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7 02:50:55

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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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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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7 2008 2010 2018

수상 기록
2008년 한국프로야구 MVP
2008년 한국프로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2008, 2010년 한국프로야구 다승왕
2009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자책점
2008년 한국프로야구 탈삼진왕
2009년 한국프로야구 승률왕
2014년 한국프로야구 사랑의 골든글러브
2018년 KBO 리그 페어플레이상
2018년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올해의 투수상
2018년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재기선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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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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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29번
김성훈(2006) 김광현(2007~)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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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No.29
김광현(金廣鉉 / Kwang-Hyun Kim)
생년월일 1988년 7월 22일 ([age(1988-07-22)]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본관 김해 김씨
출신지 경기도 안산시
학력 안산덕성초 - 안산중앙중 - 안산공고 - 건국대[1]
신체 188cm, 88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2]
프로입단 2007년 1차 지명 (SK)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7~)
등장곡 The OFFspring- Why don't you get a job?
가족 2남 1녀 중 첫째[3], 배우자 이상희, 슬하 1남 1녀[4]
종교 개신교
병역 병역특례
연봉 15억원 (FA, 2019년)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
3.1. 피칭 스타일3.2. 강력한 투피치3.3. 내구성3.4. 투피치 파워 피처의 안정감
4. 라이벌5. 여담6. 연도별 성적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SK 와이번스 소속의 좌완 투수. 2007년에 데뷔하여 SK 왕조를 이끈 구단 역사상 최고의 투수[5]이자 최정과 함께 SK 와이번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유력한 영구결번 후보이다. 또한 KBO 리그를 대표하는 현역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2. 선수 경력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김광현/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국민존잘_야구선수_김광현.jpg

3. 플레이 스타일

3.1. 피칭 스타일

파일:김광현투구폼.gif
김광현의 역동적인 투구폼
파일:KimFB.gif
154km 포심 패스트볼
파일:KimSL.gif
146km 고속 슬라이더

오버핸드 폼을 가진 좌완 투수. 188cm의 키에서 역동적으로 내리꽂는 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를 주로 사용하며, 그 외에 체인지업, 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 스플리터 등의 구종이 있지만 잘 쓰진 않는다. 기본적으로 MVP를 차지한 2008년을 비롯해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지는 투 피치 투수이지만 2015년 들어서 커브의 비중이 10%를 넘겼다.[6] 이후에도 계속 커브의 비중이 9~10%를 차지하고 있다. 2019년에는 스플리터를 제대로 장착해서 15% 정도의 비중으로 사용하며 써드 피치로 사용하고 있다.

포심 패스트볼은 최고 구속 156km/h[7], 2018 시즌 평균 직구 구속은 148km/h 정도이며 최고 구속은 155km/h이다. 그리고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는 평균 구속 137km/h이며 최고 구속은 146km/h이 기록되었다. 12-to-6 커브는 쿠세가 보여서 프로 입단 이후 봉인해 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8][9] 체인지업은 투구폼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2015년 스프링 캠프에서 집중 연마중이다. 또한 김상진 투수 코치,외국인 팀 동료이자 포크볼 전문가인 카도쿠라 켄에게 포크볼을 추천받아 배우기도 했지만 실전에 사용할 위력은 아니라고 한다. 포크볼 그립으로 구속이 143km가 나온다.

김광현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봐왔다면 알겠지만, 김광현의 투구 동작은 매년 변화하는 중이다. 그로 인해 스트라이드가 짧아지기도 하고, 릴리스 포인트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기도 하고, 와인드업 시 다리 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국내에선 드물었던 극단적인 오버핸드 폼 또한 평범한 오버핸드 폼으로 변했다. 2018시즌에는 KBO 리그 평균보다 더 긴 익스텐션과, 낮은 릴리스 포인트를 가진 투수이다.#

11년의 부상 이전과 이후로 플레이 스타일이 어느 정도 나뉘는 편인데, 11년 이전에는 보통 야구팬들이 흔히 김광현 하면 떠올리는 스타일이자 여기에도 그 시절을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좌완 파워 피처였다. 빠르고 구위가 묵직하지만 거친 제구와 슬라이더 하나뿐인 단순한 구종과 기복이 심한 투수로, 마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은 인상을 주었으나 그런 원석 상태에서도 MVP를 수상할만한 탑급의 지표를 보여주었다.

사실 류현진과 함께 활약한 07년~12년 사이에 08시즌을 제외하면 확실히 밀리는 양상이었고, 둘 다 커리어 하이를 이뤄낸 10시즌에도 류현진보다 한수 아래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류현진의 라이벌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는 리그에 류현진에게 그나마 비벼볼 만한 동시대의 젊은 좌완 투수로서는 유일하다는 점과 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커맨드나 구위가 모두 이미 성장할 여지가 없어 보였던 류현진에 비해, 성적은 반수 떨어지지만 전혀 다듬어지지 않아 포텐셜이 무궁무진해 보였던 김광현이기에 라이벌로서 엮일 수 있었던 것. 정확히 말하자면 류의 라이벌로 기대했던 것은 제구가 잡혀서 완성형이 된 미래의 김광현이었던 것이다.

11년 어깨 부상 이후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플레이 스타일에 큰 변화가 생겼는데, 우선 스터프가 크게 죽었다. 피홈런이 늘어났고 매년 1위를 다투던 탈삼진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으나 15년에는 제구력이 한결 나아졌고, 커브와 체인지업, 어설프지만 포크도 던지는 등 구종도 몇 가지 추가되어 레퍼토리가 다양해졌다. 윽박지르는 투구 대신 안정성을 추구한 셈. 그러나 본인의 가장 큰 무기인 구위가 떨어지면서 샌디에이고가 불펜으로 200만 불 포스팅을 요청한 이후로는 해외에서의 관심은 끊겼다. 사실 200만불 포스팅에 줄 수 있는 연봉이라면 마이너 오락가락하는 수준의 선수가 받는 연봉에 불과하다. 샌디에이고도 이 시점의 김광현을 그렇게 평가했다는 이야기. 패전~추격조 정도의 불펜투수. 미국보다도 오히려 일본에서 탐을 많이 냈던 투수였는데, 피지컬이 약한 좌타 교타자가 많은 일본 리그, 특히 세리그 특성상 좌완 파워 피처면 거의 성공이 보장되는 카드여서 2010년에 한신이 벌써 6년을 들여 김광현 FA를 사겠다는 초특급 설레발을 칠 정도로 탐냈었는데, 이 구위가 없어지자 일본에서도 관심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일각에서는 지녔던 포텐셜에 비해 만개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실제로 그 평가가 맞다. 실제로 부상 회복 이후로는 KBO에서조차 리그를 지배했다고 평할만한 성적은 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떨어진 구위도 예전처럼 탈삼진왕을 다툴 정도가 아니다 뿐이지 KBO 수준에서는 아직 프런트라인 선발급으로 충분히 통하는 구위인데다가 구속도 아직 충분히 강속구에 들만하다. 또한 컨트롤도 15년 이후로는 안정되어 이닝도 많이 먹는 KBO내에서는 1선발에 적합한 더 솔리드한 투수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재기에 성공한 이후 김광현은 예전과는 크게 다른 투수가 되었다. 나쁘게 말하면 장점을 잃어버리고 평범한 크보급 투수가 된 것이고, 좋게 말하면 좀 더 솔리드한 완성형 투수가 된 것.

아직 포텐이 터지지 못한 마이너 선수들의 경우 한두 가지 요소는 상위 레벨에 근접할 수 있다. 널리고 널린 마이너리그 유망주들도 구속은 빅리거 못지않다. 여기서 단점을 개선해서 실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빅리거가 되는 것이고, 반대로 장점 대신 낮은 수준에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으면 마이너리거로 NPB, KBO에 가게 되는 것인데, 김광현은 후자였던 것. 그가 만 20세 시즌에 리그 MVP급 성적을 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KBO의 수준이 AA정도로 평가되는데, 미국에서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아 입단해도 20살 정도면 보통 루키나 A에서 머문다. 투수가 20살에 AA에서 김광현의 08시즌 정도 성적을 냈다면 MLB에서도 특급 유망주 취급이다. 보다 높은 수준으로 도약해야 할 시기에 한국에서는 더 높은 수준의 리그가 없었고 이미 정복이 끝난 수준의 리그에서 정체되어 있다가[10] 부상이 겹쳐 성장이 멈춰버린 케이스. 정말 마지막 도약의 기회였던 FA마저 불운하게도 토미존이 겹치며 상위 리그로 진출하여 성장을 도모할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말았다.

물론 이는 MLB 기준의 이야기이고, 현재 수준으로도 KBO에서는 프런트라인 선발로서 손색이 없으며 실제로 걸맞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도 노쇠화가 찾아오기 전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전성기(08~10시즌)에 비해 구속-구위가 다소 감소해 폭발력이 줄어든 1차 복귀시(14~16시즌)에도 토종 투수 톱클래스로써 1~2선발급 성적을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재활 후 1차 복귀시기인 14년도부터 16년도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도중 낙마하기 전까지 시즌 직구 평균 구속이 144~146 정도로 전성기 시절보다 상승했다. 이는 어깨 부상 재활과정 중 근력 트레이닝이 큰 영향을 미친듯하다. 이후 토미존 수술 후 복귀한 2018시즌엔 이닝제한의 영향도 있겠지만 직구 평균구속 147.3km/h으로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9시즌에도 직구 평속 147km/h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구위-구속이 수술 후 더욱 상승한 것임이 확실시되었다. 즉 부상과 부진, 재활, 부활 등을 반복하며 어렸을 때 가졌던 구위와 포텐을 잃었으나 토미존 수술 후 철저한 팀과 본인의 관리로 전성기 시절에 다 펼치지 못했던 구위를 회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여담으로 투구폼이 지나치게 과격한 덕에 도루 저지 면에서 약점을 보이는 투수이기도 하다.

3.2. 강력한 투피치

본인 특유의 역동적인 오버핸드 폼과, 188cm의 장신에서 내리꽂는 최고 150km/h 초반의 패스트볼은 매우 강력하다.[11] 심지어 구속이 계속 오르는중이다. 어깨 부상 이후 구속이 증가한 것은 재활기간 어깨 근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팔 동작만 보고 릴리스 포인트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생각보다 공을 낮은 위치에서 뿌린다. 투구하면서 팔을 스윙하게 되는데, 이 때 팔 스윙하는 궤적의 처음 부분이 높아서 릴리스 포인트가 굉장히 높아보이는 원리다. 사실 신인 시절에는 릴리스 포인트가 높았지만 투구폼 교정을 받으면서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졌다고 한다. 또한 그의 주력 변화구인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 역시 매우 강력한데, 140km 내외의 빠른 구속이 오버핸드 투구폼과 시너지를 이루어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낸다.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스탯티즈가 제공하는 구종가치 14시즌 1위, 18시즌 2위, 19시즌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리그 최정상급 결정구이다. 투구를 보다보면 바닥에 박힐 정도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타자들이 포크볼마냥 헛스윙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12] 설령 공을 맞춰낸다 하더라도 타격 지점이 워낙 낮기 때문에 보통 땅볼이 된다.[13] 실제로 김광현은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뜬공 아웃보다 땅볼 아웃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숨겨진 땅볼 투수인 셈. 종합하면 타자를 압도하는 위력적인 구위가 장점으로 몸쪽-바깥쪽을 나누는 제구력보다는 압도적인 공의 위력과 존의 높낮이를 이용해서 타자를 윽박지르는 투구를 한다.[14]

2016시즌 들어서는 약점으로 지적받던 단순한 패턴을 커브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가며 극복해나가는 느낌이다. 개막전 시범 경기 넥센전에서는 그 슬라이더를 완전히 봉인하고 속구와 체인지업만으로 좋은 성과를 냈고 포피치 투수로 발전해가는 중이다. 그리고 실제로 2016년 5월 12일 두산과의 대결에서는 속구 44개, 슬라이더 26개, 커브 12개, 체인지업 20개를 던졌다. 특히 7회 2사 2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민병헌에게 던진 바깥쪽 꽉 찬 체인지업으로 삼진을 잡는 장면은 이 날의 백미.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쓸 정도로 활용도가 올라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다만 체인지업은 2016년을 제외하고는 크게 사용한 시즌이 없다. 커브는 14시즌 이후부터 꾸준히 써드 피치로 사용하고 있다.

2019시즌에는 우타자의 바깥쪽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 스프링캠프에서 커브와 스플리터를 연마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18시즌에 포심과 슬라이더의 비율이 각각 45% 가량으로 두 개의 구종을 제외하면 다른 구종은 총 구사율이 10%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커브와 스플리터의 구사율을 20%까지만 늘려도 지금보다 나은 볼 배합이 가능해져 투구 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완전히 투피치 투수였던 것은 전성기 시절이고, 이후 부상과 재활을 거쳐 14시즌부터는 커브를 섞어던지면서 투피치~쓰리피치 투수 사이 정도였다.[15] 스스로 투피치 투수의 한계와 단점을 파악하고 커브-스플리터-체인지업 등을 장착하려고 노력했고, 이 구종을 활용하여 실전에서 꽤 괜찮은 질의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강력한 극단적 투피치 투수에서 괜찮은 2,3 변화구를 가진 강력한 투피치형 투수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3.3. 내구성

2016년 기준, 데뷔 후 10시즌동안 풀타임 선발로 버틴 게 단 5시즌 뿐이다. 또한 2011년부터 2013년 까지 3년을 어깨 부상에 시달렸다. 이런 사실은 김광현의 내구성을 낮게 평가하는 원인이 된다.특히 와일드한 투구폼때문에 부상위험이 높다는건 이미 어느정도 알려진 사실이였고 가수에게 성대결절같은 시련이 2011~2013년이라고 볼수있겟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시절 SK는 선발키우기보다 쥐어짜내기 불펜야구에 매달리는 팀이라[16]. 한 번에 8~9이닝을 던지고 5~6일 로테이션을 도는 것보다는 6~7이닝을 던지고 철벽 불펜에게 넘긴후 4~5일 로테이션을 지키며 보다 많은 승리를 가져오는 방식으로 운용되었다. 이로인해 이닝 수와 경기당 평균 이닝이 적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09시즌의 경우 부상당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돌면서도 많은 이닝[17]을 소화해 무려 전반기에만 규정이닝을 채우는 기염을 토했다. 10시즌에는 포스트시즌 포함 200이닝을 넘기기도 했다.

거기다 어깨부상이 없는 2010년 이전과 2014년을 보면 조기강판 횟수도 적다. 특히 2009년에는 김성근 감독의 실수로 비롯된 조기강판[18]과 시즌아웃을 당한 손등 부상을 제외하면 부진해서 조기강판된 적도 없다. 본격 부활 시즌이였던, 2014년에는 4월 23일 NC전 4이닝 4실점(2자책) 단 1회 뿐이다.
2010 시즌 역시 카도쿠라 켄과 함께 단 둘 뿐인 믿을 만한 선발투수로 그해 거의 모든 경기를 4일 로테이션으로 치뤄냄으로써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해 출장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10시즌 이닝 1위 투수가 되었다. 아무리 리그가 다르다곤 하지만 류현진이 메이저에서 4일 로테이션으로 고생한 것을 생각해보자. 200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 2년간 4일 로테이션을 꾸준히 소화하면서 이만한 성적을 내려면 상당한 내구성이 있지 않고는 힘들다. 그 이후 2011시즌부터 부상으로 여러차례 2군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를 10시즌의 후유증 탓으로만 보기는 힘들다.[19] 따라서 몸이 건강하다면 내구성도 문제없다고 보며, 2014년에 이상 없이 풀타임 시즌을 치름으로써 내구성을 회복하였다. 또한 2015년에도 팔꿈치 부상으로 한 두경기만 빠졌기 때문에 내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파일:김광현_내구성.jpg

2016년까지의 최근 10년간 누적으로는 류현진을 제외하고 김광현이 압도적이다. 의외로 롱런한 선발투수들이 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구성이 우수한 선수다. 다만 데뷔후 17시즌까지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뛴 시즌은 네 시즌[20][21]이란게 약간의 아쉬운 포인트. 하지만 큰 부상 없이 10년 이상 뛴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국가대표급 투수들 말고는 김광현과 비교 할 수 없다.[22]

하지만 FA계약을 앞두고 토미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는데 이 수술은 투수에게 통과의례같은 수술이기에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군더나 전병두 같이 회전근을 다친 경우도 아니고, 토미존 같은 경우에는 100%는 아니어도 수술 전 만큼의 구위를 되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재활에서 투구폼을 교정해 더 강한 구위와 빠른 구속을 갖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이지만, 그 매우 드문 경우가 실제로 일어나게 된다.

3.4. 투피치 파워 피처의 안정감

지금은 SK뿐만 아니라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에이스이지만 의외로 마운드에서는 주변 환경이나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스타일이다. 특히 그 때 그 때의 감정이 얼굴에 곧바로 드러나는 스타일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시 얼굴만 보고서도 심리상태를 알 수 있을 정도. 다만,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며 곧잘 이겨내기는 한다.

구종 추가하기 전까지 150대의 직구와 140대의 고속 슬라이더 만으로 압도하는 스타일의 투수이기 때문에 모든 구종이 빠르게 들어간다.그런데 여러가지 이유로 직구에 힘이 떨어지거나 고속슬라이더를 잘거르는 타자를 만나는 경우 투구 내용에 약점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 타자를 맞춰 잡을 방법이 부족해 삼진 혹은 볼넷 승부가 많아지는데 비슷한 파워피쳐인 배영수[23] 의 경우에도 1450⅓이닝 531볼넷으로 부진했던 09시즌의 성적을 감안하면 김광현보다는 볼넷이 더 적다. 특히 이로 인해서 FIP가 늘 ERA와 큰 차이가 난다. 김광현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08~10시즌은 SK 야수진의 수비력이 정점을 찍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추가 구종이 생기기 시작하고 다소 투박한 외곽 제구를 가다듬으면서 2014 시즌부터 볼넷의 비율이 낮아지며 옛날처럼 볼질을 하는 모습은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ERA에 비해 높은 FIP가 높은 편이라 이를 근거로 김광현을 평가절하하는 시각이 있었지만, KBO의 탑급 레벨의 투수들은 FIP보다 ERA가 낮은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광현을 FIP를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DIPS 항목에도 나와있듯 FIP 자체가 KBO 리그에 잘 맞지 않는다. [24]

실제로 김광현의 BABIP은 리그 평균에 비해 꾸준히 낮은 경향을 보인다.김광현의 시즌별 BABIP

또한 롤러코스터급은 아니더라도 한 경기 내에서 투구내용의 기복이 있다.[25]

4. 라이벌

가장 먼저 라이벌로서 많이 언급되었던 사람은 단연 류현진이다. 냉정하게 따지면 KBO에서 선발 투수 독보적 1인자로 군림하던 류현진과 굉장히 벌어진 격차의 2인자 김광현이라 할 수 있다. 김광현의 첫 프로 데뷔 때 류현진에 대해 디스 아닌 디스 발언을 하면서 시작된 비교는 류현진이 06시즌 보여준 포스와는 달리 김광현은 부진한 성적으로 2군으로 내려감과 동시에 오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굴욕을 당했으나, 한국시리즈 4차전 다니엘 리오스와의 선발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며 팬들이 원하는 영건 에이스로서 모습을 보여주었고, 08년, 09년 선발진의 중요한 축으로서 활약해주자 팬들과 언론은 둘을 라이벌 구도로 본격적으로 엮는다. 2008년 김광현이 각성하면서 방어율-다승 타이틀을 따내고, 골든글러브-MVP를 석권하며 류현진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이 해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광현은 New 일본킬러로, 류현진은 대한민국 최고 좌완 에이스로 이미지를 굳혔고, 인지도도 높였다. 2009년엔 김광현이 전반기 무시무시한 포스를 뽐내며 치고 나갔으나 후반기에 불의의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고, 류현진은 06,07,08 시즌과는 달리 조금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26] 타고투저 시즌 팀을 혼자서 이끌어갔다. 다만 서로 활약이 좀 엇갈려 라이벌 구도는 살짝 줄었다. 하지만 2010 시즌 둘 다 커리어 하이를 찍게 되면서 라이벌 논쟁에 정점을 찍는다. 다만 피칭 스타일 부분에 전술했듯이 이때 둘의 레벨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둘 다 커리어하이를 찍었고 김광현의 2010년은 류현진의 성적을 제외한다면 10여년간 손에 꼽히는 시즌이었으나 그 성적은 류현진의 2007년은 상회할지라도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했던 2006년, 1점대 방어율을 찍었던 2010년과는 차이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류현진이 다른해도 아닌 하필 그해에 역대급 성적을 찍어 역대급 콩이 되어버린 바람에... 어쨌든 08~10 3년간 성적을 봤을때 류현진 옆에서 이름값을 해낼 수 있는 영건은 그나마 김광현밖에 없었고, 실제로 WAR로 따졌을 때 전성기의 시작이었던 08년도에는 김광현이 앞섰다.[27]

2011년에는 류현진은 시즌 말미 부상 후유증에 광저우 아시안 게임 차출로 인한 후유증이 더해지고, 김광현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사실상 시즌아웃이 된 걸 무리하게 복귀시켰던 것이 악화되어 둘 다 2011년은 쉬어가는 시즌 소리를 들었고, 2012년 류현진은 불운한 승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값을 알리는 호투로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최초의 선수가 되었지만 김광현은 여전히 부진과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한국시리즈에서 간신히 예전의 모습을 보여줬다.

류현진이 2013년 메이저리그에 가면서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류현진도 몇 년을 부상과 재활 등으로 인해 시련을 겪었고, 김광현도 재활로 인해 시즌을 날려먹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뭔가 보여준 선수와 국내에 잔류한 선수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아지는 건 드물다. 때문에 와이번스 팬덤에서도 류현진과 라이벌로 엮는 건 이미 진작에 접은 상태.

윤석민과는 류현진과 함께 현 한국야구 젊은 에이스 3인방으로 묶일 때 아니고는 잘 엮이지 않았다. 특히 둘 다 커리어하이 시즌 다음 해를 기점으로 2013년까지 영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애초에 2008년을 제외하면 두 선수가 동시에 좋은 활약을 펼친 시즌이 없다. 커리어 하이도 김광현은 2010년, 윤석민은 2011년[28]이다.

2014년 이후에는 KBO 최고의 좌완 투수로 떠오른 KIA 양현종과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며 누가 우위다 논쟁이 양쪽 팬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오가고 있다. 양현종은 뛰어난 내구성을 바탕으로 꾸준히 정상의 기량을 유지했고, 15년에는 개인 커리어 하이를 달성, 2017년에는 20승-통합MVP선정의 영애를 누렸다. 한국시리즈 완봉승은 덤. 2018년에 김광현이 복귀하고 2017년에 양현종이 기아와 재계약을 하여 2018 시즌부터 둘의 대결을 볼 수 있게 되었다만 2018 시즌에서는 단 한번도 맞대결이 성사되지 않았다. 2019시즌 들어서도 아직 맞대결 성사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18시즌 김광현이 성공적으로 복귀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17시즌 양현종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고, 둘 모두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1세이브를 달성하며 팀의 우승을 가져온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에서 라이벌리가 더욱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5. 여담

  • 2010년 9월 19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해서 은퇴식을 치르는 양준혁과 정면 승부를 했다. 양신의 은퇴식 전의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던지는 것이 대선배에 대한 예우라며 삼진 3개를 잡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 시즌 최고의 투구와 함께 그 약속을 지켰다.[29] 솩갤에서는 언행일치이라며 찬양받는 중. 양신과의 대결에서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실어 던졌다.[30] 재미있는 점은, 김광현의 프로 통산 첫 피홈런을 안겨준 상대가 양준혁이었다.[31] 매우 드라마틱한 일. 하지만 구설수를 조심하려는지 패기있을 젊은 나이임에도 인터뷰를 예전처럼 자신감 있는 발언보다는 틀에 박힌 교과서적인 대답만 해서 아쉽다는 팬도 있다.
  • SK 와이번스의 최전성기[32]에는 1위팀의 No.1 에이스로 상당한 책임감을 느낀 듯. 1위팀의 선수이기에 타선과 든든한 불펜의 도움이 있지만, 1위팀이기에 모든 경기를 이기려고 해야 하고 그 중에서도 1위팀의 에이스로 자신이 나가면 반드시 승리를 챙겨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 웹툰 만화가 이말년이 김광현의 팬이라고 한다. 이말년은 전북 익산 출신으로 본래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으나 쌍방울이 해체된 뒤 옛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SK의 팬이 된 것.[33] 이후 이말년이 안산에서 오래 살면서 안산사람인 김광현에 애착을 가진 듯. 류현진에 비해 김광현은 저평가받고 있다면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트위터 멘션을 남기기도 했다.
  • 또래의 팀 선수들과 훈훈한 장면을 많이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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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실 웃는 모습 등등 뭔가 모자라 보인다고 해서 모지리라는 별명도 있다. 워낙에 오랄이 강렬한 별명이라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는 않지만.
  • 구글에서 X큰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뜨는 선수가 바로 김광현(...)[34]
  • 김광현의 또 다른 별명으로는 베테랑 막내라는 별명이 있다. 지금이야 89년생인 한동민이 나와준 덕분에 전체 막내에서는 탈출했지만 여전히 투수조에서는 막내다.[35] 데뷔 7년차인 김광현이 아직도 투수 막내라는 점에서 SK 마운드의 노인정스러움을 알 수 있다. 심지어 13시즌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백인식조차 87년생으로 김광현보다 형이니... 이때문인지 대형 신인 투수가 SK에 지명되면 과연 김광현이 이번엔 막내를 탈출할 것인가가 관심사가 될 정도. 하지만 박종훈서진용이 꾸준히 1군 엔트리에 올라와 이젠 투수 막내 역시 벗어났다.
  • 어렸을 때는 LG 트윈스의 팬으로서 이상훈을 가장 좋아하는 야구선수로 꼽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극도의 부진에 빠진 2011년 이후로도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김광현의 영입을 바라는 팬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다만 김광현이 등번호 47번을 달라고 하면 줘야 하냐 말아야 하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36]
  • 한국 축구의 영건 기성용과 닮은 꼴로 유명하다. 기성용의 빠른 생일로 보면 동갑 취급해도 될 정도, 서로가 닮은 꼴임을 잘 알며 의식하는 듯하다. 상대 종목이 인기를 끌 때 팬들에게 오해 받는 일도 빈번하다고, 닮은 꼴에 대한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각 종목을 대표하는 영건임에도 만나본 적은 없는 모양.[37]
  • 애프터스쿨유이와의 소개팅을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유이가 애프터스쿨 멤버가 되기 전의 일이긴 하지만, 당시 김광현에게는 이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상대가 누구든지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즉,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에게 소개팅을 신청한 것 부터가 미스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야구인임을 생각해볼 때 유이의 언행은 상당히 의외다. 현역 선수와 루머에 엮이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없을텐데.[38]
  •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주인공 윤시윤과 닮았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기사로 떴다. 이미 김광현의 여자친구도 인정했으며 SK 선수들도 "탁구야" 하고 부르기도 하며, 이에 한술 더떠 김광현은 "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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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양준혁 재단이 주최한 자선경기에서 홈스틸에 1루 라인드라이브 수비에 번트안타까지 만들어내면서 해설자들에게까지 극찬을 받았다.
  • NC 다이노스에게 유독 약하다. 등판하면 꼭 패전을 떠안고 내려갔다. 2013년에 선발 2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모두 패전을 떠안았고, 2014년에도 1경기 등판해 패전을 떠안았다. 2015년에는 선발 1경기, 구원 1경기 등판해 1승 1홀드를 기록했으나, 평균자책점이 10.13으로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러나 16시즌 첫 맞대결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타선을 틀어막으며 통산 100승째를 기록하였다.
  • 또한 kt 위즈에게도 약하다. 2015년 시즌 kt에게 2승을 기록했지만 23이닝 23실점 방어율 9.00로 NC 다이노스에 이어서 방어율이 제일 좋지 않았고 16시즌 또한 kt와의 개막전에 등판했으나 4와 2/3이닝 7실점을 기록하면서 징크스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 이선희 구대성 등으로 이어져 온 좌완 일본 킬러의 대를 잇는 투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두 차례 등판해 5.1이닝 1실점, 8이닝 2실점을 찍으며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WBC 때는 반대로 털린 게 흠이긴 하지만.
  • 부모님이 안산시 고잔동 주공아파트 상가에서 떡집을 운영했다.[39] 100승을 하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오면 직접 기념 떡을 해왔다. 그래서 선수들 사이에서 별명도 떡광현이었다고 한다.[40][41]
  • 2남 1녀 중 장남[42]이다. 2014년 시즌 끝나고 결혼해서 2018년 현재는 1남 1녀, 두 아이의 아빠.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거주하는 모양이다. 주변에 있는 송도,인천논현,소래포구 맛집 같은 곳에 싸인이 전시된 곳도 많다.
  •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구마구프로야구 매니저를 하는 모습도 찍힌적이 있고 리그 오브 레전드도 좋아한다고 한다. PC방 같은 곳에서도 가끔 발견되기도 했고.[43] 동창의 증언으로는 초등학교 때 여느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모으다가 전종 컴플릿을 바라볼 시점 스타크래프트에 눈을 떴다고.
  • 이사만루2015 KBO에서는 10김광현은 구종이 좋지 못하다. 체인지업 F, 컷패스트 E, 나머지 D. 애당초 이거 말고 문제가 더 있긴 하지만...
  • 소속팀 모기업인 SK텔레콤 TV 광고를 간판 에이스답게 두 번이나 출연하였다. 2008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 이후 한 번 찍었고, 2016년에는 생활플랫폼 광고를 촬영했다. 이후 스폰서인 미즈노의 지면, 영상광고도 찍었다.
  • 2016년 tvN 드라마 안투라지카메오출연하였다. 과연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팬들은 기대했는데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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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에 100승을 달성한 후 기념 글로브 29개를 제작해 개당 100만원에 판매, 판매수익금 전액을 야구 꿈나무를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했다. 해당 글러브에는 번호가 기입되어 있으며 1번은 김광현이 실착용으로 사용한다. 너무 비싼 거 아니냐는 의견도 간혹 나오는데 위의 글러브는 미즈노 포 프로 글러브, 즉 프로 선수용으로 맞춤 제작되는 글러브로 현역 선수가 아니면 얼마를 줘도 구할 수가 없는 모델이다. 거기에다 한정판으로 29개만 있다는 상황까지 감안하면 그다지 비싼 가격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 의외로 마케팅 쪽에 관심이 있다고 하며 위의 자선 글러브 이벤트도 본인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고. 만약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지 않게 된다면 구단 마케팅 직원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 2017년 마무리 캠프 이후 귀국하는 모습의 사진이 찍혔는데 2017년 항목을 보듯이 재활기간동안 기른 장발모습이 기존의 이미지와 갭이 너무 크다. 근데 기자가 하필 그 제목을 멋쟁이 테리우스로 변신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결국 김광현 팬과 모든 야구팬들이 한 마음이 되어 이발하라고 댓글이 달렸다. 머리를 기른 이유는 소아암 어린이에게 모발 기부를 하기 위해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김광현이 장발로 18시즌에 복귀전을 가졌을 때 의외의 장발간지투구를 보이자 팬들 사이에서도 이발하라는 여론이 잠잠해졌고 이발할 때에는 아쉬워하는 팬도 꽤 생겼다. 김광현이 존경하는 투수인 이상훈이 생각났다는 팬들도 제법 있는 편. 어쨌거나 성공적으로 복귀한 후 깔끔하게 이발하였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SK 20 77 3 7 0 0 0.300 3.62 80 5 45 52 35 31 1.57
2008 27 162 16
(1위)
4 0 0 0.800
(2위)
2.39
(2위)
127 9 65 150
(1위)
50 43 1.17
(2위)
2009 21 138⅓ 12 2 0 0 0.857
(1위)
2.80
(1위)
121 14 57 112 46 43 1.26
(4위)
2010 31 193⅔
(1위)
17
(1위)
7 0 0 0.708
(5위)
2.37
(2위)
153 13 89 183
(2위)
56 51 1.22
(5위)
2011 17 74⅓ 4 6 0 0 0.400 4.84 70 6 47 61 45 40 1.55
2012 16 81⅔ 8 5 0 0 0.615 4.30 85 9 38 65 44 39 1.48
2013 25 133 10 9 0 0 0.526 4.47 128 12 72 102 72 66 1.47
2014 28 173⅔
(5위)
13
(4위)
9 0 0 0.591 3.42
(2위)
178 10 84 145
(5위)
77 66 1.49
2015 30 176⅔ 14 6 0 1 0.700
(5위)
3.72 173 19 69 160 86 73 1.35
2016 27 137 11 8 0 1 0.579 3.88 139 17 47 116 68 59 1.31
2017 1군 기록 없음
2018 25 136 11 8 0 0 0.579 2.98 125 16 32 130 48 45 1.14
2019 30 190⅓
(3위)
17
(2위)
6 0 0 0.739
(4위)
2.51
(3위)
198
(1위)
13 41 180
(2위)
64 53 1.24
KBO 통산
(12시즌)
298 1673⅔ 136 77 0 2 0.638 3.27 1577 143 685 1456 691 609 1.33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8 1완투 1완봉
(2위)
2009 1완투 0완봉
2010 2완투
(3위)
1완봉
(3위)
2011 1완투 0완봉
2014 1완투 0완봉
2015 1완투 1완봉
(2위)
2016 1완투
(3위)
0완봉
KBO 통산
(11시즌)
8완투 3완봉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2007 SK 1 0 .000 0 0 0 0 1 0 0 .000
2009 1 1 .000 0 0 0 0 0 0 0 .000
2010 1 1 .000 0 0 0 0 0 0 0 .000
KBO 통산
(3시즌)
3 2 .000 0 0 0 0 1 0 0 0


[1] 2010학년도 건국대학교 체육교육과 수시 전형에 합격하였다. 다만 학사학위를 받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다음 프로필에서는 학사가 아닌 건대 체교과로만, 네이버, KBO 프로필에서는 안산공고 졸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KBO 프로필은 데뷔 전 학력만 기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오른손잡이다. 다만 이 쪽은 교정을 통해 좌투가 된 류현진과 달리 선천적인 좌투좌타이다. 야구를 할 때만 왼손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손잡이라 보는게 적절하다.[3] 두 동생은 쌍둥이라고 한다. 그 중 여동생은 전직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100승 기념 행사 날 시구도 했다.[4] 2014년 시즌 끝나고 결혼해서 2019년 현재는 1남 1녀, 두 아이의 아빠[5] SK 투수 역대 WAR 1위이자 SK 좌완 최초의 100승 투수이다.[6] 이전에도 체인지업, 포크 등 제 3구종의 장착을 시도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7]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박한이를 루킹 삼진 잡은 공이 156km가 찍힌 적이 있으나 문학 구장은 다른 구장보다 구속이 3~4km/h 더 높게 나온다. 실제로 이 공의 실제속도는 152km/h로 이날 던진 공 중에서 가장 빨랐다. 한편 2018년 김광현의 직구 평균 구속은 147.3km/h로 리그 토종 선발 중에 가장 빠르다.[8] 실제로는 2014시즌에 처음으로 장착했다. 고교 시절에 던졌던 슬라이더는 구속이 느려서 스카우터가 커브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입단 이후 슬라이더의 구속이 오르는 바람에 '커브는 봉인하고 슬라이더를 새로 장착했다'는 오해가 퍼지고 말았다. 기사 참조[9] 당장 2014년 전반기에 김광현은 커브 제구 때문에 큰 애를 먹었다. 단순히 커브를 봉인한 것이었다면 전반기 내내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10] 실제로 김광현의 커리어에서 08시즌 성적에 비벼볼만한 시기는 10시즌 정도뿐이다.[11]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152km/h을 기록했고, 2015년에도 최고구속 155km/h를 기록하였다.[12] 그도 그럴 것이 140km 전후 구속의 공이 직구처럼 오다가 미끄러져 떨어진다. 순간적 판단으로 스윙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타자 입장에서는 알고도 당할 만 하다.[13] 때문에 타자들이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안타로 연결시키려면 높게 제구된 실투성 슬라이더를 노려야 한다.[14] 그래서 김광현이 저지르는 폭투는 대부분 홈플레이트 앞에서 패대기 치듯이 떨어지는 바운드볼이다. 포수 키를 넘기거나 바깥쪽으로 빠지는 폭투는 어지간하면 저지르지 않는다.[15] 투피치 투수에 대해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보통 직구-제1변화구를 합친 구사율이 90% 이상이면 투피치 투수로 본다. 메이저리그 통계사이트 팬그래프의 칼럼에서는 두 구종 구사율이 85% 이상일 경우 투피치 투수로 널널하게 본 경우도 있다.참고 칼럼 김광현은 14시즌부터 직구-슬라이더 구사율의 합이 90%를 넘은 적은 없고, 85%를 넘은 것도 18시즌 한 번 뿐이다. 14~16시즌동안은 80% 초반대, 19시즌은 7월까지 75%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14시즌 이후부터는 투피치 투수에 가깝기는 하지만 완전히 극단적인 투피치 투수라고 보기는 힘들다. 투피치 유형에 속하지만 질 좋은 3,4 구종을 장착한 투수로 보는 것이 맞다.[16] 사실 당시 SK의 확실한 선발은 김광현 뿐이었다.[17] 부상 전 평균이닝이 거의 7이닝에 육박했다.[18] 한 이닝에 두번 마운드에 올라오면 투수가 자동으로 강판된다.[19] 본인은 입단 이후 매년 겨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2010 시즌 직후 발생한 불의의 부상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20] 2008, 2010, 2014, 2015[21] 2007은 신인 시즌, 2009는 후반기 손가락 부상, 2011~2013 초반은 안면마비부터 어깨 부상 재활까지 김광현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고, 2016 후반~2017은 토미 존 서저리.[22] 비교 가능한 투수인 양현종, 장원준, 윤성환 정도 모두 국가대표 급이다. 외국인까지 확대하면 니퍼트[23] 직구 슬라이더 스플리터 쓰리피치다[24] 예를 들어 09-18시즌 투수들의 성적을 WAR 순으로 정렬하면 # 30명 중 김광현을 포함한 27명이 FIP보다 ERA가 낮으며, ERA가 더 높은 3명 중 윤석민, 우규민도 차이가 거의 없는 수준이고(윤석민 0.05, 우규민 0.02 차이) 커리어 전체를 보면 이 2명 역시 FIP에 비해 ERA가 더 낮다. 실질적으로 FIP보다 ERA가 유의미하게 더 높은 선수는 소사 1명 뿐이다. 소위 말하는 아웃라이어를 논한다면 오히려 소사 쪽이 아웃라이어라고 할 수 있다.[25] 대표적으로 2010년 한국시리즈 1차전. 4회까지는 완봉은 물론이고 노히터를 노릴 수 있을정도로 엄청난 구위의 공을 뿌리다가 급격한 흔들림으로 5회에 3실점. 결국 5회를 못 채우고 내려갔다.[26] 아쉬운 성적이 13승 190이닝에 ERA 3.57 WAR은 6.39 투수 2위 전체 4위다.[27] 라고는 하지만 김광현이 류현진을 앞섰던 시즌은 2008년 딱 한 해뿐으로 그외 나머지 5년은 류현진의 WAR이 김광현 WAR보다 적어도 2 이상은 높았을 정도로 실력의 차이는 확연했다. 말그대로 동시대에 그나마 비교라도 될 수 있었던 좌완이 김광현일 뿐이란 소리.[28] 그해 MVP 수상[29] 그것도 3연타석 삼진을 잡았다. 최고구속은 무려 152km/h. 후에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야구 잘 할 땐 공이 느리게 보이는 정도였는데 그때 마지막 공은 뭐.. 공이 안보여"(...) 참고로 이 날 양준혁의 마지막 타석은 송은범에게 2루수 앞 땅볼을 치고 1루까지 미친듯이 전력질주하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을 연출했다.[30] 이후 해설위원으로 돌아온 양준혁은 김광현 선발 경기마다 이 일화를 꺼내면서 셀프디스 시전. 심지어 이승엽 은퇴경기 때도 "제가 은퇴경기 할 땐 삼진 세 개를 먹었는데 이승엽 선수는 멋지게 안타라든지 홈런을 때려주면 좋겠네요." 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이루어진다.[31] 프로 데뷔전[32] 그러니까 08년부터 12년 사이.[33] 실제로 이말년은 마구마구에서도 쌍방울덱 사용했다.[34] 비슷한 사례로 "대물 야구선수"로 검색하면 조정훈이 뜬다. 모 롯데 팬의 김광현 목격담에 따르면 가운데 다리가 말의 그것이라고. 박희수도 장난이 아니라는 목격담이 있다. 오죽하면 하반신의 중심축이 잘 잡혀서 야구를 잘 하는구나 싶었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반대로 같은 팀에 최정은 작다는 소문이 있다.(...) 과거 박재상이 직접 입으로 확인사살.[35] 여담이지만 한동민 등도 나오지 않았고 김광현이 부상과 재활로 엔트리에서 장기간 빠졌던 11,12 시즌에는 최정이 1군 전체 막내였다!!![36] 그야 47번은 LG의 야생마인 이상훈의 등번호이기에...[37] 이에 대해서는 기성용펄녀와 친해서 몇 번이고 만남이 주선됐었지만 당시 SK의 고참 김재현이호준이 선수단에 펄녀가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이 있다.[38] SK 프런트 관계자가 처음에 주선을 하였는데, 유이의 의사를 일단 김성갑 감독에게 묻고, 이를 김성갑 감독이 딸 유이에게 물어본 것이라고 한다. 유이 본인은 아버지가 허락했다고 생각해서 소개팅에 대한 이야기를 한 듯하다. 뭐 데뷔 전이기도 하고 나이도 어릴 때라서 깊이 생각 안 하고 한 것일 수도 있지만.[39] 김광현이 분가하기 전 가족들과 살던 곳은 안산 성포동의 선경(SK)아파트로, 학교와도 가까웠다.[40] 선수들 사이에서 불렸던 또 다른 별명은 광팔이.[41] 비시즌에는 직접 떡을 배달하기도 했다고 한다.[42] 두 동생은 쌍둥이라고 한다. 그 중 여동생은 전직 리듬체조 국가대표 출신. 100승 기념 행사 날 시구도 했다.[43] 그래서 페이커의 시구 당시 페이커의 팬이라고 언급되었다. 실제로 시구 역시 본인이 가르쳐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