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10:35:51

김주형(1985)

김주형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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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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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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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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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7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5번}}}
정성훈
(2002)
김주형
(2004~2006)
손지환
(2007)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33번}}}
손지환
(2004~2006)
김주형
(2007~2008)
채종범
(200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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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2008.5.5.~2010)
김주형
(2011~2012)
장시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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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환
(2012)
김주형
(2013~2019)
유재신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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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형
金柱亨|Kim Joo-Hyeong
출생 1985년 12월 15일 ([age(1985-12-15)]세)
전라남도 광주시
국적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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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광주학강초 - 광주동성중 - 광주동성고
신체 186cm|118kg
포지션 1루수, 3루수
2루수[1], 유격수[2], 우익수[3], 좌익수[4]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4년 1차 지명 (KIA)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4~2019)
지도자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0~2022)[5]
동신중학교 야구부 감독 (2023)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24~)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8년 12월 22일~2010년 10월 30일)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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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곡 Bon Jovi - It's My Life
응원가 노브레인 - 그것이 젊음[6][7] }}}}}}}}}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지도자 경력5. 플레이 스타일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KIA 타이거즈의 前 야구 선수.

아마시절 최고의 타자 중 한 명[8]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은 1차 지명 선수였으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매년 기대감과 실망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워낙 높았던 기대감에 두드러지는 성적이 없었음에도 베테랑의 연차까지 커리어를 이어갔고, 노망주이자 프랜차이즈 유망주의 대표격인 선수가 되었다.[9]

2. 선수 경력

김주형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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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김주형/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6년 2007~2008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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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후

2020년 5월 연예인 야구단 크루세이더스에 입단한 것이 알려졌다. 코치와 동시에 사회인 야구 선수 활동도 하는 듯.

4. 지도자 경력

방출당한 후의 근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으나, 2020년 창단한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야구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던 관계로 정식 코치로 등록되지 않았다가 2021년 10월에야 등록되었다.

이후 신규 창단하는 서울 동신중학교(서울컨벤션고등학교와 동일 재단 소속) 야구부 수석코치로 이동했다. 거포 유망주→수석코치, 전 KIA 김주형 지도자 이야기 협회 사이트에는 2023년 5월부터 감독으로 표시되어 있다.

2024년 다시 서울컨벤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이동했다.

5. 플레이 스타일

훌륭한 신체조건과 이에 뒤따르는 신체능력 등, 소위 하드웨어가 매우 뛰어나서 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았던 선수. 그러나 그에 못미치는 소프트웨어가 선수생활 내내 발목을 잡으며 결국 미완의 대기로 남은 선수다.

KBO에 등록된 프로필 기준으로 185cm, 93kg의 뛰어난 피지컬과 이에 기반한 훌륭한 파워를 갖췄다. 잠실 중앙을 라인드라이브(!)로 넘긴 적도 있어서 '천연 도핑'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 그러나 부족한 컨택과 통산 135볼넷/389삼진이라는 절망적인 선구안 때문에 장타 툴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수비의 경우 좋은 유연성 덕분에 코너 내야수로서는 평가가 꽤 괜찮았다. 파울라인으로 붙어서 오는 타구를 부드러운 자세로 잡아서 좋은 송구로 땅볼 수비를 하는 경우나, 1루수로 출전 시 다리를 쫙 벌려서 잡아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서 호수비 모음집 동영상들을 보면 1, 3루에서 어려운 타구를 낚아채는 김주형의 호수비 장면을 의외로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런 유연성 덕분. 그러나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수비[10]가 아니라 신체 능력을 적극 활용해 몸으로 때우는 거친 수비를 하기 때문에 기복이 심하고 실책이 잦으며, 수비 센스도 썩 좋지 않다. 유연성 있는 수비를 살려 센터라인 내야수나 코너 외야수로 기용해본 적도 있으나 결과는 항상 좋지 않았으며, 특히 유격수로 자주 나선 2016시즌에는 기아 팬들이 김주형의 수비에 벌벌 떨었을 정도.[11]

6. 여담

양현종에게는 초-중-고교 직속 선배가 된다.

동갑내기 도플갱어가 있다.[12]

2006년 10월에 가시를 부른 적이 있다.#

디시인사이드 갸갤에서는 짐짝, 짐주형이라고 불린다. 잦은 에러와 형편없기 그지없는 타격으로 팀에 짐과 같다고 붙여진 별명. 이 별명이 널리 퍼져 이제는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거의 그렇게 부른다. KIA 타이거즈 전담기자인 김여울의 블로그에 따르면 김주형 본인도 짐짝이라는 별명을 안다고.
파일:짐주형.png
얼마나 유명한지 네이버 검색창에 '짐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짐주형'이 뜬다.

2011년 이후로 그의 별명은 지미로 낙찰되었다. 파울만 잘 친다고 하여 '지미 파울러' 라는 뭔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잘할 때에는 짐금님, 지미 소사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김주형의 타율이 바닥을 치면서 갸갤에선 지미라고 부르기도 싫다며 거의 욕설로 대신하기도 했다. 2017년에 이르러서는 전년도의 플루크마저 잊게 만드는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이 생긴다고. 아마도 KIA 타이거즈 역사상 야구 외적으로 아무 잘못없이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선수일 것이다.

2018년 이후부터는 별명인 '짐짝'이란 단어도 불러주기 싫은지 KIA 팬들은 '그 화물'이란 단어로 부르고 있다. 또한 갸갤에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 처리해야 한다는 드립이 종종 나오고 있다. 훗날 김주형이 떠난 뒤 이 번호를 물려받을 다른 선수는 뭔 죄냐며. 한편 김주형이 방출된 뒤 KIA의 새 33번은 히어로즈 시절부터 아버지 유두열의 등번호를 달고 뛰었던 유재신에게 돌아갔지만 번호를 바꾼지 1년만에 방출됐고, 유재신이 방출된 후에는 김주형과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한 장영석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장영석도 시즌 종료 전에 방출되면서(...) 후반기에는 군 전역 후 복귀한 신범수가 달았다가 2022년부터 오선우로, 2023년부터는 변우혁으로 다시 주인이 바뀌었다.[13]
파일:GM_MS_joohyeong.jpg
최훈 카툰에서는 때때로 짐(MS)으로 그려진다.[14]

헨리 소사에게 이발을 받은 적이 있는데, 정작 소사는 33번 선수라며 기억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같은 수비 포지션에 입단 동기인 박석민과 많이 비교가 되기도 하는데, 두 선수 다 초고교급 타자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결과는 근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로 인해 지금처럼 격차가 벌어졌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

은근히 금강불괴인데, 그래서 더 까인다. 야구도 못하는 야구선수 주제에 안 다쳐서 오히려 팀에 해만 끼친다고. 하지만 생각 외로 잔부상도 있는 편이라서, 실은 정작 필요할 때에 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2015년 12월에 품절남이 되었고, 이듬해 9월 득남하였다.

팬 서비스 안 좋기로 유명한 KIA 타이거즈 내에서도 아니나다를까 별로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어느정도 감안해야 하는 것도 있는데, 김주형 본인이 욕을 워낙 많이 먹어서 팬들을 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도 욕을 먹어서 프로가 팬을 두려워 하는 지경까지 다다랐다.[15] 그러나 김주형이 19시즌 중 방출되면서, KIA 팬덤에서는 그딴 고민은 이제 더 안 하게 됐으니 기뻐하라는 비아냥으로 대하고 있다.

일본프로야구오오타 타이시라는 김주형과 아주 비슷한 유형의 선수가 있다. 2명 다 1차 지명 출신의 고졸 우타 거포 내야수에[16] 등번호도 5번과 33번으로 겹쳤으며[17], 큰 기대를 받고 입단했지만[18] 2군만 거하게 폭격하고 1군 타석에서는 헛스윙만 하며 기회를 말아먹는 등 애증의 선수였다.[19] 허나 오오타는 2017년 15홈런, 2018년 14홈런, 2019년 20홈런, 2020년 14홈런 등 맹타를 휘두르면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한 반면[20], 김주형은 2016년의 플루크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기대 이하의 모습만 보여주다가 방출당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21]

디시위키에서는 헛스윙 삼진, 루킹 삼진, 파울팁 삼진에 대한 설명이 김주형 세글자다.

알루미늄 배트 마지막 세대였다.[22]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일본의 상당수 거포 유망주들처럼 알루미늄 배트 덕분에 본래 실력보다 더 장타로 주목받은게 아닌가 하기도 한다.[23] 김주형의 배트 손잡이 윗부분에 맞은 타구가 홈런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선수 본인은 KIA 타이거즈의 애착이 많았던 선수이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의 고향인 광주의 연고팀이며 어린 시절부터 해태 타이거즈 팬 출신이기도 하다.[24] 방출 후 다른 팀으로부터 오퍼가 들어왔다고 하나 본인은 KIA 타이거즈 외의 다른 팀에서 뛸 의사가 없다고 하여 은퇴를 선택했다고 전해진다.[25]

7. 관련 문서


[1] 많은 출전 보단 해마다 구멍을 매우는 방식으로 조금씩 출전하였다. 가장 많이 출전한 2016년의 18경기를 제외하면 매해 한자릿 수의 출장을 하였다. 통산 41경기 출전.[2] 2016년 뎁스가 약화되어있는 센터라인의 뎁스 보강을 위해 김주형을 유격수로 기용하는 시도를 하였다. 수비에 더 안정감이 있는 강한울이 주전을 꿰차며 다른 포지션에 주로 출전하게 되었다. 프로 입단 후 유격수 첫 출전은 2015년도에 했다. 통산 34경기 출전.[3] 2015년 7월 9일 경기에서 생애 처음으로 우익수로 출장했고, 2016년 6월 8일 경기에서 또 우익수로 나왔다. 2016년 9월 7일 우익수로 출전했지만 성적은 좋지 못했다. 통산 20경기 출전.[4] 통산 3경기 출전.[5]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자격증 취득은 2021년 가을.[6] KIA의 김주형(김주형!) 힘차게 날려봐 화끈하게 (으쌰 으쌰 으쌰 으쌰~) KIA의 김주형 화이팅 (하나!둘!셋!넷!) KIA의 김주형(김주형!) 힘차게 날려봐 화끈하게 김~주형(화이팅!)[7] 추후 김태군의 응원가로 부활하였다[8] 만루에서도 고의사구를 받은 역사적으로 몇 안되는 기록을 가진 대어 중의 대어였다. 심지어 고의사구 당시 투수가 부산고 에이스였던 장원준.[9] 타 팀 팬덤 사이에서도 워낙에 유명해 자 팀에서 재능을 피우지 못한 유망주가 나오면 제2의 김주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만년 유망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기대를 많이 받던 선수라 올드 KIA 팬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사실 KIA 팬덤 뿐만 아니라 타 팀에서도 올드 야구팬 사이에서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편.[10] 첨언하자면 링크된 선수는 김주형과 같은 해에 1차 지명을 받은 내야수이다. 다만 유격수로서의 수비력은 서로 극과 극이다.[11] 김주형을 포함해 유재신 등 단순 대수비 요원을 자꾸 유격수로 돌리려는 시도 때문에 터진 경기가 2017시즌에도 몇 번 있는지라 팬들은 김기태 감독이 유격수 수비를 너무 만만하게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12] 공교롭게도 김주형과 최대성은 1985년생 동갑내기다. 김주형이 동성고 재학시절 부산고와 경기를 치르기 위해 부산을 찾았을 때 최대성의 어머니를 만났는데 최대성의 어머니는 김주형을 보고 ‘아들과 똑같다’며 웃었다. 심지어 방출 및 은퇴한 해도 2명 다 2019년으로 똑같다.[13] 참고로 김주형이 사용했던 9번과 33은 다른 팀에서 영구결번이다. 9번은 이병규, 33번은 박용택.[14] 등번호가 틀렸다. 9번은 2012년까지 사용한 등번호이며 2013년 5월 23일 연타석 홈런을 친 당시에는 33번.[15] 단적인 예로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대수비로 나와 평범한 3루 방향으로 가는 번트 타구를 1루에 악송구를 하면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양현종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양현종이 세이브를 챙기며 KIA 타이거즈가 우승을 하자 양현종 덕분에 광주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할 정도. 그만큼 자신이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팬들에게 욕 먹는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2군에 박힌 지금 시점에선 만나면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16]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더 중 유일한 고졸 타자였다. 즉 당시 드래프트 고졸 타자 중 최대어. 심지어 앞 순서에서 소프트뱅크가 먼저 지명한 상태였으나 후순위로 지명한 요미우리가 추첨을 통해 교섭권을 얻어가면서 스틸픽까지 따냈을 정도의 유망주였다. 다만 오오타는 프로 데뷔 후에는 외야수로 전향했다.[17] 오오타 타이시는 원래는 마츠이 히데키의 55번을 받았다. 해당 번호는 마츠이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준 영구결번 상태였는데 그것까지 깨고 신인이었던 오오타에게 등번호를 준 것. 마침 김주형도 팀의 결번급 레전드인 홍현우의 5번을 물려받은 선수라 이 점도 비슷하다면 비슷하다.[18]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순혈주의 특성상 오오타 타이시는 요미우리에서 포텐이 터지기만 했으면 1군 감독 자리까지 보장되는 상황이었다.[19] 심지어 등장곡도 똑같이 본조비의 It's my life였다. 닛폰햄 시절 오오타 타이시 등장 영상[20] 다만 공갈포 기질은 여전히 심해서 2019년에 타율 .289에 20홈런을 찍고도 OPS .776을 기록하기도 했다. 심지어 2020년에는 2018년이랑 똑같이 14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OPS는 .812에서 .721로 불과 2년 사이에 1할 가까이 떨어졌다 (...)[21] 하지만 오오타는 본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기회를 받다가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로 이적한 뒤에야 포텐이 터진 것이고, 김주형은 KIA 한 팀에서만 원 클럽 플레이어로서 기회를 받았지만 끝내 성장을 이룩하지 못하면서 방출됐다는 차이점은 있다. 참고로 오오타는 요미우리 시절 타격 커리어 하이가 4홈런에 불과하다. 즉 트레이드되기 전만 해도 오히려 오오타가 김주형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였다.[22] 고교야구가 나무 배트로 전환한 것은 200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부터였다.[23] 사실 한국에서도 강혁 등의 이런 케이스로 꼽히는 선수들이 있다.[24] 어릴때의 장래희망도 그냥 야구선수가 아닌 해태 타이거즈 선수였다고 한다.[25] 다만 서울 어느 팀동명이인 신인선수의 등장으로 오해를 잠시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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