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2 07:14:43

진갑용

진갑용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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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수상 기록
2002, 2005, 2006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2008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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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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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border:0px solid; margin:-1px; margin-top:-1px; margin-bottom:-1px"
1998 AG 2000 Oly 2002 AG 2004 Oly 예선 2006 WBC
심재학 김기태 이종범
2006 AG 2008 Oly 예선 2008 Oly 2009 WBC 2010 AG
박재홍 박찬호 진갑용 손민한 봉중근
2013 WBC 2014 AG 2015 P12 2017 WBC 2017 APBC
진갑용 박병호 정근우 김재호 구자욱
2018 AG 2019 P12 2020 Oly
김현수
ⓐ 1998년 이전의 올림픽과 야구선수권대회에는 아마추어 선수만 출장했으므로, 따로 주장 경력을 기재하지 않았다.
ⓑ 2017년 APBC는 U-24 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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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1px"
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1991~1992 1993~1994 1995~1996 1997 1998
김용국 강기웅 이종두 류중일 양준혁
1999 2000 2001 2002~2003 2004~2008
류중일 김기태 김태균 김한수 진갑용
2009 2010 2011~2012 2013~2014 2015
박진만 강봉규 진갑용 최형우 박석민
2016 2017 2018 2019~
박한이 김상수
박해민(임시 주장)
김상수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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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등번호 22번
송영철 진갑용 (1997) 최기문(1998)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12번
한상원(1995~1997) 진갑용 (1998~1999) 표성대(2000~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박현영(1997) 진갑용 (1999) 김동수(2000~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강동우(1998) 진갑용 (2000~2015) 정인욱(201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6번
최주엽(2016) 진갑용 (2018~)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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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진갑용.pn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No.96
진갑용(陳甲龍 / Kabyong Jin)[1]
생년월일 1974년 5월 8일 ([age(1974-05-08)]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사하구[2]
학력 하단초-부산중-부산고-고려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2차 1라운드 지명(전체 1번,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7~1999)
삼성 라이온즈 (1999~2015)
지도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배터리코치 (2017)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2018~2019)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2017~)
응원가 등장시: 해바라기《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타격시: 1:Shaun Cassidy《Da Doo Ron Ron》[3][4][5]타격시: 2:박상철《황진이》[6][7]타격시 3: 실로암[8][9]
병역 병역특례[10]

1. 개요2. 선수 생활
2.1. OB/두산 베어스 시절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2.2.1. 2011년2.2.2. 2012년2.2.3. 2013년2.2.4. 2014년2.2.5. 2015년
2.3. 연도별 성적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비판 및 논란6.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7. 이야깃거리
7.1. 야구 관련7.2. 야구 외7.3. 부업

1. 개요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소속 야구 선수이자, 금지약물 복용자. 타 팀 출신으로 삼성을 상징하는 스타가 된 대표 선수 중 한 명.[11]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김동수, 박경완을 이을 국가대표급 포수 재목으로 주목받았고, 홍성흔과 함께 2000년대 대한민국 포수진의 젊은 피로 활약했다. 소속 팀인 삼성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마땅한 주전 포수가 없어 몇 년 동안 포수난을 겪었던 삼성 라이온즈에는 천금과도 같았던 선수였다. 2015년 현재 21세기에 이루어진 삼성 라이온즈의 7차례 우승을 모두 경험한 삼성 라이온즈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2015 시즌에는 LG의 큰 이병규와 같이 KBO 리그 최고령 타자가 되었다. 참고로 2015시즌 기준 최고령 투수는 최영필이었다. 진갑용이 은퇴하면서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뛴 현역 선수는 이혜천박명환뿐이며, 그나마 두 선수는 고졸 신인이기 때문에 대졸 신인이었던 선수는 진갑용이 마지막. 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이혜천뿐이라는게 함정 그리고 진갑용의 은퇴와 동시에 OB 베어스 유니폼을 입었던 타자는 전멸했다.

2. 선수 생활

2.1. OB/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Et9pf5X.png

부산고-고려대 당시 "2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포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형 유망주로 기대를 받았다.[12] 연고 구단이었던 롯데 자이언츠가 일찌감치 진갑용의 부산고-고려대 동기인 손민한[13]을 1차 지명감으로 지목했기 때문에[14] 진갑용은 2차 지명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1996년 최하위를 기록하는 팀이 그를 데려갈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최하위권에 있었던 LG 트윈스OB 베어스가 서로 대놓고 꼴찌 경쟁을 했을 정도의 유망주였다.[15] 게다가 1997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때 최하위 팀은 지명권 2장이었다. 이 때 OB 베어스에서 진갑용과 함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았던 선수는 제구력 꽝인 애틀랜타 올림픽 때 국가대표 선수로 함께하였던 좌완 투수 김영수였다.

파일:hKHaKIJ.jpg
최주환?

파일:ju1eUXk.jpg

1997년 OB 베어스에 입단하여 데뷔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의 맹활약과 달리 평균 성적을 내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롯데 강민호가 완전체로 격상되기 전까지 지적받았던 문제점들이 모두 젊은 시절 진갑용이 갖고 있던 단점들이었다.

1999년에는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올리나 싶었지만 갑자기 등장한 홍성흔[16]의 활약으로 주전 경쟁에서 탈락했고, 결국 그 해 트레이드 마감일인 7월 31일 삼성의 우완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4억 원에 현금 트레이드되어 삼성으로 이적했다.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파일:external/boardr.pmang.com/K-18.jpg

파일:/image/003/2007/08/19/NISI20070819_0005004758_web.jpg
앉아서 뭐하니? 앉아쏴요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로써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구멍이었던 삼성의 포수는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17] 2000년 김동수가 FA로 삼성으로 합류하여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하게 되나 김동수가 생각 외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진갑용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이 진갑용의 손을 들어주고, 실제로 조범현의 지도 아래 진갑용의 실력이 일취월장하면서 김동수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 삼성으로서의 이적 이후에도 처음에는 신통치 않았다. 결정적인 이유가 1999년, 2000년 플레이오프,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일이었다. 당시 삼성 팬들은 진갑용을 보면서 김동수와 포지션이 겹치는데 왜 계속 진갑용을 기용하느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진갑용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고, 2001년 시즌 후 경쟁자였던 김동수SK 와이번스트레이드되면서 본격적으로 주전 포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그 이후 수비는 물론 공격도 각성,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해줄 정도로 뛰어난 장타력을 과시하였다. 약빨

하지만 그의 활약은 곧 프로선수라면 해서는 안 될 부정행위가 뒷받침된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당시 진갑용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었는데, 대회 전에 대한야구협회에서 실시한 도핑에서 근육강화제인 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된 것이다. 그런데 진갑용이 이를 두고 "대학 후배인 김상훈을 대표선수로 만들어서 군 면제를 시켜주고 싶어서 일부러 소변에 금지약물을 넣었다." 뭔 소리지라고 변명을 했는데 이에 대해 도핑 기술진이 거짓말이라고 반박을 한 것. 결국 진갑용은 도핑 결과가 나오자 빠져나가기 위해 후배 핑계를 댄 것이었다. 결국 진갑용은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시즌부터 체력적인 부담 때문에 단백질, 근육강화제, 비타민, 종합영양제 등을 복용해 왔다." 라고 시인을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하게 되었다. 김상훈은 저 이야기를 듣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선배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사실이라면 감사하다.라는 희대의 드립을 남겼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당시 KBO에는 도핑에 대한 징계규정조차 없었다는 거다. 그때까지 KBO는 단 한번도 도핑검사를 실시한 적이 없었고, 진갑용이 걸린 도핑도 대한야구협회에서 아시안게임 나가기 전에 혹시나 하고 최초로 실시한 것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약물의 심각성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에 나타났던 촌극. 결국 삼성 구단 내규에 의해 벌금 200만원 및 개인적으로 300만원을 수재의연금으로 기탁하는 것으로 사건은 유야무야 묻혔고 거짓말한건 왜 징계 안했나 몰라 진갑용은 어찌됐건 계속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고 심지어 2002년 당해에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다. 하여간 이 오점은 이후로 계속 진갑용의 그림자로 따라다니게 된다.

2004년에는 전년도를 끝으로 해외로 이적한 이승엽과 FA 자격을 얻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마해영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팀의 4번 타자로 활동한 바 있고,[18] 또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현재윤이 포수 자리를 차지하자 1루수나 지명타자로 나오기도 했으나, 시즌 막판 현재윤이 병역 비리로 인해 구속되자 다시 포수로 돌아왔다.

2004년부터 김한수를 이을 주장감으로 지목되었고, 함께 팀내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가며 활약했다. 2005년 입단한 오승환과는 최고의 콤비로 자리잡았으며, 팀에 한국시리즈 3번의 우승을 안겨 주었다.

2008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는 4번 타자에까지 기용이 돼서 롯데 자이언츠를 흔드는 모습을 보여줬다.

2008 시즌을 끝으로 주장자리를 박진만에게 내주게 되었다가 2011 시즌에는 다시 주장직에 복귀했다.[19]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도 참가. 아쉽게도 예선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서 더 이상 출전하지 못하나 싶었지만, 쿠바전에서 강민호의 퇴장 이후 잠시 올라가서 정대현과 배터리를 이뤄 쿠바 타자 구리엘의 병살을 얻어 냈다. 이 때 그는 사형장으로 가는 기분같았다고....

2009년에는 나이와, 결정적으로 손목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 현재윤에게 안방을 내주고 재활하게 되었다. 이때 심광호마저 부상이라 지승민을 주고 두산에서 채상병을 데려왔다.

2010년 다시 안방마님으로 복귀해 팀의 정규시즌 2위에 일조했다. 선동열 감독도 팀내 MVP로 안지만과 진갑용을 꼽았다.

진갑용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 3, 4, 5차전은 선발 포수, 2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11타수 3안타 3볼넷 1타점 1득점, 타율&장타율 .273, 출루율 .429를 기록했다.

진갑용은 SK 와이번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4차전은 선발 포수, 3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7타수 무안타 2볼넷 2득점, 출루율 .222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진갑용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8타수 3안타 5볼넷 1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167, 출루율 .348을 기록했다.

2.2.1. 2011년

SK 박경완이 수술로 나오지 못하며 8개구단 중 최고령 주전포수(…)가 됨과 동시에 3년만에 다시 팀의 주장을 맡아 팀의 페넌트레이스 우승과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의 4승 1패 우승에 기여했다.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의 성적은 17타수 5안타 2볼넷 1타점 1득점 타율 .294, 장타율 .294, 출루율 .368.

그리고 2011년 삼성 한국시리즈 우승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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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 2012년

삼성의 주장이자 최고참 선수로서 그에 걸맞게 활약했다. 통산 두 번째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또한 SK 상대로 타율이 무려 0.405!! 하지만 두산 상대로 0.159...

다만 시즌 초에는 팀이 부진에 빠져 있었던데다 백업 포수들의 능력치도 기대 이하여서 은근히 까이기도 했다. 그러나 웬만한 경기에서 역전타나 동점타 쐐기타를 꽂아넣는 해결사 면모를 보이기도.

6월 이후에는 이지영의 발견으로 체력부담도 많이 줄어든 상태이다. 실제로 이지영은 2012 시즌 종료 후 진갑용의 후계자로 거론되기도.

2012년 7월 12일 경기 후에 승리 세레모니로 이런 짓을 해서 개그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주장임을 몸소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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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못미 으웨에?

7월 15일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4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안치홍의 2루타에 홈으로 들어오던 김선빈을 블로킹하여 아웃시켰는데, 이 상황에서 김선빈이 얼굴 부상을 당하였다. 이후 7회말 무사에 타석에 들어섰다가 상대 투수 박지훈의 투구에 공을 맞았고, 양 팀은 벤치클리어링을 하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5차전은 대수비, 2, 3, 4, 6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로 출장하여 10타수 2안타 1볼넷 2득점, 타율 .200, 장타율 .300, 출루율 .27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2.3. 2013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진갑용/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반적으로 보면 포수로서의 수명은 사실상 다한 것으로 여겨졌다. 피치아웃을 제외하면 도루저지는커녕 동타이밍조차 기대할 수 없고, 포수 리드도 스트라이크 잡아놓고 대놓고 바깥쪽으로 볼 두개 빼기 등 뻔한 패턴으로 일관하며 위기를 자초하기도 하는 등 사실상 팀 내 주전 포수로서의 역량이 다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만 타격은 낙폭이 덜해서, 지명타자로서는 쓸 수 있지 않겠냐는 평이었다. 그러니까 홍성흔의 길을… 하지만 지명타자에는 승짱이 있다

2.2.4. 2014년

난데없이 신생팀 kt wiz로의 이적설이 불거졌다. 14시즌 후 9개 구단은 신생 팀 지원책으로 20명의 보호선수를 제외한 한 명의 선수를 kt에 넘겨줘야 하는데, 좋은 선수가 많은 삼성에서 나이들고 기량도 떨어진 진갑용이 20인 명단에 들어갈 확률은 희박하다. 진갑용의 기량이 돌아오고 kt의 포수 육성이 더뎌진다면 진갑용을 지명하지 말란 법이 없는것. 게다가 kt의 감독인 조범현 감독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삼성의 배터리코치로 있으면서 미완의 대기였던 진갑용을 주전 포수로 키워낸 적이 있어 어느 정도 인연이 있는데다가, 삼성에서 주장까지 다년간 역임한 진갑용이라면 선수단의 맏형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인은 kt가 자신을 지명한다면 일단 구단과 상의해봐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일단 조범현 감독 자신이 명포수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고, 포수 조련은 오래 걸리는 일이긴 하지만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자신이 인스트럭터로 있던 삼성 라이온즈에서 포수 유망주로 손꼽혔던 김동명을 데려왔다. 근데 수비가 시망이라 결국 1루수로 전향했다 사실 최재훈이나 정상호, 장성우 정도라면 몰라도 용덕한 급은 보호명단에 포함될 확률이 희박하다. 귀중한 특별지명선수를 진갑용이나 용덕한에 쓰는 게 아까울 수 있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준급 포수는 강팀의 방정식에도 포함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실제로 선배 NC 김경문 감독은 주전포수를 LG에서 특별지명한 김태군을 기용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는 내야수 정현이 지명되었고, 때문에 진갑용은 보호선수 20명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적설과는 별개로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을 하게 되면서 3~4개월여동안 출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시즌의 대부분을 날리고 10월 1일에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이 시간 동안 이지영이흥련이 잘해줘서 팀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

2014년 10월 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경기가 연장으로 가며 주전 포수 자원을 다 써서 10회초에 포수로 처음 출장하였다. 살이 빠져서 최형우인줄 알았다 카더라

남은 정규시즌 경기동안 대타로도 나오고 대수비로도 나오고 가끔 선발로도 나오면서 경기 감각을 조율하더니, 2014년 한국시리즈이지영, 이흥련과 함께 포수로서 승선했다. 그리고 3차전에서 임창용을 리드하여 임창용이 왕년의 모습을 찾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며 찬양받았다.

2.2.5. 2015년

2014 시즌을 끝으로 류택현, 송지만이 은퇴함에 따라 KBO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참고로 차고령 선수는 진갑용보다 불과 5일 늦게 태어난 최영필이며, 포지션으로 나누자면 진갑용이 최고령 타자, 최영필이 최고령 투수다.

일본 오키나와에서의 개인훈련 중 입은 허리 부상으로 경산에서 재활 훈련을 하느라 1차 스프링캠프는 뒤늦게 2015년 1월 26일에야 합류했다.

개막 엔트리에도 포함되었고, 선발 투수가 우완인 날은 이지영이, 선발 투수가 좌완인 날은 진갑용이 선발포수로 출장하면서 시즌 초반에는 그럭저럭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가끔 뜬금 홈런포를 때리기도 했다. 5월 10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친 홈런은 국내선수 한정 KBO 리그 최고령(41세 2일)[20]홈런이었다. 이 홈런을 허용한 투수는 다름아닌 채병용(...) 5월 14일에도 홈런을 치며 그 기록을 41세 6일로 다시 경신했다.[21]

하지만 5월 들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는지 도루저지나 블로킹 등에서 예전과는 달리 아쉬운 모습자동문을 보여 준 데다 좌완 선발 장원삼차우찬이 모두 부진하여 결국 5월 19일 이흥련이 올라왔다. 이흥련이 작년에 비해 타율을 끌어올린 데다가 차우찬이흥련과 호흡을 맞춘 후에 호투를 이어가며 진갑용은 대타 겸 임창용 전담 포수둘이 합쳐 82세 할배터리로 밀려났다. 삼성에 마땅한 우타 대타 자원이 없기도 하고. 하지만 대타 자원이 되고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

결국 6월 8일 야수진 강화 차원에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1군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2군에서 조용히 있다가 2015년 8월 6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5월 16일 대구 NC전에서 마지막 안타와 타점을 기록, 6월 4일 포항 롯데전에서 오승택의 실책으로 인한 출루가 마지막 출루였고, 이날 임창용과 호흡을 맞춘 것이 마지막으로 포수 마스크를 쓴 모습이 되었다. 6월 6일 마산 NC전에서 대타로 들어서 삼진을 당한 것이 마지막 타석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2015 시즌까지는 등록선수 신분을 유지하되 남은 기간 동안 팀에서 전력분석원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공식 은퇴 및 지도자 연수를 계획 중이라고 한다.

2016년에도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했다.

2.3. 연도별 성적

  • 붉은 글씨는 리그 1위 기록.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7 두산 95 281 .242 68 7 0 4 20 21 2 26 .310 .306
1998 88 253 .269 68 14 1 2 22 12 1 14 .356 .306
1999 두산 / 삼성 68 156 .212 33 3 0 4 17 13 0 12 .308 .26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삼성 114 297 .273 81 14 0 8 58 30 2 29 .401 .333
2001 89 314 .306 96 25 2 7 57 54 2 30 .465 .361
2002 133 462 .281 130 29
(3위)
1 18 86 58 0 49 .465 .347
2003 126 435 .290 126 20 2 21 53 64 1 46 .490 .356
2004 129 430 .278 122 20 0 24
(5위)
71 60 0 46 .487 .344
2005 110 347 .288 100 17 0 6 41 34 1 44 .389 .365
2006 110 358 .288 103 22 0 6 47 28 1 34 .399 .343
2007 122 362 .246 89 12 0 5 39 28 0 56 .320 .344
2008 105 272 .279 76 7 0 11 45 34 1 31 .426 .349
2009 57 142 .232 33 3 1 3 20 10 1 19 .331 .321
2010 100 259 .263 68 8 0 10 28 36 0 47 .409 .375
2011 112 286 .273 78 7 0 10 42 26 1 38 .402 .357
2012 114 313 .307 96 15 1 6 57 27 0 24 .419 .354
2013 101 181 .271 49 9 0 6 36 22 0 17 .420 .330
2014 11 17 .412 7 0 0 0 4 2 0 0 .412 .412
2015 39 68 .324 22 2 0 3 10 8 0 4 .485 .356
KBO 통산
(19시즌)
1823 5242 .276 1445 234 8 154 753 567 13 566 .411 .343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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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은퇴 후 곧바로 원정기록원으로 활동한 뒤에 2016년에 메이저리그 지도자 연수를 추진했으나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서 없던일이 된 뒤 삼성으로부터 외국인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정중히 고사하고 2017년 2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밟기로 했다. 소뱅에서 재회한 투수 헐크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놀랍도록 큰 성장을 이뤘다”고 말했다.이게 다 카턱 덕분이다

2017년 시즌 후 삼성 코치진에 합류했다. 1군 배터리코치였던 세리자와 유지가 팀을 떠나면서 1군 배터리코치를 맡게 됐다. 동시에 비시즌 기간에는 선동열호에 합류해서 APBC 대회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를 맡게 되었는데, 도핑 적발경력으로 인해 과연 국가대표팀 코치 합류가 적절한가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왔었다.그러면서 약쟁이를 MVP를 주고 국대에 승선시켜?

현재 아시안게임을 통해 군 면제를 받아서 논란의 중심이 된 오지환에 가려진 박해민의 엔트리 승선에 관해서 김대호 편집국장이 자신의 SNS에 유지현 코치가 오지환 발탁을 안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는 기세로 강력 주장하자 진갑용도 이에 편승하여 박해민을 승선 시켜 달라며 강력 청탁을 하였다는 썰을 풀었고 이 소식을 접한 야구팬들에 의해 비난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오지환 보다 박해민은 활약을 해서 오지환을 발탁시킨 유지현 코치보다는 욕은 덜 먹고 있다. 애당초 오지환 어그로가 더 심하다.

2019년 이후 김한수 감독의 후임으로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얘기가 돌았으나 예상 외로 허삼영 운영팀장이 감독으로 부임하고 정작 본인은 10월 1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삼성과 결별하게 됐다.

4. 플레이 스타일

포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를 두루 갖추었다. 투수 리드, 블로킹, 송구 능력, 미트질 등등 모두 뛰어난 수준. 투수 리드하면 박경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진갑용 역시 리드 스타일이 다를 뿐 노련한 투수 리드를 자랑했다.

발은 포수답게 엄청 느린 똥차 편이라 한 번 하기도 힘든 삼중살타를 두 번이나 쳐내는[22]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3] 웬만한 타자는 2루로 서서 들어갈 장타도 2루로 들어가다가 태그아웃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24] 반대로 본인의 발이 느리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가끔식 허를 찌르는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한다. 그 느린 발로 양의지 앞에서 도루를 기록한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전에는 발이 빠른 포수의 대명사였으며, 고등학교때에는 전국대회에서 도루왕(!!!)을 차지 했었다.8대학 때에도 도루도 가능한 포수로 평가받기도 했다. #[25] 그런면에서 보면 발이 빠른 포수인 상태로 은퇴한 현재윤이 대단한 듯? 아냐... 은퇴한 나이가 빠른거지...

타격 성적 또한 수비 부담이 높은 포수 포지션임을 감안한다면 좋은 편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적시타를 쳐줄 수 있으며, 가끔씩 큰 한 방도 때려준다. 그러나 도핑 전과가 있는 관계로, 사실상 약빨로 기록한 성적 취급을 받고 있다.
연도별 성적을 보면 알겠지만 진갑용의 타격 전성기라 볼 수 있는 기간은 2002~2004년인데[26], 도핑에 걸린 해가 딱 2002년이다. 게다가 2004년 이후로 홈런 개수는 반토막나고 장타율은 1할 가까이 깎여나갔으니...

5. 비판 및 논란

삼성의 주전포수로서 1985년 우승을 제외한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우승을 견인하고 경험한 덕분에 삼성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이에 대비되는 안 좋은 모습도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아래의 어두운 면들 때문에 진갑용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야구팬들도 많다. 사실 삼빠 아니면 딱히 호의적인 이들을 찾기 힘들고, 분명 스텟상으로는 역대 포수 순위를 꼽을 때 한 손 안에 들 만한 성적이지만 진갑용은 대개의 경우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설령 언급되더라도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약쟁이는 물러가라'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그가 포수 레전드로 꼽히는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야구팬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5.1. 금지약물 복용

파일:약드래곰ㄴ.png
[27]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 도핑테스트에 걸린 전적이 있다. 게다가 고려대 후배인 김상훈을 자기 대신 뽑히게 하려고 일부러 도핑용 소변샘플에 약을 탔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넘어가려 하다가 이게 신문기사에 실리자마자 진갑용의 금지약물 복용 행위를 알게 된 야구팬들로부터 욕만 왕창 먹고 나중에 금지약물 복용을 인정하고 말았다. 덤으로 김상훈은 진갑용의 행동에 대해 "잘 모르는 선배가 왜 나에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 모르게 잘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라고 말해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긍정왕 김상훈 결국 진갑용은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팬들에게 '약갑용', '약물용'이라고 까였다. 거기다가 해명 당시에 약이 아닌 한약을 먹었다고 변명을 해서 두 배로 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상황을 모르는 위키러들에게 설명을 해 보자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핑테스트가 치뤄졌는데,

1. 도핑테스트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적발되었다. 도핑컨트롤센터는 "진갑용이 호르몬과다로 위험수치"라고 발표하며 약물복용 사실을 알렸다.

2. 이에 진갑용 측 반응은 "다른 선수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기 위해 고의로 소변샘플에 약물을 탔다.", "금지약물 3방울 정도를 소변에 풀었다." 였다.

3. 이에 도핑컨트롤센터 측이 반박하는데, "해당 성분의 약물은 물에 녹지 않는다. 게다가 한방울이라도 넣으면 수치가 높게 나온다. 한방울 정도면 30정도의 수치가 나오는데 6이 나온 것을 볼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이라며 진갑용 측의 변명은 허구라는 점을 밝힌다.

4. 결국 진갑용 측의 추가 반응은 "체력적인 부담을 느껴 지난 시즌부터 단백질(프로틴), 근육강화제, 비타민, 종합영양제 등을 복용해왔다." "1차 검사 양성반응 이후 모기자의 질문에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약물을 먹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고 약물 복용 사실이 알려지면 국가대표에서 탈락할 것 같아 겁이 났다. 아시안게임에는 꼭 출전하고 싶다." "지난 시즌부터 경기 출장이 많아지면서 체력적 부담을 느껴 복용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사용했고 1차테스트 양성반응은 감기약과 함께 복용해서 그런것 같다." 이러하였다.

5. 이에 대한 징계로 벌금 200만원이 주어졌다.다만 이는 KBO의 징계는 아니며, 소속구단인 삼성 측의 징계였다. 당시 KBO 규정상 약물에 대한 처벌조항이 전무하였기 때문이다.[28]

이는 그동안 공공연히 선수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왔던 도핑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 원인이 되었는데, 진갑용이 도핑에 적발되었던 당시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마찬가지로 도핑을 하던 배리 본즈의 홈런쇼에 관심이 많았었지, 아직까지 도핑이 메이저리그의 기반 자체를 흔들 정도로 이슈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7년 메이저리그에서 금지약물 복용자 명단을 다루는 미첼 리포트가 발표되었고, 이 명단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스타 선수들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나오면서, 어떠한 이유로든 금지약물 복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 뿌리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인 다니엘 리오스가 2008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었을 당시 도핑 테스트에 적발되어 일본프로야구에서 1년간 자격정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도핑은 나쁘다라는 사고방식에 쐐기를 박기 충분했다. [29] 진갑용의 약물 복용 논란은 2000년대 중반에는 야구 갤러리 같은 야구 커뮤니티 내에서 범죄X 개그요소로만 가끔 언급되었다가 나무위키(당시 엔하위키) 내에 야구 관련 문서가 급증한 2009년 이후로 엔하위키에 야갤러, 엠팍 등 다양한 야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금지약물 복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어느 정도 호의적인 시선이 남아 있던 진갑용의 평가 역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이 단락에 금지약물을 엄단해야 한다는 측과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를 죽이지 말라는 진갑용 팬들과의 수정전쟁으로 인해 한 야구팬이 아몰랑으로 일관하는 한 진갑용 팬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비난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했다.

지금 진갑용의 금지약물 복용 행위에 대한 비판은 2002시즌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복용의 효과로 의심되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진갑용의 홈런 개수와 그의 당시 잘못을 변명하는 발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금지약물 복용을 악(惡)으로 바라보게 된 야구팬들의 안 좋은 시선. 이 세가지가 겹쳐서 생겨난 일이다. 그리고 진갑용은 이러한 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에서 오랫동안 뛴 베테랑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팬들로부터 레전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는 주 원인이 되고 만다. 약물 복용이 옳건 나쁘건 자의적인 가치판단을 하기 전에 이건 본인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만큼 영구제명이든 명예의 전당 탈락이든 자신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인한 불이익은 그가 야구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은 영원히 짊어져야 할 짐임에는 분명하다.

5.2. 다혈질

경기 중에 약물 금단증세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혈질적이고 흥분을 쉽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진갑용은 나이가 많다는 점과 선배라는 점을 앞세워서 후배들에게 꼰대을 하는 모습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이분처럼 참교육을 많이 선사하려 했다

2009년 두산 베어스 최준석의 홈 대쉬 이후 상황에서 바디체킹으로 인한 충돌[30] 이후 곧바로 일어나서 최준석을 미트로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불같이 화를 냈고, 당황한 최준석이 바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째려보고, 선수 및 코치, 심판이 말리는 와중에도 두고 보라는 듯 삿대질을 하고 들어갔다. 이닝 종료 후에 덕아웃에 들어가던 최준석이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했으나, 9회 말 자신의 타석이 끝난 후 야구 방망이를 든 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기세로 두산 덕아웃을 찾아가는 짓을 저지르기까지 했다.[31]

2012년에는 KIA 타이거즈의 당시 1년차 투수였던 박지훈이 머리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던지자, 발끈한 나머지 마운드로 달려가려다 심판의 제지로 겨우 멈추기도 했다. 심판이 잡고 있는 동안에도 마운드를 향해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당일 경기에서 김선빈이 진갑용의 블로킹에 그대로 슬라이딩했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보복성 빈볼로 생각할 여지는 있었으나[32], 갓 데뷔한 신인 투수에게 고참 중 고참인 진갑용이 과도하게 흥분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웠다.

또 2013년엔 넥센 히어로즈이택근심창민한테 몸에 맞는 공을 맞았는데, 이택근이 항의하는 차원에서 심창민을 향해 마운드로 올라가려 하자 오히려 이택근에게 화를 내며 밀쳐낸 적도 있다. 이때 이택근의 목을 움켜잡는 것으로 의심되는 행동을 해 팬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기도 하였다. [33] 같은 해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유희관자신에게 슬로우커브를 던진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전병호랑 같은 팀에서 뛰어보신 분이 왜 대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유희관은 원래부터 느린 공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흑마구 모닥불러 투수인 만큼 도발이나 기만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던 상황이라, 팬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불과 며칠 전 같은 상황에서 이병규의 행동과 대비되어[34] 더 까인 면이 있다.

그렇다고 자기가 선배들에게 똑바로 선배대접을 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벤치 클리어링박경완[35]에게 헤드락을 걸었던 적이 있었고,[36]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구대성에게 몸에 맞는 공을 맞자 배트를 들고 있는 상태로[37] 마운드에 올라가려고 하는 등 자기는 선배들한테 대놓고 대들었던 전력이 있다. 결과는 쿠옹의 포스에 밀려서 데꿀멍

거기에 레다메스 리즈 배영섭 사구사건때는 배영섭이 맞았는데 자기일 아니라고 덕아웃에서 웃으며 노닥거리는 모습까지 포착되면서 이제 은퇴할 때 다 돼서 몸관리 하려고 저러는거냐, 자기만 아니면 다냐며 그나마 진갑용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던 몇몇 삼성팬들에게까지 버림받기 시작하였다.애당초 약을 할때 부터 버림받았어야 했다

그런데 치사하게 사람 봐가면서 성질을 내는 듯 하다. 투수 최영필이 과거 한화 시절이었던 2005년 5월 21일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빈볼을 던진 후, 심판이 퇴장을 선언하자 글러브를 냅다 집어던지고 쿨하게 걸어 나가는 장면을 연출해 필사마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참고로 빈볼을 맞은 상대가 바로 진갑용이다. 진갑용은 상술한 것처럼 선배들에게도 대드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동갑내기인 최영필한테는 아무 소리도 못 했고 심판만 애절하게 쳐다 보았다.

6. 라이언 사도스키의 리포트

  • 한국 문화에서 중요한 베테랑의 존재와 리더십 때문에 발탁됐다. 과거에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아이러니. 배트 스피드는 느리지만 브레이킹 볼을 잘 친다. 발은 느리고 파워도 많지 않다.[38]소속팀에서 하위 타순을 맡고 있다. 공격 때 승부처에서는 대타와 교체될 것이다.[39] 벤치에서 후배들의 기강을 잡고 지도하는 역할이 예상된다. 장원삼, 오승환, 차우찬 등 삼성 소속 투수가 등판하면 호흡을 맞출 것이다. 송구는 좋지 않지만 투수 리드가 뛰어나다. 현역 막바지 때의 마이크 매시니를 떠올리면 될 듯.

7. 이야깃거리

7.1. 야구 관련

별명은 삼성팬 한정으로 '진주장, '진마미', '갑돌이', '갑용신', '갑드래곤', 엄청난 활약을 할 때는 '갑드래곤신' 등으로 유명하다. 타팀팬에겐 약갑용, 약드래곤, 후배위전드 등으로 불리며 까인다.

롯데 자이언츠의 손민한과는 고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배터리를 이뤘으며 손민한이 등판하고 진갑용이 타석에 서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 등장한다. 실제로 손민한 상대로 6할이 넘는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흠좀무. 대표적인 게 2008년 4월 25일 사직경기. 완봉 페이스이던 손민한에게 9회초 동점타를 때려냈다.[40]

1997년 박철순의 은퇴식 때 시포를 담당하기도 했다.

타자들이 뽑은 타자에게 가장 말을 많이 거는 선수. 참 시끄럽단다. 조성환이 했던 인터뷰의 제목이 "갑용이 형 타격방해 좀 그만해요" 일 정도니 말 다했다(...)[41]#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트래쉬 토크 문서 참조.

위에도 있는 2011 한국시리즈 우승 후 사진이 걸그룹과 합성되었는데, 누군가 이걸 사인회에 갖고 왔다.

아버지도 야구선수로 뛴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아들도 야구선수로 키우려는 듯. 3대가 야구인 여담으로 아들인 진승현 군은 2013년 4월 30일 경기에서 아버지가 파울타구를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려 주목받기도 했다. 아빠 아프지 마세요 너는 약빨면 안 돼

오승환이 세이브를 했을때 가슴에 손을 올렸다 공중을 가리키는 세레모니는 오승환의 증언에 따르면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진갑용이 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룰 땐 그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다고.[42] (근데 메이저에서 몰리나랑하는데?ㄷ?)

7.2. 야구 외

이름 "갑용"의 원래 발음은 '가뵹'으로 읽는 게 맞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지만, '감뇽'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가뵹'은 샌님 같고, '감뇽' 쪽이 경상도 액센트가 들어가서 좀 더 '싸나이'처럼 들린다나. 그래서인지 허구연만은 '감뇽'으로 부르고 있다. 감뇽이라고 읽으려면 진갑용이라는 이름이 합성어여야 한다.

2008년 11월 29일 MBC에서 방영한 명랑 히어로에 김민재와 함께 출연했다. 당시 지나친 분칠로 '진떡칠'이라는 말이 오가기도.

오승환이 찍은 CF에 의하면 홈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데...

가수 김원준과는 중학교 때부터 서로 형과 동생으로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고 한다. 진갑용이 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김원준이 진갑용보다 1살 많다.

김현철과 친분이 있어서, 김현철이 진갑용의 응원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김현철삼성 라이온즈의 팬이라 최형우의 결혼식 때 축가도 불러 주었을 정도.

7.3. 부업

부업으로 대구에서 족발집과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족발집은 2008년 연탄불고기&김치찌개 집으로 오픈하였다가 2013년 족발집으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처음 문을 열었던 연탄불고기집은 본인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대구에서 제법 유명한 '간바지[43] 연탄불고기&김치찌개' 집 주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분점 형태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뒷편 대로변에 개업하여 당시 삼팬들 사이에서는 진갑용을 '간바지'로 부르기도 했으며, 앞서 FA계약 후 대구에 본인 가게를 낸 선배들과는 다르게 장사도 잘 된 편이어서 많은 삼성 팬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2013년 하반기에는 업종을 변경하여 같은 자리에서 온족발이라는 이름의 족발집으로 바꾸었는데 간바지집를 정리한 건 묵은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데다가 여태껏 식당일을 봐 주신 장모님에게 손이 많이 가는 김치찌개 가게로 더 이상 힘들 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족발집은 점장을 두고 관리할 수 있고 크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아서 괜찮다고 한다. 아내의 부담도 덜고. 이 온족발은 2015년 부터 '진갑용의 진(陳)족발'이란 이름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가게는 대구도시공사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는 이마트 칠성점 건너편 고성천주교회 옆에 있다. 가게 문에 본인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이나 기타 야구 전시품이 걸려 있다. 야구 경기 때 족발을 파는 건 어떻겠느냐고 묻자 주변 영세 상인들을 생각해서 그러지는 않겠다고 했다.

커피전문점은 과거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네거리 근처에서 한 차례 개업을 했었지만 간바지에 비해서 장사가 잘 안 되었는지 문을 닫았다가, 2013년 수성구 지산동 두산오거리 수성아트피아 근처에 엔제리너스 커피로 다시 오픈하였다. 커피전문점 이름이 엔젤리너스 커피 대구수성진갑용점(...)이다. 커피전문점은 아내 손미영 씨가 거의 전담해서 관리하고 있다. 정작 엔제리너스는 롯데 계열 커피 전문점이란 게 함정. 두산오거리에서 롯데 계열 커피 전문점을 삼성 라이온즈 소속 진갑용 선수가 하고 있다.*[44] 사자후에 어떤 팬께서 직접 방문한 사진을 게재했다. 2층인데가 주차장도 있고 규모가 꽤 크다 하지만 김커피가 출동하면 어떨까? 김!진!욱! 2017년 현재 엔제리너스 홈페이지에서 폐점 됐다고 나온다.


[1] WBSC 공식 등록명.[2] 부산 내에서도 부산진구와 함께 사직동 다음으로 야구열기가 뜨거운 곳이다.[3] 10시즌까지 사용하고 11시즌부터는 드물게 사용되다가 사라졌다.[4]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날려라 진갑용[5] 롯데 자이언츠 팀 응원가 중에서도 이 곡을 사용한다.[6] 11시즌부터 쓰기 시작했으며 채태인, 가코 응원가와 더불어 특유의 백괴스러움으로 인해 팬들에게 심하게 까이는 응원가 중의 하나로 악명높다. 가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진~갑용 진~갑용 삼성의 진~갑용 나가신다 얼씨구 절씨구 진갑용"(…) 그런데 대구 아재들에게는 호응이 좋아서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타팀 팬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했다. 나중에 "얼씨구 절씨구 진갑용" 부분이 "최강삼성 진갑용"으로 바뀌었다.[7] 게다가 김용일 前 응원단장은 삼성에서도 이게 좋아보였는지 삼성화재 배구단김정훈 선수에게도 같은 응원가를 썼다. "삼성의 해결사 김정훈" 근데 정작 김정훈은 해결을 못 해 준다. 하지만 2014년 은퇴 후 2015년 OK저축은행으로 이적 복귀한 데다 응원가도 변경되어 현재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8]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날려라~ 진갑용~×2[9] 찬물옹의 응원가와 같다. 다만 김한수 응원가보다 살짝 빠르게 한다. 실로 암걸리는 응원가 2[10]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인한 특례.[11] 김종훈, 임창용 등도 이 사례에 해당한다.[12] 참고로 부산고 시절 1990년대 부산고 출신 에이스들이 대거 나타나는데 염종석-주형광-손민한 그 중에서 주형광과는 1992년 대통령배 우승, 황금사자기 준우승, 1993년 봉황대기 우승. 손민한과는 1992년 대통령배 우승과 황금사자기 우승을 했다. 이 때 그들의 볼을 받아 낸 선수가 바로 진갑용이었다.[13] 손민한과는 부산고부터 고려대까지 7년간 배터리를 했었다.[14] 원래는 롯데가 진갑용을 1997년 1차로 염두해 두고 1996년 드래프트 당시 한양대학교의 좌완 투수 차명주를 영입했다. 그렇지만 계약금 5억이나 받은 차명주는 선천적인 문제로 먹튀가 되었으며, 결국 다음 해인 1997년 드래프트 때 진갑용을 포기하고 손민한을 데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15] 사실 이해는 삼성도 대놓고 꼴찌 싸움에 가세할 정도로 막장의 정점을 찍는 중이었다.[16] 만약 홍성흔이 처음부터 지명타자였다면 두산과 삼성의 포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현재윤이나 최형우가 주전 포수를 맡았을지도 몰랐을 일.[17] 이만수 이후 삼성의 주전 포수 자리는 김성현, 박선일이 플레툰으로 뛰었는데, 둘 다 공수 모두 봐줄 만했지만 이만수보다 떨어졌다. 거기에 1996년 이후 세대교체 목적으로 김영진이 주전 포수가 되고서는 말 그대로 망했다. 결국 OB에서 김광현, 김지훈을 사오고, 해태에서 방출된 정회열을 영입하고, 김동수까지 FA로 질러야 할 정도로 포수진이 심각했던 상황.[18] 참고로 전년도인 2003년에 진갑용은 주로 8번 타자로 나왔다.오오 엄청난 신분상승 참고로 2003년 진갑용은 중심 타선이 아닌 8번 타자로 활동했는데도 불구하고 홈런을 20개나 쳐냈던 바 있다.삼성 빠따진의 위압 보소[19] 사실 2010 시즌 새로 주장을 맡은 강봉규가 부진해 2군에 내려갔을 때 진갑용이 임시 주장을 맡기도 했었다.[20] 외국인 선수까지 포함한 리그 전체로는 2007년 5월 10일 펠릭스 호세의 42세 8일이 최고령 홈런 기록이다.[21] 한화 이글스의 포수 조인성이 1년 남짓 후인 2016년 7월 7일(41세 1개월 12일) 홈런을 치면서 이 기록을 넘어섰고, FA계약 마지막 해인 2017년 6월 3일 이후로 홈런을 친다면 호세의 기록까지 넘을 수 있다. LG에 양상문 감독이 있는 한 라뱅은 1군에 올라올 가능성이 적고 이승엽이 만 42세 이전에 은퇴할 계획이기 때문에 이 부문 기록 경신 가능자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조인성 한 사람 뿐이다.[22] 병살을 잘 치는 양의지, 이도형, 심지어 병살타 1위 홍성흔도 삼중살은 안 쳤다.[23] 사실 웬만한 상황에서 삼중살이란 직선타로 인해 주자가 귀루를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자주자의 발이랑은 크게 상관이 없다. 예외로 주자 발이 정말 더럽게 느릴 경우 주자 1, 2루나 만루일 시 3루 땅볼로 3루수가 3루 베이스를 찍고 5-4-3 삼중살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 경우 보통 3루수는 만루, 1-2루에서는 보통 정상수비를 하기 때문에 역시 실제로 볼 일은 많지 않다. 주자가 더블스틸을 할 경우 3루수가 베이스커버를 들어가니 딱 맞춰서 타구가 간다면 가능은 한데 이럴 경우는 또 베이스를 찍고 2루에 던지면 스타트를 일찍 끊은 1루 주자가 살 가능성이 매우 높아 역시 가능성이 매우 낮은 편. 허나 진갑용은 2번 중 한 번을 그 무사 만루에서 3루 땅볼로 5-4-3 삼중살을 만들어냈다. (2007년 엘지전. 2002년 롯데전에 대한 정보 있으면 추가바람)[24] 2011년 8월 3일 대구 넥센 전에서도 1루 주자로 있다가 투수의 폭투로 공이 뒤로 빠진 사이 3루까지 전력 질주하다가 횡사당했다.(…) 스타트가 대단히 좋았으나 역시 느린 발 땜시로….[25] 마해영이 본인 자서전과 기자 신분으로 직접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400m를 53~4초를 주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재홍은 진갑용이 대학시절 가장 빨랐다고 했다......[26] 진갑용이 커리어를 통틀어 WAR 4.5 이상을 기록한 기간은 이 3년 뿐이다.[27] 이 짤방의 원본은 경향신문의 1996년 10월 28일자 기사. '약먹고 치고 달리는' 부분의 원본은 '막고 치고 달리는'이다.[28] 이시기에는 KBO뿐 아니라 야구계, 그리고 기자들, 팬들도 약물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선수협에서도 '징계를 내릴 사안은 아니지만 말 실수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진갑용은 2002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03년과 2004년 올스타전 포수로 뽑히기까지 했다. 사실 MLB 또한 이 시기 양성반응 5회 누적되야 출전정지를 내리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낮은 수준의 규정이 있었고, 첫 양성 반응시 10경기 정지 규정이 만들어진 후 50경기를 거쳐 80경기 정지까지 수위를 높이는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메이저 리그에 비하면 이것도 약한 편이다.[29] 특히 2007시즌에는 22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 투수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 BEST 10 중에 선발 투수-중간계투-마무리 투수로 투수 분업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21세기 이후에 기록한 유이한 기록이다. (2015년까지는 유일한 기록이였으나 2016년 두산 베어스더스틴 니퍼트가 리오스와 같은 22승을 기록하면서 더는 유일한 기록이 아니게 됐다.) 당연히 팬들은 다니엘 리오스가 한국에서도 금지약물을 복용한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30] 상황 자체는 다각적으로 해석 될 여지는 있다. 야구의 암묵적인 룰 참조, 9회 말, 그것도 17-5로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2루 주자였던 최준석이 다소 짧은 안타에 무리한 주루 플레이를 펼친 면도 있다. # 기사를 참조하면 3루 주루코치였던 김광수 코치는 점수 차도 많이 나니 홈에서 아웃당하라는 생각으로 돌린 듯 싶다.[31] 그 유명한 김동주가 고려대 선배인 진갑용한테 웃으면서 참으라고 하는데, 고려대 출신 후배 김선우가 뒤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이 캡처됐다. 김선우는 깔끔한 외모와 달리 한성질 한주먹 하는 선수로 벤클에서 상당히 활약하는 선수였다.(보스턴 시절에도 싸움솜씨를 과시한 에피소드가 있고, 본인 스스로도 젊었을 때는 누구에게도 주먹은 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벤치 클리어링 상황일지라도 흉기가 될 수 있는 배트를 드는 건 절대적으로 금지되는데...[32] 하지만 박지훈이 등판 후 던진 3개의 공이 박석민 사구, 최형우 피홈런, 진갑용 사구로 3투구수 1피홈런 2사구(...)로 보복투를 연타석으로 던졌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김선빈 보복투 겸 쓰리런 보복투까지[33]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 현대-삼성 라이벌 전 때의 신경전을 생각할때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 일부러 세게 나왔다는 해석도 있다.개소리 기싸움에선 안밀렸지만 정작경기 결과는(...)[34] 시속 70km/h대로 들어온 높은 공을 그대로 안타로 만들었다. 훗날 이병규는 인터뷰에서 당시 투수 송신영이 칠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던진 것을 진짜로 쳤다고 밝힌 바가 있다.[35] 1972년생으로 진갑용보다 2살 많고, 고졸신인이라서 프로 짬밥으로 치면 6년이 앞선다. 참고로 박경완은 1991년 입단, 진갑용은 1997년 입단. 같은 팀 선배인 양준혁도 1993년 입단으로 박경완보다 2년 늦다[36] 여담으로 이 때 김응용이 당시 만으로 60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30대 초반의 카브레라를 헤드락으로 제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감독의 패기 #[37] 벤치 클리어링을 포함한 야구장 내에서의 싸움은 당연히 배트를 들면 안된다. 배트를 달고 사는 타자들에게 배트를 쥐어주고 싸움을 하면 흉기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38] 하지만 파워가 약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게 2013년에 밀어서 홈런을 치는 모습을 가끔 보이기도 했다.[39] 소속팀에서는 이지영에게 주전포수를 내준 후에는 가끔 자기가 대타로 나오기도 했다.[40] 이후 10회초 삼성타선이 추가점을 뽑아줘 역전했지만 10회말 오승환을 생전 처음 상대해본 조성환이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면서 롯데가 승리했다.[41] 인터뷰 형식이 다른 선수나 지인들이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하면 인터뷰이가 그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식이다.[42] 오승환이 250S를 기록 후 MVP에 선정되었던 경기 방송 인터뷰가 모두 끝난 후, 삼성이 구단 이벤트 차원에서 실시하는 홈 경기 MVP 선수에 대한 팬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룰때는 왜 세레모니를 하지 않느냐"는 팬의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했다. 참고로 이 인터뷰를 할 때 MVP 선수는 응원단상에 올라서서 팬들에게 직접 질문도 받고 홈페이지로 사전 예약한 팬들과 포토타임도 갖는다.[43] 돼지고기의 한 부위로 간을 받히고 있는 살로, 토시살을 뜻한다.[44] 재밌는 점은 진갑용은 부산(지역)에서 태어나 OB(두산)(팀)에서 시작해서 삼성(팀)에서 선수 생활 중이다. 그리고 가게는 롯데(회사)계열, 대구(지역)의 두산오거리(지역)...부산-롯데, 두산-OB, 대구-삼성이 연결된다! 설마 노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