잘생긴 코치 중 하나로 종종 언급된다. 중앙대학교 시절 별명이 대학 리그의 이대형이었다고 한다. 잘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굴만큼 야구했다면 이미 MVP 탔을 거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8. 관련 문서


[1] 최강삼성 라이온즈 박찬도(X4) 워어어~[2] 삼성의 박찬도 박찬도 최강삼성 박찬도~ 안타를 쳐줘요 최강삼성 박찬도! X2 #[3] 김현준은 자신의 판단으로 지시를 무시하고 홈으로 들어갔다.[4] 이후 해명하기를 박찬도 주루코치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면 안 돼요"라고 하는 건 본인의 주관도 들어가 있긴 하다.[5] 아마도 불문율을 언급한 듯한데, 전준호가 선수 생활을 할 때는 불문율을 지키는 것이 상대팀에 대한 매너로 여겨졌으니 이런 얘기가 나온 듯하다.[6] 물론 어디까지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것이지 통산 성적만 보면 강한울이 훨씬 우위에 있다.[7] 프로 입단 첫 해였던 2012년에 박찬도는 경기 중 펜스에 부딪혀 팔이 골절되는 바람에 한동안 재활해야 했고, 박해민도 비슷한 시기 어깨 부상 때문에 은퇴를 고민했을 정도로 부상 정도가 심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