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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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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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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주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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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우
(1989)
오희주
(1991~1992)
김훈
(1993~1996)
LG 트윈스 등번호 29번
김덕근
(1989~1992)
<colbgcolor=#000><colcolor=#fff> 오희주
(1993~1997)
정현택
(1998~200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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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주
吳喜柱 | Oh Hee-Joo
출생 1968년 7월 2일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진흥고 - 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1년 1차 지명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91~1992)
LG 트윈스 (1993~1997)
1. 개요2. 선수 경력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소속 투수.

2. 선수 경력

1991년 해태의 1차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별다른 활약 없이 1993년 1월 27일 LG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1997년 은퇴하였다.

한양대 출신으로 해태에서 기대를 많이 한 선수로, 광주일고-인하대의 좌타거포 김기태와 고민하면서 스카우트 팀장이 직접 선택해 데려온 선수였다.

하지만, 당시 감독 김응용은 탐탁지 않아 했는데, 처음 감독에게 인사 온 신인이 빤짝이 옷에 염색과 파마를 하고 인사를 하길래 어디 유명한 가수신가?라고 한 마디하고는 해태에서 적응하기 힘들 거라고 여겼다.

코감독의 예상대로 선동열, 이강철, 조계현, 문희수, 김정수가 버티고 있던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실패하고[1]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2년 있다 바로 트레이드되었다. 송유석이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술회하기를 만약 김기태가 해태, 오희주가 쌍방울을 갔다면 둘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며 1차 지명 투수이기 때문에 쌍방울은 계속 기회를 주면서 어떻게든 오희주를 키워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희주가 입단했을 당시 투수층이 매우 두터웠던 해태와는 달리 쌍방울은 투수층이 얇아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2]

LG에서도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채 결국 은퇴했다. 사실 LG 입단 역시도 어거지로 들어온 것이었는데, 해태 타이거즈 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반골 기질이 강해서 선배들과 충돌하다 차라리 내가 야구를 그만두고 만다며 일방적으로 구단을 떠나고[3] 선배의 가구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것을 LG 스카우터 팀이 와서 5천만원의 현금으로 트레이드를 했으니 자기들하고 야구해보자고 설득을 해서 겨우 복귀한 것이었고, 이후 계약기간이 끝나자 미련없이 은퇴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희주의 프로데뷔 첫 승 상대가 바로 그가 처음 입단한 해태였다. 1995년 5월 13일 광주 해태전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프로 첫 승을 따냈다.#

은퇴 후 골프 레슨프로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도된 적이 있다. 송유석에 따르면 개인사업중이라고 하며 지금도 송유석과 연락하고 지낸다고 밝혔다.

3. 관련 문서


[1] 신동수, 송유석, 강태원 등 불펜진도 두터웠다. 심지어 선동열이 시즌 초반 부상으로 빠진 1992 시즌에도 선발 로테이션을 꿰차지 못했다.[2] 그리고 해태가 외면했던 김기태는 1994 시즌에 KBO 사상 첫 좌타자 홈런왕에 등극하는 등 이듬해 이승엽이 데뷔하기 전까지 KBO를 대표하는 좌타거포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해태 주전 1루수였던 김성한은 공교롭게도 김기태가 데뷔한 1991 시즌을 정점으로 에이징 커브가 찾아왔고, 해태는 이를 1994 시즌을 앞두고 한대화를 LG에 내주면서까지 김상훈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3]무시무시한 군기의 해태 타이거즈 내에서 염색을 하거나, 락커처럼 장발로 머리를 기르고, 가죽자켓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이후 임창용 역시 해태에서 그런 반항기를 보이다가 선배 이순철에게 걸린 뒤로 바로 고분고분해진 걸 보면, 오희주의 깡은 정말 대단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