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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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실상 KBO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1]로 이 해부터 본격적으로 1차 지명과 2차 지명이 시작되었다.2. 1차 지명
1차 지명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를 뽑았다. 지명 수에 제한은 없었다.OB는 임시로 대전을 연고지로 쓰고 있었지만 원 연고지는 서울로 MBC와 겹치기에, 대전 및 충청 지역 선수 외에 서울 지역 선수들을 상대로 MBC와 지명을 했다. 양팀 지명 선수들 중 10명의 선수가 겹쳐, 10명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했다. 이후로 두 팀은 1차 지명을 앞두고 동전 던지기나 주사위 굴리기 등으로 지명 순번을 정했다. 10명의 선수는 지명 순번대로고 그외에는 가나다 순이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팀 | 1차 지명자 |
오영일(배명고-인하대, 투수) 김용수(동대문상고-중앙대, 투수)※[2] 기세봉(충암고-포철-경리단, 투수)※[3] 신계석(경기고-경희대, 투수) 김정수(신일고-고려대, 외야수) 박철영(배명고-연세대, 포수) 김문영(선린상고-연세대, 외야수) 유성용(경기고-중앙대, 내야수) 이성수(충암고-동아대, 외야수) 이승희(서울고-한양대, 내야수)※[4] 최홍석(신일고-고려대, 외야수)[삼미] 편기철(부산고-건국대-농협-성무, 투수) | |
MBC 청룡 | |
(서울) 장호연(충암고-동국대, 투수) 정선두(장충고-실업롯데-경리단, 투수) 박종훈(신일고-고려대-상업은행, 외야수) 이선웅(선린상고-인하대, 내야수)[삼미] (대전·충청) 송일섭(청주고-농협,성무, 외야수)[7] 정구선(대전고-동국대-한국화장품-경리단, 내야수)[삼미] 한대화(대전고-동국대, 내야수) | |
OB 베어스 | |
김석일(경남고-중앙대, 외야수) 김성호(부산고-건국대, 내야수) 김종근(경남고-중앙대, 내야수) 김호근(부산고-고려대, 포수) 박영태(마산상고-동아대, 내야수) 박정후(경남고-동아대, 투수) 배경환(경남고-연세대-포철-경리단, 투수) 심재원(부산고-성균관대-한국화장품, 포수) 양상문(부산고-고려대, 투수)※[9] 우경하(경남고-고려대-실업롯데-경리단, 외야수) 유두열(마산상고-한국전력, 외야수) 장상철(부산고-고려대, 내야수)※ 최동원(경남고-연세대-실업롯데-한국전력, 투수) 한문연(마산상고-동아대, 포수) | |
롯데 자이언츠 | |
김상기(인천고-인하대, 투수) 김진우(인천고-인하대, 포수) 박명운(인천고-중앙대, 포수) 유응삼(동산고-농협, 외야수)※ 임호균(인천고-철도청-동아대-한국전력, 투수) 최광묵(인천고-인하대, 외야수)※ | |
삼미 슈퍼스타즈 | |
김근석(경북고-고려대, 내야수) 김동재(경북고-연세대, 내야수) 김시진(대구상고-한양대-경리단, 투수) 박승호(대건고-건국대-실업롯데-성무, 내야수) 양일환(대구상고-건국대, 투수) 장효조(대구상고-한양대-포철-경리단, 외야수) 정진호(경북고-연세대-한국전력-경리단, 내야수) 홍승규(대구상고-성균관대, 외야수) 황병일(경북고-건국대, 외야수) | |
삼성 라이온즈 | |
장진범(진흥고-영남대, 내야수) 조종규(군산상고-건국대-한국화장품-경리단, 포수) | |
해태 타이거즈 |
3. 2차 지명
2차 지명은 롯데, 삼미, 삼성, 해태 4팀만 했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RD | ||||
롯데 | 삼미 | 삼성 | 해태 | |
1 → | 이석규 (마산상고-동아대-한일은행, 내야수) ※ | 김대진 (경북고-연세대-포철-경리단, 외야수) | 구영석 (경북고-상업은행, 내야수) ※[10] | 김현재 (휘문고-제일은행-고려대-경리단, 투수) |
2 ← | 정윤돈 (경남고-경희대-한일은행, 내야수) ※ | 유종천 (배문고-성균관대-포철-성무, 투수) | 조규식 (대구상고-영남대-제일은행-상무, 투수) ※ | 박동경 (서울고-상업은행, 투수)[11] |
3 → | 패스 | 이광길 (대전고-인하대, 내야수) | 패스 | (신일고-고려대-상업은행, 내야수) |
4 ← | - | 패스 | - | 이원일 (청주고-제일은행, 포수) ※ |
4. 이모저모
- 이 해 드래프트에서 가장 큰 수확을 거둔 팀은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로, 롯데는 1984년 리그 MVP를 수상한 최동원과 최동원의 전담 포수 한문연, 1984년 한국시리즈 MVP 유두열을 모두 이 해 뽑아 그 다음 해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 삼성은 에이스 김시진과 타격의 달인 장효조를 지명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대부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드래프트의 승자로 남았다. 그 외에도 장호연과 박종훈을 지명한 OB, 김진우와 임호균을 지명하고 이선웅과 정구선을 얻은 삼미도 쏠쏠한 이득을 얻었다. MBC는 오영일이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나머지 선수는 영 시원찮았고, 가능성을 보여주던 차에 요절한 김정수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박철영은 아쉽게 됐다. 반면, 해태는 뽑은 선수 자체가 적어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OB에서 영입한 한대화가 주전 3루수 자리에서 활약한 것이 위안거리.
- 박동경과 양승호는 1982년 실업야구에서 각각 최우수 신인투수상과 최우수 신인타격상을 수상했는데, 그런 둘을 해태가 지명하면서 대한야구협회는 프로야구에서 실업야구의 유망주들을 빼간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둘은 프로 야구에서 기대만큼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 해태에 1차 지명된 조종규는 선수 생활 동안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은퇴한 후 심판위원으로 전향해 심판위원장과 경기감독관을 지냈다.
- 해태에서 1차 지명된 또다른 선수인 장진범 역시 프로에서 크게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은퇴한후 심판위원으로 전향했다.
[1] 1982년 드래프트도 있지만, 이 드래프트는 전력 불균형 해소를 위해 시즌 직전에 일부 팀들만 참여하여 진행되었다.[2] 지명된 후 한일은행 야구단에 입단하지만, 이 때 지명 때문에 1985년 신인지명 때 MBC에 그대로 지명됐다.[3] 1년 뒤, 1984년 신인 드래프트 때 OB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4] 2년 뒤 1985년 신인 드래프트 때 OB 베어스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삼미] 지명권 양도 계약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였다.[삼미] [7] 지명권 양도 계약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삼미] [9] 지명된 후 한국화장품 야구단에 입단하고 2년 뒤 다시 지명받았다.[10] 1년 뒤 롯데에 재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11] 지명권 양도 계약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