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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군 입대 선수 | 1군 엔트리 | 등록 선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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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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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 2006 | 2011 | 2012 | 2013 |
2009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격왕 |
{{{#fff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번}}} | ||||
김승권 (2002) | → | 강명구 (2003~2007) | → | 김경모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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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양 (2016) | → | 강명구 (2018~) | → | 현역 |
<colbgcolor=#074ca1><colcolor=#ffffff> 삼성 라이온즈 No.97 | |||
강명구 姜明求|Kang Myung-Gu | |||
출생 | 1980년 10월 25일 ([age(1980-10-25)]세) | ||
광주광역시 동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광주중앙초 - 광주진흥중 - 광주진흥고 - 탐라대 | ||
포지션 | 유틸리티 플레이어[1] | ||
투타 | 우투좌타[2] | ||
프로 입단 | 2003년 2차 1라운드 (전체 7번, 삼성) |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2003~2014) | ||
지도자 |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 (2018)[3]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코치 (2018~2022)[4] 삼성 라이온즈 1군 작전코치 (2023)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코치 (2024~) | ||
프런트 |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15~2017) | ||
병역 |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7년 11월 26일~2009년 10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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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곡 | The Chainsmokers #Selfie | ||
응원가 | 4minute - 《Muzik》[5] 산울림 - 《개구쟁이》링크[6][가사1] 룰라 - 날개 잃은 천사[가사2]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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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삼성 라이온즈 1군 작전·3루 주루 코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제주 탐라대학교[9] 출신으로 진흥고 시절에는 그렇게까지 두각을 나타낸 선수가 아니었지만, 대학 리그에서 빠른 발과 괜찮은 타격 실력을 자랑하는 유격수로 성장하며 아시안게임 대표팀 예비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한다.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2.1. 2003~2010 시즌
졸업 후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전체 7번)로 삼성에 지명되어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여담으로 당시 두산 베어스가 유격수 김민호의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강명구를 2차 1순위로 뽑을 계획이었다고 하나, 바로 앞 순번이었던 삼성에서 먼저 강명구를 뽑아가는 바람에 지명에 실패했다고 한다.[10] 비록 승부수를 띄울 때 대주자로 주로 나왔던 선수였지만, 삼성답게 2차 1순위 지명 선수로 재미를 꽤 본 케이스 중 한 명이다.이 당시 삼성은 기존에 유격수를 지키던 틸슨 브리또와 재계약에 실패해 유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그 자리에 조동찬과 강명구 둘 중 누구를 쓸지 고민하다가, 그나마 강명구보다 장타력이 한 방 있다고 평가되던 조동찬이 주전 유격수를 차지했고,[11] 그렇다고 2루수 혹은 3루수로 쓰려고 보니 기존에 박종호와 김한수가 여전히 건재하던 상황인데다가 강명구의 타격이 약했기 때문에 삼성 내야진에 강명구가 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발이 빠르다는 장점을 살려 대주자로 1군에서 살아남았으며, 한때는 주루 스피드가 이대형보다도 빠르다는 평가도 나왔다. 풀 타임 기회만 주어지면 50~60도루는 가능했을 정도. 수비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데다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앞서 서술했듯이 빠른 발, 준수한 수비에 비해 타격이 워낙 약했기 때문에 주전으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대주자에 그쳤다.
그래도 2005년부터 부임한 선동열 감독이 기존의 공격야구 대신 스몰볼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던지라 꾸준히 1군 엔트리에 들어 대주자로 자주 기용되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중용되며 우승 반지도 챙겼다. 거기에 2006년에는 단 1안타만 치고도 대주자로 나와 21도루를 기록했다. 다만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는 미친 듯이 주루해서 앞 주자를 추월하는 바람에 앞 주자가 아웃되기도 했다.[12] 그리고 똑같은 일이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일어날 뻔했다.
2007년 시즌 종료 뒤 상무에 입대했다. 이후 0.385의 타율로 2009년 2군 북부리그 타격 1위에 올랐으며, 동시에 39도루를 기록해 북부리그 도루왕도 차지했다. 당시 북부리그 2위였던 하지호와는 무려 13도루 차이였다. 이에 삼성 팬들은 강명구가 전역하면 타격 포텐이 터져 대주자에서 벗어나 주전 내야수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기대했으나...
2009년 10월 22일 이정식과 동반 제대하였다. 과연 삼성 라이온즈의 진정한 발야구를 실현할지 기대를 모았지만, 2010년에 도루는 단 7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270의 타율을 기록, 확실히 타격은 군입대 전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 3, 5차전에 대주자로 출장하여 2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대수비, 2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0년 12월 4일에 결혼했다.
2.2.2. 2011 시즌
2011년 4월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선수 생활 유일한 홈런을 쳤다. 홈런을 쳤을 당시 만 30세 6개월 3일(11,142일)로 KBO 공식 최고령 데뷔 홈런.[13]5월 25일 기준으로 도루를 11회 시도하여 모두 성공했다. 고로 성공률 100%라는 황당한 스탯을 기록했다. 이후 도루 성공률 100%는 깨졌지만, 대주자로 자주 나온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대단한 기록이다.
9월 20일 두산전에서 11회 말 페르난도 니에베의 폭투를 틈탄 주루 플레이로 팀의 역전을 이끌며 자신의 대주자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2루에서 출발한 강명구가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자 페르난도가 홈 커버를 왔을 때, 그의 태그를 피해 베이스를 터치하는 장면은 압권.
SK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 2차전은 결장하고 3, 4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4차전에서 득점을 올렸다.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2.2.3. 2012 시즌
2012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주루로 득점한 뒤 포효하는 모습.[14] |
역시나 작년과 똑같은 대주자 전문. 타석에 들어서는 일은 거의 없었고 수비도 거의 하지 않았다. 철저히 경기 후반 승부처에 나오는 대주자 전문이었다.
7월 19일, 한화와의 대전 원정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3:5로 지고 있던 8회초에 진갑용의 대주자로 기용되어 들어갔다. 그리고 이지영의 안타 때 열심히 홈으로 달렸으나, 홈에 먼저 공이 들어가 있었고 슬라이딩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들어갔다가 아웃 처리되었다. 이 때문에 스코어 5:5가 될 상황이 4:5가 되었고, 그와 김재걸 3루 코치는 괜히 까였다. 그리고 바로 9회초에 교체되었다.
9월 5일, LG와의 대구 홈경기에서 스코어 0:0이던 7회말 이지영의 대주자로 1루에 들어갔다. 이후 정형식, 조동찬의 진루타로 2사 3루 상황. 타석에는 김상수. 리드 폭을 길게 잡으면서 홈 스틸을 시도했는데, 선발 투수 리즈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보크를 범했다. 그렇게 리즈를 강하게 흔들어 놓은 강명구는 홈인에 성공했다.[15] 결국 이 득점이 결승 득점으로 되어 삼성 라이온즈는 9회에 오승환이 뒷문을 단속해서 스코어 0:1로 LG 트윈스를 이겼고, 강명구에게 흔들린 리즈는 완투패를 당했다. 강명구는 이 날 경기의 수훈 선수에 선정되어, 사인하고 인터뷰까지 했다.
SK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엔트리에 포함되어 1, 3, 4차전에 대주자로만 출장, 2득점을 기록했다. 대구에서 열린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2:1로 앞선 7회 초 무사 2루에서 이지영의 대주자로 출장, 다음 타자이자 1번타자인 배영섭의 내야안타 때 과감하게 홈으로 들어와 쐐기 득점을 하여 왜 자신이 KS 엔트리에 포함되었는가를 증명해 냈다. 이 결승 득점으로 윤희상은 결국 완투패를 당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2.4. 2013 시즌
작년과 똑같이 대주자 역할로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나 4월 2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4월 18일 SK와의 경기를 앞두고 박석민의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다시 1군에 등록되어 바로 7회말 진갑용의 대주자로 나가서 도루 1개를 기록했다. 하지만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병살타를 침으로써 팀이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타이 기록(4개)을 세우는 데 한몫을 했다. 타구 질은 나쁘지 않았으나 상대 유격수 박진만이 잘 잡아냈다. 하지만 이후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가운데 4월 24일 LG와의 경기 도중 대주자로 나섰다가 런다운 상황에서 발목 부상을 입어서 4월 25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5월 12일 자로 손목 통증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간 박한이를 대신해서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며 5월 15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본인의 통산 100번째 도루를 달성하였다. 이 날까지의 도루 100개 가운데 96개가 교체되어 출장한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나 가히 대주자 장인이라 할 만하다.
5월 18일 NC와의 경기에서 9회초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최형우의 대주자로 교체되고 도루 1개를 기록했다. 그리고 박석민의 2루타로 득점에도 성공하여 동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추가 득점에 실패한 이후 벤치에 남은 외야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9회말부터 4번타자 좌익수[16]로 경기에 계속 참여. 10회초엔 평범한 2루수 땅볼로 물러났지만 12회초엔 중전 안타를 때려 1타점을 올리고 다음 타자인 채태인의 안타로 득점도 성공하였으며 9회말과 11회말엔 명수비(?)를 선보이는 등 간만에 주루가 아닌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해 주었다.
6월 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8회초 볼넷으로 출루한 채태인의 대주자로 기용되었지만 한현희에게 견제사를 당했다. 6월 5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이승엽의 대주자로 들어갔으나 첫 도루 실패를 당했다.
6월 20일 결막염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7월 9일 복귀했다. 7월에 잠깐 김상수의 부상으로 키스톤에 공백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정현과 함께 시범적으로 기용되었다가 7월 25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는 아예 7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타격은 여전히 좋지 않지만 출루해서 배터리를 흔드는 실력만큼은 일품. 7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도 역시 7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6점 차로 크게 앞서다가 한 점차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상황, 앞선 타석에서 병살타까지 나와 자칫 분위기를 넘겨줄 수도 있는 2사 상황에서 천금같은 적시타를 때려냈다. 그 뒤 주자로서도 곧장 3루까지 2연속 도루를 기록하는 발군의 주루를 펼쳐 득점까지 연결시켰다. 이날 경기 승부처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활약을 선보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4, 5차전에 대주자로만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2도루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우승하여 3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로써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만 5개째!
2.2.5. 2014 시즌
오키나와 2차 스프링캠프 도중 머리에 공을 맞아 시범경기에 나오지 않고 휴식을 취하였다. 류중일 감독은 빠르면 개막전 즈음에 등록될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다. 하지만 개막전 엔트리 포함은커녕 2군에도 출장하지 못했고 대신 박찬도, 박해민 등의 신인들이 기회를 얻으면서 강명구가 낄 틈이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5월 22일에서야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5월 27일 김태완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1군에 올라온 후 대주자로만 2경기 나왔고, 6월 9일 2군으로 내려갔다. 6월 25일 백상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8월 1일 조동찬이 복귀하면서 대신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부상이라도 있었는지 8월 14일 이후로는 2군 경기에 출장하지 않았다. 10월 6일 옆구리 통증으로 빠진 박석민을 대신해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아쉽게도 2014년 한국시리즈에는 부상으로 인해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방출되었으며, 대신 삼성 라이온즈에서 제안을 받아 전력분석원을 맡게 되었다.
방출의 이름을 빌린 사실상의 보직이동으로 보이며[17] 지도자 생활을 이로 시작하려는 듯 보인다.
전력분석원 시절 모습 |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전력분석 업무를 하다가, 2017년 시즌 종료 후 2군 주루코치로 선임되면서 현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다가 2018년 6월 26일부로 1군 1루 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1군으로 올라왔다.[18] 이후 박진만 코치와 함께 주루코치를 맡게 되었다.팬들의 평가는 꽤 좋은 편. 2020년 6월 2일 자 LG 트윈스와의 경기 때 덕아웃에서 타자 주자 이천웅의 2루 진루 모션을 캐치하여 김상수에게 태그하라고 소리쳤다.[19] 이천웅은 아웃되었고 강명구 코치는 삼성 선수들에게 연호 및 따봉을 받았다.
2020년 7월 3일자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루에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여 병살이 될것을 막아내고 이후 김동엽의 결승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사실상 숨은 1등 공신이 되었다.
2020년 7월 17일 경기에서 김지찬에게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 하면서 도루를 독려했고, 결국 김지찬은 도루를 성공시켰다.
2020년 10월 14일 경기에서 SK 최경철 코치와 언쟁이 있었다. 강명구가 투수의 버릇을 파악하여 선수들에게 도루 타이밍을 지도하자 최경철이 "강명구 코치가 SK 배터리의 사인을 훔친 게 아니냐?"는 말을 하면서 언쟁이 시작되었다.[20] 이에 강명구는 "내가 주자한테 얘기했지, 타자한테 얘기했냐?"[21]며 반문했다. 곧 다른 코치들에 의해 제지되면서 양 측 코치의 언쟁은 막을 내렸다. 이닝 교대 시간에 있었던 아주 잠깐의 해프닝이지만, SBS스포츠 주간야구에 소개되었다. 이 해프닝에 대해 SBS스포츠 안경현 해설위원은 "만약 강명구 코치가 진짜 사인을 파악해 냈다 하더라도, 1루 주루코치가 사인을 볼 만큼 사인을 허술하게 내는 SK가 항의는커녕 부끄러워야 한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다른 해설위원들도 큰 논란이 될 문제는 아니라고 얘기하였다. 다음날 SK 박경완 감독 대행 또한 "강명구 코치는 본인의 일을 했다"면서 사건을 매듭지었다.
2021년 4월 17일 롯데전에서 김준태를 상대로 김지찬이 무려 1이닝 3도루를 기록했다. 강명구의 눈에는 김준태가 거의 자동문 수준으로 보이는 듯. 이로써 자신의 팀 선배인 신동주가 1999년 6월 24일 LG를 상대로 세운 1이닝 3도루 기록과 타이를 달성했다. 참고로 신동주는 1루부터 2루, 3루, 마지막으로는 홈스틸을 작렬시킨 반면 김지찬은 프랑코의 핵실험 덕에 타순이 두 번 돌아서 2루 도루 두 번, 3루 도루 한 번을 각각 기록했다.
프로 시절에도 대주자 전문이어서 그런지 도루나 주루를 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좋다.[22] 2020, 2021 두 시즌 연속으로 삼성은 KBO 리그 전체 도루 성공 1위를 달성했으며 성공률 또한 3위안에 들 정도로 매우 높다. 강명구 코치로 인해 작전 성공률이 높아진 건 물론이고 구자욱의 프로 데뷔 첫 20-20을 성공시키는 업적까지 세웠다. 여기에 각성한 김지찬이 틈만 나면 상대의 배터리를 흔들어 놓는 대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선수들과 잘 지내고 특히 피렐라와는 농담도 주고 받을 만큼 각별한 사이이며[23] 삼성이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를 하게 만든 공이 뚜렷해서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2022 시즌에는 성적 부진 등으로 1/2군 코칭스태프가 뒤바뀌었지만 이영수 코치와 유일하게 1군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코치가 되었다.
2023 시즌부터는 강봉규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1루가 아니라 3루 베이스 겸 작전코치로 이동했는데 2024 시즌에는 박찬도 코치가 3루를 맡고, 강명구는 다시 1루로 돌아왔다.
1루 주루코치를 맡고 2024시즌 전반기까지는 평가가 매우 좋다. 주루사 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박병호와 강민호도 도루에 성공할 정도로 상대 배터리의 허점을 잘 파악해 도루를 성공시킨다. 특히 김지찬과 구자욱과 합이 정말 잘 맞는 편이다. 김지찬은 도루 시도만 시켜도 성공이고 구자욱도 이번시즌 주루사는 한 번도 없을 정도로 타이밍을 잘 잡아준다. 열정적인 모습 때문에 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24]
4. 플레이 스타일
강명구의 플레이 스타일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KBO 역대 최고의 대주자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할 수 있다.[25] 현역 시절 선발로 출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빠른 발이라는 확실한 1툴만으로 경기 후반 승부처에 항시 대기하고 있어서 삼성 1군 붙박이 멤버로 활동했다. 단순히 발만 빠른 게 아니라 주루 센스 또한 매우 뛰어나서, 통산 도루 성공률이 82%(111도루 24도실)에 달해 역대 100도루 이상 선수 가운데서 성공률 3위에 해당한다.[26][27] 덕분에 승부처에서 대주자로 올라와 상대 배터리를 강하게 흔들고 추가 득점을 내주는 스페셜리스트 역할을 맡았다.타격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다른 능력을 극대화시켜 궂은 일을 도맡아한 좋은 서브 선수였다는 점은 김재걸과 같았지만, 김재걸과 달리 수비 툴은 없었고 오직 주루 능력 하나로 그 강했던 삼성 왕조 안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더욱 부각되었던 선수였다. 은퇴 후 코치도 주루, 작전 쪽으로만 맡고 있으므로 오직 주루 하나로 프로야구판에서 근 20여년의 시간을 활약하는 입지전적인 인물.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성적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3 | 삼성 | 9 | 3 | .000 | 0 | 0 | 0 | 0 | 0 | 1 | 1 | 0 | .000 | .000 |
2004 | 15 | 11 | .273 | 3 | 0 | 0 | 0 | 1 | 2 | 0 | 0 | .273 | .273 | |
2005 | 106 | 44 | .250 | 11 | 1 | 0 | 0 | 2 | 30 | 21 | 6 | .273 | .340 | |
2006 | 91 | 19 | .053 | 1 | 0 | 0 | 0 | 1 | 22 | 21 | 5 | .053 | .250 | |
2007 | 68 | 27 | .111 | 3 | 0 | 1 | 0 | 2 | 13 | 13 | 5 | .185 | .250 | |
2008 |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 |||||||||||||
2009 | ||||||||||||||
2010 | 55 | 63 | .270 | 17 | 5 | 0 | 0 | 9 | 17 | 7 | 3 | .349 | .303 | |
2011 | 89 | 58 | .172 | 10 | 1 | 0 | 1 | 5 | 22 | 19 | 5 | .241 | .234 | |
2012 | 72 | 10 | .100 | 1 | 0 | 0 | 0 | 0 | 16 | 15 | 1 | .100 | .182 | |
2013 | 55 | 58 | .190 | 11 | 0 | 1 | 0 | 6 | 22 | 11 | 5 | .224 | .254 | |
2014 | 21 | 4 | .000 | 0 | 0 | 0 | 0 | 0 | 8 | 3 | 0 | .000 | .000 | |
KBO 통산 (10시즌) | 581 | 297 | .192 | 57 | 7 | 2 | 1 | 26 | 153 | 111 | 30 | .239 | .265 |
6. 여담
- 상술했지만 원래는 두산 베어스가 김민호의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눈독들이고 있던 선수였다. 그런데 바로 앞 순번인 삼성이 강명구를 채가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었다. 대신 두산은 신고선수로 손시헌을 건져 골든글러브+국대 유격수로 성장시킨 반면, 삼성의 선택을 받은 강명구는 주전 내야수로 뛰어보지 못하고 대주자로 남다가 은퇴했다. 대학 시절 강명구가 손시헌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걸 생각하면 인생사 새옹지마라 할 만하다.[28]
- 대체로 내야수가 안타를 치고 나가면 그 대주자로 나온 후 원래 선수의 포지션에 들어가 수비를 했으나, 내야 전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선수기 때문에 선수가 정 없으면 아예 대수비로도 종종 나왔었다. 유격수 박진만 - 대타 심정수 - 아웃, 공수교대 - 대수비 강명구 이런 식으로. 심지어 외야 수비도 가능해 2007년에는 심정수의 좌익수 대수비로 나온 적도 있다.
- 출전기회가 적은 대주자답게 마구마구에서 모든 시즌이 노말이다. 기용이 많았던 시즌은 노말임에도 덱 보너스와 순속이 되면 쓸만하다. 스피드가 가장 좋은 시즌은 본인 한 시즌 최다 타이 기록인 21도루를 기록한 2006 시즌이다.[29] 스피드 76. 삼성 시절 권혁도 노말 주제에 직구 스탯이 86인 카드도 있는데 21도루 치고는 짜게 준 감이 있다.
- 마른 몸이 콤플렉스여서 20대 중반에는 심정수처럼 벌크업을 하려고 했었는데 그러다 심정수가 정말로 삼성에 오면서 원정경기 룸메이트가 됐다. 심정수가 홈런을 쳤을 때 둘만의 세리모니도 있었다.[30]
- 이진영 못지않게 이쪽도 투수들의 쿠세[31]를 잘 분석하기로 유명하다. 아무래도 전문 대주자 요원이다 보니 어느 투수가 무슨 습관이 있고 어떨 때 도루를 시도해야 하는지 다 파악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기사에 따르면 도루를 시도하기 전 상대 투수의 목 주름까지 살펴보며 모든 동작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한다고 한다. 은퇴 후 곧바로 전력분석원으로 선임된 것도 그만큼 강명구의 쿠세 분석 능력이 우수하다는 걸 보여준다. 피렐라는 삼성 라이온즈 유튜브에서 '강명구 코치는 모르는 게 없다' 식의 칭찬을 하기도 했다.
- 도루하기 가장 힘든 상대 팀 투수로는 봉중근을 꼽았다. 실제로 봉중근은 루상에 주자가 나가 있으면 견제를 잘 하기로 유명한 투수이다. 좌완이라서 투구하는 내내 1루를 자유자재로 관찰할 수 있는 점도 한 몫 한 듯.
- 선수 시절 억대 연봉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연감 기준 실제 최고 연봉은 6천만원(2012년~2014년)이었다. 그러나 우승 보너스를 비롯해 당시에는 승리수당이 있던 시기라서[32] 연봉과 별도로 받은 수당을 합치면 1억원을 넘었을 수도 있다.
- 선수 시절 KBO 리그 사상 전무후무한 전문 대주자 요원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1군에서 롱런함은 물론 극적인 승리를 자주 만들어냈고, 코치로 있는 지금도 선수들을 잘 챙기는 다정한 모습이라든지, 주루를 성공시키는 모습으로 평이 좋은 편. 삼성 라이온즈 유튜브에서도 은근히 분량이 많다. 선수들에게 하는 질문이나 앙케이트 조사에 다른 코치들과 달리 꾸준히 응해준다. 팬 서비스도 좋다.
- 상술했듯 피렐라와는 사이가 각별한 듯 하다. 홈런치고 나서 세레머니도 강명구 코치와 하며 라이온즈TV에서도 친한 모습을 보여주며 피렐라와 있는 모습이 자주 중계에서도 보인다.
7. 관련 문서
[1] 일단 주 포지션은 2루수고, 아마추어 시절에는 유격수가 주 포지션이었다. 그 외에 3루수와 1루수도 볼 수는 있다. 수비 때 나온다면. 심정수가 있던 시절에는 좌익수 대수비로도 나온 적 있다. 경기 후반 심정수의 대주자로 교체되어 출장하면 공수교대 후 심정수가 맡았던 좌익수로 나왔다.[2] 원래는 좌타자였다가 2007 시즌 잠시 스위치 히터로 전향했다. 그러나 우타석에 들어선 적은 없다. 상무 입대 후 다시 좌타자로 변경.[3] ~6월 25일[4] 6월 26일~[5] 붐붐붐 강명구! 붐붐붐 강명구! 최강삼성 라이온즈 명구명구! 최강삼성 라이온즈 명구명구! 최강삼성! 라이온즈! 강명구 Party tonight![6] 前 LG 트윈스 내야수 정근우의 SK 와이번스 시절 응원가와 같은 곡을 쓴다. 이전에는 포미닛의 《Muzik》을 썼다.[가사1] 라이온즈 강명구 뜀을 뛰고 안타치고 놀아요~ (안타~강명구) X2[가사2] 강명구 안타 날려라 강명구 안타 안타 강명구 X2[9] 제주산업정보대학과 통합하여 2012년부터 제주국제대학교로 변경되었다. 송창현의 모교.[10] 대신 두산은 그 해 신고선수로 손시헌을 건지며 김민호의 후임 유격수를 찾게 된다.[11] 이후 2004년 말 FA로 박진만이 합류하며 유격수 자리를 보강한 뒤 조동찬을 3루, 김한수를 1루에 배치하며 내야진 개편이 이뤄졌다.[12] 변명을 해주자면, 비가 워낙 심해 앞이 보일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날씨가 어땠는지는 2004년 한국시리즈 항목 참조.[13] 참고로 이 기록은 7년 후 유재신이 11,276일로 경신했다.[14]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에서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15] 정작 강명구 본인은 홈인한 후 리즈의 보크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VOD에서도 잘 보면 주심이 멈칫했던 리즈에게 손 제스쳐로 보크를 지적하는 장면이 나오고, 하일성도 리즈의 보크라고 말했다.[16] 주 포지션은 내야수다. 외야수로의 출장은 2010년 이후 약 3년 만이다.[17] 방출 통보를 받고 대신 전력분석원 제안을 받은 게 아니라 전력분석원 제안을 먼저 받았다고 한다.[18] 반대급부로 김재걸, 박재현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갔다.[19] https://youtu.be/Ah60k2rOTTs 2분 40초 참고.[20] 두 코치는 1980년생으로 동갑이며, 2017년 최경철이 잠시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로 1년 간 뛰었을 당시에 강명구는 팀 전력분석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같은 팀으로 생활한 적도 있다.[21] 코로나19 시대에 팬서비스 차원에서 주루코치는 마이크를 차고 있다. 따라서 최경철의 음성은 안들리지만 강명구의 음성은 아주 명확히 들렸다.[22] 위성우 감독이 현역 시절 식스 맨으로 많이 나섰던 게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 것과 맥락이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23] 피렐라는 스승의 날에 강명구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기도 했다.[24] 특히 삼튜브 영상을 챙겨본다면 알겠지만 경기에서 승리하고 난 후 자체적으로 인터뷰 하기 전 선수단과 코치진이 서로 인사할때 덕아웃에서 나오면서 긍정적인 따봉을 날리는 모습이 백미다. 종종 나오는 "당연한거야~"라는 멘트도 깨알 호감 포인트.[25] 이와 비슷한 경우로 MLB의 테란스 고어가 있다.[26] 1위는 키움 히어로즈의 김혜성(86%), 2위는 다소 놀랍게도 조동찬(83%)이다. 참고.[27] 다만 강명구가 대주자 전문 선수인 점을 감안하면 이 두 선수보다 고평가할 여지도 충분하다. 투수의 헛점을 틈타 도루를 노리는 것도 가능한 일반 야수에 비해 대주자를 낸다는 것은 여차하면 도루를 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고, 강명구같은 대주자가 나오면 자연스레 다른 대주자들보다 상대 팀의 도루 대비가 평소보다 더 철저해지기 때문에 투수의 견제를 훨씬 심하게 받는다. 강명구는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도루 성공률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28]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만한 건 손시헌은 우승을 못하고 은퇴했는데 강명구는 비록 대주자에 그쳤지만 삼성에서 우승반지만 무려 5개를 얻었다.[29] 2005, 2006년 연속 21도루를 하였다.[30] 오른손으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을 하늘로 치켜드는 동작이다.[31] 투수의 나쁜 버릇.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때 글러브의 미세한 변화, 팔각도의 미세한 변화 등 눈으로 포착 가능한 습관을 말한다.[32] 이 승리수당이 상상 이상으로 많아 배영수는 차에 돈다발을 들고 다녔고 아예 화폐 계수기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선발 투수 배영수가 받는 수당과 대주자 강명구가 받는 수당은 다르긴 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