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리오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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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리오스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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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리오스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59번 | ||||
가내영 (2001. 5. 31.~2001) | → | 리오스 (2002~2005. 7. 9.) | → | 그레이싱어 (2005. 7. 11.~2006)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45번 | |||||
스미스 (2005~2005. 7. 4.) | → | 리오스 (2005. 7. 10.~2006) | → | 구자운 (2007)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 |||||
박명환 (1998~2006) | → | 리오스 (2007) | → | 김명제 (2008~2010) |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등번호 34번 | |||||
브라이언 시코스키 (2007) | → | 다니엘 리오스 (2008) | → | 야기 료스케 (200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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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대니" 리오스 Daniel "Danny" Rios | |
출생 | 1972년 11월 11일 ([age(1972-11-11)]세) |
스페인국 마드리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마이애미 대학교 |
신체 | 188cm, 86kg, 300mm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0년 드래프트 72라운드 (전체 1437번, NYY) |
소속팀 | 뉴욕 양키스 (1997)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8~1999) 뉴어크 베어스[1] (2000) 알고도네로스 데 우니온 라구나 (2000~2001) KIA 타이거즈 (2002~2005) 두산 베어스 (2005~2007)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8) |
기록 | 무결점 이닝 (2007.06.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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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KBO 리그 KIA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소속의 선발 투수.KBO 리그에서 4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통산 90승을 거뒀고 두산 이적 후 리그 MVP까지 수상했던 선수이다. 역대 외국인 투수 누적 WAR에서도 1위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일본 진출 이후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며, 한국에서 기록한 성적 또한 의미가 퇴색되었다.[3]
2. 선수 경력
2.1. 메이저리그 시절
1997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 2경기를 뛰었으나 ERA 19.29로 크게 부진했다. 이듬해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옮겼으나 큰 활약은 없었고, 그렇게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2.2. 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시절 |
2001년 초 해태 타이거즈는 리오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당시 자매 구단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외국인 선수는 무조건 보스턴이 추천해주는 선수만 받는다" 라는 조항과 리오스 쪽에서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하며 협상이 결렬되었고, 이후 시즌 중 팀이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되며 KIA로 팀명을 변경한 뒤 용병타자였던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가 부진의 기미를 보이자 그의 대체 용병으로 리오스를 데려오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리오스가 방광염 증세를 보이며 한국 입국을 거절함으로써 계약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퇴짜를 맞고 말았다. 방광염 증세가 완쾌되지 못한 탓으로 보인다. 결국 2002년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와 공식적으로 입단 계약을 맺었다.
KIA 입단 후에는 마무리 보직을 맡았다. 5월 4일 롯데와의 더블헤더 연속 경기 세이브를 기록하며 활약했지만, 5월 중순 이후로는 세이브 상황에서 종종 불show를 연출하며 김성한 감독 속을 까맣게 태웠고, 한 때 9시의 공포라는 별명으로 통할만큼 불안했던 것. 잦은 연투와 멀티이닝도 부진에 한몫을 했다. 이후 최상덕의 부상을 틈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 첫 해인 2002년 14승과 13세이브를 거두며 활약했다. 여담으로 8월 23일 현대와의 경기에서는 9이닝동안 155구를 던지며 완투하고, 9월 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10이닝 141구를 던졌고, 선발로 등판하고 단 3일만 쉬고 또 선발로 등판하거나, 구원으로 등판하고 2일만 쉬고 선발 등판하는 등 혹사를 당했다. 전년도의 혹사 때문인지 2003년에는 살짝 부진이 겹쳤지만 180이닝에 10승을 기록하긴했다. 그 때문에 재계약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논란이 잠시 있었으나 조금 삭감된 연봉에 재계약하며 2004년에도 KIA에서 뛰게 되었고 결국 그 해 17승을 거두며 에이스 역할을 해낸다. 당시 삼성의 배영수, 두산의 게리 레스와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다. 하지만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선 부진하며 팀 패배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2005년에는 하필이면 팀 역시 부상선수가 속출하며 팀 역사상 처음으로 꼴찌를 달리는 상황까지 겹치며 부진에 빠졌다. 그것을 빌미삼아 KIA에서는 리오스를 퇴출하려 했으나[4], 팬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결국 트레이드로 방향을 선회, 2005시즌 도중 두산의 좌완 유망주 전병두와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KIA의 생각은 뛰어난 유망주인 전병두를 받아오고 비슷한 급인 용병투수를 데리고 오겠다는 생각이었으며 당시 단장이던 정재공의 인터뷰에서도 '리오스 ↔ 전병두'가 아닌, 리오스 ↔ 전병두 + 그레이싱어라고 밝혔다. 단편적으로 볼 때 그레이싱어가 좋은 활약을 해줬고 전병두도 트레이드되자마자 불펜에서 그럭저럭 제몫을 하고 특유의 구위를 바탕으로 WBC 대표팀에 뽑혀 병역특례까지 받았으나,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병두는 SK로
2.3. 두산 베어스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 (2007) |
리그 최고 투수로 군림했던 두산 베어스 시절. |
상술했다시피 2005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는데, 투수 친화적인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쓰게 됨과 동시에 탄탄한 두산의 수비력 버프를 받은 덕분인지 후반기에만 9승을 올리며 두산의 정규시즌 2위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5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 4차전 선발로 나와 2경기 9이닝 11피안타 7실점 7자책점 ERA 7.00 2패로 시원하게 털렸고(...) 팀도 4전 전패로 준우승에 그친다.
2006시즌에도 최다 이닝을 기록하며 역시 잘 던졌으나, 하필이면 팀의 간판 타자 김동주가 WBC에 참가한 후 어깨 부상을 입어 시즌을 절반 넘게 날려먹은 탓에 두점베어스로 전락하며 리오스도 득점 지원이 줄어들어 12승 16패로 시즌을 마쳤다.
그리고 2007시즌, 234⅔이닝 22승 5패 147탈삼진 평균자책점 2.07 승률 0.815라는 역대급 성적으로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부문에서 3관왕을 달성했다.[5] 2007년 6월 16일 문학 SK전에서는 8회말 이진영-박경완-최정을 모두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우며 KBO 역사상 최초로 1이닝 9구 3삼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6][7] 리오스의 2007년 활약은 대단했고 특히 9월에 엄청난 연투로 두산의 2위 사수에 크나큰 역할을 담당했다. 아무리 외국인 선수라지만 저렇게 굴려도 되는 건지, 이닝이팅 능력이 좋다 해도 저렇게 노예마냥 던져대면서 구위가 안 떨어질 수 있는 건지 말들이 많았고, 특히 SK 김성근 감독이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혹을 던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한화를 플레이오프에서 가볍게 무찌른 다음,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과 4차전 선발로 등판하였다. 1차전에서는 9이닝 4피안타 1볼넷 무실점 99구 투구로 완봉승을 거두어 두산이 1차전부터 기선제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김경문 감독이 리오스를 4일만에 4차전에 등판시키는 강수를 썼다가[8] 5이닝 9피안타(2피홈런) 1볼넷 3실점 3자책점으로 기록 상으로는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았으나[9]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 선발은 시즌 초 입을 잘못 놀렸던 안산공고 출신의 한 좌완 영건이었는데,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비웃듯 7⅓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두산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다.[10] 결국 여기서 흐름이 뒤집힌 두산은 5, 6차전까지 내리 깨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3차전 벤치클리어링 때 리오스의 과도한 흥분과[11] 헤드락을 당한 김동주 등... 결국 전체적인 두산 선수들의 기세가 완전히 가라앉았고, 경기도 패배했다. 4차전은 누가 등판했건 질 수밖에 없는 경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규시즌에 보여준 활약으로 인해 2007시즌 KBO MVP로 선정되었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오퍼가 들어와 머니게임에 밀린 두산과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2008시즌을 앞두고 NPB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2.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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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야쿠르트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나 한국에서 김성근, 김경문 감독에게 계속 지적받던 폼이 일본에서는 보크로 판정되어 투구폼을 수정하게 되었고[12] 이것이 독으로 걸려들어 ERA가 5점대에 육박하며 시원하게 털리고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2008년 6월 28일 일본 프로야구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도핑 테스트에서 스테로이드계 양성 반응이 나왔다. 리오스 측은 이는 2007년 11월 치료를 받으며 주사한 것으로 이후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NPB에서는 6개월 동안이나 약품이 체내에 잔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리오스는 1년간 출장 정지를 받은 이후 바로 방출되었다.
2007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던 리오스는 불과 6개월만에 최악의 오명과 함께 몰락했다. 선수로서의 모든 영예가 약물로 이뤄졌다는 의심을 사 자기 자신을 더럽혔다. 예전에는 한국 선수들에게 '약물 하지 말라'고 조언을 했다는데...
일본에서의 성적은 11경기 11선발 2승 7패 ERA 5.46.
2.5. 이후
야쿠르트에서 방출된 뒤 소속팀이 없는 상태로 1년을 보내다가, 2009년 12월 제이 데이비스와 함께 대만 리그 트라이아웃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가정 문제를 이유로 테스트 중도에 귀국하며 대만 리그 입성은 실패했고, 이후로 활동 기록이 전혀 없고 독립 리그 쪽에서도 활동하지 않는 것을 보아 사실상 은퇴한 것으로 추정된다.3. 도핑 논란
도핑만 아니었으면 레전드로 남을 수도 있었던 선수. 이승엽의 일본 진출 이후 투수들의 시대가 된 2000년대 후반을 장식한 명투수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인다. 자기관리나 사생활 등에서도 모범적이었다. 특히 지금은 없어진 잡지인 스포츠 2.0에서 박동희 기자와 한 인터뷰는 개념 중의 개념 인터뷰. 그래서 한때는 한국형 용병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워크에식과 적응력도 뛰어나서 KIA 시절에는 전라도 용병 이오수라는 한국식 별명으로 불렸으며[13] 한국식으로 동료나 구단 스탭 경조사도 잘 챙겨 스포츠신문 미담 기사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약물 파동으로 날아갔다.리오스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 투수였고, 약물 의혹을 받을 당시 다승왕과 MVP를 차지했던 선수다. 때문에 자신이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그에 따른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는 것은 본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라서 적극적으로 언론에 해명하기도 어렵고 야구 내부 인사들이 딱히 비호해줄 건덕지가 없어서 직접 결백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 외에 세월이 흘러 리그를 대표하는 두산의 외국인 투수 에이스 계보가 니퍼트-린드블럼-알칸타라-미란다로 넘어간 것도[14] 팬들 입장에서 리오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4. 여담
- 스페인-쿠바계 미국인이다. 리오스의 부모님은 쿠바 출신이고, 조국을 떠나 스페인에 정착한 뒤 리오스를 낳았다고 한다. 이후 스페인을 떠나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뒤 플로리다에 정착하며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여담으로 리오스의 아버지는 쿠바의 독재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의 동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카스트로와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정세가 불안정한 모국 쿠바 대신에 미국에 정착했다고 한다.
- 평소 경기 내외적으로 상당히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준 리오스인데 2007 한국시리즈 때 벤치 클리어링 당시 보여준 모습 때문에 놀라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이 때문에 두산 시절에도 금지 약물을 복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금지 약물 복용을 한 선수 중에 진갑용이나 박명환의 사례와 같이 대체로 다혈질 적인 성격이 되어 평정심을 잃는 경우가 있어 의심하는 듯 하다.
- 강귀태에게 '도마 강귀태'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된 선수. 이유는 리오스가 KBO 리그 첫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려는 찰나, 안타를 쳐냄으로서 퍼펙트 게임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기록을 깰 당시에는 대기록을 무산시켰다며 오히려 강귀태가 까였지만, 나중에 리오스가 일본에서 금지 약물 적발로 방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강귀태는 '약쟁이로부터 굴욕을 당할뻔한 KBO 리그를 구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인 '도마'에서 따온 도마 강귀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언어에 재능이 있었는지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고 한다. 상술했듯이 양친이 쿠바 출신이라 스페인어로 소통할 수 있었고,[16] 특히 한국에서 오래 생활한 덕분인지 한국 선수들과는 통역 없이 자유롭게 대화했을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꽤 뛰어났다고.
- 리오스가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투수진은 하나같이 실패 일색이었다. 2008년 돌아온 게리 레스와 함께 맷 랜들이 건재할 때만 해도 괜찮나 싶더니, 레스가 가정사로 본국으로 돌아간 후 영입된 저스틴 레이어는 폭망, 랜들은 하락세를 타다가 포스트시즌에서 반전하나 싶더니 비시즌에 허리를 다쳐 커리어를 끝냈고, 2009년에 육성형 용병이라고 데려온 후안 세데뇨도 부진, 나중에 맷 왓슨을 방출하고 SK에서 방출된걸 주워온 크리스 니코스키는 그나마 나쁘지 않았지만 무게감 떨어지는건 여전했다. 그나마 2010년 켈빈 히메네스의 성공으로 잔혹사를 끊고, 2011년부터는 두산 역사에 남을 더스틴 니퍼트의 영입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했으나, 대신 히메네스와 니퍼트의 파트너 외인들이 스캇 프록터를 빼면 죄다 실패했으며, 그나마 그 프록터도 재계약은 무산되었다. 이러한 아쉬움은 2016년 마이클 보우덴의 성공으로 씻어냈고, 보우덴이 부상 여파로 2017년에 부진했으나 2018년부터는 조시 린드블럼, 세스 후랭코프, 라울 알칸타라, 크리스 플렉센, 워커 로켓, 아리엘 미란다 등 뽑았다 하면 최소 중박 이상은 치면서 외인 투수 성공가도를 걷고 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1997 | NYY | 2 | 2⅓ | 0 | 0 | 0 | 0 | 0.000 | 19.29 | 9 | 3 | 3 | 1 | 5 | 5 | 4.71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1998 | KC | 5 | 7⅓ | 0 | 1 | 0 | 0 | 0.000 | 6.14 | 9 | 1 | 7 | 6 | 9 | 5 | 2.05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2002 | KIA | 54 | 157⅔ | 14 (5위) | 5 | 13 | 1 | 0.737 (4위) | 3.14 (4위) | 140 | 14 | 68 | 102 | 59 | 55 | 1.17 |
2003 | 30 | 188⅔ (2위) | 10 | 13 (3위) | 0 | 0 | 0.435 | 3.82 | 186 (2위) | 19 (2위) | 90 (2위) | 121 (4위) | 93 (2위) | 80 (3위) | 1.31 | |
2004 | 32 | 222⅔ (1위) | 17 (1위) | 8 | 0 | 0 | 0.680 | 2.87 (4위) | 209 (1위) | 10 | 95 (3위) | 145 (2위) | 75 | 71 | 1.25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2005 | KIA / 두산 | 32 | 205⅓ (1위) | 15 (3위) | 12 (1위) | 0 | 0 | 0.556 | 3.51 | 203 (2위) | 20 (1위) | 74 (2위) | 147 (1위) | 88 (2위) | 80 (3위) | 1.27 |
2006 | 두산 | 34 | 233 (1위) | 12 | 16 (1위) | 0 | 0 | 0.429 | 2.90 | 204 (1위) | 14 | 64 | 145 (3위) | 86 (1위) | 75 (1위) | 1.09 (4위) |
2007 | 33 | 234⅔ (1위) | 22 (1위) | 5 | 0 | 0 | 0.815 (1위) | 2.07 (1위) | 191 (2위) | 8 | 74 | 147 (2위) | 69 | 54 | 1.06 (1위)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 | WHIP |
2008 | 야쿠르트 | 11 | 64⅓ | 2 | 7 | 0 | 0 | 0.222 | 5.46 | 80 | 7 | 31 | 37 | 48 | 39 | 1.65 |
KBO 통산 (6시즌) | 215 | 1242 | 90 | 59 | 13 | 1 | 0.604 | 3.01 | 1133 | 85 | 465 | 807 | 470 | 415 | 1.19 | |
NPB 통산 (1시즌) | 11 | 64⅓ | 2 | 7 | 0 | 0 | 0.222 | 5.46 | 80 | 7 | 31 | 37 | 48 | 39 | 1.65 | |
MLB 통산 (2시즌) | 7 | 9⅔ | 0 | 1 | 0 | 0 | 0.000 | 9.31 | 18 | 4 | 10 | 7 | 14 | 10 | 2.69 |
완투, 완봉 기록 | ||
연도 | 완투 | 완봉 |
2002 | 3완투 (3위) | 0완봉 |
2003 | 2완투 (4위) | 0완봉 |
2004 | 3완투 (3위) | 2완봉 (1위) |
2005 | 3완투 (2위) | 0완봉 |
2006 | 4완투 (2위) | 1완봉 (3위) |
2007 | 6완투 (1위) | 4완봉 (1위) |
통산 | 21완투 | 7완봉 |
6시즌 동안 1200이닝 투구[17], 90승, 21완투에 다승왕, 방어율왕, 탈삼진왕, 승률왕은 물론 골글과 MVP까지 따내며 우승빼고는 다 해본 그야말로 레전드급 외국인 투수였지만 금지 약물 적발로 모든 명성이 날아갔다. 참고로, 불명예 기록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6년 연속 15사구(死球) 이상을 기록하며 6년 연속 몸에 맞는 볼 1위 기록도 갖고 있다.
6. 관련 문서
[1] 당시 애틀란틱 리그 소속의 독립리그팀.[2] KBO 리그 1호 기록이다.[3] 한국에서 걸린 게 아니라 일본에서 걸렸기 때문에 무작정 확정지을 수 없긴 하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바로 그 해 금지 약물이 적발되었기 때문에 KBO MVP를 수상한 2007년에도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게 아닌지 의심을 받고 있다. 특히 2007년에 234이닝이나 소화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4] 2004년까지 팀 감독이었던 김성한 전 감독과 특히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5] 특히 10월 3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 1사까지 퍼펙트 피칭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KBO 출범 이래 통산 첫 번째 퍼펙트 게임에 도전했으나, 이후 강귀태가 안타를 쳐내며 퍼펙트 게임을 세우는 데에는 실패했다.[6] 이 1이닝 9구 3삼진은 무결점 이닝으로도 불리며 이전에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이 세워서 화제가 되었지만 국내에선 2019 시즌까지도 한국프로야구 1군리그에서 단 6번 나왔다.[7] 흥미로운 점은 강윤구가 그 중 두번 달성했다.[8] 이 부분은 김 감독을 탓하기 어려운게 당시까지 포스트시즌에서는 3선발 체제가 일반적이었다. 결국 체력 조절을 잘해야 다음 등판때 큰 무리가 없었을 텐데, 완봉승 달성을 위해 체력을 모두 소비한 것이 독이 된 셈.[9] 실점에 비해 많은 피안타와 홈런 2방이 뼈아팠다.[10] 근데 골리앗은 다윗한테 물맷돌을 머리에 정통으로 맞고 두개골이 깨져 즉사했다(...) 당시 그 영건은 훗날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로 우뚝 선다.[11] 이때 얼마나 흥분했는지 평소 덕아웃에서 활발하기로 유명한 홍성흔이 말리는 데 애를 먹은 게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12] 김성근이 보크라고 주장할 당시만 해도 상대 팀 에이스를 흔들기 위한 꼼수로 취급받았다. MLB에서도 베테랑 소리 듣던 박찬호가 일본에서 투구폼이 보크로 지적받는 것을 보면 보크에 관한 룰은 일종의 로컬룰처럼 리그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13] 당시에 리오스의 트레이드에 관해 KIA팬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했고 한 동안 트레이드로 온 전병두를 배척하기도 했다. 특히 주전 포수인 김상훈하고 친해서 이적 직전 경기에서 교체되자마자 바로 김상훈에게 포옹을 했을 정도였다.[14] 넷 모두 골든글러브 수상자에, 알칸타라를 제외한 셋은 골글-MVP를 따냈으며, 알칸타라는 MVP는 없지만 2020년 기록은 21세기 기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기록이었다. 추가로 니퍼트, 린드블럼, 알칸타라는 통합 우승까지 했다.[15] 흔히 도핑 검사를 선수협에서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미국 MLB 선수 노조의 입장이며(미첼 리포트에도 관련해 이야기가 있다.), 오히려 한국 선수협은 예전부터 금지 약물 문제에 적극적이고 전수 검사에도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전수 검사는 사실상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것은 일본프로야구 또한 마찬가지이다.[16] 실제로 미국의 경우 중남미에서 건너온 히스패닉계 이민자 혹은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에서 스페인어가 제2공용어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플로리다 등 미국 남부 지역이나 멕시코와의 접경 지역은 사실상 영어를 못해도 스페인어로만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스페인어를 제1외국어로 가르칠 정도로 스페인어가 사회에서 미치는 영향이 크다.[17] 정확히는 1242이닝, 연 평균 207이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