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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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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잔디 시절 구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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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잔디로 교체된 이후 아마 야구장으로 전환된 무등야구장[2]
이름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
개장 1965년 9월 30일
소재지 광주광역시 북구 서림로 10 (임동)
홈구단 해태-KIA 타이거즈 (1982~2013)
크기 좌우펜스 97m, 중앙펜스 119m[3]
펜스높이 3.1m[4][5]
잔디 천연잔디(1965년~2003년)
애스트로 터프(2004년~2007년)
필드터프(2008년~2011년)
천연잔디(2012년~)
좌석규모 12,500석(1984년~2018년)
2,700석(2020년~)


1. 개요2. 열악한 시설
2.1. 관람객 편의시설
3. 프로구장(1982~2013)
3.1. 인조잔디 시절3.2. 다시 천연잔디구장으로. 그러나...3.3. 새로운 구장을 짓기 위한 노력3.4. 2013년 10월 4일, 무등에서의 마지막 경기3.5. 무등야구장의 기록
3.5.1. 무등야구장의 마지막 기록3.5.2. 원정팀별 마지막 무등 야구장 경기 일자
4. 아마 야구장으로 전환(2014~)
4.1. 리모델링
5.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무등 종합경기장 내에 있는 야구장.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홈구장이 옮겨지기 전까지 한국프로야구 경기가 열렸던 곳으로 타이거즈의 10번의 우승을 함께한 구장이기도 하다. 과거 암울했던 시기에 야구로 그 설움을 풀수 있었던 호남 야구팬들의 정서가 담겨져 있었던 호남 야구의 성지이자, 이제는 추억의 장소 및 역사적인 장소. 2014년 신구장으로 옮기기 전에는 광주광역시에 있어서 광주구장이라고도 많이 불렀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해태 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 사용되었고, 해태의 뒤를 이은 KIA 타이거즈가 2013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한 야구장이다. KBO리그 첫 경기는 1982년 3월 29일 MBC 청룡해태 타이거즈 경기.

찾아오는 길은 광주 유스퀘어에서 광주 신세계쪽으로 큰 길을 따라 걸어오면 보인다. 단 생각보다는 멀어서 상단 사진 왼쪽 구석에서 약 1km정도를 가면 신세계백화점이 보이고 거기서 200m를 더 걸어가야지 유스퀘어가 나온다.

원래 중앙 펜스 거리가 113m여서(해태시절에는 114m), 홈런이 자주 나오는 편이었지만, 7m 뒤로 밀고 전광판 밑에 그린몬스터를 세워 생각보다 홈런이 많이 나오지 않는 구장이 되었다. 아니 2009년에는 광주가 잠실보다도 홈런이 적게 나왔다. 실제로 최희섭은 홈에서 생각보다 홈런이 안 나온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기도 했다.(당시 33홈런을 기록했으며, 광주에서는 단 12홈런을 기록했으니 일리는 있다) 하지만 외야 스탠드가 매우 작아 장외홈런은 상당히 자주 나오는 구장이었다. 특히 전성기 때 이호성[6] 이종범, 2009년을 이끈 'C-K포' 최희섭김상현이 자주 기록했던 편. 그리고 해태는 옛날 작은 사이즈였던 시절 1986년에는 41피홈런을 기록했다. 1987년 OB가 잠실을 쓰면서 세운 38피홈런이랑 큰 차이가 없다. 역시 야구는 선수 하기 나름.

지금은 사라진 수영장[7] 2층 창문에서 경기장의 2/3 이상이 훤히 보였다. 경기가 있는 날은 수영중 쉬는시간에 본의 아니게 야구경기 관람이 가능해졌을 정도. 이 '수영장 지붕'을 맞추는 홈런이 간간히 나왔는데, 비거리가 최소 140m는 된다는 이야기니 뭐.

단일시즌 홈런기록을 갖고 있는 구장이기도 하다. 구장의 상황보단 최강파워의 타자+막장의 투수+극강의 타고투저라는 1999년의 상황[8]이 합작한 결과이다. 1999년 한해동안 66게임에서 234개의 홈런이 나왔다. 홈팀인 해태가 127개를 치고 그해 해태의 피홈런도 107개였다. 홈팀 최다 홈런기록이 133개의 삼성(2003)이고 최다 피홈런이 SK의 2000년 (115)이다. 이 기록은 그해 샌더스 홍현우 양준혁 장성호 등 중, 장타자들이 한번에 몰아쳐서 나왔지만 당시 방어율 5~6점대를 기록한 곽현희 최상덕 곽채진이 마운드의 주축이라 그 투수들이 많이 얻어맞은것도 있으며 단일구장 234홈런은 앞으로도 깨질가능성은 아주 조금이나마 있지만 그때보다 팬스거리나 높이는 늘어난 만큼 이승엽 홈런만큼이나, 아니 더 어려운 기록이 될 듯하다.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로 이어지는 호남권 프로야구 팀의 1연고 구장으로서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약 31년간 10회의 우승의 중심에 있었던 곳이다. 2013년 10월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끝으로 1군 프로야구 경기는 더 이상 개최되지 않는다.

2. 열악한 시설

실제로 일본 야구 관계자가 무등야구장에서 선수들이 연습하는 걸 보고는 '낙후됐지만 괜찮은 연습장' 이라고 평한 일화가 있다. 현 구장에 대한 기아팬들의 심정.

이 구장을 보고는 '해태 잘 나갈 때 구장이라도 하나 안 만들고 뭐했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광주시 재정은 광역시중에서 압도적인 꼴찌다. 돔구장 건설 발표가 나자 광주시민들이 "시에 그럴 돈이 있냐?"하고 반문할 정도로 지역민조차 돈이 없는걸 알고있는 상황. 심지어 경남의 옛 마산(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보다도 총예산, 재정 자립도, 국고 지원금 모두 밀릴 정도니 말다한 셈. 그리고 모기업인 해태도 돈 많은 기업도 아니었고.

그래서 2001년에 출범한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하고 나서 이들에게 구장 시설 기대를 많이 갖기도 했다. 밑을 보면 시설 개선이 무산된 이유가 재미있고, 2011년 말 삽을 뜨기 전까지 신구장 건설 계획은 떡밥으로 잘 떠돌았다.

워낙 오래된 구장이라 프로 선수들이 가장 뛰기 싫어하는 구장 중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열악한 시설을 가졌다. 락커룸 시설 역시 보수를 해서 나아지긴 했지만 보수 이전에는 바퀴벌레가 다닐 정도였다.

2.1. 관람객 편의시설

선수 뿐만 아니라 관중에게도 불편한 구장인데, 탁자지정석을 제외한 내야 일반석의 경우엔 의자와 의자 간 간격이 심하게 좁아 한국시리즈 같은 큰 경기라도 있게 될 경우엔[9] 그야말로 불편함의 극치를 맛 볼 수 있다. 그나마 H빔파크는 일반석에 접이식 의자라도 설치했지만 무등은 그런거 없다. 앉아서 볼 경우엔 각 잡고 봐야한다. 그래서인지 경기 관람 후에는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관중들도 존재한다고.

그나마 화장실은 개보수한 모양이지만 워낙 구장 자체가 오래되어 리모델링 하기도 참 난감한 상황이다. 사실 이건 변명이라고 하기가 어려운 게, 미국의 펜웨이 파크나 일본의 한신 고시엔구장같이 8~90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야구장은 여전히 좋은 시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원동력이 꾸준한 리모델링과 보수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광주시가 야구 시스템에 무관심하다는걸 말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광주시에 돈이 없다는 게 문제. 실제로 1965년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위해 지어진 야구장이라, 청사진이 아예 없어져서 개축은 꿈도 꾸지 못하다가 2007년에 개보수를 하였다.

더욱 큰 문제는 주차문제. 원래부터 비교적 부지가 좁은 무등구장이기 때문에 큰 대회라도 열리는 동안에는 주변 주차문제로 인한 교통정체로 골머리를 앓는다. 더욱이 신구장 공사로 인해 더더욱 차량 주차가 힘들어져 심지어는 원정팀 버스가 노상주차를 해야 할 정도. 그나마 농성역 환승주차장이나 주변 임시주차장을 동원하는 등의 고육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차량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된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 임동 일대[10]에 일부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 주차장이 있지만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뿐더러 여전히 차량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3. 프로구장(198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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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초창기의 무등야구장 사진. 사람을 합성시킨 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합성이 아니라 경기장 난간까지 사람들이 앉아있는 장면이다.[11]

3.1. 인조잔디 시절

2003년 외야에서 물방개가 나온 사건[12]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며, 이 사건 이후 부랴부랴 인조 잔디를 깔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시멘트 바닥에 바로 인조 잔디를 깔아버려서 인조 잔디 공사 이후엔 선수들 여럿 골로 보내는 구장이 되었다. 광주 "카페트"로 악명이 높았으며, 2009 시즌에만 무등야구장에서 중상을 입은 선수가 이용규, 이종욱, 박경완, 김정민. 기아 타이거즈유격수였던 홍세완도 이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무릎이 아작나 유격수 수비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까지 됐으니 구장 상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10시즌 시즌 절반 가까이를 날려먹었던 김상현의 무릎 부상도 사실 고질적인 무릎문제가 있었지만 구장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LG시절엔 잠실야구장 천연잔디에서 뛰다가 기아로 이적한 후 돌바닥이나 다름없는 무등야구장 인조잔디에서 풀타임으로 뛰니 고질적인 무릎 문제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보인다. 타팀 선수로는 2006년 한화 소속으로 뛰었던 루 콜리어가 초반에 꼴아박고 타격감 회복하던중에 광주에서 수비때 다이빙했다가 부상, 결국 한참동안 결장했고 이후 외야로 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최후까지 사용되었던 필드터프는 인조잔디 중에선 가장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품종이다. 문제는 무등야구장이 KIA 구단의 프로야구 경기 뿐만이 아니라 유소년/청소년 야구대회나 사회인야구 대회 등 일반 아마추어들에게도 상시 개방되어있는 구장이기 때문에 잔디에 대한 관리가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 구장의 인조잔디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예를 들면,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기념 행사에서 무등야구장 그라운드를 개방했었는데 그라운드 감촉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때 구장에 들어가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인조잔디라고 해서 좀 푹신푹신할 줄 알았는데, 일반적인 보도의 시멘트 바닥이랑 다를 바가 없다라고 할 정도. 그러니 야구선수들 무릎이 성하려야 성할 수가 없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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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충격과 공포의 그라운드 실상이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 공사장에서나 쓸법한 플라스틱 발판, 거기에 카펫이나 발털개 수준의 인조잔디. 이런 경기장에선 누가 뛰어도 몸이 성할 수가 없다.

게다가 넥센과 경기 도중 마운드에서 벽돌이 발굴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사실 저 벽돌은 마운드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깔린 벽돌이다. 원래는 흙으로 위를 충분히 덮어서 벽돌이 안나오게 관리를 해줘야 하지만 이때는 바로 전날까지 고교야구 경기가 있었던 터라 제대로 관리조차 못하던 차에 이 일이 터진 것.

3.2. 다시 천연잔디구장으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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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잔디로 돌아간 광주 무등구장은 비가 많이 내리기만 해도 물이 고여 비가 그쳐도 야구를 할 수 없는 배수문제를 겪었다.

2011년 시즌 이후 새로운 야구구장 착공과는 별도로, 인조잔디구장인 무등구장에서 부상선수들이 속출하였고[13] 일단 완공 전까지는 현 무등야구장을 써야 하기 때문에 천연잔디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였고 2012년 2월 공사를 시작해 3월 8일 교체를 완료했다.[14] 천연잔디로 교체함과 동시에 노후 의자들을 교체하고 화장실 배기장치와 경기장 내외 부분 도색공사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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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천연잔디로 교체하면서 또 다른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무등야구장이 부상선수가 많이 나옴에도 왜 돌같은 인조잔디로 바꿨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특히 7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에서 더욱 드러났는데, 물론 갑작스레 많은 비가 내린 것도 있었지만 방수포가 인조구장 당시의 홈/마운드 크기였기 때문에 제대로 방수가 되지 않았고, 체육시설 소유주가 지방자체에 있는 상태에서 구장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따로 없는 상황에서 잔디에 쓰는 흙도 배수가 잘 되지 않는 흙을 썼고, 비가 갑작스럽게 내릴 때 구장 관리인원이 2명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강우콜드게임으로 선언되는 일이 발생했다. 최훈의 카툰에서 이 상황을 깠다.

또한 천연잔디로 바뀌면서 예전에는 나오지 않았던 변태스러운 내야안타가 제법 양산되는 일이 발생했다. 잔디가 어느정도 자리잡히면서 잔디로 인해 타구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면서 야수들이 잡기 어려운 위치에 멈추기 때문이다. 그 이점을 홈 팀인 KIA가 자주 노리면서 내야안타의 비율이 꽤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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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폭염이 지속되면서 잔디를 심은지 얼마 안되어 생육이 덜 된 잔디가 폭염에 타들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유럽산 잔디이기 때문에 더위에 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는 품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정도면 무등구장 잔디 관리의 허술함을 알 수 있는 대목. 자세히 보면 땅이 파여져보이는 부분이 사실은 흙이 아니라 잔디 색이 황변화된 부분이다.

3.3. 새로운 구장을 짓기 위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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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와 무등야구장

2001년 기아자동차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했을 때 완전 개조 형태로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생각이 있었지만, 어이없게도 설계도가 분실되어서 무산되었다. 인조 잔디를 깐 것도 이 때문인데, 설계도가 없어서 배수 시설 개선 공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국체전 유치로 새 구장 지으라고 국가가 준 예산은 시 예산이 없다고 치일피일 미루다가 반납. 무등야구장 시설이 하도 엉망이라 기아자동차가 KBO에 가입 신청서를 냈을 때, 새 구장을 짓지 않으면 언제든 연고지 이전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적도 있다.[15] 광주광역시는 무슨 배짱으로 10년 넘게 야구장을 짓지 않았는지.[16]

그 때문에 광주 시민들은 야구장 지어 달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전 광주광역시장 박광태는 항상 공수표만 날리며 삽은 커녕 티스푼도 들지 않았다.[17]

일부 KIA 팬은 바로 옆에 있는 무등경기장 축구장을 밀어 버리고 야구장으로 개조하라는 소리도 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그 경기장은 축구 전용구장이 아닌 종합경기장이었던 데다가 그 경기장을 밀어 버리면 광주광역시에서 국제 대회(육상.유니버시아드 등)를 아예 유치를 못하는 맹점이 있다. 그렇지만 종합 경기장인 광주 월드컵 경기장의 건설로 무등경기장 축구장은 사회인 축구팀이 이용하는 등 사실상 대형 종합 경기장으로서의 생명이 끝났고[18] 이에 따라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은 이 구장을 시원하게 밀어버리고 개방형 구장을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게다가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게 되면서 새로운 야구장 건립의 필요성이 커졌다.

사실 8년간 돔드립치던 박광태보다 이쪽이 광주광역시의 재정이나 국비 지원 등에서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강운태 시장이 제안한 1,000억 원 가량의 개방형 야구장 재원 조달은 국비 1/3, 광주광역시 1/3, KIA 타이거즈가 1/3을 부담하는 것에 비해 돔구장은 국비 지원이 없다! 근데 5,000억원으로 돔구장을 지으려고 했던 박광태 시장은 뭔 깡이었을까.

3.4. 2013년 10월 4일, 무등에서의 마지막 경기


기억할게! 우리의 무등.
ㅡ 마지막 경기 당시, 구단에서 내건 현수막.
"모든 추억이 살아있던 무등경기장 아구장과 바로 오늘, 작별을 고하는 순간입니다. 안녕. Good bye, Adios(서어), Auf Wiedersehen(독어). 참 작별인사가 많아요."
"세상에 모든 작별 인사를 이 무등야구장, 우리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이 무등야구장에게 바칩니다. 그동안 참 수고 많았습니다. 그럼 안녕히."
정우영 캐스터. 무등야구장 마지막 경기를 끝내면서.

무등야구장을 기억하기 위해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고별전에 많은 광주 팬들이 찾아와 주었고, 선동열 감독도 마지막이니 꼭 승리하겠다고 했지만, 넥센 히어로즈에 패해 고별전은 물론이고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런데 넥센은 그때 LG-두산-삼성과 피말리는 선두권 다툼을 할 때니 져줄래야 져줄수도 없었다. 이날 중계방송사 중 하나였던 엠스플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무등야구장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상을 클로징 영상으로 내보냈다. 최훈은 '안녕'이라는 카툰을 그려 수많은 KIA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

3.5. 무등야구장의 기록

  • 시즌 역대 최다관중 : 2011년(59만 2,653명)
  • 총 입장 관중 : 1,030만 1,631명
  • KIA 타이거즈의 통산 구장 성적 : 1,015승 788패 45무

3.5.1. 무등야구장의 마지막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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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경기 종료 뒤 내야를 제외한 외야 구역을 팬들에게 개방, 마지막 경기를 치른 아쉬움을 달래는 시간을 따로 마련했다.

3.5.2. 원정팀별 마지막 무등 야구장 경기 일자

  • LG 트윈스 : 2013년 6월 2일[22] - 8월 17일/18일 군산 원정 경기가 우천취소 없이 마무리되어 6월 2일 경기로 LG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 마무리되었다.
  • 삼성 라이온즈 : 2013년 8월 11일 - 이 경기가 삼성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었다. 이 경기 승리로 KIA는 삼성전 11연패를 탈출했다.
  • NC 다이노스 : 2013년 9월 1일 - 이 경기가 NC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었다.
  • 롯데 자이언츠 : 2013년 9월 26일 - 이 경기가 롯데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었다.
  • 한화 이글스 : 2013년 9월 29일 - 이 경기가 한화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었으며,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대첩이기도 하다.
  • SK 와이번스 : 2013년 10월 2일 - 이 경기가 SK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었다.
  • 두산 베어스 : 2013년 10월 3일 - 이 경기가 두산의 마지막 무등 야구장 방문이었다.
  • 넥센 히어로즈 : 2013년 10월 4일 - 이 경기가 넥센의 마지막 방문이자 무등 야구장에서의 마지막 프로야구 정규리그 경기가 되었다.

4. 아마 야구장으로 전환(2014~)

일단, 무등야구장은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경기장 중 하나로 사용되게 됨으로서 그 때까지는 남게 되었다. 2013 시즌까지 옛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KIA 타이거즈의 홈 구장의 기능을 수행을 한 무등야구장은 2014년 이후부터는 온전히 아마추어 야구인들을 위해서 쓰이고 있다. 아마 야구장 전환 직전까지 프로야구가 열렸던 경기장이라는 메리트 덕분인지 학원야구 및 사회인야구에서 대관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호남권의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애용중이다. 그 외에도 함평 챌린저스 필드로 완전히 옮긴 KIA 2군이 구장 사정 등으로 함평 구장을 대관했을 때 임시로 이 곳에서 2군 경기를 갖기도 한다.

한편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끝나고 존폐가 결정될 기능성이 큰데, 이는 심한 주차난에 시달리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의 주변에 주차용지 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대안 중 하나로 무등야구장 부지를 활용하자는 것. 다만 광주 측에서는 무등야구장과 챔피언스 필드가 같이 놓여진 특이점을 살려서 무등야구장을 존치시켜 아마-프로 야구 벨트로 활용할 계획인 듯 하다.[23]

2014년도와 2016년에는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를 개최하였다.

4.1. 리모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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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네이버 기사)

2017년 2월 17일 무등경기장 활용방안으로 지하주차장 설치+일부 철거 및 개축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밝혔다. 기사 해당 내용에 따르면 리모델링비용에 450억 가량이 들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2019~2020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야구장 관중석의 리모델링은 옛 대구 시민야구장의 전례를 따라갈 것으로 보인다. 중앙 지정석과 기록석, 사무실이 있는 중앙부를 살려두고 내외야 관중석은 대부분 철거한다. 이렇게 되면 관중석 숫자는 현재보다 9800석 정도가 사라진 2700석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아울러 그라운드 지하에 800여면[24], 지상에 대형 27면의 주차장을 건립하고 지상에 야구장과 함께 시민을 위해 개방형 체육공원을 건립하는 것이 주 골자이다.

기존 야구장을 리모델링해 전국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규모로 새롭게 만들되 야구장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다시 인조잔디로 그라운드를 교체하고 바로 옆 아파트 단지의 빛 공해 문제를 고려해 조명탑은 철거할 계획이며 녹지공간에는 산책로, 보행광장, 바닥분수, 소공연장을 만들어 주민들의 여가 휴식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50년 된 노후시설을 정비해 주민들을 위한 시설로 만들어 환원시켜 고질적인 야구장 주차장 문제 역시 해소 될 수 있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기사

5. 여담

  • 무등야구장에는 실내연습장이 전혀 없다. 이 때문에 홈 팀이었던 KIA는 비가 오면 함평으로 내려가거나 혹은 실전 훈련을 포기해야 했을 정도였다. 장마기간을 맞이해서 몇 경기가 우천취소 되다보면 일주일에 한 두 경기 하면 끝나기도 한다. 휴식도 어느 정도지 이 정도 되면 경기감각이나 타격감이 남아날 수가 없다. 그나마 해당 문제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지을 때 실내연습장을 짓도록 반영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무등야구장을 포함한 무등경기장 부지는 1964년도에 건립된 이후 국유지, 즉 국가 소유였다. 그러나 운정동 소재 5.18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되면서 이에 따른 등가교환으로 국유지였던 무등경기장 부지를 시유지로 전환시켰다. 아래에 언급되는 광주 새 야구장 공사에서 토지매입비가 전혀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시유지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 2011 시즌 종료 후 프로야구가 석면 파동에 휘말렸지만, 무등구장은 석면이 검출되지 않았다.[25]
  • 2012년 8월 말 광주는 태풍 볼라벤의 영향권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조명탑 파손이나 신 구장 공사현장에서는 큰 피해는 없었다. 다만 1루측 안전그물망이 파손되는 등의 피해는 있었다고.
  • 무등야구장 물방개 사건에 버금가는 '친환경 야구장' 입증 사건으로, 펜스 옆에 버섯이 자라고 누군가 뱉었던 수박씨가 그라운드에 떨어져 수박 덩굴이 자라나는 일도 있었다.
  • 2012 시즌에는 기아 레이 홈런존을, 2013 시즌에는 기아 K3 홈런존을 운영했다. 해당 홈런존의 좌석 색이 다른 외야석과는 다르게 구분하였는데 해당 구역에 홈런포를 쏘았을 경우 순금 반지 혹은 실제 차량 중 하나를 선택하여 경품을 받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런 성격의 홈런존은 후에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도 그대로 가져갔다.
  • 이 곳을 거쳐간 2013년까지 해태-KIA 타이거즈가 통합 10번의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정작 무등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건 1987년 한국시리즈(vs. 삼성 라이온즈)가 유일하다. 이는 한국프로야구 원년부터 있었던 중립구장 규정 때문인데, 2013년까지 실제 우승 트로피를 가장 많이 들어올린 곳은 잠실 야구장(8회)이다. 다른 한 번은 빙그레 이글스의 홈 구장이었던 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1991년)에서 기록했다.
  • 1999년까지 매년 5월 18일에는 이 곳에서 경기가 벌어지지 않았고 해태 타이거즈는 항상 원정경기나 호남의 타 지역에서 홈경기를 치루었다. 광주에서 5월 18일어떤 날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처음 5월 18일에 광주 홈경기를 치른 것은 2000년 5월 18일. 당시 상대 팀은 한화 이글스였는데, 이 경기에서 해태는 송진우에게 노히트노런 패배를 기록했다. 나중에 5공 신군부가 5월 18일 광주에서의 해태 홈경기를 강제로 막은 것이 드러났다.
  • 2017년 9월 10일 이승엽 은퇴 투어 행사에서 KIA 타이거즈 구단 측은 구 홈구장이었던 무등구장의 외야 좌석의 낙구 지점을 그려 무등구장 오른쪽 좌석을 떼어내어 선물로 증정했는데, 1995년 5월 2일 이강철을 상대로 이승엽이 프로생활 첫 홈런을 때려낸 구장이 바로 무등구장인 것을 감안한 선물인 셈. 물론 좌석 자체는 당시의 의자가 아니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종종 아마추어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들어가는 계단에서 무등 야구장을 바라보면 아마 야구를 관람할 수 있다. 경기 시작 전 아마 야구 관람도 은근한 재미이다.[26]


[1] 전광판 오른쪽 밑에 보이는 갈색 굴뚝과 회색 지붕 건물은 무등경기장 수영장이다. 무등수영장은 시설 노후화를 이유로 2007년에 철거됐고 그 자리는 주차장이 됐다.[2] 프로야구 수익을 위해 유치한 광고들이 전부 제거되었다.[3] 2001년 이전까지 좌우 98 중앙 114미터였으며 2002년 ~ 2004년에는 좌우 97 중앙 113미터였다. 김성한 감독이 부임하면서 펜스를 1미터씩 땡겼다. 김성한 감독은 홈런왕출신이라 많은 홈런을 기대했을 것이다. 02, 03년에는 별 효과를 못 봤지만 04년의 팀 홈런 1위를 기록하면서 효과를 보긴 했는데, 근데 05년 엄청난 광주구장의 홈런 파크팩터를 기록하면서 서정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현재의 펜스로 구장을 넓히고 만다.[4] 중앙에는 길이 22m, 높이 6.9m의 펜스가 존재하며 그린몬스터라고 불린다. 당연히 보스턴의 홈구장 펜웨이 파크의 그린몬스터를 따온 것.[5] 2004년 보수 뒤 좌우측 폴대 근처의 펜스의 높이가 2m로 잠시 낮아졌던 적도 있었다. 당시 장성호이종범의 홈런 증가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랬다.[6] 전성기 무등수영장 기둥으로 떨어지는 홈런을 날렸을 정도니.. 파워만 따지면 타이론 우즈급이었다.[7] 완공(시설 현대화) 당시의 무등 종합경기장은 종합경기장(육상+축구)+야구장+수영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8] 1999년은 3할 30홈런이 장난처럼 양산되었다.[9] 무등야구장을 비롯한(사직구장 제외) 지방구장의 낙후는 KBO에서 올스타전 같은 대규모 이벤트를 지방에서 개최하기를 리하는 이유 중 하나다. 2009년 광주에서 열린 올스타전의 경우 해당지역에 납부하기로 한 돈을 광주시에서 생략하기로 해서 유치한거다.[10] 정확히는 일신방직 뒷부분에 있는 공터를 뜻한다.[11] 지금의 무등야구장은 이 때 사진의 야구장에서 내야 스탠드를 확장한 형태이다. 잘 보면 내야 끝이 복층이 아닌 단층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12] 그러나 항목에도 있듯이 물방개가 아닌 다른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이게 열악한 시설의 상징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13] 특히 역대 최장 연속출장경기 3위(615경기)를 기록하던 이범호가 무등구장에 와서 갑자기 몸이 망가진 것을 보면 할말이 없다.[14] 설령 신구장이 완공되더라도 2015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야구 종목이 정식적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최소 2015년까지는 야구장을 사용한다.[15] 한 때 안산 돔구장 떡밥 때, 기아자동차가 거론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16] 대한민국에서 연고지 이전이 쉬운 게 아니라서 시에서 베짱을 부린듯 하다. 종목은 다르지만 축구의 북패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연고지 이전을 하면 기존 팬들 중 상당수가 떨어져 나간다. 아니, 타 종목 갈 것도 없이 같은 집안의 패륜아가 있지 않은가.....[17] 이걸 보고 열받은 KIA 팬들은 만화 <그랑죠>의 주제가 가사에 박광태 시장과 신축 구장을 넣어 개사한 짤을 만들어 박광태 시장을 까기도 했다.[18] 광주 상무가 경기를 한 적도 있긴 하다[19] 공교롭게 양현종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의 정규시즌 첫 경기의 선발투수로 나선다.[20] 기아가 한국시리즈를 무등 야구장에서 확정지은 것은 이 때가 유일하다.[21] 이 시즌, 기아는 우승을 했으나 우승의 확정은 잠실에서 접수했다.[22] 그 시즌, LG는 8월 17일 ~ 8월 18일의 군산 2연전으로 KIA와의 원정경기를 마쳤다.[23] 애틀랜타에 위치한 터너 필드가 이전 홈구장인 풀턴 카운티 스타디움을 철거하여 주차공간을 확보한 것을 벤치마킹해야 할 듯 싶다.[24] 초기엔 1252면으로 알려졌으나 축소되었다. 아마도 챔피언스 필드와 용봉천 맞은편에 있는 임동 공용주차장 필지에 800여면이 들어서는 주차장이 들어서기 때문인 듯 하다.[25] 재밌는 사실은 당시 석면파동에 휘말렸을 때 석면이 검출된 구장들은 전부 당시 천연잔디를 사용한 구장이었다.[26] 사실 고교야구 등 아마야구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 전에 시간이 남는다면 직접 들어가서 봐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